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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이여 슬퍼마오

 

5개월 만이다.  서로 반갑다고 악수하고 웃음을 주고받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물어 볼라고 했던 것 다 물어보겠다고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참 성실하고 착하게 생긴 이 양반은 모 유통사업장의 위원장이다. 나이는 내 연배쯤이고, 부인이 있고, 새로 태어날 아기가 있다.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는 내내 우울한 이야기 뿐이다. 자본은 여전히 철벽같고, 반대로 조합원들은 의기소침 하다. 조직 대상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사업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보니 비정상적으로 이직율이 높아 이도 쉽지 않다.  최근에는 하나 뿐인 채용상근자는 여러 사정으로 그만두었단다.  같이 하겠다는 사람을 찾는데 여의치가 않단다.


위원장이 되기 전에 한참 투쟁을 할 때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는데, 요즈음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야 겠단다. 그러면서 점점 ‘관료’가 되가는 것 같다고 자신을 책망한다. 또 그러면서 세원테크가  생각난다고.... 


격렬히 투쟁할 때 같이 했던 이들이 있었단다. 그때는 세상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가 힘든 적도 있어 지만 여러모로 많은 힘이 되었단다. 지금은 그들이 없다. 이러저러 한 이유로 다른 사업장에서 그때 그런 일하거나 모색한다고 . 가끔은 전화 통화를 하는데 여전히 힘들게 싸우고 있단다. 그러면 그이들에게 “왜, 빗겨가지 않고 정면으로 사냐” 고 “힘들게 사는 게 꼭 올바른 것이냐”고 질타 반  원망 반 그런단다. 그러고 나면 참 아프고 자신이 밉고 그렇단다. 자신의 삶은 자꾸 우회하려는 것 같아 답답하단다. 급기야 이 양반 눈가가 붉어진다. 참 속상하고 외로운가 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투쟁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이야기 내내 내가 이 양반을 위로할 수 없어 안타깝고, 자본이 증오스러웠고, 그래도 ‘참 성실하고 착하게 생긴’ 이 양반이 있어 기뻤다.


애가 끊어지고, 간이 녹고, 심장이 오그라들 때는 패배했을 때가 아니었다. ‘참 성실하고 착하게 생긴’ 이들이 자신을 탓하면 떠나갈 때였다. 실상 그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본의 포악함과 더불어 남아있는 자들의 부족함이기도 했다. 난 이양반의 손을 잡고 싶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며, “아유 아무튼 열심히 해야죠” 한다. 우리는 또 그렇게 열심히 할 것을 다짐이랄 것 없는 다짐을 하고 헤어졌다. 


 

벗이여 슬퍼마오

젖은 소매 마를 날 있으니 온 누리 마른 풀 저마다 소리쳐 푸른 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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