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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장르는 환타지뿐이던가?

 

할 일 없는 ‘아줌마’들이나 방바닥에 배 깔고 킬링타임을 위해 보는 것이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구시대적이고 마초리즘적인 발상은 이제 너무나 명백하게 틀린 말이 되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드라마에 열광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봐야겠는데, 그 이유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아이러니한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하나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드라마 시청자들이 자신의 일상과는 매우 동떨어진 상류층 인사들의 사랑놀음에 열광하면서 그런 럭셔리한 생활을 동경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 사랑놀음 안에는 반여성적인 요소들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지만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그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기야…’라는 유행어와 함께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가난한 무명 영화인의 딸이 재벌가의 후계자를 만나 이른바 ‘신데렐라’의 꿈을 이룬다는 줄거리의 이 드라마는 출연 영화의 잇따른 흥행성공으로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자리에 오른 김정은과 그 간 영화배우로서 탄탄한 자기만의 이미지를 구축해 온 박신양의 출연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초긴장의 드라마 시청률 전쟁에서 이 드라마가 승리하기까지는 샤프하면서도 다정다감한 박신양과 어리숙하면서도 귀여운 김정은이 쳐대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의 힘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뭘까? 본인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하며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기주가 강태영을 ‘애기야…’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서, 강태영이 윤수혁과 한기주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을 보면서 여성이 우유부단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음을 읽어내기 보다는 그렇게 불리워지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슷한 시간대의 타사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호화로운 휴양 리조트를 전세계적으로 10여개씩 소유하고 있는 재벌가의 아들과 젊은 나이에 한 기업의 실장 자리에까지 오른 엘리트 사이에서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 전문대 레크리에이션과 출신의 샌드위치 배달원의 이야기 역시 앞의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드라마에서 매 회마다 보여지는 열대 휴양지에서의 생활들은 우리와 같은 보통의 소시민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 여행사의 G.O.가 될 수 있을까’, ‘나도 저런 재벌가의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드라마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또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 역시 고졸 출신의 인터넷소설 작가와 인기스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 역시 인기 젊은 이들 사이에서 인기 급상승 중이고,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호화로운 집과 자동차는 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길거리를 지나는 20대 여성들은 허리띠 대신 스카프를 말아 매고 있거나 긴 파마머리를 옆으로 묶고 커다란 머리핀을 달고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매듭이 굵은 넥타이와 더블버튼정장이 유행이라고 한다. 물론 이 전에도 드라마 속 연예인들을 따라하는 것은 주요 패션 트렌드 중의 하나였지만 근래의 이런 드라마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의 대사 한마디, 머리핀 하나, 넥타이 하나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인생의 허무함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꿈꾸는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에 있어 표준 미덕일지는 모르나 허황된 꿈을 쫓아 젊음을 허비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도 없을 터. 물론 그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모두 허황된 꿈을 쫓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모두 허황된 꿈을 쫓는다 해도 그 잘못을 모두 그들에게 돌릴 수는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앞의 드라마들의 장르는 모두 환타지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위 10%를 차지하고 있는 계층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그러할 것이다. 왜 이렇게 드라마의 장르가 단순화됐을까? 이 질문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 만드는 사람 모두 자신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일 것이다.

드라마 할 시간이다. 궤변은 이만 접고 드라마나 보러 가야겠다....^^*

<한림 웹진 @say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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