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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녹보라, 우리 지금 만나] 첫번째 이야기, 여성운동 속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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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오름  http://hr-oreum.net/article.php?id=1727

[적녹보라, 우리 지금 만나] 여성운동, 제도화된 성과를 넘어서기 위한 고민들

 

첫 번째 이야기, 여성운동의 속내 들어보기

 

 

나영

 

 

[편집인 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글로컬 액티비즘 센터가 매달 여는 ‘가나다 토론회’는 적녹보라의 만남을 기획하고 있다. 여성운동, 노동운동, 환경/생태운동의 안에서 어떤 고민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들이 소통 혹은 불통되고 있는지, 현장의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리다. 가까이에서 서로 말하고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해도 깊어지고 뜻밖의 해법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눈 이야기들을 <인권오름>의 독자들과도 나누기 위해 [적녹보라, 우리 지금 만나] 연재를 시작한다.



‘가나다 토론회’의 첫 번째 주제는 “여성운동의 속내 이야기”. 이 날 이야기 손님으로는 <언니네트워크>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몽 님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 설립위원이자 대구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인 태혜숙 님이 함께했습니다.

네트워크에 대한 기대와 우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인 몽 님은 <언니네트워크>에 대한 소개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언니네트워크>는 비혼 여성,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한국이 속해 있는 전체 아시아 여성 등 혈연/가족 중심 체계의 경계를 벗어나 있는 여성들에게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여성친화적인 공간을 제공하고자 2004년에 출발했습니다. 특히, <언니네트워크>는 기존 여성단체와 같이 조직된 단체 활동으로서의 운동방식과는 다른, 느슨한 조직과 네트워크 방식의 운동을 지향해 왔다고 합니다. 상근활동가 중심이 아니라 느슨하지만 보다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는 운동방식을 지향했기 때문에 조직을 키우기보다는 구성원 개개인이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활동을 중심으로 서로 모여 다양한 일을 도모하고 진행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해 왔던 것이죠.

 


몽 님은 최근 여성운동 진영에서 이와 같은 자생적 네트워크가 부각되고 대안으로 논의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함께 지적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단체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개별적인 네트워크로 활동하는 형태가 각광을 받는 한편, 왜 더 이상 여성주의 활동가라는 것이 여성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특히 대학생들에게 비전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대학생들이 탈정치화 되고 있다는 평가도 하지만 현실을 보면 정작 문제는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이들이 처한 현실과 여성운동 내부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되었던 한양대학교의 ‘성의 이해’ 수업과 같은 문제를 보면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그렇게 많은 문제제기를 했고 대학 내에서 상당 부분 제도적인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이런 문제가 있는가, 왜 이제 대학 안에서는 문제제기할 동력이 없는가 하는 고민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존재했던 활동들-성 평등을 위한 활동, 교수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 반 성폭력 학칙 제정 등-은 10년이 지난 지금 이미 대학에서 상당히 제도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학 과목을 교양 필수 과목으로 선정한 학교들도 많아졌고, 학내에는 양성평등 센터, 상담 센터 등도 개설되었죠. 그러나 몽 님은 이런 것들이 여성주의 인식을 충분히 반영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문제로 지적합니다. 이렇게 ‘제도적으로만’ 변화한 조건에서 학생들의 여성주의 활동이 정치화되기 어려운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단체 활동에 대한 의미 역시 더 이상 희생, 봉사, 조직 중심으로만은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재미와 보람, 자신의 성장이 선택의 주요 조건으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희생, 헌신, 조직화된 사람을 원하는 단체들의 활동 구조는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여전한 문제, 사라진 정치

한편, 조직의 운영 방식이 달라도 활동의 내용에서 크게 차별점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도 주요한 고민으로 이야기되었습니다. 한양대 수업의 문제처럼 수년 전부터 반복되는 일인데도 정치화되지 않는 이슈들이 존재할뿐더러, 모든 여성문제에 여성단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요청받는 반면 실제로 여성단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는 이것이 더 이상 여성주의 정치 의제로 이슈화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10년 동안 실제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는데 여성 단체, 이슈, 담론 등은 굉장히 높아졌다는 것, 담론만 풍부한 상황에서 여성주의와 관련된 체계나 제도 등은 외피로만 남아있는 상황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몽 님은 무엇보다도 활동가들이 만성적으로 겨우 최저 생계비 정도의 활동비에 의존해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생애전망을 가지고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예전에 비해 더욱 어려워진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단체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이미 자기 동력과 여성주의적 전문성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데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척박해지고 있는 상황이고, 단체에서는 아이를 가지고 있거나 생계가 어려운 사람 등 다양한 조건의 활동가들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태혜숙 님은 국제기구로부터 기금을 받는 비정부기구(NGO, 엔지오) 운동의 경우 파급력과 영향력은 엄청나지만 근본적인 변혁이 아니라 적당히 손상을 완화하는 교정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시민성의 창조’를 목표로 삼고 여기에 젠더가 편리하게 활용되지만 법과 정책 프로그램을 수립하는 차원이나 시민사회의 공정성을 운운하는 수사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정책 결과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면서 이들의 사회적 정치적 목표로서의 젠더 평등성은 계급, 인종, 젠더/섹슈얼리티의 문제들을 뭉뚱그려서 추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태혜숙 님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활동을 벌인 사례로 인도 농촌 여성들의 샹틴 농민․노동자 조직(SKMS, Sangtin Kisan Mazdoor Sangathan/the Sangtin Peasants' and Laborers' Organization) 운동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 조직은 인도의 달릿 여성들이 60개 마을을 중심으로 국가가 지원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는 운동을 진행한 사례인데요, 이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단체들이나 국제기구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요구하는 ‘페미니즘적인 것만 하라’는 요구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면서 여성운동을 민중의 운동으로서 진척시켜 나갔다고 합니다. 이후 엔지오(NGO)화에 대한 토론과 성찰을 거쳐 이에 저항하는 농촌 공동체들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페미니스트 액티비즘을 표명하는 데 합의했다고 합니다. 태혜숙 님은 이들이 이러한 토론과 집단적 글쓰기를 통해 활동가와 이론가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과정을 만들어냈다면서 농촌 공동체들, 사회운동들, 연대 네트워크들, 학계 사람들, 공공 지식인들과의 대화를 구축하기 위해 풀뿌리 조직화, 비판적인 자기-성찰성, 집단적인 글쓰기를 함께 엮어 나간 사례로서의 중요성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례에서와 같이 이제는 지구 각 지역에서 각자의 언어를 만들어 그 언어로 새로운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다양한 민중들 사이의 지구적 연대를 해 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제도화된 성과를 넘어서기 위한 고민들

약 두 시간 가량 진행된 토론회에서 이 두 사람이 전한 이야기들은 언뜻 보기에 서로 완전히 다른 차원인 것 같았지만 결국은 같은 고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간의 여성운동이 제도화된 성과들을 남긴 반면 스스로도 제도화되는 길을 걸어왔다면, 이제 여성운동의 다양한 의제들이 정책적 차원이나 제도화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실천적으로, 일상 속으로 파고들어가기 위한 전략들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그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함께할 수 있는 동지들을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만나고 만들어갈 수 있을 지, 자본주의적/가부장적인 세계화의 확장 속에서 갈수록 중층적으로 엮이고 있는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운동 간, 지역 간, 대륙 간 연대는 어떻게 만들어갈 지에 대해서도요. 두 시간의 토론으로는 풀릴 수 없는 많은 고민이 남는 이야기 자리였습니다. 아쉽지만 남은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가나다 토론회에서 다시 함께 풀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다음 ‘가나다 토론회’에서는 ‘노동운동의 속내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덧붙이는 글

나영 님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244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9일 16: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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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15:33 2011/04/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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