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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건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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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탁아운동의 역사

-빈민탁아에서 보육노조 건설까지-


 

1990년은 내가 학교를 졸업하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3월9일에는 다섯 살, 네 살 먹은 혜영이 용철이 남매가 연기에 질식해 죽은 바로 그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파출부와 경비로 일을 나가야 했기에 아이들은 잠긴 방안에 있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며 찾아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남영동 사무실에는 최선희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졸업한 새내기가 탁아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선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영광도 없고, 사회적 주목도 없으며, 오랜 헌신만이 있는 이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부천 오정동에서 탁아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엄마에게 일할 권리를! 아이들에게 보호 교육받을 권리를!


부천에 단 세 개뿐인, 동네에 단 하나뿐인 탁아소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엄마들을 만나며, 어린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돌보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때 선배들은 탁아법 제정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했고, 탁아소 막내인 나 역시 부천 역에서 엄마들과 함께 피 세일을 하고, 서명을 받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꿈이 모여진 탁아법안은 정부의 책임성을 삭제당한 채 1991년 민자당에 의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이제 제도적 공간으로 들어 온 탁아는 보육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정부의 여성인력활용이라는 정책적 필요에 따라 민간시장에 맡겨진 채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마구 양산되던 보육시설은 수익성 있는 여성부업 정도로 인식되어 방송은 앞다투어 보육시설 운영의 투자성에 대해 홍보하였고, 많은 여성들은 단기과정을 통해 보육교사로 양성되었습니다.

1997년 한국보육교사회로 전환한 우리의  슬로건은 보육의 공공성 확보! 영유아보육법을 개정! 보육의 질 향상! 이었습니다.

이제 어린이집은 아이를 맡기는(탁아) 곳이 아니라 보호하고 교육(보육)하는 곳이라고 불립니다.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이름에 걸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동네마다 어린이집 놀이방 간판이 즐비하지만, 여전히 언론에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부모들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대부분이 영세한 민간자본으로 운영되는 보육사업은 여전히 보육교사들에게 직업적 헌신을 강요하고 있고, 보육교사들의 노동시간은 내가 일하던 때인 10여 년 전보다 겨우 2시간 정도 줄어들어 하루 10시간을 육박합니다.


행복하게 자랄 권리! 행복하게 일할 권리!


2004년 1월 영유아보육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법 제정에 걸린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현실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육교사의 질 관리를 위해 양성과정을 강화하겠다고는 하나, 보육교사의 처우는 별다른 고려의 대상이 못되는 모양입니다. 여전히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참아야 하는지 좀 헷갈립니다.

이제는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보육교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 과정뿐 아니라, 그들이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시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한 조직논의 끝에 우리는 작년 한해를 보육노조 건설에 올인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행복하게 자랄 아이들의 권리와 행복하게 일할 보육교사와 부모들의 권리를 모두 담아 전국보육노조가 출범하였습니다.


다시 혜영이와 용철이를 생각하며


지금 내 아이 또래였을 혜영이와 용철이를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면 성년이 되어갈 그 아이들의 아까운 죽음과 탁아운동 선배들의 노력을 기억합니다. 처음 남영동사무실에서 내 앞에 놓여있던 삶의 불확실성에 두려워하던 스믈 넷 젊은 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앞에 놓여질 새로운 길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제는 든든한 짝이 옆에 버티고 있고, 우리는 새로운 과제를 받아 안을 것입니다.


[우리네아이들]의 첫 제호가 [함께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네아이들을 위해 함께 가는 길에 더 많이 이들과 손잡을 수 있을거란 희망찬 기대를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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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03:52 2005/01/22 03:52

3 Comments (+add yours?)

  1. jineeya 2005/01/22 11:15

    음화화~! 정리 끝나셨군여.(쉰다더니 새벽 4시..-_-;;)
    탁아라 불리던 그 시절은 빈민운동의 일환만일줄 알았는데 아동을 생각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었나봅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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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lsj 2005/01/23 04:37

    쉬려고 했는데 자꾸만 뒤곡지가 땡겨서 숙제를 안했잖아.근데 이 글써놓고 맘 안편하다. 아직 보내지 말아봐..원고로 쓸지도 고민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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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jineeya 2005/01/23 09:57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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