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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0
    바람!
    메주
  2. 2008/07/20
    발해 도읍지 - 동경성에서
    메주
  3. 2008/07/20
    2005/8/30 여행일기
    메주

바람!

 

비가 온다.

이 비가 온뒤 곧 봄이 올 것 같다.

그리고, 바람이 분다. 아주 쎄게...

몇 년전부터 봄이 되면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 같다. 너무 강해 세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 만 같다.

바람에 대해 좋은 느낌도 있지만, 아주 불안한 느낌도 있다. 요 몇 년동안 봄마다 부는 바람은 불안하다. 너무 쎄게 불어서 불안하다. 건물들이 흔들릴 것 같고, 건물 간판도 바람이 흔들려 뜯어져 나갈 것 같고, 판자집 지붕도 날아갈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누워서 지내고 있는 아파트 건물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티벳 카일라스 산 앞에 있는 마나스로바(성호,강가 강의 발원지)에서 맞았던 바람은 너무 좋았다.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몸뚱아리가 날아갈 것 같은 매섭고 칼 같은 바람이었다. 추워서 오래 서 있지도 못했지만 시원한 바람이었다. 너무 좋았던 그곳의 바람. 끝을 알 수 없는 그 큰 호수, 파랗디 파란 물빛, 드넓은 초원.

그 곳에서는 외로움도 불안함도 갈 길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 왔다는 것 그 자체가 놀랍고 신기하고 경이로 왔다. 처음 보는 초원, 호수, 설산, 타쵸르,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 힘든 여행길에 지켜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외국인이든 현지인이든 친구든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상채기 내는 친구 틈바구니에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 있다는 것, 이곳에서 날아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고 있다는 것, 끝도 알 수 없는 호수 낭떠러지에 서 있다는 것, 성스러운 곳이라기에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지형이 예사롭지는 않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했던 것 같다.


*

성호, 귀호 : 서부 티벳에는 카일라스 산이 있다. 흰두교 신중 시바신이 태어난 곳이다. 또, 불교의 수미산이 바로 이 산이다. 굉장히 성스러운 산으로, 흰두교와 불교 신자들이 성지순례하는 곳이다. 카일라스 산 맞은편에는 2개의 호수가 있다. 하나는 굉장히 큰 호수이고 또하나의 호수는 조그만 호수이다. 큰 호수 이름이 성호인 것 같은데, 티벳어로는 모르겠다. 이 지역 호수는 카일라스를 비롯한 이근 히말라야 설산의 눈이 녹아 이 호수로 이어진다.  성호는 강가(겐지즈)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차로 2시간 이상 달려도 성호를 벗어나지 않는다. 성호는 주변 초원지역과의 경계가 분명하다. 경계는 낭떠러지이다. 호수로 들어가려면, 카일라스 산에서 2~3시간이상을 달려 초원과 호수의 경계가 완만한 지역으로 가야 한다. 카일라스 산과 성호, 귀호 이 지역을 통틀어 성지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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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도읍지 - 동경성에서

2005/ 9/ 2 발행 도읍지 동경성 유적지를 둘러보고

 

 

조선민족의 혼과 발자취는 어디 갔는가?
 
발해의 오랜 도읍지, 흑룡강성의 동경성을 찾았다.
말로만 듣던 북간도 땅! 조신민족의 삶의 터전!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말!!!
발해의 땅을 디디고 걷고 있다가는 문득 드는 생각!
국경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발가고 사람가고 가족이 정착하여 먹고 살고 그러면 내땅 내하늘이 되는 것이지. 사람 사는데 국경이 무슨 의미인가? 땅 조각 만드는 것은 권력자들에게만 필요할 뿐이다.
 
장안의 궁궐터를 본 따 만들었다는 발해의 궁궐은 엄청나게 컸다. 그 옛날 발해의 영화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1000년이 지난 지금 이순간! 발해의 궁궐터에서 본 세상은 허망하였다. 발해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발해 궁궐터는 문화재 발굴 탐사 중이었다. 문화재 발굴 모습은 사진을 못 찍게 하였다. 그리고, 문화재 발굴중에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화재 발굴은 중국정부의 통제하에 진행하고 있었다.
 
발해궁궐터와 유물 전시관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찾아가는 길이 복잡해서 힘들었던게 아니라 동경성에 있는 주민과 문화재 관리자들의 불친절(?) - 아니 비협조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 때문에 너무 고생하고 기분을 완전히 잡쳐 버렸다.
먼저, 동경성역에 내려 역무원과 주변 식당 복무원들의 도움으로 3원정도면 발해유적지에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3륜 모터차를 탔다. 3원으로 가격으로 우리를 내려준 곳은 박물관이라는 간판만 있지 아무것도 없었다. 옆건물의 조선족 아주마이 설명에 의하면 발해유물관은 좀 더 먼 곳에 있다며, 3륜 모터차를 잡아줬다. 발해유물관과 궁궐터, 또 다른 곳 등 3군데를 봐야 된다며 30원을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유물관과 궁궐터만 보여 달라며 10원으로 가격을 흥정하고 탔다. 우리가 내린 곳은 이상한 절이었다. 그러면서 기사는 돈을 달라고 했다. 3원만 줬고, 기사는 돈을 받고서 가버렸다. 찌그러져 가는 절은 "흥륙사" 라며 1000년 고찰이라고 했다. 입장료는 1인당 15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내고 절을 둘러보고 난 뒤 절앞에 있던 또 다른 3륜 모터차를 타고 발해궁궐터에 가자 했다. 10원을 달라는 거였다. 우와 또 바가지! 아예 걸어가겠다며 터벅터벅 걷는데, 3륜 모터차가 다가와 5원으로 가자기에 바가지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 차를 타고 발해 옛 궁궐터로 갔다.
여기서 부터가 화근이었다. 문제는 점점 커져갔다.
발해궁터에 들어가는 길들은 오래된 곳이라는 짐작을 하기에 충분했다. 오래된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 궁궐터 앞 주차장에 내린 우리들은 궁궐터 안으로 걸어갔고, 3륜 모터차 기사는 궁궐터 관리인 듯한 사람과 뭔가를 이야기하였다. 궁궐터 관리인듯한 사람들이 우리보고 입장료를 내라고 하였다. 입장료는 무슨 입장료냐며 따졌지만, 소용없었다. 1인당 20원이라며 40원을 내라는 것이다. 4~5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들은 한창 실랑이를 벌인 뒤 30원을 줬다. 입장표도 주지 않고 가버렸다. 기분은 상했지만, 상한 기분을 계속 가지고 갈 경우 우리만 손해다 싶어 잊어버리고 궁궐터 구경을 하였다. 궁궐터 구경을 하면서 우리 민족의 유물과 역사를 보면서 중국정부와 사람들에게 관람료를 낸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또 중국정부의 유물발굴로 인해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서글펐다. 그러나, 콩밭과 잡초들만 무성한 곳으로 변해버린 옛궁궐터이지만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바라본 발해의 궁터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삶의 족적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가슴 한 구석 벅차오름을 느끼면서 궁궐터에서 시내쪽으로 나오다보니깐 옛날식 건물이 있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구경삼아 들어가봤다. 그런데, 이곳이 바로 발해유물관이었다. 입구에는 유물관내 사진촬영 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고, 발해 왕들의 그림이 양쪽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발해유물을 보려는 순간! 유물관 관리인이 와서 입장료를 내야된다는 거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까 궁궐터앞에서 입장료를 냈는데, 지금 또 무슨 돈을 달라는 거냐구? 이거 참 신경질 나게 하네! 뺑 돌겠네!
한참을 실랑이 했다. 궁궐터 입구에서 입장료를 냈으며, 그들은 영수증을 주지 않고 가버렸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막무가네였다. 중국말이 능통하지 않아 몸짓 발짓 어설픈 한자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해도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궁궐터앞 관리인에게 전화도 하는 것 같았는데, 무조건 표를 가져와야만 한다는 거다. 이것 참! 하는 수없이 다시 궁궐터 앞으로 걸어갔다. 가서 표를 달라고 했다. 그러니깐 하는 말! 3륜모터차 기사가 가져갔다는 거다. 이게 무슨 일이야! 왜 택시기사가 영수증을 가져가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러면, 유물관앞 관리인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같이 가자고 해도 같이 안가고 전화만 했다. 하는 수없이 포기! 30원 적선했다고 생각하고 입장표를 다시 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유물관을 안 볼수도 없고…
유물관 보고나니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날씨도 꽤 추워졌다. 3륜 모터차를 잡아서 2원으로 기차역까지 가기로 했다. 기차역앞에서 내릴 때 잔돈이 없어 5원짜리 지폐를 주니 기사가 1인당 2원이라며 4원을 내라는 거였다. 악! 끝까지 이러네!! 미치겠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질 않았다.
 
돌아가면서 동경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 발해유물관에서 영어로 소개된 글중에 ‘… 발해유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해 중요한 문화…’라는 표현이 있었다. 우리라니? 발해문화가 중국의 문화로 생각한단 말인가? 중국 국토내에 있는 곳이니 중국문화로 표현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한국은 발해문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중국은 한국사람들이 발해와 고구려 문화유적을 보러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사람들의 불친절도 앞으로 별로 개선될 여지도 없어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흑룡강성에는 옛날 마적떼들의 후손들이 살기에 소매치기, 사기등이 많다며 연길에 사는 사람들도 가기 어려운 곳이 동경성 발해유적지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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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8/30 여행일기

 

나의 영혼과 자신을 알기위해 떠난 여행이

또 다시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괴롭고 고통스럽다.

같이 떠난 동료와 호흡을 마추는 것 또한 힘든다.

나는 나대로 나의 감정표현을 많이 하지 않으려 하지만,

계획되지 않은 일이 불쑥 튀어 나올때는 참기가 힘들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어떻게 같이 보낼까 생각하니 갑갑하다.

기분따라 움직이는 생각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올때 조절할 방법을 찾아야 겠다.

그 첫째 방법으로 계획되지 않은 일정을 하고 싶을때는 미리 동료에게 충분히 설명하여 이해를 구하도록 하자. 그리고 같이 의견 일치하에 일정을 변경하고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

둘째, 일정 변경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고 불쑥 제기하여 곧바로 진행하거나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고 진행할 경우 제안한 사람이 진행하도록 하자.

세째, 그래도 정 내키지 않을 때는 일정을 따로 하도록 하자.

그리고, 상대의 의견을 무조건 들어주는 것도, 아무 생각없이 따라하는 것이 함께 하는 여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분만 상하게 하는 것 같다. 언제 기회를 봐서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겠다.

또한, 비단길 여행을 정 자신없어 할 경우 포기하도록 권하고 나만 떠나는 것을 준비해야 겠다.

 

 

미리 계획되지 않은  일정을 제안받았을 때 세번 생각해 본뒤 판단하자.

그리고,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절대 먼저 나서서 진행하지 말고 제안한 사람이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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