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룸

from diary 2010/11/13 13:07

 

 

내가 지쳐간다는걸 준호는 알고 있을까.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자기 신경 쓰느라 바빠서 그런지 내 마음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는 것 같다. 근데 또 준호는 내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라는 문장을 쓰면 그러는 나는 준호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나 하는 반성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와서 좀 짜증난다. 아 아무튼 준호가 내 마음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속상한 내용을 가득 적고 싶지만 그러면 나는 준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쁜 여자가 되는 것 같아서 그만둔다. 그치만 사실인걸. 난 준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준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끊임없이 이해받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힘들 뿐이고. 아마 준호도 힘들겠지? 아무리 성격이 다르다하더라도 이해 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을 것 같은데 표현을 안하네.

 

재랑이랑 많이 어울려서 그런지 준호가 재랑이 같지 않으면, 아니 나 같지 않으면 이해가 안되는게 사실이다. 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고. 준호 입장에서는 하루종일 공부도 안하고 집에 콕 쳐박혀서 뭘 하는지 맨날 울기나 하고 왜저러나 왜 저러고 사나 하는 생각하겠지. 결국 학교를 다니고 안다니고의 차이인가 싶다가도 그런것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그 문제인것 같기도 하고. 처음엔 쟤 왜저래 하다가 그 '쟤'라는게 준호만이 아니라 내 친구들 모두인걸 알고는 아 내가 보편적인 기준에서 많이 떨어져나온거구나 싶어서 괜히 슬퍼지기도 하고 내가 보편적인 기준이 되야지 왜 이상한게 보편적인건가 하는 생각에 어이 없어지기도 하고. 뭐 그렇다. 학교-과외-과외-공부-학교-과외-과외-공부의 반복된 생활을 하는 준호가 안되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자기가 선택한건데 저렇게 해야하나 하고 개인을 탓해보기도 하고. 그치만 결국은 그러한 시스템 속, 학교 속에 있는 학생으로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미움을 없애보기도 하고. 아, 그러니까 혼자서 쇼를 하고 있는거다. 미워했다가 이해해보려했다가 또 미워했다가. 이러한 것의 반복. 모든게 다 그렇듯 반복하면 지치게 된다. 힘들어.

 

잘 몰랐는데 우리집은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준호집이 엄하고 그런게 아니라 우리집이 굉장히 자유로운. 그래서 지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아니, 아직도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된다. 난 밤에도 전화통화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통화하는 내용을 혹시나 들을 수도 있어서 밤에는 통화를 잘 안하려 하는 편이지만 문 닫고 있으면 얼마든지. 근데 준호는 그렇지 못하니까 그 점에서 되게 많이 답답하고. 밤이고 낮이고 집에 있을 때는 아예 전화를 못하니까 그게 너무 답답하다. 결국 하교길에만 잠깐 통화하는데 그게 너무 형식적인 통화 같아서 짜증이 나고. 아니 이제는 바빠서 하교 길 통화도 못하고 있지만. 아 아무튼 목소리 듣고 싶은데 못들으니까 너무 짜증난다. 시험 하나 때문에 이런걸 미루고 내 마음을 보듬어주지 않는다는 것에 화까지 난다. 이러면 안되는거겠지만. 난 밤에 울컥울컥할 때 준호랑 통화하고 싶은데 준호는 맨날 피곤해서 지쳐서 쓰러져자거나 운동하거나 공부한다. 그래서 좀 서운하고 속상하다. 내가 매달리는것 같아서 나한테 화도 나고. 타인의존적인게 티나니까 다 때려치고 싶다.

 

난 준호한테 많이 기대고 있는데 준호는 그런 나를 봐주지도 않고 자기 일하느라 늘 바쁘고. 그런게 싫다. 그런 준호가 싫고 그런 내가 싫다. 너무 밉고. 준호를 미워하지만 사실은 내가 미운거겠지. 그렇게 바빠야 하는게 정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여유를 넘어 나태하기까지 하니까. 시험이 일주일도 채 안남았는데 음악 듣고 한가로이 책이나 보고 문제집은 안펼쳐본지 며칠 몇주일이 됐는지도 모르고. 거의 몇 달 째 백수처럼 보내고 있으니. 아아 자책하기 싫어. 이럴 수도 있는거잖아. 나라도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자책하기 싫다. 내가 이상한게 아니잖아. 내가 이상한건가. 휴 이런생각에 사로잡히기 싫다.

 

아무튼 수능이 끝나서 준호랑 밤공기 마시고 싶고 밤바다 보고싶다. 비누방울도 불고싶고 같이 손잡고 걷고싶다. 아이스링크장 가서 스케이트도 다시 타보고싶고 작년에 했던거 다 해보고싶다. 목도리도 해주고싶고 장갑도 같이 끼고싶고. 등산도 가고싶고 자전거도 타고 싶고 퐁퐁도 타고싶다. 같이 그림도 그리고 싶고 노래 듣고 싶다. 또 같이 밥먹고싶고 같이 공부하고 싶고 같이 같이…. 씨. 눈물 난다. 아 그리고 지금 갑자기 이 글 쓰니까 짜증이 확 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눈물도 나고. 그냥 좀 아 편해지고 싶다.

 

계속 답답하고 식욕도 없고. 하루에 한끼밖에 안먹는것도 좀 스트레스고. 배고픈데 챙겨먹기 귀찮고 또 먹고싶은것도 없고. 저녁 한끼 먹는것조차 아침되면 설사해버려서 먹기가 싫다. 내가 먹고싶은것만 먹으면 설사하니까 재미도 없고. 채식하다가 요즘 다시 면도 먹고 빵도 좀 많이 먹고 군것질 하니까 맨날 설사한다. 그러니까 의욕도 당연히 없어지는거고. 역시 잘 먹어야되는건데 잘 먹는건 너무 힘들다. 진짜. 누가 맨날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 싶고.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주 내내 설사했던 것 같다. 콘푸로스트 먹고 빵먹고 우유 마시고 이래서 설사하고 또 그제는 한끼도 안먹고 저녁에 핫리조또인가 아무튼 치즈 있는 볶음밥 먹고 아침에 설사하고 또 하루종일 안먹다가 어제 저녁에 칼국수 먹고 오늘 아침에 또 설사하고. 큭. 으아 이 블로그마저 이렇게 푸념 적는 용도로 쓰이는건 정말 싫었는데! 하 근데 답답하고 적고싶은데 뭐 어쩔 수 없지. 아 바다 보고싶다. 밥이나 먹어야겠다. 혼자 먹는것도 지겨워.

 

그러니까 너는 잘 모르면 나한테 뭐라하지마. 니가 같이 먹어줄거 아니면.

 

+)

글 쓰고 나서 느낀건데 요즘 준호랑 통화를 못하고 피곤하다 힘들다 배고프다 설사했다 따위의 푸념을 꾹꾹 눌러담고 말하지 못하니까 더 힘든 것 같다. 그런건 누군가에게 바로 뱉어내야 가벼워지는데. 물론 상대는 우울해지겠지만. 나란 인간은 진짜 하. 다시 독립성을 되찾아야겠다. 나 진짜 독립적이었는데, 아니 아닌가? 이제 그런것도 모르겠군. 휴 아무튼 결별선언은 아니더라도 독립선언은 좀 할 필요가 있는 듯. 아니 근데 독립선언 되게 많이 했다. 이제 다시 잘하겠다고. 아 근데 맨날 안지켜졌지. 으엉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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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3 13:07 2010/11/13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