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음다움

from diary 2010/11/15 12:55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건 그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날 사랑할 수 없을 땐 널 사랑한단 말도 못하겠더라. 어제는 내 안에 '내'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서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을 때 커지는 것 같다. 상대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느냐 가져주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몰라.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아니 커지는게 아니라 그래야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고. 느껴짐. 아 근데 대상이 중요하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

 

모든게 잘되면, 모든게 괜찮아지면 블로그 이사를 하려했다. 뭐든 잘되가는게 아니라 모든게 잘되가면. 근데 아무것도 잘되는게 없는데 블로그 이사를 했다. 새로운 블로그에는 조금 더 발전된 나의 모습들을 담고 싶었는데 그건 욕심이고 또 불가능한 일이란걸 깨달았다. 아 깨달아서 이사를 한건 아니고 그 땐 좀 답답해서. 오늘에서야 완전히 이사한 느낌이 든다. 다시 나를 찾은 느낌. 다른 공간 속에서, 새로운 공간 속에서 진짜의 나를 찾은 느낌. 이걸 느끼고 싶어서 블로그 이사를 한걸지도 모르겠다. 매일 그곳에 로그인해서 이사라고 하기엔 좀 맞지 않지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더만들었다 라고 말하는게 더 좋겠다.

 

왠지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혼자 있던 시간들을. 생에 한번쯤은 철저히 고립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뭔가 좀 더 단단해진 느낌. 정말 그 시간들을 살아내고 나면 단단해지는 것 같다. 아 그런데 이것도 지나갈거야, 이 모든 것은 너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거야 같은 말 따위는 그 상황에 쳐해있을 때는 아무 쓰잘데기 없는 말이다. 그건 지나고나서야 위로가 되는 말이지. 사실 이런말은 힘들어하고 있는 상대에게 해서는 안될 말이라 생각한다. 니가 그 상황에 쳐해봤냐? 하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게 되니까.  그래놓고 나도 자주 하지만.  이 말이 틀린말은 아닌건 확실하다. 지나고나면 그 모든건 아주 소중한 것들이 되고 아름답다 그립다 라는 말까지 할 수 있게 되니까. 몰라 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또 그런 시간 보내라 하면 싫다 하겠지만. 

 

지난 삼년간의 시간이 내가 영화를 만들고, 아니 영화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밑거름이 될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편해진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이번에도 내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서 이겨낸건 아닌 것 같고 자연스레 그 시간이 지나니까 해결된 것 같다. 내가 한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있나? 모르겠다. 나중에 쌤 만나서 와 어떻게 했어? 라고 물으면 저번처럼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 순간 행복해진 것 같아요 라고 말하게 생겼다. 뭐지?

 

더이상 불안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냥 되게 편하다. 담백한 상태.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는 상태다. 몰라. 어제 밤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준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그러니까 나는 뜬금없이 밉다고 말해버리고 또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는 것 같다. 그 순간순간의 감정들만을 전달하다보니 상대방 입장에서는 얘가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으면 믿을 수 있는데 나처럼 이렇게 자주 바뀐다면 그 상대를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그래도 믿으니까 내 곁에 계속 있어주는거겠지만. 그렇겠지만? ……결론 : 준호는 성인군자!

 

이전 블로그의 블로그명을 '앓음다움'으로 바꿨다. 정말 아름다웠던 시간이 기록된 블로그.

아름다웠던 시간 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앓음답다 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아름답다 라고 말하긴 힘든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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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5 12:55 2010/11/15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