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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누군가 내 걱정을 해주거나 하면 반사적으로 거부감부터 든다.

나에게 인사치레로 애는 언제 가지냐고 묻는 말에도 내 사생활 중 가장 지극히 은밀하고 개인적인 부분을 캐묻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감이 불쑥 일어나곤 한다.
그런 질문을 인사치레로 흘려듣지 않고 의미를 따져 들을라치면 기분 나쁜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애는 언제 가질거냐'는 질문은 '결혼한 사람은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대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보이지는 않으나 엄청난 폭력이다.
보라. 분유값 한푼 보태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멀쩡한 사람을 임신 시키려 한다.
이게 폭력이 아니고 뭔가?
그렇다면 결혼이란 건 아기를 낳을려고 하는 건가?
분명 그런 사람도 있긴 있을거다. 그런 사람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어서 결혼했지, 설마 나같은 놈을 세상에 한 놈 더 꺼내놓고자 결혼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만 보더라도 나를 낳아 키우시느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여유를 자식 뒷바라지에 쏟아 부으셨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애초에 본질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의사를 가진 실존적 존재 아니던가.
명절이나 제사 때 친척분들을 만나면 '늙어서 후회한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나에게 나름대로 애정이 있어서 하는 말씀이신 것 같으나 지독한 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쓸데없는 참견에 불과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개인을 책임진다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사회보장만이라도 해줘야 애를 낳을 마음이 생길 것 아닌가?
개인에게 질병ㆍ실업ㆍ빈곤 등이 갑자기 닥쳤을 때 이 사회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는 커녕, 담담히 그를 자살바위로 인도한다.
자식 낳는 것만이 노후를 든든히 받쳐주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가 내 생활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아이 가질 생각을 한다는 건 대단한 모험이다.

 

 

명절 때마다 '남자 어른들은 앉아서 놀고 왜 여자들만 몸살 나도록 일하는가'가 항상 불만이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나서도 어른들이 하던 행동을 나 자신 그대로 따라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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