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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아빠도 사랑이 필요해..

엊그제 애들 고모가 멀리 울산에서 왔다.

예정에 없던 외출,외박을 하게 됐는데...

낮에는 그렇게 잘 따르고 잘 놀던 사랑이가 10시쯤 자다가 11시부터 울더니 30분간 울어제꼈다.

보통 낮잠을 못잤거나 피곤했거나 낮에 스트레스가 있었거나 하면 가끔 울기도 하는데

이날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엄!마!~아 엄마~악~~" 악을 쓰며 운다. 거의 발작.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사랑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무섭단다. 집에 가잔다.

거실에서 술에 취한 아빠의 목소리때문에 사랑이의 울음이 더 듣기 싫고 짜증이 났다.

 

아빠를 불러 집에 가자고 했다. 애가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르고 집에 가잔다고 말했다.

표정 확~ 얼어붙은 사랑아빠. 거의 터져버릴 것 같은..

시댁에서 있기 싫어서 우는 애 앞세워서 집에 가려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대다, 자기 식구들이라면 끔찍한, 정말 끔찍한 애아빠에게 왜 이상황에서

집에 가야하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가서 애가 무섭다고 집에 가자고 해서 가야겠다고 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어"라며 어서 챙겨서 가라고 하신다.

대리운전비도 주신다.

 

온몸으로 나를 비난하는 사랑아빠는 집에 가자는 내 말에 너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벌개지고 이미 사리분별을 못하고 있었다.

대리운전을 부르고 주말이라 30분을 차안에서 기다리다... 내가 이게 뭔가 싶다.

화를 내는 사랑아빠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도 이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으므로. 단지 사랑이가 집에 가자고 했으니 더이상

애가 힘들어하는 걸 못보겠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애아빠는 아침까지 화를 내고 나를 죽일 것처럼 으르렁댔다.

내가 자기를 말려죽인단다. 사람 괴롭히는 것도 가지가지란다...

그런 말은 중요치않다. 그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랑 같이 살면서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지 싶다.

다시 자책,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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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둘째 해랑이가 오후 6시쯤 열이 났다.

37도 38도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 병원에 못가고 아빠를 기다렸다.

7시쯤 정리하고 오겠다는 아빠는 연락이 없다. 문자를 보냈다. "애가 아퍼"

 

병원 문닫는 8시가 지나고 전화해도 안받는다. 그러더니 열이 39도에 이른다.

<삐뽀삐뽀119소아과> 책을 보니 6개월 미만아기에게는 해열제를 부루펜이 아닌

타이레놀을 쓴단다. 부루펜을 그냥 조금 먹일까 하다가 해열제 그렇게 함부로

먹일 약이 아니라서 일단 미지근한 물로 씻어줬는데 그때 뿐이다.

 

화도 안나고 이러다 응급실 가겠다 싶어 천천히 애들 옷과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백일 갓 지난 아기가 열이 나니 그냥 볼 수가 없었다. 그때 11시쯤 애아빠가 왔다.

술에 잔뜩 취해 작은 방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절망감...

그때 내 눈에 애 아빠는 사람이 아니었다.

 

택시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사랑이는 업고 해랑이는 다 벗겨진채로

싸개 한겹으로 싸고 가방을 메고..눈물이 조금 났다.

교통사고 환자가 있는지 경찰들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애들 우는 소리...정신 쏙 빼고도 남게 생겼다.

기다리는 시간은 왜이리 긴지..

사랑이는 자가 깨서 컨디션 영 좋지 않고 해랑이는 계속 보챈다.

 

덥다. 나 혼자 애 하나 업고 애 하나 안고 큰 가방 메고...창피함? 아니 비참함..

한참을 기다려 접수하고 인턴이 상태보고..한참을 기다려 레지 와서 상태보고..

한참을 기다려 열이 폐렴때문인지 보려고 가슴 엑스레이 찍고...

여기도 타이레놀을 안쓰고 부루펜 처방을 했다. 타이레놀이 없단다.. 참담함..

(대학병원 응급실 절대 안간다...수술하게 생긴 거 말고. 상비약-해열제 등 꼭 구비해야 겠다. 사랑이는 거의 아픈적이 없이 커서 방심하고 자만했다.)

 

열은 높지 않아 약만 처방받았다. 애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응급실이라고, 이제 곧 갈거라고...끊었다. 그이도 나도..너무 가엾고 불쌍하다.

대체 사는게 뭐라고.. 그저 아퍼서 병원 왔고 그이는 올 수 없어 함께 못왔을 뿐인데..

나는 그걸 트집잡아 잡아먹을 것처럼 생각하고...그이는 미안함에 차마 말을 못잇더라.

 

택시를 불러 집으로 왔다.

놀란 애아빠는 한참을 아기를 바라보다가 작은 방에 가 잔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눈뜨면 일어나 일하러 나가고 땡볕 아래서 돌가루 날리는 삭막한 공장에서

정말 개처럼 일하다 해가 지면 녹초가 되어

돌아와 밥한그릇 먹고 다시 자고...이게 아닌데..

 

 

사랑이도 소중한 우리 아이고 사랑이 아빠도 소중한 남편인데...

미운 감정이 너무 오래된 건 아닌지... 누가 정답좀 말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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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처음엔 서러워서 엉엉 울다가 나중에는

그 언니 말에 100톤짜리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 그리고 참회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언니 말,

"네가 남편한테 받고 싶은 대우, 그대로 신랑에게 먼저 해봐.

그러면 남자는 조금씩 바뀐다, 그리고 운전 배워. 인생이 달라져.

오라는데도 갈데도 없다는 말 하지 말고 나가라. "

 

울면 뭐하나..달라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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