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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다산인권 종간사

 

- 초안 -

 

2007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반인권 악습 철폐와 생존의 권리를 움켜쥔 민중들이 밟고 선 현장에서, 좀 더 아파하고 연대하지 못한 무거운 돌을 쌓아둔 채 저무는 해를 지켜보고 진정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찬란하게 빛날 여망의 해를 또한 지켜봅니다.


지난 해는 신자유주의와 국가의 폭력에 맞서 빼앗긴 생존의 권리와 직접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전 민중이 총궐기하여 분노를 폭발한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것 입니다.


참여정부는 사회 양극화를 가속시켜 민중의 삶을 나락에 빠뜨리다 못해, 그 고단한 삶에 초국적 자본으로 무장한 괴물 ‘한미 FTA’ 의 이빨을 박아놓았습니다. 또한 정부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 아시아 평화마저 위협할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고 평택전쟁기지건설을 강행하며,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외치는 주민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 가두고야 말았습니다. 국방부는 가증스럽게도 ‘불가피하게 삶의 터전을 옮기셔야 하는 아픔과 미군기지주변 주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소음 등의 불편에 대해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로 시작된 편지를 띄워 놓고 용역깡패를 앞세운 무자비한 폭력으로 대추리/도두리의 집과 논밭을 부수고 할퀴어 놓더니, 포수가 총을쏘면 달려가는 사냥개처럼 재빠르게 마을을 포위하고 주민의 숨을 조여온 건 정작 그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었습니다.


노동 기본권 쟁취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노동자들에게도 지배 계급과 기득권층의 탄압은 가혹하기만 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용역 깡패를 사들여 구사대로 둔갑시키고, 차마 믿지 못할 폭력과 잔인한 방법으로 노조원들을 짓밟아도 경찰은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조결성의 권리를 압수당한 건설 노동자들에게는 ‘공갈,협박범’이라는 족쇄를 채우고, 지상 75m의 올림픽대교 상징탑으로 내몰고야 말았습니다. 여기에 삼성공화국의 망종 역시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해고된 1,700여명의 삼성 에스원 노동자들은 차디찬 11월말의 한강에 뛰어들어 삼성과의 싸움이 건널수 없는 강이 아님을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배출을 자축하며 ‘인권국 완성’의 축배를 들고 있습니다.


수용시설에서 성폭력에 희생되고 방안에서 굶거나 얼어죽어 갈 삶을 선고받은 장애인들이 언 아스팔트 바닥을 기며 외쳤던 건 그저 지역 사회에서 같이 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사냥에 쫓겨 몸을 던진 이주노동자 古코스쿤 셀림씨가, 식량 주권을 쟁취하겠다고 나선 전용철 열사, 노동3권을 외치다가 처참하게 돌아간 古하중근 열사가 죽음으로 쟁취하고자 했던 인권입니다. 저들만의 공간에서 저들만의 인권을 고무하고 있을 때, 밟히고 짓눌리며 배운 인권의 참 의미를 보여준 이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이 땅 차별철폐의 함성과 생존의 권리를 손에 들고 기꺼이 일어선 전 민중들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외치고, 그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종시킨 범죄자들은 이제 두려운가 봅니다.  


그들은 마지막 해와 함께 퇴장하지 않고 ‘복면시위금지법’라는 어처구니 없는 법안을 들고 2007년 벽두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이들이 유일하게 입장을 밝히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국가가 최대한 보호해야 할 권리이자 명백한 불가침의 인권입니다. 마스크는 물론 신분확인을 방해하는 손수건, 모자, 선글라스, 목도리, 피켓 등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것이면 '소지하고만' 있어도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비상식적인 논리는 국민의 대표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망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산인권]은 인권 위기의 작금에 더욱 눈과 귀를 세울 것입니다.


실종된 민주주의와 인권을 다시 찾기 위한 모든 노력을 동원하고, 그 가능성을 열어 가기 위해 거듭날 것입니다. 또한 양심적인 세력들의 정의로운 목소리가 공중에 떠돌며 표류하지 않도록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것입니다.

 

더욱 교묘하게 가두고 왜곡시키는 인권 현실에서 존엄한 가치에 대해 절대적으로 옹호하며 모든 권력이 민중 스스로에게 있고, 인권에는 양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선언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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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사람의 이름을 찾아 묻는 한 해가 되려고요.

 

이렇게 슬쩍 관리 들어감.. ^^

 

 



 

 나무와 사람의 이름을 찾아 묻는 한 해가 되려고요.


 작년 봄. 활동가 명함을 처음 들고 나선 뒤, 꽤나 많은 사람한테 뭐가 제일 힘드냐는 질문을 꽤나 받았습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을 앞에 두고 쉽게 쉽게 이야기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제일’ 이라는 말에 제법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이제 막 7개월이 넘어선 초짜활동가에게 ‘활동’ 과 ‘삶’ 이라는 만만치 않은 사연중 하나를 골라보라는 일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입니다.

바삐 가는 사람들, 행복에 겨운 연인들, 제 자식 손잡고 갈 길 가는 사람들.. 그들의 눈과 귀를 붙잡고 세상이 좀 더 착하게 되었으면 한다고 말하는 일 말이죠. 여러 가지 사안, 여러 가지 행사에서 익숙해질 만도 하겠지만, 쾡-하거나 때로는 차가운 그들의 눈을 볼 때마다 그 거리에서 미아가 되곤 합니다. 등이라도 돌려 가버리면 괜찮을 것을 외계인 보듯 한참을 눈 맞추고 있게 될라치면 지구상에 그 사람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활동가들끼리 모이면 가끔 하는 푸념 하나가 있습니다.

 “대중을 믿냐..”

한 선배 활동가는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믿는다.”


 실제로 여론이 움직이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론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고 갖은 노력 끝에 알려내더라도, ‘다 알겠는데.. 꼴사납고 혐오스럽게 시리.. 꼭 저런 방법으로 해야 하느냐’ 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활동가들이 긴급하게 대중 행사를 기획하고 치러내는데 비해 그 성과는 초라하기만 하지요. 돌아와 평가하는 자리에선 조그맣게 ‘찻잔 속 태풍’ 이라고 모르게 낙서했다가 지우곤 합니다. 지워 놓고 나선 이내 ‘그러니까 힘든 일.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일’ 이라고 고쳐 적으며 다시 힘을 내는 게 활동가의 일상입니다. 

 

 그래서인지 가까운 친척이나 오랜 친구를 만나면 사는 이야기를 물을 여유도 없이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호소할 때 경찰병력은 방음벽이 되고, 교통체증으로 얼룩진 헤프닝이 되고, 결국 인터넷 기사의 덧글에 잔인하게 밟혀 잊혀지는 현실이 서글프지 않느냐고. 폼 나게 PD수첩이나 무슨 스페셜 프로그램에 나오는 건 고시패스하기보다 어렵고, 세련된 글을 써서 출판하기는 별을 따는 것만큼 불가능하니 모여 외치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이죠.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건 책임을 져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억눌린 사람들의 삶을 담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던지는 그들이라도 긴 얘기 끝에는 어깨를 맞대고 술잔을 쳐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조급한 마음에 지쳤다고 광고하냐며 한마디 하는 것 같아서 머쓱하기도 하고, 돌아오는 길엔 큰 무기를 얻고 온 것처럼 으쓱하기도 한답니다.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이름을 모르면 나무는 나무일 뿐입니다. 나무가 나무이면 나는 나가 되고, 너는 너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 습관적으로 길가에 서 있는 나무의 이름을 묻고 기억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좀 더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에는 게을렀다는 반성을 하곤 합니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에서 11살 헬렌 헌트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일’ 이라는 학교 숙제에, “내 옆에 3명에게 도움을 주면 된다” 고 했던 말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 3명이 각 3명에게 감동을 주면 9명이 되고, 27명이 되고, 81명이 감동하게 되는 거라고 말이죠. 결국 주인공 헌트가 만난 3명에서 시작된 보이지 않은 릴레이는 결국 주인공의 가까운 누군가에게로 이어져 그 아이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200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도 어김없이 새로 뜨는 해만큼이나 조용히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하는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착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지치지 않고 더 많은 나무 이름 을 기억하고,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는 저나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받으시는 여러분에게도 가장 가까운 것에서 감동받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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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수원인권영화제 자존심의 막을 올립니다.

 

 

제10회 수원인권영화제 막을 올립니다.


'표현의 자유 쟁취‘와 '대안 영상물의 발굴', ’인권의식 확산‘의 목적아래 시작된 수원인권영화제가 제10회의 막이 오릅니다. 수원인권영화제의 10년은 자본의 논리와 사상 검열과의 지난한 싸움의 역사입니다. 한결로 지켜온 무료상영의 원칙과 당당하지 못한 손은 잡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치룬 대가는 오늘의 인권영화제가 존재하는 이유가 됩니다.


  제10회 수원인권영화제는 경기문화재단의 문화진흥지원금을 반납하고 오직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졌습니다. 경기문화재단측의 ‘안티조선’ 관련 게시물 강제 철거 사건와 경기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주최한 ‘제4회 언론문화교실’ 의 지원금 철회에 대해, 수원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는 편협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문화적 소양과 뜻을 같이 할 수 없음을 통보하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 하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재단내 일부 공간을 임대하고 있을 뿐.


과거 경기문화재단은 ‘인권영화제’와 ‘언론문화교실’ 개최 당시, ‘안티조선’이라는 문구와 ‘안티조선 판넬’이 전시된다는 이유로 사업내용변경을 명령하거나 벽보를 훼손하는 일을 거리낌없이 저질렀으며, 폭력적 저지와 막무가내식 훼방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조선일보와 경기문화재단은 아무 관련 없다’는 믿기 힘든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언론비평으로 일관하는 행사는 지원할 수 없다?


 

2006년 6월. 또한 경기문화재단측은 제4회 언론문화학교의 일부 강사진 변경 신청에 대해,  ‘당초 문화예술진흥지원금신청서는 문화예술, 특히 최근 부각되고 있는 영상미디어 (TV,영화)를 중심으로 이해력을 높이는 사업이었으나 변경된 내용은 언론비평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영화부문도 영화내적 사안이 아닌, 영화를 둘러싼 시사적인 문제로 당초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예정된 지원금을 전면 철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 반하는 강정구 교수가 변경된 강사진 중 하나라는 것에서, 과거의 일을 기억해 볼 때 ’경기문화재단이 보수언론과의 유착‘ 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권리를 침해하고 검열하는 세력 과 싸워온 수원인권영화제는 ‘경기문화재단의 그 어떤 후원금이나 관련행사를 거부한’ 10회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6년 10월 27일. 제10회 수원인권영화제 자존심의 막이 올랐습니다.


힘들여 먼길을 돌아가느냐는 걱정과 힘들때 더욱 강고해지는 것이 인권운동이라는 격려속에서 3일간 당당하게 치뤄질 영화의 축제에 기꺼이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공식 홈페이지 : www.swhrf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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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이 좋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단 한번이라도 전부를 걸 수 없다는 사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개량이든,혁명이든, 변혁에는 이름 앞에 조직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어쨌든 조직은 진화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약하다'는 말만 빼고 나를 변호하던 중,

 

 

"넌 수련같애.. 그녀석. 뿌리가 없거든.."

 

 

....

 

그랬다.

 

마음 한켠에 짐을 싸두었었던 같다. 아니. 아직 유효하다.

 

언제고 떠날 것처럼. 다시 앉은 곳에서는 누워버릴 수 있을 것처럼.

 

 

" 그런데 넌 왜 자유롭지 않지?"

 

 

그러자 나는 말했다.

 

     

'관계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게 아니었나 보지.'

 

....

 

 

그랬다.

 

      를 들고 나선 뒤,

 

 

길을 잃었고..

 

 

한참 뒤에야 고쳐들었던 기억이 난다.

 

'관계로부터 해방' 이 아닌, 얽히고 섥힌 관계와 관계가 풀어헤쳐져 온전히 들여다보게 되는 그 곳에 써야할,

 

자유.

 

그렇게 찢어진 지도를 들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다시 말했다.

 

'분명 수련에도 뿌리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자유롭다.."

 

....

 

... 그러고는

 

순간, 싸둔 짐에 손을 뻗으려다..

갑자기 내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오직 운이 좋은 덕택에 살아남은 자가 아닌가.

 

 

그러자 수련 같다고 이야기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사랑해.."

 

...

 

 

 

... 나는 역시 운이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침표는 단문에서 조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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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녀석. 애물단지.


 

 

간만에 블로그를 돌아보니 추석 후폭풍이 한껏..

 

 

대부분 그러하다.

 

친지와 가족들 사이에서 인민 재판을 받고 돌아와 존재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철없이.. 돈도 안되는.. 직업도 아닌 것..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도무지 세상 돌아가는 걸 아는건지..

 

 

 

저 위 저녀석 같은..

 

애물단지야아..

 

 

 

절망을 하고 돌아와서..

 

살가운 이들과 재회하고는..

 

다시 말하지.

 

 

그래.. 이 애물단지들 있어서 아직 희망이란게 있는 거지.

 

저 위 저 녀석의 뽀오얗게 투명한 피부같은..  

 

 

그래서 절대 혼자는 못하는 것이지.

 

그래서.

 

two 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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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얼마전.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회의를 파하고..

 

차가 끊긴 수원역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포근한 바람..


어린 연인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서로들에게 매달려 작전을 짜고^^


도무지 시간을 잊은 듯 박장대소하는 한 떼의 무리들..


이만 문을 닫을까 담뱃불을 붙이는 노점상 주인..


“서울, 안산, 봉담!!”


차 끊겨 발을 동동하는 이들에게 꼴 좋다는 듯 외치는 택시기사들의 목소리가

 

시장바닥 같고,


“정말.. 없을까요..?”


진실을 갈구하는 이들의 속닥거림이 정겨웁다.


 


내 처지는 잊은채 그들이 풍경처럼 몽롱해질 즈음.  


커다란 휴대폰같은 PMP와 액정터치용 펜을 든 아저씨가 다가왔다.


“서울가는 버스 있어요? ”


^^ 


없다는군요.



“아..참나.. 서울을 가야 좀 뜨는데.. ”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똑같은 모양새을 한 두사람이 다가와


“서울가는버스..”   “ 아.. 참나.. ”



^^ 대리운전기사들이 주고받는 말이었다.



이내 한명이 더 오더니 놀랍게도 누구라고 할 것없이 자연스러운 거래가 이루어졌다.



‘3,000원씩 5명. 택시 잡고 서울 갑시다.’  

 



오호..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들은 오늘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택시기사와

 

대리기사는 모종의 계약이 있어 싼 요금으로도 이런 식의 거래가 자연스러웠다.



5명의 장정이 비좁게 앉은 택시 안에서.


나이와 전 직업이 천차만별인 그들이 인사를 나누고.. 요즘 대리운전 돈벌이 얘기,

 

사는 얘기, 미래를 이야기 가운데..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도 간만이다.

 

 

 

대리운전을 하면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가 참 많더라.


심야에 오붓한 차안 묘한 분위기가 흐르다가 달콤한 유혹을 뿌리친 얘기.. ^^


취객이 제 집을 몰라 밤새 끌려다닌 얘기..


저마다 사연을 풀어놓을때 마다 웃지 않고는 못배길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한겨울.. 어디라고 출발했더니.. 끝도없는 시골길을 달려 인적도 없는 곳까지 가서

 

택시도 가로등도 없이 길을 잃고 하염없이 걸어나온 얘기에..

 


활동가들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함께 가다가..


다시 하염없이.. 홀로 먼길을 돌아나오는..



대리기사도 아닌 것이 묻어서 3,000원으로 먼길을 훔친 어설픈 활동가도 다르지

 

않음을 아시는지요..^^




몇시간 뒤..  외로웁게 하염없이 먼길을 돌아나올 평택의 그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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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혼자만 알고 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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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저 마음가는대로 최선을 다했을뿐.

 

 

며칠전.

 

평택 지킴이들이 무척 보고 싶어서 일찌감치 모든 일을 정리하고 주섬주섬 챙겨보는데.

 

갑자기 속보메일이 쏟아졌다.

 

 

성람재단 비리 척결!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

 

종로구청앞 농성자 전원연행.

 

부상자 명단.

 

상황이 급박해서 명단이 틀릴 수 있습니다.    

 

몇군데 경찰서로 이감조치.

 

긴급행동과 항의가 필요합니다.

 

 

구청과 경찰측의 강제진압, 방관 등 괘심하게도 한결같은 태도에 그 날 결의대회의 끝이 

 

이런 상황이려니 했지만..

 

속보의 내용들이 선정적인 것은 둘째치고 사람들 얼굴이 생각나서 도무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곧 출발해야 하는데..

 

 

찌는 듯한 더위와 강제 철거 카운트 다운으로 지쳐가는 지킴이들.

 

입에 거미줄 치겠냐마는, 그들 마음의 거미줄을 걷으려 가고자 했다면 이렇게 심란하진

 

않았겠지. 

 

 

 오히려 내가 그들을 필요로 했을테지..

 

 

마침 사무실에 온 한 선배와 함께 걱정스럽게 속보를 지켜보다가.

 

" 형. 평택 안가고 사람들 면회를 가야할까.. "

 

 

그 선배는 힘없는 웃음을 웃더니.

 

'니가 가서 뭐하게..'

 

 

그렇긴 하다. 내가. 가면 뭘 하나.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움직여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일게다.

 

그냥..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사람들 걱정하고.

 

늘 조마조마하고 있는 나를.. 보호하는 일.

 

 

어느새 면회시간이 빠듯했다.

 

이스라엘 새끼들 개새끼들이라고 수원시민한테 알리러 가는 바쁜 사람들

 

손도 돕고 무거운 짐도 들어주어야 해..

 

 

저녁밥을 포기한 채 서둘러 도착한 도봉경찰서 앞. 면회 마감시간 초과. ㅜㅜ;;

 

그녀석들이 건방지게 얘기해도 일단 비굴모드로 해야지 다짐했다.    

 

" 멀리서 왔어요.. "

 

 

안됩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안됩니다.

 

조사중입니다.

 

 

"아저씨.. 멀리서 왔다니깐요.. 늦을까봐 택시도 졸라 비싸게 탔어요.."

 

 

근무서는 녀석이 전화를 하길래, 짜식 착하네 그래야지.. 하는데,

 

왠 시커먼 놈이 끼여들더니  

 

 

조사중이라니깐요.

 

그런 사람들 민간인 하고 접촉하면 정보교환하고 작전짜고 그런다니까.

 

 

- -*

 

 

" 이 양반 말하는거 봐.. 조사받는 사람들이 범죄자냐.. "

 

 '범죄자는 아니지만..'

 

" 말 이상하네.  그 많은 사람들 다 조사할껀 아니테고 멀리서 왔으니까 쫌 보자고요.."

 

 '왜 보려고 하는데.. 이유가 있을거 아니냐고..'

 

" 걱 정 되 자 나 .. "

 

' 왜 걱정이 되냐고요. 우리 경찰서에서 편하게 모시니까 걱정 마쇼..'

 

" 걱정되는데 이유있나. 당신 가족같은 사람 여기있으면 알아모실테니까 걱정 붙들어매나?"

 

' 안된다는데 당신 시비거나?'

 

" 말 그렇게 밖에 못하나? "

 

 

안내 게이트 조막만한 창문에서 대가리 밀고 얘기하다가 짜증 지대..

 

 

안 해 더 러 워 서 면 회 안 한 다

 

 

담배를 물고 좀처럼 열린 뚜껑이 안닫혀 그 시커먼놈 불러서 담배를 건넸다.

 

" 아저씨 말이야.. 혹시나 해서 그러는건데 나같은 놈 또 오면 말이야.

 

  아저씨 아무 말도 하지 말든가. 짧고 깔끔한 말 똑같이만 했음 좋겠어..

 

  똑똑한 공무원은 다 그러거든. 다 이유가 있거든. " 

 

 

담배가 다 타고 민주시민처럼 쓰레기통에 넣은 다음, 수고하시라고 했다.

 

시커먼 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인사도 안하더만.

 

난 그나마 열받은걸 해소했다고 자위했지만 창동 한가운데서 미아가 되버렸다.

 

 

어이.. 씨..

 

  

늦었지만 덜 닫힌 뚜껑을 평택에 꼭 가는 것으로 마무리해야겠어. 

 

차를 몰고 갈꺼야.

 

거기 또 시커먼 놈앞 비굴 작전 시나리오 접수. 

 

나 = 홍 아저씨네 아이 과외 선생 애인?

 

과외 선생 버스 끊기고, 홍 아저씨 약주 한잔에 발 묶인 애인 모시러 마을 진입?

 

 

좀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애인 외박위기라는데 이유없이 우기긴 딱이지.

 

 

오늘 하루 일진이 최악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차를 찾으러 가는 길에 여러차례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도했다.

 

 

어.. 그놈이 이런 말을 할꺼야..

 

그럼.. 이건 어떠냐.. 할말 없지..?

 

어? 아.. 그건 임마.. 그래서지.

 

... ...

 

 

 

'아무래도 못 들어올것 같애. 말이 필요없대.낼 통선단땜시.'

 

 

-_-;;

 

 

평택에까지 가서 길을 잃으면 울 것 같았다.

 

 

 

 

조용히 집에 들어와 생각해보니,

 

내가 한 것이라곤 영양가 있는게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가 툭 던진 말처럼..

 

 

내가 하는게 다 그렇지 뭐.

 

(도봉서에 갇혔던 사람들은 사실 몇시간뒤에 다 나왔단다.. - -;)

 

에이..

 

 

 

아니야.

 

이러다가 배워가는 거지.

 

가여운 나를, 귀엽다고 내가 생각하면 되는거지. 

 

ㅡㅜ ;

 

 

 

 

 

난 그저 마음 가는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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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정말 오랜만. 한강.

 

언제 그랬냐는 듯, 서울을 덮을 기세로 묵직하게 흐르던 황토물은 온데간데 없다.

 

 

 제법 서늘한 공기와 속살까지 살짝 껴안는 바람이 참 편안하다.

 

여긴.. 한국이, 아니 지구가 아닌 것 같잖아.

 

 

희그무레컴컴한 강을 보고 있노라면, 저만치 와서 멀어지는 물에 잠시 눈이 풀리면서..

 

잡지 못할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과 뛰어들면 안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된다.

 

 

한참동안 정체모를 생각들을 따라잡다 그마저도 초연해질 때 쯤이면..

 

 

제법 눈이 밝아진 수면위로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어떤 누구는 저 상류에서부터 내려오다가 한참을 내려가는 동안 선명하고..

 

또 어떤이는 갑자기 나타났다 이내 멀어져 떠나보내기 아쉽고..

 

강건너쯤 허우적거리는 녀석을 발견하면, 그 얼굴이 가물가물해 못내 서운하기도 하다..

 

 

이 바람이 전해질 대추리에서 매일밤마다 긴장한 몸과 마음을 누이는 사람들 얼굴이..

 

아무런 이유없는 작별로 구천을 떠도는 이들이..

 

떠난 얼굴이 흐려질까 사라질까 늦은밤 눈물을 훔치며 잠들지 못하는 가족들과..

 

또한, 억눌린 사람들 서글프고 고단한 삶의 한켠을 붙잡고는.. 어느즈음 제 삶의 지도를

 

펼쳐놓고 긴호흡을 하는 이들 얼굴 하나하나..

 



 

 

씻어내는 거지.

 

채 말하지 못하는 사연 비우면서.. 흘러가면서 부디끼다가 떼어놓기도 하다가 춤추듯

 

씻어내는 거지..

 

 

그렇게 한참을 앉아, 내 얼굴을 띄워보내고서야 엉덩이를 털었다.

 

 

 

 

발을 벗고 강길을 따라 걷다 보니 낚시하는 사람이 꽤 많다.

 

가족끼리, 나이 지긋한 친구끼리 낚시대를 널찍하게 펼쳐놓고는 한 돗자리에 앉아 한방향

 

을 보고 잠꼬대 하듯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홀로 앉아 미동도 없이 담배를 태우는 사람.

 

 

 고기가 잡히는지요..

 

 

"장마가 물을 뒤집어놔서 입질 좀 받을까 했는데 구경도 못했수다"

 

 

^^ 

 

제법 걸어나가면서 수십대에 이르는 낚시대를 세어보지만 망을 담근 사람은 없다.

 

 

" 그래도 더운날.. 조-옿잖아요?  "

 

그러네요 ^^

 

 

이런날 이런시간 이런아름다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경계를 하지 않아도 편안하다.

 

빛이 약한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한참을 꼼지락거리며 삼삼오오 모인 이들을 엿들으면,

 

정치도.. 내일도.. 그들의 자식도 없이 지난 애틋한 과거와 지금의 모습을 이야기 할뿐이다.

 

 

그대들은 저 강에 누구의 얼굴을 띄워놓고 눈인사를 하시는지요..

 

  

 

 


 

 

또한 그대들은 어떤지요..

 

관계를 벗어버리고 내려와 강이 데려온 모레에 발을 벗고 서서 또는 털푸덕 앉아서

 

온전하게 '나'와 마주한 적이 있는지요..

 

 

그대들의 문서에 사람들 얼굴을 띄워본 적이.. 그래도 예전엔 있었겠지요?

 

 

아님 말고.

 

 

흠칫 돌아본 곳에 찬란하게 서 있는 저녀석을 보고 기분 조-옿 다가 쓴맛이 나버렸다.

 

쯧.

 

 

 

 

 

꽤나 걸었나보다.

 

길은 여기서 멈추었고, 인적도 잦아 들었다. 

 

 

아쉬워서 멈칫멈칫 거리는데 갑자기 어둠속에서 연인인듯한 앳된 두 남녀가 걸어나왔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스쳐나가며 어색한 공기를 흘리고 가더라.

 

아마 나를 지나쳐가는 순간엔 쑥스러운 웃음을 흘리고 간 것 같다. ^^;;

 

 

두사람이 귀여워서 그랬는지 풋- 청량한 웃음소리가 환청이 들리는 것 같더니 저 멀리

 

안보일 즈음 되니까 갑자기 그 공간이 싸늘할 만큼, 지나치게 조용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잠깐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뭐하지?

 

아무도 없는데 춤이라도 출까.

 

- - ;

 

나같은 몸치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춤.. 같은 움직임을 하면 쑥스럽기 짝이 없다.

 

... 음악도 없으면, 부끄러움으로 샤워를 할껄..  - -;;

 

 

 

 

걸어온 길을 돌아 나오면서 생각보다 먼 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내 이런저런 생각이 따라붙어 걸음을 늦추던 것이 사라지고 한결 몸이 가벼워진 것일까.

 

 

 

지구가 아닌 것 같은 지구 어느 곳에서의 잠깐의 여행.  

 

늘 그랬듯 여행은 무엇을 정리하거나 찾는게 아닌 하얗게 잊을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그래서, 좋은 기억은 좋은 기억대로 나쁜 건 나쁜 것대로..

 

새로운 기억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는 시간. 여행.

 

 

 

오늘도.

 

 

좋았어.

 

 

 

  

텅-소리가 나는 머리 누이고.

 

내일을 또 만나야지.

 

 

 

졸립다.

 

 

 

 

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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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것 같아.. ..도. ^^


 

 

 

미 대사관 앞.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저 씨팔놈들을.

 

 

 

"평택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원합니다~"

 

' 어이.. 그럼 용산에서 떠나 평택으로 가겠다는 미군 어디가라고?'

 

 

... ...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면서 애써 다가온 사람을 앞에 두고,

 

'지들 집에 가면 되자나요.'

 

하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고 돌아설까봐 겁이 났다.

 

 

'국가'와 '이해관계' 이전에 사람이 살고 있다구요..

 

 

결국 '전략적 유연성'까지 진도 한번 나가보지 못한다.

  

 

진정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실거냐고..

 

소리없이 먼 인사를 보낸 그들을 붙잡아 다시 묻고 싶어졌다.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론인의 인종 청소.

 

58년간의 군사 점령에 저항하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라 명명.

 

빈대(?)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사람 목숨알기를 새털같이 여기는 씨팔놈에게

 

무기를 주고, 자금을 지원해 학살을 도모하는  씨팔놈집 기르는 개똥같은 부시를.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비가 많이 온다고 우산을 쓰는 한국의 아이들이, 제 집에서도 제 부모의 따뜻한 품속에서도

 

쏟아지는 포탄을 피하지 못하는' 레바론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다면.

  

조용하기만 했던 한 마을. 영문도 모를 공격으로 돌무덤에 깔려 죽은 60여명중 30명이 

 

아이들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사실이라면.  

 

 

명명한 테러리스트를 고쳐봐야 하지 않겠냐고.

 

 

 

 

반전과 평화의 구호가 더운 아스팔트를 더욱 덥히는 종로통..

 

채 몇걸음 안되는 곳에서도 생존의 외침이 있다.

 

 

' 장애인 굶어죽고 얼어죽이는 성람재단'

 

' 성람재단 비호하는 종로구청'

 

 

기꺼이 살고자 하는 그들 장애인을 청소하는 또한 씨팔놈들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현기증이 날 것 같아서 애써 돌아나온 길에..

 

 

 

미 대사관 벽을 따라, 끝도 없이 긴 기다림을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땅을 떠나려는.. 아메리칸 드림을 손에 쥔 사람들..

 

 

미국의 비자를 얻으려고 끝도 없이 늘어선 인간 띠의 장관 앞에서,

 

가엽기만 한 그들이 길을 잃을까 서글퍼졌다.   

 

뜨거운 해가 작열하는 종로 한가운데에서 또한 내가 길을 잃을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겨우 돌아와 친구에게 하소연 하길.

 

 

환  장  하  겠  어  어  쩌  면  좋  으  냐

 

 

 

 

[그 사람들 FTA 투쟁땜에 가는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렇군.

 

 

 

사람들이 환장할 것 같아도 살아지는 방법이 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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