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택하라

2006/09/01 18:32 운동장

                       평화를  하라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현재 806만 8천 평(여의도의 3배)의 미군기지 확장이전지로 정부에 의해 강제수용 되어 이에 응하지 않은 주민들과 많은 마찰을 빚고 있는 곳이다. 미군기지에 필요한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들이 거주할 초호화아파트와 골프장, 산책로 등이 건설된다. 평택으로 옮겨오는 15개 미군기지 반환지역의 환경회복 예산은 최고 2천 600억 원에 달한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고, 이에 더해 건설되는 미군기지 확장비용 5조 5천억 원도 한국이 부담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추리와 도두리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
는 것이다. 대추리와 도두리의 평화,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의 평화,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추리, 도두리에는 고향을 지키며 땅을 일구어 살아가고 싶어 하고, 갈 곳이 없는 주민들이 많이 남아있다. 3년 전부터 미군기지 확장이전지로 지정된 대추리, 도두리. 2006년 5월 4일, 정부는 강제수용을 거부한 주민들과의 평화적 협상을 깨고 경찰과 용역을 투입하여 주민들이 직접 지은 대추분교를 강제철거 했다. 대추분교를 지키고 있던 많은 시민, 단체회원, 학생, 주민들은 경찰에 의해 100여명의 사람들이 다치고 400명이상이 연행되었다. 그리고 대추분교는 강제철거 되었다.

                

                           평택 대추리의 평화를 깨는 정부의 공권력 투입

 

 참여정부에 들어 대추리는 처음으로 공권력이 시민들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경험했다. 다음날 5월 5일에도 군인들이 투입되어 시민들과의 마찰이 있었고, 연행자들이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대추리 김지태 이장이 경찰에 구속되었다. 김지태 이장, 그는 왜 구속되어야만 했던 것일까? 불혹을 넘긴 나이에, 고령의 노모를 모시는 이장은 대추리를 떠나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정부 보조금이라는 지급 하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이름하에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과 생존권은 이렇게 무참히 짓밟혀도 괜찮은 것일까?

     

                         평화를 지키기 위한 평화적인 투쟁을 시작하는 이들 

 

5월 4일의 유혈진압이후 남은 주민들과 단체들, 학생들, 시민들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평택을 지켜왔다. 7월 6일부터 9일까지 청와대에서 대추리로 도보 행진하는 "평화야 걷자"가 진행되었고, 중, 고등학생도 포함되어 걸었던 이 도보행진에는 대추리의 평화를 염원하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 대추리로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팽성상인대책회와의 마찰로 많은 행진단들이 상인들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한 행진단 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평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지문채취를 거부한 채 여권으로 생활했던 대안학교 학생(19) 한 명은 경찰들은 강제 지문 채취에 저항하여 자해를 했다. 하지만 피 묻어 지문이 보이지 않는 열 손가락에는 결국 검은 잉크가 덧칠해졌다.

 

 평화 행진 후 군산미군기지에서 대추리까지의 자전거 평화 행진도 이어졌다. 비가 오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행진단은 붉은 우비를 입고, 산길과 고속도로, 도심을 거쳤다. 자전거 행진에는 중, 고등학생과 전북지역 대학생, 서울지역 학생들이 함께 했다. 익산, 부여, 공주를 거치면서 각 대학의 학생들, 농민들과 만나 함께 대추리에 관한 영상을 보고 교류하면서 대추리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특히, 부모님의 권유로 참가했다는 중, 고등학생 형제는 군산부터 평택까지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로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도 대추리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강제철거가 임박한 8월 말, 지금의 평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현재 대추리와 도두리로 들어가는 길목은 경찰의 검문으로 통제되고 있다. 주민의 목록을 가지고 있는 경찰은 버스, 택시, 승용차를 가리지 않고 세워 주민 목록과 대조 후 주민만을 들여보내려고 하고 있다. 이는 강제철거가 임박했음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이를 막기 위해 평화캠프가 진행되었다. 평화캠프는 족쇄처럼 조여 오는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빈집을 꾸미고, 평화의 바람개비를 돌리고, 평화 전망대를 세워 푸르고 드넓은 황새울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대추리를 지키고 있지만 아침과 저녁으로 날아드는 헬기소리와 전경들의 발자국 소리에 불안한 주민들, 대추리 도두리를 일구며 살아가는 평택지킴이들과 소박하게 마을잔치를 벌이고, 촛불집회에 함께 참가하고 인권에 대한 영상을 함께 보았다.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집을 강제철거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고, 비평화적인 것이다.

 

평택의 갯벌을 간척해서 땅으로 만들고 그 염기어린 땅에서 다시 볍씨가 자라 쌀이 돋기까지 5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거동하기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내쫓고, 피와 시체로 뒤덮이는 전쟁에 대비하는, 선제공격을 준비하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집을 강제철거한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고, 비평화적인 것이다. 대추리의 평화, 그리고 이 땅의 평화. 그것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평택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지향점이 아닐까? 피는 피를 부르고, 평화는 평화를 부른다.

 

 나는 얼마전 평화캠프 때 대추리 마을회관에서 마을잔치를 도왔다. 할머니들이 더운데 고생한다며, 고맙다며 꼭 한 번씩 툭툭 두들겨 주시고 마을회관으로 들어가시며 흘리듯 말씀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이제 갈 데가 어딨고, 바라는 게 어딨어. 그냥 여기서 조용히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 "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1인 시위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못했다. 일상적인 일을 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다가도 가끔 할머니의 그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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