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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토론회 0628] 개발에 대응하는 우리의 과제

 

개발에 대응하는 우리의 과제

 

이원호 /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1. 도시개발, 그 폭력의 역사

 

2009년 1월 20일 벌어진 용산참사는 도시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에 정부가 진압경찰을 투입하면서 6명이 죽음에 이르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충격적인 참사는 이명박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건설자본의 이윤보장과 정치적 이득을 위해 대규모의 도심광역개발 사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현 시기 개발방식 하에서 예견된 참사라고도 할 수 있다.

 

참사 초기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은 보상을 더 받기위한 ‘이기적 투쟁’이라는 논리와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내세우며 ‘도심 테러세력’으로 철거민들을 매도하며 여론을 몰고 가려 했다.1) 그러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이웃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권력자들의 매도의 논리를 압도하였다. 이는 6명의 죽음을 부른 진압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참사의 배경이 된 살인적인 개발 정책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폭발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시개발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이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그리고 이에 맞선 철거민들의 저항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어왔다.

 

멀리는 1970년을 전후로, 도심지 판자촌을 대규모로 철거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광주대단지 폭동’2)이라 불리던 투쟁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후 판자촌 집단 이주로 조성된 지역을 일시에 아파트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1980년대 투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1982년부터 합동재개발3) 방식이 진행되면서, 대책없이 쫓겨나야 하는 세입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그 유명한 목동, 사당동, 상계동, 양평동 등지의 판자촌 세입자들이 이대로 쫓겨날 수 없다며, 주거권 쟁취를 위한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러한 대규모 개발에 맞선 극심한 저항의 80년대 투쟁과정에서 건물잔해에 깔리거나, 비관자살, 용역깡패의 폭행, 방화에 의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약 20여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친 후에야, 1990년을 전후로 세입자용 임대주택 건립이라는 주거 세입자 대책이 일정부분 마련되게 되었다.

 

그러나 시행 2년만인 1991년 영구임대주택 정책이 폐기되고 공공임대주택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들로서는 몇 푼 안 되는 현금보상을 택한 체 쫓겨나야 했다. 또한 여전히 지속되는 전면싹쓸이 철거방식으로 인해 재정착이 어려운 세입자들은, 철거 이후부터 공공임대주택이 완료되기까지 거주 할 ‘임시거주시설’과 ‘미 해당자’로 분류되어 공공임대 입주자격을 갖지 못하는 세입자들의 공공임대주택 쟁취가, 철거투쟁의 주요 저항의 쟁점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봉천동, 금호동, 행당동, 전농동 등지에서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소위 ‘미해당자’로 분류되어, 대책없이 쫓겨나는 상황에서 극력한 저항을 펼친다. 특히 이 시기 ‘(주)적준개발용역’이라고 하는 대표적인 철거용역깡패 업체가 재개발 현장을 거의 독점하며, 칼부림과 집단폭행, 성폭력 등 심각한 폭력을 일삼게 되었고,4) 그 과정에서 공권력인 경찰은 수수방관하거나 용역들을 비호하여, 철거민들의 투쟁은 망루투쟁을 비롯한 더욱 목숨을 건 싸움으로 전개 될 수밖에 없었다.5) 6)

 

 

2. 이명박식 뉴타운개발의 등장과 살인개발의 전개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강북지역 단독주택 지역을 중심으로 한 뉴타운사업과 강남 아파트 재건축 열풍이 불며, 건설자본과 투기세력들이 막대한 개발이익을 독식해 나갔다.

 

앞서 살폈듯 개발로 인한 철거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의 박탈은 이명박 정부에서만 있었던 일은 분명 아니다. 역대 정권마다 경제성장을 내세우며 각종 개발사업들과 부동산 거품 유지 정책들을 추진하여왔다. 그러나 흔히 달동네로 불리는 도심지 저소득층 주거 밀집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철거가 끝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주로 이해당사자의 수가 적은 택지개발 방식의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어 왔었던 것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이던 지난 2002년부터 ‘뉴타운개발사업’을 시작으로 다시금 대대적인 도심 광역개발이 진행된 것이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광역개발은 수많은 이해당사자, 특히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노동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도시서민들에게 닥칠 직접적인 문제로 직면하게 된다.

 

이는 서울시주거환경개선 자문위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뉴타운지역 세입자비율이 73%에 이르는데, 세입자와 가옥주를 포함한 원주민 재정착 율은 15% 내외에 머물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개발로 인해 소형․저렴 주택의 멸실이 심각하고,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건설이 이루어지면서, 전세가 4천만 원 미만의 서민용 주택이 개발이전 83%에서, 개발 이후에는 단 1%로도 존재하지 않고,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대규모의 개발사업의 전개는 지난 역사에서 보듯, 쫓겨날 수 없는 철거민들의 극심한 저항을 불러온다.

 

특히 서울의 뉴타운․재개발은 그 규모와 속도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뉴타운․재정비 촉진지구만 35개 지구 150여 구역에 달하며, 재개발사업이나 재건축사업은 각각 300여 구역에 이른다. 이러한 개발 면적은 150여개 뉴타운 지구만 놓고 봐도 지난 36년간 지정된 면적의 66%에 이르며, 연평균 재개발구정지정 면적의 24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약 25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주변지역까지 합하면 전체 서울 거주 가구의 15% 이상이 영향권에 들어 있다.

 

이러한 규모와 속도의 개발은 2009년 하반기부터 전세가의 기록적인 상승과 같은 현상을 촉발해 도시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이 불안정한 잠재적 철거민에 놓이게 된다. 또한 개발 구역간의 보다 빠른 개발 경쟁을 불붙여, 세입자들을 보다 빨리 쫓아내고자 용역 깡패를 이용한 폭력의 양상이 극심해 진다.

 

특히 용산 4구역, 두리반, 명동에서 표출 되었듯, 2000년대 이후 뉴타운 사업을 기점으로 개발지역의 상가세입자들의 생존권 위협 문제가 현장을 중심으로 핵심적으로 표출되기 시작 하였다. 이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가 발달한 상권을 중심으로 지역이 형성, 발전 되었는데, 바로 그 도심 내부에 다시금 과거수준 이상의 대단위 개발을 빠른 속도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거세입자들에 관한 대책은 지난 30여 년간 수십여 명이 죽임당하는 역사를 통해 미약하나마 개선되어 왔던 것에 반해, 상가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 시피 했다. 이에 광범위하고 빠른 도심광역개발의 전개는, 상가 세압자들로 하여금 가족의 생계/생존을 건 격렬한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했다.7)

 

 

3. 참사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참사 직후, 참사의 근본원인이 무분별한 재개발정책에 있다며, 정부와 서울시, 여야정치권에서 재개발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하며, 일부 법·제도를 세입자 대책 강화라는 이름으로 개정하였다. 그러나 개정된 내용을 보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실효성 없는 대책에 머물고 있거나8) 오히려 세입자들을 대책 없이 쫓아내는 구체적인 제도에서는 개악9)되고 말았다.

 

또한 용산참사와 관련하여, 정부는 상가 세입자를 위한 보상을 현실화 하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그 하나 상가 세입자들 중 일부에게 개발 이후 일부의 ‘상가 분양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가 세입자들이 요구한 것은 세입자들에게 그림의 떡인 분양상가의 소유가 아니다. 개발로 인해 더 부자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개발이전과 동등한 수준은 유지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였을 뿐이다. 10억 여 원이 넘는 도심 상가 분양가를 내고 장사를 계속할 세입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세입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는 상가 세입자들의 휴업보상금을 3개월분에서, 4개월분으로 상향하여, 세입자 보상을 현실화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장’은 없고, ‘보상’만 얘기하는 기존의 세입자 대책의 근본 문제 반복하는 것이다. 특히 기존 투자금의 상당액을 날린 상태에서, 4개월분의 휴업보상금 만으로, 동일한 조건의 영업을 4개월 안에 재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며, 때문에 기존 수준 영업의 ‘휴업’ 이 아닌, ‘폐업’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는 생존권을 박탈당해, 죽음에 이른 이들에게, 1개월만 더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미약한 법적 대책이 공익사업이냐 아니냐에 따라 갈려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뉴타운, 재개발, 도시환경정비 사업 등 공익사업에는 쥐꼬리만 대책이라도 있지만, 재건축, 조합주택개발 등 민간개발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두리반이 그랬던 것 처럼...  

 

정비사업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자찬했던 서울시가 제시한 방안도 지나치게 과대 포장된 대책이다. 서울시는 2009년 7월 1일 오세훈 시장의 취임에 맞춰, ‘공공관리자 제도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정비사업 프로세스 혁신안’을 발표하였다. 공공관리자 제도의 도입에 대해, 오 시장은 “40여년의 절차와 관행을 과감하게 철폐한 것이다”고 말하였고, 주류 언론들도 ‘재개발 공공역할 강화’, ‘세입자 대책 강화’라는 제목들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발표된 혁신안을 살펴보면, ‘요란한 빈 수레 혁신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시의 혁신안은 애초 자문단이 구성된 주요 원인이자, 개발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나는 원주민 재정착과 관련하여서는 전혀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서울시의 공공관리자제도는 공공의 업체선정 등에만 개입할 뿐 실질적인 재개발사업의 가장 큰 문제점인 주민 이주대책 및 철거, 세입자 대책 문제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민간에게 떠맡기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서는 무심한 공공관리자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서울시의 대책에 대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하고서는, 빨간약만 처방했다’고 말하여 질 정도이다.

 

 

4. 강제퇴거를 막기위한 제도개선 방안

 

이처럼 정부와 서울시의 용산참사 이후 제도 개선책들을 보면, 돌아가신 용산 철거민들의 외침은 고작 1개월분의 보상금 추가와 세입자 대책 후퇴로 돌아왔다. 한 철거민은 다섯 명이 죽어 나갔는데도, 세입자대책이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서, 이제 개발세력들은 더욱 자신 있게 활개를 치며, 밀어붙일 것이라고 절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현실은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에서, 관련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는 더 이상 대책없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제퇴거를 막기위한 대안적인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 강제퇴거가 집에서 쫓겨나는 문제 일 뿐만 아니라 생계와 사회적 관계/삶 전반을 후퇴시키는 문제이기에, 법적으로 주거 및 상가 세입자 재정착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지는 강제퇴거를 금지해야한다. 특히 다양한 개발사업들과 그 사업에 따라 적용되는 다른 법체계들, 그리고 법적으로 개발 사업으로 분류조차 되지 못하는 무대책상태의 개발 사업들을 관통하여,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산하 [강제퇴거금지법 제정특별위원회]에서는 ‘강제퇴거 금지법’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법은 거주민10)들의 주거권과 재정착11)을 보장하기위한 법으로, 모든 개발 법에 우선하여 기본적인 재정책 대책의 기준선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또한 거주민의 이주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철거예비행위 및 철거를 금지할 뿐만아니라 위반에 대한 공공과 시행사에 대한 법적 책임과 징벌을 포함하고자 한다.

 

또한 당장 시급하게는 용산과 두리반, 명동에서 나타나듯이 상가 세입자를 위한 재정착 대책의 마련이 시급하다. 개발사업으로 인해 생계가 박탈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대체상가13)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대책과 손실보상에 대한 합리적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14)

 

 

5. 개발에 대응하는 운동의 과제

 

기존의 개발에 맞선 철거민들의 투쟁은 고립되고 외로운 지역투쟁으로 전개되곤 했다. 게다가 철거민 대중조직을 포함한 빈민대중조직은 오랜 기간 노선과 세력 간 갈등과 분열의 역사를 반복해 왔으며, 이로 인해 철거민 대중조직간 상호 연대의 틀을 세우는데에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의 개발정책과 건설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을 의제화하지 못하고, 당면한 요구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개별 지역의 철거저지 투쟁이 중심이 되어 왔다. 또한 지역투쟁에 있어서도, 지역 단위들과의 연대 틀도 부재해,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로 가져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는 매일 당면하는 ‘철거’라는 무차별적 폭력에 대응하는 현장 싸움을 막아내기에도 벅찬 상황과 현재 철거민들 간의 연대로 이루어지는 철거민운동의 현실 조건과 역량을 감안할 때, 당면한 한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철거민운동에서 이러한 전망이 시작되지 않으면 현장의 싸움과 전체적인 싸움이 괴리되는 양상, 계속적으로 고립되는 투쟁을 넘어 설 수 없다.

 

한편으로는 ‘개발’문제에 대한 제도재선과 문제제기 방식의 운동들이 한 축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들은 이슈에 따른 대응에 머물었으며, 제도개선 역시 주체인 철거민들과 충분히 소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어 이렇다 할 힘을 받지 못했고, 몇몇 핵심 브레인들의 정책생산에 머문 경향이 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자영업자가 급격히 늘고, 2000년대 이후 확대된 도심개발로 인해 개발지역 영세 상인들이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현실이 증가하면서 철거민 당사자 조직이 상가세입자 비중이 높아진 것에 비해, 정책접근에 있어서 상가세입자 문제에 대한 접근이 극히 미약했다. 때문에 당사자 조직을 중심으로 한 지역 현장의 철거투쟁과 일정한 괴리가 있어 왔다.

 

반면, 한국사회는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동맹 체제가 구축되어왔다. 개발정권과 건설재벌, 그리고 금융세력과 대지주 등 토호세력으로 연결되었던 동맹체제는 10여 년 전 부터는, 보수언론과 투기꾼, 연구자와 지방의 군소토호세력까지 연결된 강력한 개발동맹체제로 구축되었으며, 이명박 정권과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광범위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뉴타운 등 도심 광역개발과 대운하 사업,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 각종 삽질정책에 맞춰 2010년부터 더욱 공고한 체제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동맹의 강화는 이미 드러나듯 지역의 급속한 보수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운동진영에 심각한 도전으로 작동한다. 한 개의 작은 개발구역에서도 수천억에 달하는 사업비(용산 4구역의 경우, 사업비 2조)는, 개발사업이 개발동맹세력의 꿀단지이자. 지역을 보수적으로 구성하는 배분 창고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개발계획에서 완공까지) 상당기간 지속된다.

 

때문에 개발 현수막이 나부낄 때부터 시작된 지역의 보수적 장악 시도는, 원주민 몰아내기를 통해 개발 후 주민의 80~90%의 계급 변화로, 더욱더 자본에 용이한 보수적 공간으로 구축된다.15) 뿐만 아니라 ‘보금자리 주택’ 정책과 같이, 서민주거정책으로 둔갑한 각종 ‘개발 플러스 주거복지’정책은, 공간의 계급분리를 가속화하며, 도시의 보수화를 완성할 것이다.16)

 

이러한 현실에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대응 틀로는 더욱 광폭한 개발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우며,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막아내는 힘을 형성하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개발양상과 개발동맹 구조 하에서는, 기존의 철거민 당사자만의 고립된 지역투쟁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한 제도개선 및 법적 투쟁 중심으로 경도된 대응 역시, 안하무인격으로 진행되는 개발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운동의 조직과 연대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적 차원에서도 지역연대와 폭넓은 주민조직화라는 화두로 연대단위들을 설득해내고, 철거민대중조직이 중심에 서서 지역 연대를 조직해내고, 대응하는 구조를 만들어야한다.17) 그래야 소수 철거민의 당면 생존권 확보 문제를 넘어서는,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지역적 개발대응 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동시에 용산에서 전개된 사회운동 및 문화예술, 미디어, 종교 등 다양한 활동에 결합했던 이들과 함께 하는 공동의 행동들이, 이곳 두리반에서 더욱 확장되어 이어졌던 것처럼, 개발에 저항하는 다양한 운동의 연대와 확장이 이어져야 한다. 단 하나의 칼국수 가게이던 두리반이 용산에 이어 한국사회의 개발의 문제를 폭로하고, 고립된 철거민의 싸움이 아닌, 개발에 맞서 새롭고, 다양한 싸움들을 만들어 내고, 승리했던 것 처럼.

 

물론 이런 두리반 투쟁이 모든 개발지역의 또 다른 용산들에서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삶을 파괴하는 방식의 개발이 존재하는 한, 고립을 넘어선 연대의 확장으로 두리반과 같은 투쟁, 두리반과는 또 다른 버전의 연대의 투쟁들이 확장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운동의 연대를 통해, 개발사업 초기 단계부터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 집과 가게를 빼앗긴 철거민들의 싸움과 철거민에 대한 연민의 연대가 아닌, 우리 동네를, 우리지역을 지키는, 우리를 지키는 ‘우리’의 싸움을 만들어 가야한다.

 


1) 참사 다음 날인 21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은  "보상에 있어서 떼만 쓰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발언하고, 신지호 의원은 "전철연은 반(反) 대한민국 단체"라며 "이번 농성은 생존권 투쟁이 아니라 전철연이라는 반대한민국 단체가 벌인 도심테러"라고 발언으로 철거민들을 매도했다. 관련기사 : 노컷뉴스「與, 용산참사 '물타기'…'폭력시위' 집중부각」(2009.1.21)

 

2) 당시 서울시 인구의 10%를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를 경기도 광주(현재의 성남시)에 조성하여, 판자촌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이주시키려던 과정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서울과의 버스 교통도 제대로 안 되고 불하받은 땅의 세금마저 높자 자연발생적인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1971년 8월 10일부터 8월 12일까지 10만명에 이르는 이주민들이 공권력을 해체시킨 채 도시를 점령하고 시위를 벌였다.

 

3) 이전까지 공영재개발 방식 이었던 개발방식이, 합동재개발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는 건설과 매매의 전 과정을 건설회사에 양도함으로써 국가의 폭력성을 은폐한다. '합동재개발방식‘ 은 가옥 주들이 주택을 제공하는 대신 재개발조합을 구성하여 건설회사와 함께 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이전에 정부와 무허가 가옥주간의 대립양상에서, 가옥주(조합,건설사)와 세입자간의 대립으로 전개되게 되었다.

 

4) 적준이 얼마나 악명을 떨쳤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사법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펴낸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철거범죄 보고서>(1998년 11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하나로 뭉쳐서 철거용역 회사의 보고서를 만들 정도로 적준이 철거현장에서 보여준 폭력은 충격적이었다. 지금의 철거용역 업체들도 대부분 구 적준에 있던 이들이 나와 설립한 것이다.

 

5) 대표적으로 전농3동에 철거민들의 망루가 설치되었고 철거민 박순덕 열사는 망루에서 농성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97년 7월 25일 망루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한 적준 소속의 용역직원 300여 명은 공권력 600명의 비호 아래 망루에 접근해, 망루 안으로 기름을 묻힌 타이어를 집어던지고 불을 질렀다. 망루가 화염에 휩싸이자 박순덕 열사를 비롯한 10여 명의 철거민들은 18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렸고, 뛰어내린 주민들을 용역직원들이 달려가 집단 구타하였다. 결국 박순덕 열사는 뇌사상태로 사경일 해메다가 다을날 새벽 숨을 거두었다. 

 

6) 「용산참사와 도시재생사업의 근본대안」(김수현, ‘용산참사와 토지문제의 제도적 대안 제시를 위한 토론회’, 

 2009),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연구」(김수현, 서강대학교 대학원. 2006)

 

7) 또 하나 상가세입자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주거세입자 대책이 본격적인 철거 최소 1년 전인 사업시행인가 시점에 결정되는 것과 달리, 상가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감정평가에 의한 손실보상 대책밖에 없기 때문에, 본격적인 철거 직전인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 알게 된다. 이는 세입자들로써 다른 대책을 모색해 볼 시간적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철거가 진행되어, 결국 극단적 투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는 2000년대 이후 조직된 철거민들의 7~80%가 상가세입자라는 현실에서도 알 수 있다.

 

8) 예를 들어, 정부가 개발사업시 세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였다고 하는 대책을 보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는, 구역지정 공람대상을, 기존 “‘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그 밖에 정비사업과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는 ‘주민’으로 본다”에서, ‘…주민(세입자를 포함한다)’로, 괄호로 세입자를 넣어 준 것에 불과하다. ‘정비사업과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가지는 자’, ‘주민’에, 세입자는 당연히 포함된 것 아닌가? 세입자는 엄연히 주요 이해관계자요, 주민인 것을, 괄호로 추가표기하면서 까지 세입자 대책 마련이라고 포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그 동안 세입자들을 ‘주민’으로 조차 대해오지 않았던 것을 시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9) 먼저 시행규칙 손실보상 항목의 개정으로 주거이전비를 보상받는 세입자 기준 일을 앞당겨, 대상 세입자 수를 대폭 축소하도록 개악하였다. 때문에 이번 개정으로 사업시행인가 이전 구역지정 이후 이주해 온 세입자들을 비해당자 상태로 전락시켜 대책 없이 쫓겨나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또 있다. 세입자를 둔 조합원의 감정평가에서 세입자 보상비를 빼고 손실보상을 하는 것으로 개악되었다(도정법 48조 5항 2호). 이제 개발지역 집주인들은 자신의 평가금 손실을 우려하여 사업시행인가 전에 세입자들에게 재계약을 거부하며 적극적으로 쫓아내게 될 것이다.

 

10) 강제퇴거금지법(안)에서는 “거주민”의 정의를, 개발사업구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11) 강제튀거금지법(안)에서는 “재정착”의 정의를, 개발사업구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개발사업의 시행 중 및 개발사업의 완료 후에 개발사업 시행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거나 일하는 것을 말한다.

 

12) 대체상가는 개발구역내의 임시상가로 한정될 수는 없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구역 내 임시상가, 인근 대체상가 마련 혹은 그에 준하는 금융적 지원 등을 포함하여,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13) 또한 도시환경정비사업 지구처럼 상업지가 많은 곳에서는 ‘(공공)임대상가’의 마련도 고민되어야 한다. 현행 법상 주거세입자들에게는, ‘주거이전비 4개월분’(동산 이전비 별도)과 개발 이후 재정착을 위한 ‘(공공)임대아파트 입주자격’이 동시에 주어지며, 개발기간 동안의 대책으로 ‘임시수용시설(가이주단지, 임시주택, 순환용주택)’ 또는 그에 준하는 금융지원(주택자금 융자 알선)이 보장되어 있다.12) 그러나 상가 세입자의 경우 휴업보상비 4개월분만 있을 뿐이며, 세입자들에겐 맞지않은 분양권이 일부에게 주어질 계획이다. 때문에 주거 세입자 수준에 맞춘다면, 휴업보상비 4개월분과 개발 이후 재정착을 위한 (공공)임대상가의 입주자격과 함께, 개발기간 동안의 대책으로 ‘임시상가’혹은 ‘대체상가’ 또는 그에 준하는 금융지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현행 개선안으로 제시된, 분양상가의 제공에서 세입자들이 분양받아 재정착하는 것 외에, 나머지 세입자분에 대해 공공이 매입하여 공공임대상가로 활용하거나, 일부를 지자체가 기부 체납의 형식으로 조합으로부터 받아 공공임대상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상가 세입자를 위한 대책의 제도적 마련 및 입법화는, 정부나 서울시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14) 물론 주거세입자 대책도 실재 집행의 문제와 임대아파트의 공급물량 부족 및 비싼 임대료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15) 서울시 주거환경개선 자문위의 연구에서도, 정비사업 후 주거부담 능력 격차가 심각하게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비사업 전 거주가구 평균소득이 207만원 이었으나, 정비사업 후 요구소득 추정치는 653만원으로 조사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입자들이 입주할 임대아파트의 건설 비율도, 세입자 대비 19%에 못 미친다. 이는 거주민(원주민)들의 교체가 불가피하며, 보다 고소득, 중상층 위주의 도시로 변모를 가져온다.


 

16) 2008년 9.19 주택공급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도심주택공급 정책을 통해, 뉴타운 추가지정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을 중심으로 하는 무주택자를 임기 중에 없애겠다."며 그린벨트해제와 서민주거정책이라는 이름의 ‘보금자리주택’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무주택자를 임기 중 없애겠다’는 말이, 뉴타운 추가지정 등 기존과 같은 도심개발 계획과 중첩되면서, 마치 ‘도심에서 집 없는 가난한 이들을 없애버리겠다(쓸어버리겠다)’는, 철저한 분리수거정책으로 예고되었다. 이러한 뉴타운을 추가지정하고 이와 별반 다르지 않는 역세권 고밀도 광역개발을 추진하여, 결국 강남은 고밀도 개발을 통해 강부자들의 이득을 보장해주고, 강북을 준 강남으로 개발하여, 도심을 중상층 이상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도심의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 도시빈민들의 일부는 도심외곽의 보금자리주택으로, 나머지는 ‘알아서 사라지시라...’(그러나 사람이기에 사라지지 못하고, ‘감춰지는’)는 완벽한 공간의 계급분리로 이어질 것이라는 두려운 예측을 지울 수 없다.

 

17) 지역연대와 관련하여, 철거민 대중조직들의 우려가 존재한다. 이는 급박하고 당면한 문제에 놓인 철거민들이 지역 연대단위들의 개입으로, 지도의 혼선이 올 수 있고, 이는 단일하고 일사분란하며, 집중된 투쟁으로 전개되는 철거투쟁에 혼란을 주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를 넘어서는 연대의 구성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힘들고 장기적인 투쟁에서 소수의 철거민 회원만이 남아 지역 싸움을 해야 하는 현실을 돌파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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