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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토론회 0628] 재개발/재건축에 대응하는 정치적․정책적 과제 토론문

 

<막개발의 종말을 묻다> - 재개발/재건축에 대응하는 정치적․정책적 과제 토론문

 

미류_인권운동사랑방 

 

#1.

두리반이 오랜 투쟁으로 열어놓은 장, 그 시간만큼 이야기거리가 넘쳐나지만 이 글은 그 중 ‘상가세입자’에 대한 이야기에 한정한다. 주어진 주제가 재개발/재건축(?)에 대응하는 정치적/정책적 과제이기도 하거니와, 두리반 투쟁이 그동안의 철거민 투쟁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면 거기에서 상가세입자의 권리를 빠뜨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두리반의 승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할 텐데, 이 글은 두리반이 만들어낸 ‘사건’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는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자리의 몫이 아닌 듯도 하고, ‘제도’ 또는 ‘정책’은 이 ‘사건’을 정치화하는 또 다른 투쟁들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을 헤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2.

2000년대 이후로 철거민 투쟁의 대부분은 상가세입자들이 주도해왔다. 한편으로는, 주거지보다 상가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 사업이 많아졌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가세입자에 대한 보상 및 이주대책이 상가세입자들이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용산4구역과 현재 명동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환경정비사업’은 그 목적 자체가 “상업지역․공업지역 등으로서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도심 또는 부도심 등 도시기능의 회복이나 상권 활성화 등이 필요한 지역에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다. 상가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및 이주대책은 토지보상법(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영업손실보상(휴업의 경우 4개월 분의 영업손실보상)이 전부다. 한편, ‘공익사업’으로 분류되는 개발 사업이 아니더라도 토지 및 건물주가 재건축을 하거나 주택재건축사업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보상 및 이주대책이 전혀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다양한 지역에서 상가세입자들이 싸워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가세입자의 권리를 둘러싼 투쟁이 많아질 것이다.

 


표 1 주택재개발사업 현황(국토해양부, 2010 주택업무편람)과 도시환경정비사업 현황(서울시 도시계획포털, 2010.12.31.기준)

 

 

주택재개발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괄호는 도심부)

구역수

시행면적(㎡)

지구수

면적(ha)

전국

1,082

67,997,173

647

*1ha=10,000

완료

406

17,197,056

 

 

시행중

197

12,424,139

 

 

미시행

479

38,375,978

 

 

서울

604

32,298,389

473(297)

265(164)

완료

340

14,868,065

200(138)

104(75)

시행중

99

5,539,954

45(27)

41(18)

미시행

165

11,890,370

228(132)

120(71)

 

 


표 2 서울시 연도별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 현황(2010.12.31.)

 

사업계획결정

구역 수

지구 수

완료

시행 중

미시행

면적(㎡)

1970~1979

7

53

33

4

16

249,527

1980~1989

10

145

85

16

44

610,294

1990~1999

12

156

51

15

90

767,143

2000~2009

22

113

27

10

76

899,792

 

 

 

#3.

 

두리반의 경우는 ‘공익사업’으로 분류되는 개발 사업이 아니라 시행자가 토지 소유주인 민간개발이었다. ‘공익사업’의 경우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수용권 등 공공의 권한이 시행자에게 부여되는 만큼 보상 및 이주대책에 대한 공공의 기준이 마련되어 있으나, 민간개발은 주거세입자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책이 없다. 현재의 제도는 이러한 상황을 철저하게 사적인 계약의 문제로 보아 아무런 개입을 안 하고 있으며, 그래서 사실상 재산권자인 소유주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물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영업을 위해 임대하는 건물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5년 동안 인정되는 임대차계약 갱신 요구권과 차임 인상 제한 정도가 보호의 내용이다.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요구함으로써 계약갱신의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같은 법에서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를 두고 있는데 여기에 건물의 철거나 재건축이 포함되어 있다. 즉 건물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권리도 보호받을 수 없다. 갱신 거절의 사유는 크게 임차인에 의한 사유(임대료 연체, 부정, 파손 등)와 임대인에 의한 사유(철거, 재건축 등)가 있는데, 그 외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에도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임대인이 철거나 재건축을 하고 싶을 때는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 그 외 별다른 사유가 없다면 합의하여 상당한 보상을 제공하도록 한다?

 

이것은 아마도 임대인이 소유한 건물과 토지는 임대인의 재산으로서 임대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에 따른 것일 듯하다. 그러나 임대인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은 ‘건물’과 ‘토지’일 뿐이다. 임차인의 삶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샤일록에게 ‘1파운드의 살점을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을 떠올리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건물과 토지는 가져가되 삶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아, 하지만 나는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4.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개발로 인한 퇴거와 이주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들>은 강제퇴거를 이렇게 정의한다. “개인, 집단 및 공동체를 그들이 점유 또는 의존해 살아가던 집, 땅, 공동자산으로부터 강제 또는 비자발적으로 이주시킴으로써 그들이 적절한 형태의 법적 보호 및 기타의 보호를 제공받지 못하고, 특정 거주지나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기거나 제한받는 것.

 

삶터나 일터를 어떤 이유로든 잃게 될 때 재정착의 원칙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상황이 엄격하게 제한된 범위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중요한데, 이 글에서는 건너뛴다. 재정착의 원칙은 보상 및 이주대책의 내용과는 구분된다. 사회가 보장해야 할 권리 혹은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철거민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가 보장받아야 할 것과 그 수단이 혼동되면서 수단(가이주단지 등)이 목적으로 간주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철거민들을 더욱 힘겨운 상황으로 몰아넣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토론해 가는 과정이 소중하다.

 

강제퇴거금지법은 재정착을 “개발사업의 시행 중 및 개발사업의 완료 후에 개발사업 시행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거나 일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개발사업에 한정할 것인지, 또는 개발사업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지만, 살던 만큼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이미 세계인권선언은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음을 알렸고, 사회권규약은 제11조 1항을 통해, “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생활조건을 후퇴시키는 정책이나 제도나 법이 있다면 그것은 당사국이 인권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살던 만큼”이라는 것은 결국 정책이나 제도로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주거의 경우 주거권의 여러 요소들을 따져봐야 한다. 면적, 설비 등의 주거환경, 필수서비스에 대한 접근, 직장이나 학교 등으로부터의 거리, 주거비 부담, 점유의 보장 등이 그것이다. 또한 최저주거기준 이하의 주택에서 거주했더라도, 주거권의 보장을 위해 최저주거기준 이상의 주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현행 토지보상법의 영업손실보상 규정에서도, 폐업보상의 경우 제조업 보통 인부 노임 단가 기준, 휴업보상의 경우 도시근로자 월평균 가계지출비 기준이 있다.) 그런데 상가의 경우는 보장되어야 할 권리의 내용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다. 즉, 임대인이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재산이나 보상이나 대책이나 등등을 떠나서, 자신의 ‘삶’이 일방적으로 결정당하는 현재의 절차/구조를 바꿔야 한다. 결국 ‘삶’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의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끼어들 권리’로 삶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5.

 

용산참사 이후 상가세입자 대책 개선에 대한 논의는 모두 권리금을 다루고 있다. 권리금은 임대차보증금이나 임대료와 달리 법에 근거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주고받는 (큰) 돈인데, 대법원은 “거기의 영업시설․비품 등 유형물이나 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또는 점포 위치에 따른 영업상의 이점 등 무형의 재산적 가치의 양도 또는 일정 기간 동안의 이용대가”(대법원 2001.4.10. 선고 2000다59050 판결)로 보고 있다. 물론 권리금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평가하는데, 서울특별시(2007)의 조사에 따르면, 상가 등의 위치에 따른 장소(지역)적 이익의 대가>복합적 이익의 대가>상가의 시설이나 설비의 대가>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등 영업상 이익 등에 대한 대가>대리점 운영권, 주류 판매 등의 허가권에 대한 대가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권리금을 김재완(재개발사업에서 퇴거요건으로서의 상가임차인에 대한 권리금을 포함한 영업 손실보상, 2011)은 유형적 권리금(유형물로서 내부 인테리어 등을 포함하는 시설에 대한 권리금), 무형적 권리금(거래처, 신용, 영업상의 노하우, 장소적 이익의 대가 등), 투기적 권리금(신개발지, 신축상가 등에서 형성되는 바닥권리금)으로 구분해서 보고 있다. 그리고 유무형의 권리금을 제도화하여 재산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차원에서 보상하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다른 연구의 경우 대체로 권리금의 성격상 권리금 자체를 인정하여 보상의 대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는 듯하나, 김재완이 유무형의 권리금이라고 분류한 내용에 대해 적절한 보상(생활권 보상이든 재산 보상이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개선안들이 거의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즉, 휴업 기간의 영업손실 보상뿐만 아니라 새롭게 영업을 시작하는 데에 드는 비용 또는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건물을 구하고 입주하는 과정에서 드는 각종 비용, 단골고객과의 거래를 상실하여 발생했다고 예측되는 매출감소액이 종전 매출액과 비슷해질 때까지의 차액 등이 그것이다. 현재의 영업손실보상은 그 산출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사실상 이런 개선안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산출내역을 목록화하는 것부터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권리금을 중심으로 상가세입자 대책을 얘기하는 것은 위험한데, 그것은 돈이 삶을 보장할 수단은 될 수 있지만, 보장해야 할 목적 그 자체라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정주희․김호철(영업기간별 상가세입자의 특성과 보상 및 이주대책에 관한 연구: 상가세입자의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2011)은 북아현1-3 주택재개발사업구역의 상가세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를 보면, 장기세입자(15년 이상)일수록 고령의 저소득․저학력 계층이고 소형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단기/중기 세입자들보다 적은 권리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장기세입자가 더 적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울특별시(2007)의 조사에 따르면, 상가세입자들의 보상 희망사항은, 권리금․영업손실보상>이사비용 제공>개발 이후 재입주 권리 부여>개발기간 임시상업시설 마련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주희․김호철의 연구에서는, 거래처나 단골고객 상실로 인한 손실보상>상권 혹은 장소적 이익에 대한 보상>창업비 보상>기존 권리금에 대한 보상 등으로 나타난다. 필요한 대책에 대해서는, 재정착 상인의 임대료 할인 또는 지원>임시영업시설>잔여 상가의 우선 분양권뿐만 아니라 우선 임차권 부여>순환개발방식 등으로 나타났다. 즉, 어떤 질문을 던지냐에 따라서 대답은 달라진다. 결국 상가세입자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계속 남는다.

 

 

#6.

 

한편, ‘삶’을 보장해야 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도 쟁점이다. 개발 이익을 거의 독식하는 시행자의 책임도 있을 것이지만, 정부와 지자체에게도 책임이 있다. 영업을 다시 시작할 때까지의 손실 보상과 이전 수준으로 영업을 재개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나 에너지 등에 대한 보상은 성격이 다르기도 하다. 싸움은 누구를 향해야 하나. 임차인이 개발 사업이나 임대차계약의 갱신 거절로 손해를 입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모두 임대인의 책임일까. 영업을 계속해 다음 임차인에게서 권리금을 회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대해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7.

 

강제퇴거에 맞서는 싸움은 대부분 ‘재산권’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법으로 보장되는 ‘재산권’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재산권’이라는 허상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강제퇴거에 맞서는 쪽에서도 ‘재산권’에 기대게 되거나, ‘재산권’이라는 관념에 근거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동네 얘기를 잠깐 하자면, 현재 중림동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집주인이다. 사무실에 찾아와서 늘 하는 얘기는 “내 재산 내가 지켜야지.”다. 하지만 개발에 반대하는 이유를 자세히 들어보면, 단순히 재산상의 손해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육십 평생을 살아온 동네인데”, “아파트에 들어가 살다 죽기는 싫다” 등이다. 이런 말들은 달리 권리로 표현되지 못한다. 아무도 그런 것을 권리로 인정해주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주거세입자나 상가세입자들도 대부분 ‘떠날 수 없어서’ 싸우지만, 싸움의 시작은 ‘손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가의 경우 그 성격이 강하고 경계가 불분명하다. 주택임대차보호와 상가임대차보호를 비교하면, 상가임대차보호가 보호하는 것은 훨씬 더 개인적인 수익이다. 물론 누구도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 다만, 강제퇴거에 맞서는 싸움이 재산 대 재산의 싸움이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그래서 두리반이 열어놓은 자리에서 ‘삶’이 번져 나가는 정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권리를 서로에게 요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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