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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날개가 있어!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 10점
스티븐 컨 지음, 박성관 옮김/휴머니스트

 

 

280p~

 

자전거는 도보에 비해 네 배 정도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그런 빠른 속도로 맞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자전거 얼굴'이 될 지도 모른다는 이런저런 경고도 몇가지 나왔다. 설계상의 문제로 자전거를 타는 데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앞바퀴와 뒷바퀴가 같은 크기로 제작된 1886년 이후에는 대폭 개선되었고 공기주입식 타이어가 나온 1890년에는 훨씬 더 안락하게 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실베스터 벡스터는 자전거로 인해 "젊은이들의 반사신경이 발달되었고 더 기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자전거를 타면 흥분되는 이유가 순전히 이동한다는 점 때문인데, 주변 환경을 지배한다는 감각이 그 쾌락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당시 인기 있던 프랑스의 저술가 폴 아당은 자전거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싶어하던 세대에게 '속도 숭배'를 낳아주었다고 쓴 바 있다.

 

모리스 르블랑의 1898년 작품 <<이것이 날개다>>는 자전거 타기를 그린 소설인데, 그는 이 작품에서 자전거가 인간의 감수성과 사회관계에 끼친 영향에 관해 통찰력있는 평가를 내린다.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드로잉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 허리께까지 끌리는 슈미즈의 단추는 풀어져있고 머리카락은 바람결에 나부끼며 손목에서 풀려난 끈은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다. 여인은 날개 달린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소설에 나오는 두 쌍의 부부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동안 경험하는 성적/사회적/공간적 해방을 암시하고 있다.

 

여행 첫날 파스칼은 친구 기욤에게,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만큼 속도 관념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길 위에서 두 부부는 자신들의 감각이 새로운 영역을 향해 열릴 때 주변 세계에 스며들어가는 독특한 감각을, 요컨대 새로운 운동 리듬을 느낀다. 이들은 프랑스 전원을,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꿈길을 지나고 있는 듯한 새로운 시간감각을 경험한다. 서로를 성 대신 이름으로 부를 때 사회적인 제약 또한 느슨하게 풀어진다. 파스칼의 처가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공공분수에서 목과 어께를 씻을 때 의복으로부터의 해방과 성 해방이 시작된다. 다음 날 두 여성은 코르셋을 벗어버린다. 나중에 그들은 블라우스를 벗어젖히고 젖가슴을 드러낸 채 자전거를 탄다. 두 부부는 배우자도 맞바꾸어 결국 여행이 끝났을 때는 새로운 두 부부가 탄생한다. 결혼이라는 굴레 또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파스칼은 자전거가 다양한 차원의 경험을 새로이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증기와 전기는 인간에게 시중을 들어주었을 뿐이지만 자전거는 양 다리를 빠르게 만들어줌으로써 인간의 신체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것(자전거를 탄 인간)은 인간이 말을 탈 때와 같이 상이한 종류의 두가지가 결합한 것과는 다르다. 또 인간과 기계도 아니다. 더 빠른 한 명의 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속도를 내면서 그는 결국 기욤의 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어."라고 소리친다. 도시 생활의 협소한 틀, 잘 맞지 않는 결혼이 안겨주는 사회의 구속, 코르셋이나 꽉 조이는 의복 등 신체적 제약, 성도덕이라는 정신적 제약 등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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