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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자전거 이야기

자전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만의 자전거를 갖지 못했던 어릴 적의 나. 동네 가정집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내 연습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피아노 선생님 아이의 자전거를 빌려 타며 혼자서 자전거를 익혔다. 남의 자전거임에 개의치 않고 왼쪽 그리고 오른쪽 보조바퀴를 결국 다 떼어버리고 두 바퀴로 쌩-. 그날의 기쁨을 나는 아직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아홉 살 때의 기억. 그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신분을 유지하던 그때까지 가끔씩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기 위해 여의도공원에 갔던 것 같다. 한 시간에 오천원 쯤을 내면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었다. 공원을 빠져 나가 한강을 따라 유유히 달렸다. 달리는 중간중간 시계를 힐끔거리다 반납시간 절반 정도 남았을 때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릴 때의 아쉬움이란. 내 자전거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으면서도 내 자전거였다면 집까지 그 먼 길을 어떻게 타고 가나 싶었다. 내 삶속에서 자전거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산을 오르고 종종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그때도 두 발을 대신할 두 바퀴에 대한 욕구는 일지 않았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러니까 본격적인 임금노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접 돈을 벌면서부터 그동안 갖고 싶었던, 그러나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노동하는 나에 대한 보상심리로 하나 둘 사들였다. 핸드폰과 노트북, 옷과 예쁜 팔찌, 구두.. 그러다 나만의 교통수단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혹시 몰라 운전면허는 따 두었지만 자동차는 구입부터 유지까지 영 부담스럽고 자전거, 그래 자전거. 운동도 되고 이쁘고 재밌고. 하지만 사회초년생 시절, 일에 치여 자전거는 어느덧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런 자전거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우연찮게 한 환경단체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시민단체에서는 ‘일’보단 ‘활동’이란 단어가 맞지만 그 당시 ‘활동’이란 개념이 부족했던 내게 그것은 ‘일’, 그저 보다 ‘착한 일’이었다.) 단순히 주말에, 짬날 때 레저로, 즐길 꺼리로만 여겨졌던 자전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만큼 숲이 덜 파괴되고 공기가 덜 오염되고, 그래서 그만큼 화석연료를 덜 쓰는 만큼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 속도지향적인 차갑고 공격적인 자동차보다 더 생명에 가까운 탈거리. 바퀴를 굴리는 나의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롭고 여유로워질 수 있는, 조금 느리지만 더 따뜻한 두 바퀴, 그것이 자전거. 평화, 평등, 생태, 연대. 자전거는 어느 진보정당의 키워드를 모두 품고 있었다. 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자전거의 가치와 매력.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아 나는 또다시 이런 저런 핑계로 자전거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집과 일터와의 거리가 너무 짧은 것, 집이 산자락에 있어 자전거타기엔 경사도가 심한 것,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지만 눈 내리는 겨울과 장맛비가 길게 내리는 여름, 여름무더위. 이런 기후적인 요인들로 인해 1년 365일 중 자전거를 편히 탈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단체 활동에 서서히 일상이 매몰되어가는 내게 자전거를 타는 건 너무도 피곤한 일이었다.

 

이런 내가 자전거를 정말로 타게 된 건 작년 4월.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백수가 되었다. 집을 나서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여기저기서 봄꽃이 후두둑 피어나던 4월, 좀 더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은, 교통비를 줄이고픈 내게 자전거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친구에게 장기대여해서 타기 시작. 처음에는 집 근처를 돌아다니다 조금씩 멀리 오래 타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지금은 자전거메신저를 하고 있다. 내가 자전거메신저를? 워낙에 일관성 없이 살아온 터라 주위에선 어떤 것을 해도 그런가보다 한다. 자전거메신저라는 일이 워낙 생소하고 체력소모가 많은 일이라 그저 잠깐동안 재미삼아 호기심으로 하다 말겠지 했지만 어느덧 1년. 그사이 자전거는 내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이제 나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탈 것 그 이상이다.
하지만 밥 먹고 자고 눈뜨면 하는 게 자전거 타기라지만 나는 그리 잘 타지 못한다. 자전거에 미쳐서 혹은 능력이 되어 한다기 보단 은근과 끈기, 나름의 게으름과 자유롭고자 하는 본능이 바탕이랄까.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한가로이 타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리 천천히 타더라도 걷기보단 빠르니까. 걸어서 이동하는 것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그저 흘러 스쳐지나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느릿느릿 페달을 밟는다.

 

1년 남짓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골목을 지나쳤고 사람들을 만났다. 길을 가다 돈도 줍고 연필도 줍고 이쁜 단추도 주웠다. 혼자 보기 아까운, 아름다운 풍경들 만큼이나 차에 치여 내장을 다 드러낸 채 바퀴에 깔려 죽은 고양이와 비둘기, 벌레들의 시체를 보아야만 했다. 바로 앞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부딪히는 장면, 사고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도시의 공기는 때론 더없이 상쾌하지만 대체로 매캐했다.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며 코를 씻다 보면 새까만 코딱지가 증명한다. 자전거를 타는 것은 생태와 평화를 위한 것인데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려면 수많은 위험과 공포와 오염에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는 아이러니.

 

도로위의 자전거에게 인권이란, 생명권이란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탔으면 좋겠다. 도보의 범위를 벗어난 어디론가 이동할 때 너무도 당연하게 버스나 지하철 단말기에 카드를 들이대는 그 손으로, 자가용 핸들을 잡는 그 두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꽉 움켜쥐었으면. 이 자동차로 빽빽한 서울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건 분명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와 이웃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감수할만한 즐거운 불편이 아닐까. 바야흐로 자전거 타기 좋은 5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자.‘자전거면 충분하다!’

 

여기까지가 짧고도 긴 나의 자전거 이야기.
이제 당신의 자전거 이야기가 듣고 싶다.

 

2010.4.28.  자전거메신저 라봉

 

(평화인권연대 http://peace.jinbo.net 소식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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