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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망은 우리의 것

셀시 : 

파리, 1995년의 대파업. 당신은 당시 프랑스의 수도에서 살고 있었지요. 에피소드를 좀 떠올려주시겠습니까?

 

네그리 :

그것은 두개의 근본적 이유에서 촉발된 파업이었어요. 첫째, 프랑스 철도 네트워크의 일부를 민영화하려는 시도에 직면해 있었어요. 둘째, 파리교통공사의 직원 연금플랜을 수정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파업은 철도 노동자들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어서 교통 분야의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와 맞아떨어졌지요. 파업은 노동조합주의 논쟁에서 탈조절화(탈조직화, 분산화, 개인화, 탈규제화 같은 포스트포디즘의 현상들과 맞물린 양상으로, 기존 조절 양식의 해체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의 조절 역량이 약화되거나 해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내재적 축적 체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바탕을 이룬다.)와 민영화의 문제를 제기했어요. 프랑스에서 중앙통제식의 파업은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사실인데 말이지요, 그 파업은 연대를 과시하며 준비하는 가운데 파리의 그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시민 전체를 직접 끌어들인 동원이었다는 겁니다.

과거에 공공 서비스 문제 - 특히 교통 서비스 문제 - 를 들고 나오는 파업자들은 정치적 관점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시민이 쉐미노 사람들(프랑스에서 쉐미노는 프랑스 국가철도공사 직원들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1990년대 이래 쉐미노 사람들은 프랑스 노동계급을 능동적으로 조직했던 강성 노조 투쟁의 주역이었다)이나 철도 노동자들과 사안을 조율하는 것은 물론이고 연대를 조직하기 시작한 겁니다. 불편함을 완화하기 위해서였죠. 파리 주위를 달리는 벨트의 모든 구역에서 - 그 때가 10월인가 11월인가 그랬는데 - 파리로 향하던 자동차들이 죄다 멈추더니,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출근자들을 태워주는 겁니다. 자동차들이 서서 사람들을 태우고 파리의 그 교통 혼잡의 거대한 축을 따라서 공장으로 실어 나르는 겁니다. 작업교대와 근무시간은 사람들이 도착한 시간대에 따라 바뀌었지요. 그리고 이런 일들이 서리가 내리는 춥고 어려운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랍지요.

그건 또한 정말 아름다운 시위로, 매주 토요일을 부각시킨 동원이었습니다. 안개등을 켜고 탬버린 소리에 맞춰 행진하며 도착한 쉐미노 주민들이 만들어 낸 등불 행진 때문에 또한 아름다웠어요. 이 모든 것은 공동체와 집단적 관심을 구성하는 메트로폴리탄적 감각에 연결되어, 동원을 근본적이고 확고하게 정의내린 일련의 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철도 노동자나 운수업자들만의 이해가 걸린 경우가 더 이상 아니었어요. 여기서 교통망이 우리의 것이고 침해되어서는 안되며 민영화될 수 없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어요. "모두 함께!"였지요.

대단했습니다. 생드니나 라쿠르뇌브(지금은 경찰에 저항하는 도심 폭동의 중심에 있는)처럼, 파리 주위의 벨트 지역들에서 정류장은 완전히 텅 비어 버렸어요. 그곳에 거대한 버스 정류장들이 있었거든요(파리의 교통체제가 8백만 명을 실어 나른다는 걸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은 멈춰서서 떠들고, 피켓이나 저지선이 없는 대신에 어떤 버스도 나가지 않았어요. 이 사실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곳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안고 있는 조그만 도시들이었고, 진짜 갱들이 때로는 폭력을 쓰면서 구역을 관리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파업 이전에는 계속해서 이들 갱들과 운수업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뒤이어 운전사가 맞았다고 버스 계열의 항의 파업들이 이어지곤 했어요. 모두 함께! 사회적 행위의 지평이 완전히 변한 겁니다. 정말 신비로운 말 아닙니까, 모두 함께!

...... 파리 파업의 경험은 근본적인 것으로 남아있죠. 왜냐하면 파리처럼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 아마도 세계적 차원에 서 있는 유일한 유럽도시이고 집계의 관점에서 보면 런던보다도 더 넓은 - 가 공공 교통수단 없이 약 세 달 동안 (그 자체대로 고집하면서) 버텨 내면서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본다는 것은, 글쎄요, 진짜로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앞에 두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 안토니오 네그리, <<굿바이 미스터 사회주의>>, 그린비 中

 

 

공공 교통서비스가 멈춰섰을 때, 자율적으로 형성된 시민들의 교통 체계.

그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차 문을 낯선 이에게 열어주는 사회적 연대와 환대의 실천.

그에 따라 변화하는 노동시간과 작업현장.

교통망은 우리의 것이라는 단순한 주장.

그 힘.

 

당시 파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네그리의 감동은 충분히 전해진다.

 

물론, '우리의 교통망'이 공공 교통서비스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고...

카쉐어링과 함께 자전거의 물결이 이어졌다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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