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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 자전거면 충분해요

<<작은것이 아름답다>> 2009년 3월호

 

 

<초록자전거> 자전거면 충분해요

- 자전거 퀵서비스를 시작한 지음님

 

글/사진 : 민균

 

 

"자전거로는 늦지 않을까요? 위험할 것 같은데..."

자전거 퀵서비스를 부르면서 으레 하는 걱정들이다. 퀵서비스를 요청하는 이들은 대개 마음 급한 사람들이라 자전거라는 말끝에 물음표를 찍는다. 사고 많은 도심지역이라 배달하는 이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토바이보다 가격이 싸지 않을까 기대하는 이도 있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한 자전거 퀵서비스. 하지만 나라밖 여러 도시에서는 이미 널리 쓰이고 있다. 위험천만 서울 바닥에서 자전거 하나로 도로를 주름잡는 '자전거 메신저' 지음 님을 따라나섰다.

 

오늘 주문은 혜화동사거리에서 서울시립대까지. 약속시간에 맞춰 물건을 받아 자전거 짐받이에 달린 가방에 넣은 뒤 목적지로 출발. 대개 서류나 책 같은 작은 물건이 많지만 부피가 큰 상자도 간혹 있어 주문에 따라 트레일러를 달고 다닐 때도 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차마'로 분류되기 때문에 엄연히 차선 하나를 달릴 권리가 있다. 조금 낯선 풍경이지만 좌회전 신호를 받아 사거리를 지나고, 건널목 앞에서는 속도를 줄였다. 도로 가득 들어찬 자동차와 사거리마다 마주치는 신호등 탓에 실제로 속도 면에서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별 차이가 없었다. 혜화동 사거리를 출발한 지 30여 분 만에 서울시립대에 도착해서 물건을 건네주면서 업무를 완료했다.

 

지음 님이 이렇게 자전거를 이용해 퀵서비스를 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 아직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아 주문이 많지 않지만 기름값이 드는 오토바이와 달리 체력 하나만 있으면 가능하기에 올해 들어 첫 흑자를 달성했단다. 영수증이 필요한 손님을 위해 사업자등록까지 마쳤고, 꾸준히 찾는 단골도 있다. 아직 혼자서 일하지만 관심을 보이고 함께 일하자고 그이를 찾는 사람도 있다. "올해 가장 큰 계획은 함께할 분을 찾는 거예요. 여럿이 일하면 구역을 정해 릴레이식으로 물건을 전해줄 수 있어 훨씬 수월해 질 거라 생각해요."

 

자전거만한 게 없다고 말하는 지음 님은 "자전거면 충분해요. 에너지를 쓰지 않을 뿐더러 매연도 없죠. 자동차는 그저 '빵' 소리밖에 낼 줄 모르지만 자전거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요."라며 자전거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손님에게는 천 원을 깎아주고,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에게는 추가 요금을 붙인다. 월급이 '88만 원' 아래면 천원을 더 할인해 주고, '88만 원'의 세 배가 넘으면 비용을 더 받는다. 조금은 복잡한 요금 체계 같아보이지만 자전거를 통해 그 너머에 있는 관계와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 "앞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어떤 의미를 담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이 모든 질문과 고민을 자전거 안장 위에서 하려고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페달과 바퀴를 돌려가며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자전거로 도로 위를 달리다 보면 다양한 만남을 마주한다. 처음 메신저를 시작할 때 서울 크기를 재볼겸 큰길을 따라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값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도 알게 됐고, 사대문 안에서 7년째 자전거로 퀵서비스를 하는 분도 우연찮게 만날 수 있었다. "다들 자전거가 위험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여럿이 함께 타면 훨씬 안전해요." 도로 한가운데에서 좌우 앞뒤로 자동차가 둘러싸고 있지만 자전거 두 대가 차지한 두 평 남짓한 공간은 무척 넉넉해 보였다.

 

취재를 마치고 장을 보기 위해 경동시장에 들렀을 때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지음 님이 소개해준 것이 있다. 바로 '쌀집자전거'. "자전거 메신저의 원조 격이죠. 자전거포 아저씨께 들은 얘긴데 예전엔 쌀 두 가마 싣고 강화도까지 배달가기도 했대요." 생각해보면 우편과 신문 배달도 예전엔 자전거가 맡아 해왔다. 하지만 속도 경쟁에서 밀려나 요즘엔 자전거 타는 것을 건강이나 재미 정도로만 여긴다. 도로 위에서 당당히 제 길과 제 몫을 찾아나서는 자전거메신저를 보며 '자전거 하나면 충분한' 세상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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