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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수 있는 세계는 줄어들고

배송하러 갔다가 밥 얻어 먹고 눌러 앉은 여성환경연대 사무실에 있던 책을 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발췌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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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걸어다니는 사람이 사라지고 오직 자동차들만 씽씽 달리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에게 걷는 것이 장소를 이동하는 데 - 심지어 긴 여행에 있어서까지도 -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걷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그것은 우리 사회의 특징인 육체의 기술적 무력화에 대한 저항의 한 고의적 형태로까지 발전했다.

 

오늘날의 걷는 사람들은 전과 같지 않다. 원칙적으로 길에는 걷는 사람이 없고 오직 자동차들만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다. 길의 문화는 달라져서 여가로 변했다. 비록 오늘날까지도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거주할 곳이 없는 유랑자들(다시 말해서 가진 것이라곤 몸 하나 뿐인 떠돌이)의 수는 엄청나게 많지만.

 

도시지역이 증가하고 고속도로가 사람 걷는 길을 끊어 놓고 TGV의 철로나 흙길을 정비하여 닦아 놓은 도로가 숲속으로까지도 차의 접근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바람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세계는 날로 좁아진다. 어떤 지역의 관광수입 증가는 흔히 도로 기반시설의 정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런 시설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은 보행자를 고려에 넣지 않는다. 그들이 볼 때 보행자란 특별히 할당해놓은 지역에서만 걷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 이외에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만 생각되는 것이다. 자동차를 숭상하는 문화가 도처에 만연하여 걷는 사람들이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낸다. 산책, 뜻밖의 일, 발견을 위하여 개방된 불확정의 공간들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미국에서 E.애비는 지난날 오직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방문하고 자기 자동차를 세워놓은 곳으로부터 여러 킬로미터씩이나 근원적인 낯설음을 찾아서 걱정없이 걸어다녔던 기막힌 공간들이 구획정리되는 것을 보고 애석한 마음과 개탄을 금치 못한다. 십 년 동안에 아르슈(Arches)의 국가 지정 유물을 찾아오는 방문객 수가 연간 수천에서 수십만 명으로 증가했다. 자동차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로를 만드록 기반시설을 구축한 결과 명상과 침묵의 장소들이 TV, 라디오, 오토바이, 자동차 등의 소음이 진동하는 거대한 캠핑장으로 변해버렸다.

 

관광산업은 희귀하고 소중한 여러 장소들을 소비에 내 맡긴다. 그러나 그 결과 그 장소들은 본래의 아우라가 파괴된 진부한 공간으로 전락한다. ...... 어떤 장소가 자동차로 접근 가능해지고 나면 즉시 차를 탄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려든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접근 가능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세상 어느 곳인들 발과 다리와 가슴이라는 가장 단순한 수단에 의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간들이 증명해보이지 않은 곳이 어디 있던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그들의 자동차에서 끌어내려가지고 땅 위에 발 딛고 서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들이 다시금 스스로 발 딛고 서 있는 대지를 느낄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러면 '저 파이어니어의 후예들은 신체적으로 피곤하다고 불평할 것이다. 그들도 일단 다양하고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사지와 오감을 진정으로 작동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나면 오히려 자신들의 자동차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쉬워 불평하게 될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쳐간 길인데 길의 끝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우리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이 우리를 만들고 해체한다. 여행이 우리를 창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글쓰기의 끝에 이르렀지만 마지막 말은 길을 따라가는 한 단계에 불과하다. 하얗게 남은 백지는 언제나 하나의 문턱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세계의 여러 도시들로, 숲으로, 산으로 사막으로 다시 떠나서 또 다른 이미지들과 감각들을 수집할 것이고, 다른 장소 다른 얼굴들을 발견할 것이며, 글 쓸 거리를 찾고 시선을 새롭게 하며, 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보다는 우리의 두 발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임을, 우리에게 몸이 있는 한 그것을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다비드 르 브로통, <걸을 수 있는 세계는 줄어들고> + <여행의 끝>, <<걷기예찬>>(김화영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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