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1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24
    지율스님, 뜻을 이루세요
    길 위의 신부
  2. 2006/01/24
    거듭 새로운 사람을 살자-원주선언30주년
    길 위의 신부
  3. 2006/01/24
    어부로 초청된 우리
    길 위의 신부
  4. 2006/01/24
    평택, 정부는 강제수용을 할 것인가?
    길 위의 신부
  5. 2006/01/24
    중토위의 결정은 무효다
    길 위의 신부

지율스님, 뜻을 이루세요

지율 스님, 뜻을 이루세요
2005년 1월 17일 화요일 스님 병실을 찾았다.
문정현 신부


나는 45일 단식, 100일 단식중인 지율 스님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까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오며 가며 스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때마다 각별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래서 항상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곤하였다.

나는 100일이라는 숫자가 너무 무서웠다. 스님의 청와대 앞 100일단식에 단식을 중단하라는 권유하지 못했다. 그것이 가혹했던가? 아니다. 내 마음도 찢어지는 듯 아팠다. 깡마른 스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등에 엎혀 엠블란에 실려갈 때에야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

스님은 100일이 훌적 넘는 세 번 째 단식중이시라는 소식에 어찌나 놀랐는지! 듣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엄습하였다. 엠블란스에 실려 일산 동국대 병원에 후송되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아~ 마지막이구나!

지율 스님이 내 머리에 맴돌지만 방문하지 못했다. 무서웠다. 앞서 방문한 미군기지확장저지 팽성대책위 대표들이 스님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나의 안부를 물었다기에 용기를 냈다. 스님의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이 아니고 간병인이 받았다. 전화를 스님께 돌려준다. 스님의 목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가느다란 목소리다. 내일 오전에 방문하겠다고 하니 스님은 힘드니 오지말란다.

아침에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 병원 인근에서 전화를 달라고 간병인이 전화를 주었다. 아마도 스님께서 나를 기다리셨던 것 같다. 간병인의 안내로 스님의 병실에 들어서자 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병상에 누워있는 스님을 끌어 안았지만 부서질듯하여 포옹할 수가 없었다. 옆 자리에 손을 잡고 앉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2004년 부산 유랑길에 지율 스님의 배려로 저녁시간에 도룡뇽 친구들과 만남이 있었다. 스님은 그때 잊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신부님 그 때 제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하세요?”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다네 농부는 바지벗고 씨를 뿌리네” 이 노래를 불렀어요.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바람에 한 바탕 웃었던 이야기다. 스님은 그 노래를 힘 없이 다시 불러주었다.

스님이 쓰신 “초록의 공명” 제목의 책을 가져오라하여 나에게 보여주셨다. 신부님께 보낸 편지도 이 책속에 있어요. “문정현 신부께”라는 제목의 글을 찾아주었다. 깜짝 놀랐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읽고나니 책에 서명해주었다. 펜을 세 번이나 떨어뜨렸다. 글을 쓸 힘도 없었으나 안간 힘을 다 쓴 것이다.

말을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도 스님은 투쟁의 이야기가 아닌 많은 말을 애써 이었다.

“신부님, 독립운동보다 더 힘들지요. 그래도 잘 하고 계시는 거예요.”
“평택에 가고 싶었어도 언론 때문에 가지 못했어요.”
”손끝 발끝이 다 아파요.“
“요즈음 하루 2시간 정도 자는 것 같아요.”
”혼자 돌아누울 수도 없으니 서서이 죽어가고 있나봐요. 머리만 살아있는 것같아요.“
”살아도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해요.“
”저는 지금 애기예요. 젊은 엄마가 저기 계셔요.“
”육신이 병원에 갇혀있어도 마음은 자유로워요.“
”문규현 신부님이 아직도 사제단의 대표이신가요?“
“신부님, 어린 마음에 떼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전투 중에 동지애를 느꼈어요.”

몸은 병원 침상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지만 삼라만상의 모든 것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마도 감옥에 갇혀 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죽을 각오를 하면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스님도 죽음이 두렵겠지만 뜻을 따라 두려움을 감수할 것이다. 스님의 주변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의료기구들이 배치되어 있다. 응급처치를 위한 기구들일 것이다.

손을 잡고 옆에 앉아있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 중 잠들었는지 혼수인지 눈을 즈긋이 감는다. 힘없이 눈을 뜨며 어딜 다녀왔다고 한다. 정신이 흐려졌던 것이다. 정신이 들면 또 이야기를 이었다.

“사람은 몸보다 뜻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입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살고 싶었어요.“

스님의 고백이 나의 귓가에서 지금도 맴돌고 있다. 세 번째 혼수에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스님, 주무세요. 너무 힘드신 것 같아요. 일어나겠습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등을 돌렸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거듭 새로운 사람을 살자-원주선언30주년

원주선언 30주년 기념미사 강론 2006년 1월 23일 오후 4시 원주 원동성당 문정현 신부 70년대를 산 사람 중 작고하신 지학순 주교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원주교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 원동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주 원동성당은 반 군사독재, 반 유신헌법 운동의 산실입니다. 원주교구 교구장 지학순 주교님은 철통같은 박정희 군사독제정권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원주는 76년 원주선언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한 주교님의 힘이 그렇게 막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모든이들이 지학순 주교님을 기대했습니다. 덤으로 한국교회 주교단과 사제단에 대한 기대도 적지않았습니다. 한국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등, 종교와 사회단체를 아우르는 넓은 품이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으로 떠 올랐습니다. 한국교회의의 대표는 물론 주교단입니다. 주교단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특히 윤리, 도덕, 신앙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주교단의 공동체적 판단은 전 교회공동체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그 판단에 따라 교회 멤버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더 강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않으면 각자의 소신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박홍 신부의 발언은 개인적 입장일 뿐입니다. 주교단의 판단이 없어 사회가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에 혼란이 가중됩니다. 주교단의 판단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혼란은 더 커집니다. 주교단이 옳다고 판단한 것을 꼭 천주교 공식기구만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옳은 일이 교회에만 특허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주장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같은 편입니다. 주교단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공유하면서 복음정신에 일치해야 합니다. 일치된 지침도 없이 비공인이라는 이유로 교회 활동가들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이름사용조차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활동가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활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종교단체와도 연대해야 합니다. 공인 비공인을 과도하게 따지다가 성령의 숨결이 죽을 수 있습니다. 정의구현 사제단과 이른 바 비공인 단체에게 무슨 과오가 있습니까? 세상이 다 아는 기념비적 활동을 해 왔을 뿐입니다. 주교단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을 따라 산다는 활동가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군사독제정권이 몰락하고 연이어 민간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꿀따러 간 것이 드러나곤 했습니다. ‘한자리씩 해먹네!’말짱한 정신으로는 말할 수 없는 표현입니다. 남의 마음을 찌르는 송곳이기 때문입니다. 30년 동안 민주화의 전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성은 아닙니다. 앞 길이 창창합니다. 거짓과 포장을 걷어치우고 전진해야 할 오늘입니다. 민통련 20년, 사제단 30년에 이어 원주선언 30년을 마지했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는 아직 먼 발치에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도 가난한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들 가운데 서서 진정한 민주화의 완성을 향하여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가도 끔쩍하지 않는 사회는 곧 지옥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옥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울음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 곳입니다. 30년 동안의 기백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타갑습니다. 지율 스님이 지금 사경을 헤메고 있습니다. 부산 APEC 반대투쟁에 3만명의 노동자 농민이 모였습니다. 쌀 수입 개방 저지투쟁에서 두 농민이 경찰의 방패에 찍혀 희생되었습니다. 천5백명이 무리를 지어 홍콩 WTO까지 원정하여 투쟁하다 거의 전원이 연행되고 급기야 11명이 기소되었습니다. 홍콩의 한 주교님께서 이들을 대변해주셨습니다. 평택쌀이 생산되는 349만평이 미군기지로 확장됩니다. 우리 정부는 땅을 빼앗아 미군에게 공짜로 주고, 시설비를 감당하고, 이사비용까지 대줍니다. 정부는 강제수용을 선포하여 팽성주민을 철거민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은 “단 한 평도 빼앗길 수 없다.”고 만 3년을 외치고 있습니다. 평택 팽성주민들의 절규입니다. 사실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종속이냐 자주냐 중대한 기로에 서있습니다. 7.80년대의 가톨릭 농민회를 기억하십니까? 열사들을 기억하십니까? 89년 사제단의 평양방문을 기억하십니까? 민중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한 오늘 이 기념행사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과시를 위한 행사로 전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과거를 기억하며 반성하여 새로운 마음(회개)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날의 삶을 밑거름삼아 거듭 거듭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오늘같은 행사가 교회의 안과 밖에서 종종 치러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창하게 호화로운 장소에서 행사를 치루기도 합니다. 30년 전에는 그렇게 호화로운 곳에서 잔치하 듯, 보라는 듯 행사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범람하고 있는 판국입니다. 우리의 앞길은 아직도 창창합니다. 과거 일을 들추어 뽐내지맙시다! 순교정신을 말하면서 순교에 임하지 않는 것은 순교자를 팔아먹는 일밖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지하던 정권이라 할지라도 잘못하면 나무라야 합니다. 한 통속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정권을 넘어 엄하게 판단하고 가난하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서 소리쳐야 합니다. 그렇지못한다면 주교단이 말하기 전에 스스로 교회라는 이름을 떼어버려야 합니다. 과거가 오늘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처럼 우리 모두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세상을 더 달라졌을 것이고 앞으로도 진정한 희망을 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주 예수님의 선포입니다. 당국자들은 곧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예수님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십니다. 그물을 던지는 어부를 붙들어(마르 1:16b,마르 1:19b)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십니다.(마르 1:17). "사람 낚는 어부", 이 어부는 영혼만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다. 주님께서는 어부를 시켜 불의한 자들을 낙아 처단하십니다(예레 16:16). 갈고리, 작살로 부당한 부자(아모 4:2)와 힘 있는 자(에제키엘 29:4)들을 작살내십니다. 불림을 받은 이들의 임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질서를 위해 보통의 사람을 초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들 앞에서 처형을 당하시면서 희망을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후예들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부로 초청된 우리

연중2주일 숲정이 강론 원고
2006년 1월 22일
문정현 신부(작은 자매의 집)

백성들의 울음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원흉들이 모인 현장 부산 APEC 반대투쟁에 30,000의 노동자 농민 학생들이 모였다. 쌀 수입 개방을 저지하는 농민들 투쟁에서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이 경찰의 방패에 찍혀 희생되었다. 농산물 수입개방을 반대하기 위하여 1,500명이 무리를 지어 홍콩 WTO까지 원정하여 투쟁하다 거의 전원이 연행되었고 급기야 11명이 기소되었다.
평택시 팽성읍 땅, 평택쌀이 생산되는 비옥한 땅 349만평이 미군기지로 확장된다. 우리 정부는 농민의 땅을 빼앗아 미군에게 공짜로 주고, 천문학적 시설비를 감당하고, 이사비용까지 대준다. 정부는 12월 22일부터 강제수용을 선포하였다. 팽성주민은 철거민 신세가 되었다. 주민들은 밤마다 촛불집회를 가진다. 1월 14일이 바로 촛불집회 500회다. 10,000여명이 모이는 평화대행진를 가졌다. 2월 12일 정월 대보름에 제3차 평화대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들은 “미군기지확장을 위하여 단 한 평도 빼앗길 수 없다.”고 만 3년을 외치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7,80대 노인들이다.
모두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농민들의 절규다. 농민들의 외침은 기존 질서를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 복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요한이 체포된 후 예수님의 선포다. 당국자들은 곧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예수님의 기존 질서에 이렇게 도전하신다. 예수님은 호수를 지나가신다(마르 1:16, 19). 그물을 던지는 어부 시몬과 동생 안드레아를 붙드신다(마르 1:16b).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버와 동생 요한을 붙드신다(마르 1:19b).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신다,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어부들은 그물을 버리고 그 분을 따른다.
"사람 낚는 어부", 영혼 구령이 아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에 대한 야훼의 책망이다. "똑똑히 말해 둔다. 이제 나는 많은 어부들을 들여 보내어 이 백성을 고기처럼 낚게 하겠다" (예레 16:16). 야훼는 어부를 시켜 불의한 자들을 낙아 처단하신다. "너희를 갈고리로 끌어내고 저희 자식들을 작살로 찍어 낼 날이 이르렀다(아모스 4:2)." 갈고리, 작살은 부당한 부자(아모 4:2)와 힘 있는 자(에제키엘 29:4)에 대한 심판의 은유다.
이렇게 예수님은 권세와 특권의 기존 질서를 넘어뜨리고 새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보통의 사람을 당신과 함께 하도록 초대하신다. 실제로 예수님은 죽기에 이르도록 사시고 전 인류에게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남겨주셨다.
미국을 위시한 초 강국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미 제국주의의 패권에 저항은 전세계적이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 가난한 민중들의 저항은 해가 갈 수록 거세지고 있다. 새 질서는 부자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섬겨야 한다. 공장에서 쫒겨난 노동자는 원직복지해야 한다. 장애인들은 남의 도움으로라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 질서요, 평화의 지름길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 보통의 사람도 질서를 깨는 자들을 모조리 낙아 심판하는 어부로 초청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평택, 정부는 강제수용을 할 것인가?

정부는 평택땅을 강제수용할 것인가?


2005년 12월 23일
한겨레 신문기고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문정현 신부(평화바람 평화유랑단 단장)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도두2리 두 마을 주민들은 52년 이후 두 번째 삶의 새 터전을 강제매수로 몽땅 빼앗기고 있다.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주민들은 골 백 번 죽는다 해도 단 한 평도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군기지확장을 온 몸으로 거부한다. 억울한 주민들이 모여 500일 촛불문화제를 가지지만 저들의 통곡소리는 영영 들리지 않는다. 소리없는 외침일 뿐이다. 7.10 제1차 평화대행진 12,000명에 이어 12.11 제2차 평화대행진 7,000명이 소리쳐도 울림은 별로 없었다. 언론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동하지 않고 있다.

팽성주민들은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 국무총리실 이하 국방부를 위시한 정부기관들이 총동원되어 거짓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 평택 시청도, 시의회도, 정치권도 장미빛 환상에 홀려 주민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주민의 편은 없다. 거짓말을 한 다리 건너 듣자면 울화가 터진다. 정부에 대한 극한적 불신은 기필코 충돌로 이어질 것이다. 뻔한 수순이다.

4,700가지의 땅 뺏는 방법 중 어떤 방법으로 이 땅을 빼앗을까? 공격 직전의 독사 대가리를 보는 듯 소름이 끼친다. 7.10평화대행진에 경찰의 진압은 살인적이었다. 많은 부상자들 가운데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은 요행이었을 뿐 죽일 작정인듯한 경찰의 작전을 겪었다. 그 때 단속했던들 지금 농민 두 분이 죽지 않았을 텐데 결국 당하고 말았다. 숙명에 맡길 수 없어 싸우지만 힘겹다. 정부는 12월 22일부터 강제수용의 뜻을 밝혔다. 법원에 공탁하여 주민의 재산을 국방부 명의로 바꾸고 속전속결로 수용할 것은 분명하다. 지금 평택은 방패의 칼날아래 서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이 갈림길에 주민들은 우황청심환을 먹으며 날을 보낸다.

1월 14일 미군기지확장 저지를 위한 팽성대책위의 “촛불문화제 500일”을 맞는다. 2월 12일은 정월 대보름 “제3차 평화대행진”을 가진다. 더 많은 평화의 사도들, 평화지킴이들을 기대할 뿐이다. 이런 계획들이 있지만 어느 날 어느 시에, 어떤 방법으로 강제수용을 강행할지 모르니 언제나 불안하다. 7,000명이 모이든 12,00명이 모이든 행사가 끝나면 집에 돌아갈텐데! 하지만 미군기지의 그늘 저 넘어 자주의 희망을 보는 평화의 사도들이 모여들고 있다. 황새울 들녘으로 모이고 있다. 사방에 텐트를 치고 필사즉생으로 들녘을 지킬 것이다. 다행이 한 언론의 조사에 “강제수용”은 안된다는 평택 주민의 여론이 93%라고 한다. 주민들에게 큰 위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토위의 결정은 무효다

<중토위의 결정은 무효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평택시민 촛불 분화제 연설-

2005년 11월 23일
평택역 광장
문정현 신부

2005년 11월 23일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의 결정으로 팽성읍 대추리 도두2리 주민들은 철거민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중토위가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중토위의 결정으로 목숨과 같은 땅과 재산의 소유주가 바뀝니다. 주민의 소유권이 국방부로 이전됩니다. 이것은 법적 효력을 가집니다. 반헌법적 행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땅을 빼앗아 외국군대, 미군에게 줍니다. 매국적 행위입니다. 거기에다 집까지 지어줍니다. 이사 비용도 대줍니다. 기가 막힙니다. 완전 예속이지요. 자국민을 사지를 몰아넣고 외국군에게 땅을 준다? 백번을 생각해도 명분 없는 일입니다.

주민들은 땅을 빼앗기면서도 소명할 수가 없습니다. 주민들은 중토위가 황새울 들녘이라도 한 번 둘러보고, 60년의 애환을 적은 “들이 운다” 책이라도 단 한 번 읽어보고 결정하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중토위는 준 사법기관이라고 자칭하며 주민의 소명을 완전히 무시해버렸습니다. 무소불위였습니다. 소명하러 온 사람들을 경찰력이 가두었습니다. 중토위 회의장에 가는 통로를 완전히 폐쇄하였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을 낙아채듯 연행했습니다. 국내식당에서 밥먹는 사람을 잡아갔습니다. 이렇게 30여명을 연행했습니다. 밖에서는 주민들이 중토위 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집회를 탄압하였습니다.

WTO, IMF, WORLD BANK, AMNERICAN IMPERIALSIM, GLOBALIZATION라는 것 들, 모두가 같은 형태의 착취구조입니다. 이를 맞서기 위해서도 평택미군기지확장은 꼭 막아야 합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평택시민 촛불 문화제가 바로 이를 막기 위한 행사입니다. 앞으로 12월 11일 12/11 제 2차 평화대행진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오늘촛불문화제는 바로 그 날을 위한 날입니다. 아~ 이어코 막아야 합니다. 12월 11일은 모든 것을 비워놓고 만납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