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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을 허물며

     
     
    2004년 11월9일 이메일 신문 1호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못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속담이야 말로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과 관행이 배어 있는 어찌보면 훌륭한 격언이기도 하고, 세상을 풍자하는 촌철살인의 경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독 이 속담만은 자신의 가난과 고통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느낌을 가진다. 물론 긴 세월동안 위정자들의 행태와 지배적 의식과 제도가 그러한 '숙명'을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이승연 씨. 그녀는 장애1급을 가진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니 또한 장애1급의 장애인이다. 아버지 또한 왼쪽 검지가 절단이 되어 있다. 어머니는 뇌출혈로 쓰러져 뇌경변을 앓고 있다. 이 가족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인 지하단칸방에 살고 있고, 벌써 18개월째 월세가 밀려 있다. 빚도 3000만원을 지고 있다.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병원비로 가뜩이나 가난하던 가정은 더욱 힘들어졌다. 정부가 이 가족에게 주는 생활비는 46만원이다. 여기에 지체장애 1급으로 등록된 어머니와 이승연씨는 장애수당으로 매월 10만원씩 받는다. 이 돈을 합치면 66만원이다. 여기에다 교통비 1만2천원, 경로비 4만5천원,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라서 국가보훈처에서 6만5천원까지 더해진다. 그래도 다 합하면 78만2천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매월 20만원씩의 월세와 빚, 그리고 생활비, 병원비로 써야 한다.

이에 이승연씨는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경제,성,장애여부 등에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을 위반하고 있다는 위헌소송을 지난 2002년 제기했다. 그런데 오랜 동안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관습’과 이를 반영하는 속담을 인정했는지 헌법재판소는 이 위헌소송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것이 상대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국가는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면 되는 것이며, 이미 국가는 최소한의 조치를 ‘재량껏’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장애인이기에 추가지출에 대해 생계급여가 보장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을 지원하는 타 법령에 의해 부담이 경감되므로 단일한 최저생계비 기준은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의 내용은 헌법재판소가 장애인과 빈민 더러 ‘남들처럼 살려고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참여연대가 지난 9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체험하면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하자 정부관계자가 ‘빈민처럼 살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 제34조 제1항에 명시된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헌법 제31조부터 36조에 걸쳐 규정된 노동권·사회복지에 관한 권리·환경권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이른바 사회권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가 아니라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권리로만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다. 단지 헌법상의 명문으로서만 의미를 갖는 ‘권리’인 셈이다. 적게는 500만, 많게는 1200만명이라고 추산되는 현재의 빈민계층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그림의 떡’으로만 여겨지는 셈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인가?

올해는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해이다. 최저생계비 수준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150만에 달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들의 3년 생활과 삶이 달라진다. 최저생계비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최저생계비는 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인간으로서 최소한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첫걸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가는 이러저러한 조건을 붙여서 법적으로 정해진 최저생계비 수준을 제대로 지급하지 도 않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의 최저생계비 수준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위한 첫걸음. 최저생계비 현실화가 꼭 필요하다.

불안정 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강동진






지난 9월 10일 입법예고 되고 11월 중순쯤에 국회 상임위에 상정, 법제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두고 자본과 노동이 한판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대의원대회를 통해 비정규법안 국회 상임위 상정시 총파업을 전개한다는 결의를 모았고 이에 11월 25일부터 전 조합원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하면서 현장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파견허용업무의 자유화, 파견허용기간의 연장, 직접고용 간주규정의 삭제, 기간제 고용의 무제한 확산 따위를 핵심으로 하는 비정규직 확대 법안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사실상 전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면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법적-제도적으로 완성시키려는 음모이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은 공공부문 업무를 핵심-비핵심, 상시-일시, 전문-비전문으로 구분하면서 핵심, 상시, 전문의 업무만을 정규직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는 비정규직 확대 법안과 연계하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가장 최우선으로 비정규직화 하겠다는 의도이다. 또한 이러한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은 자본 멋대로의 업무구분에 따라 ‘정규직-장기계약직-1년계약직-단기계약직-시간제-파견-용역‘처럼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계층 차별화함으로써 노동자들간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위계화된 고용구조 속에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편 철도, 지하철을 포함한 궤도사업장에는 사업장마다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 이미 차량, 기술, 역무에 비정규직 도입이 전반적인 추세가 되고 있고 구조조정의 핵심 방향이 되고 있다. 철도 정비창 외주화, 부산지하철 무인매표, 그리고 고용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서울지하철 ‘흑자경영계획’ 등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 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노무현정권이 전체 노동자계급, 특히 정규직을 겨냥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확대 법안과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에 맞서는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응은 아직 힘있게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말 자신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저지하고 파견법 철폐 투쟁에 나서야 하는 상황임에도 실제 현장 분위기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현장 노동자들을 조직해야할 활동가나 노조간부들조차도 사실 현재 투쟁 국면을 노동자계급 전체의 문제로,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 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당장의 현안문제가 되고 있는 궤도사업장조차도 민주노총 총파업 지침에 따라 파업찬반투표를 가까스로 조직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철도가 05년 공사화에 대비한 하반기 특단협 투쟁 일정을 민주노총 총파업 일정에 온전히 맞추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 궤도사업장들은 7월 궤도투쟁의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현장을 조직해 가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되는, 어쩌면 노동자계급에게는 사활이 걸린 위기상황에서 단사 조건을 따질 여유가 없다, 우선 정규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모든 현장활동가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설사 내부 조건으로 해서 실질적인 파업투쟁을 조직하지 못한다 해도, 조건에 얽매이지 말고 투쟁을 조직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정규직 법안의 의미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기 문제라는 것을 교육, 선전하고 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현장을 조직해 들어가야 한다.

당면 비정규직 투쟁은 결단코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체 노동자들의 문제이고 바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자기 문제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나서서 비정규직 확대 저지투쟁을 사수해내고, 파견철폐, 비정규직 철폐를 기치로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벌여내자.

도시철도 해고자 김남식


    

비정규직 이용석 열사 1주기 추모제

2003년 10월26일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원 이용석씨가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며 분신하였다. 이씨의 분신은 그동안 가려져왔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고, 작년 하반기 비정규직 철폐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이용석 열사 분신 1주기를 추모하며 '열사정신계승 공동실천주간 선포식'이 10월26일 종묘에서 있었다.

정신계승사업회 김태진 집행위원장(공공연맹 부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총파업을 반드시 성사시켜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호소했고, 학습지 노조의 정종태 재능교육 위원장은 격려사에서 "신자유주의 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이용석 열사의 뜻을 기려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이어서 민주노총 이혜선 부위원장, 민주노동당 이병현 노동위원장, 1년째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명동성당농성단' 아누와르 대표, 정오교통 방남철 위원장 등은 "비정규직은 노동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라며 단결된 투쟁만이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했다.
각양각색의 풍선들을 하늘에 날려보내는 것을 끝으로 선포식을 간단하게 마치고, 80여명 남짓의 자전건 선전단이 출발을 기다렸다. 이 날 코스는 이용석 열사가 분신한 종묘공원에서 출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별관, 국회 앞을 거쳐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 까지 거리다. 이 코스는 지난해 이용석 열사 분신과 그의 분신을 지켜본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했던 경로다.

그러나 경찰의 봉쇄로 출발부터 난항을 겪었다. 막을 근거가 없음에도 정치적 문구가 담긴 조끼를 입고 있다는 이유로 경찰은 진행을 불허한 것이다. 30여분간의 실랑이 끝에 3대씩 10분간격으로 선전단은 바리케이트를 뚫고 도로로 나올 수 있었다. 자전거 행렬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다시 집결하여 서대문 사거리를 지나 공덕 교차로를 통과하였다. 행렬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민들과 행렬의 안전을 배려해주는 자동차들에 뒤섞여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에 진입했다. 국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원영만)와 장애인이동권연대(대표 박경석) 사람들과 약식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각각 사립학교법과 장애인이동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들 농성단 대표의 간략한 정치발언이 있었다.

다섯시쯤 되었을까. 이미 해는 기울어지고, 바람도 선선하게 다가왔다. 최종목적지인 이용석 열사가 비정규직으로 있던 영등포 근로복지 공단에 드디어 도착했다. 정리집회에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한상익 부위원장은 "이용석 열사의 뜻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며 "이 자리를 기화로 현장에서의 투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비정규철폐가를 끝으로 이날 자전거 서울 선전전을 마무리했다. 저녁 도시락을 먹고 다시 오후 7시무렵부터는 열사정신계승 문화제가 이어졌다.


부산 노점상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대회

경기불황에 따른 실직과 취업난 등으로 도심 곳곳에 생계형 노점상이 늘어나고 있다.
언론에서 조차 연일 불황으로 대거 생겨난 청년 실업자와 고학력 퇴직자들이 불가피하게 노점상을 선택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과거에는 노점을 찾아보기 힘들던 구석진 장소까지 노점으로 채워지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만 한 달 평균 5,000여개 노점상이 새로 생겨나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한결같이 불경기를 감안하지 않은 무차별 단속만을 강행하고 있다. 기업형 노점 근절을 명분으로 가로정비에 나선 단속반원들은 오히려 생계형 노점을 쓸어버리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나, 서민복지는커녕 오히려 불법 운운하며 구민들의 세금을 들여 단속을 위한 용역발주, 수십만원에 달하는 과태료 벌금 부과, 단속공무원들에 의한 인권침해 등 단속만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한 일이 수영구청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부산 수영구청은 광안리해수욕장 일대 노점상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강행하기 위해 전국에서 최초로 노점상단속만을 전담하는 공무원을 채용하였다.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속 전담 공무원들을 경비업체 근무 경력이 있거나 각종 무술 3단 이상의 유단자들로 구성해 ‘50여명의 노점상들의 생존수단’을 쓸어버려야 할 한낮 ‘쓰레기?로 치부하고 있다.
부산 노점상들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면서 전국노점상연합은 지난 10월21일 부산 광안리에서 대규모 투쟁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투쟁대회에는 서울, 경기, 충청 등 전국 각지에서 동지들이 참여하여 힘있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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