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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운동

"환경문제에 직접 이해를 가진 대중이 자기의 목소리를 자신의 행동으로 외치는 게 아니라, 그런 회원의 회비를 받아먹는(?) 활동가들이 대변하는 운동이 지금의 현실이다"라면서 환경운동의 위기를 언급하는 내용이 한 월간지에 실렸다. 현 시기 환경운동이 '대중운동'이 아니라 '대변인운동'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참 뼈아프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그러나 비단 환경운동 뿐이랴...

 

이전에 노동조합운동을 하는 활동가들로부터, 노동조합이 '자판기'처럼 조합원에게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힘의 결집에 의한 자주적인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조합원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실현시켜 주어야 하는 조직으로서 잘못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자괴감의 표현이었을 게다. 그나마 노동조합으로 뭉칠 수 있고, 그 노동조합이 힘이 있는 것으로 비춰지니깐 그런 인식도 생기는게 아니겠냐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요즘 내가 활동하는 단체 상근활동가 둘이 건강이 안 좋다. 회원들 스스로, 회원의 자발적인 참여하에, 회원의 힘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단체라고 자부했던 적이 있었는데 최근의 활동은 상근활동가에게 많은 부담과 많은 역할을 요구했던 것 같다. 누적된 피로가 몸에 많은 무리를 가했던 게다. 어느덧 상근활동가들이 회원이 해야 할 일과 역할을 대신하고 대변해버리는 활동으로 운동의 방식이 변해버렸다는 반성이 우선 된다.

 

가끔 우리의 운동과 활동이 '기자회견과 성명서 발표'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조섞인 말을 되뇌이곤 한다. 대중집회라 하긴 하지만 거기 참여하는 이는 '대중'이 아니라 '상근활동가'가 대부분이다. 상근활동가가 운동을 대변하고, 그들의 힘에 의해 움직여지는 현재의 운동은 과연 얼마나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현장정치'란 말이 있다. 이 말이 소위 '조합주의'를 합리화시킬 위험성이 있어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핵심적인 의미는 '대중과 함께, 대중 스스로'란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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