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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의 <<페미니즘 자본축적론>> 일곡유인호학술상 수상 소감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 소감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의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에 붙여

 

이은숙

 

2018년 5월25일 오늘,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연 현장에서 저의 책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이 제11회 일곡 유인호 학술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상을 수여하시는 일곡기념사업회와 맑스코뮤날레, 그리고 제가 함께 활동하고 있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글로컬페미니즘학교에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은 마르크스·엥겔스에 의해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체제 대항 해방운동의 지적 전통과 운동적 전통의 소산입니다. 또한 20세기 후반부터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케이트 밀레트에 의해 제기된 사회 혁명론과 해방운동의 하나의 결실입니다. 동시에 이 책은 21세기 여명을 열며 고정갑희가 제기한 ‘가부장체제론’ 및 ‘적녹보라 패러다임’의 해방사상과 혁명운동, 그리고 «성이론»의 산물입니다.

 

저는 숙명여대 정외과와 대학원 경제학과 출신입니다. 1980년 정경계열에 입학하여 불교학생회와 한국상경학회에 들어갔습니다. 그해 광주민중항쟁으로 휴교령이 떨어지던 날 연등을 만들러 갔던 북한산의 노적사에서 새벽에 스님이 틀어놓은 라디오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으며, 그래서 저는 1학년 1학기의 절반이 잘려나간 시대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불교철학과 탐정소설, 그리고 사회과학 서적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1학년 2학기를 맞았을 때 같은 학과의 1년 위 박정진 선배가 데모를 해서 붙잡혀 가던 날, 같은 과 친구 설진숙 최명희와 함께 처음 <청자> 담배를 피우고 노란 위액을 토했습니다.

1980년 가을겨울을 거치던 어느 날 ‘내가 빌려보려는 책들마다 너의 이름이 있더라’ 면서 다른 과의 1년 위 이성옥 선배가 함께 운동해볼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즈음 경제학과 유정숙 선배와 정외과의 최순영 선배들이 제게 ‘제3세계 연구반’ 활동을 제안하여 활동하게 되어, 1981년 1월에 유인호 선생님의 «한국농업문제의 인식»에서 농산물과 공산품의 ‘협상가격차’와 최종식 선생님의 «서양경제사론»에서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의를 접하면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숙명여대 경제학과의 고 박민식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하고, 박현채 선생님의 «민족경제론»을 통해 한국경제의 구조를 생각하게 된 것, 그리고 1983년 4월 데모로 중단된 학교에 1987년 대투쟁의 끝 무렵이던 9월에 복학하여 김장호 선생님의 ‘노동경제학’ 수업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1994년 숙명여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징역에서 나와서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1984년부터 일어를 배워 일본말로 된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발전»(자구발)을 읽으면서, 1989년 «월간 노동자» 기자 생활 중 백산서당에서, 소시지가 순대로 번역되어 있는 «자본론» 영인본을 모조리 복사해서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1990년대 초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를 준비하면서 남구현 선생님과 여럿이 함께 김수행 선생님이 번역한 책으로 읽은 «자본론», 그 이후 한노정연에서의 운동의 결과들이 오늘날의 저와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을 만들어낸 것이기도 합니다.

 

2003년 제가 활동하던 정치조직 <노동자의 힘>에서 조직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6년 여 동안, 저는 엥겔스가 1884년에 ‘인류가 체험한 가장 근본적인 혁명 중의 하나’(엥겔스, «가족의 기원», 62)라고 말했던 가부장제의 성립으로 만들어진 체제의 최후의 산물이 맑스주의 이론과 철학, 노동자계급운동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맑스주의가 서 있는 토대가 가부장제의 성립 그 자체이고, 따라서 맑스주의는 엥겔스가 말한 ‘한 성에 의한 다른 성의 압제’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맑스주의적 해방운동이나 혁명은 이 세상의 절반 이상인 ‘여성’, 인간을 생산/재생산하는 존재인 ‘여성’에 대한 압제 위에서, 반쪽 이하의 노동자운동, 반쪽 이하의 계급운동, 반쪽 이하의 인간해방운동을 해온 함정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한 성에 의한 다른 성의 압제’는 ‘문명 사회의 세포’라고 엥겔스가 말했을 때, 그와 마르크스는, 또는 그 이후 맑스주의자들은 오늘날까지도, ‘문명 사회’가 남성지배/여성억압(M/W) 사회이고, 해방운동과 혁명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계급적 대립은 단혼 하에서 보게 되는 남녀간 적대의 발전과 일치하며, 따라서 최초의 계급적 압박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압제와 일치한다. 단혼은 역사상 일대 진보이기는 하였으나, 동시에 그것은 — 노예제 및 사유재산과 함께 — 현재까지도 그렇지만, 온갖 진보가 동시에 상대적 퇴보이기도 하며, 한 사람의 행복과 발전이 다른 사람의 고난과 억압을 대가로 하여 실현되는 그러한 시대를 열어 놓는다. 단혼은 문명 사회의 세포로서, 지금은 이것을 바탕으로 문명 사회 내부에서 완전히 발전한 대립과 모순의 본질을 연구할 수 있다.”(엥겔스, 73)

 

이러한 혁명적 발견과 역사적 과제는, 1970년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이 «성의 변증법»을 쓰면서 사적유물론을 전환하고 성 혁명과 대안세계를 논함으로써 비로소 페미니즘에 의해 수행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페미니즘 운동과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해방 기획을 가장 근본적으로 실천하는 철학이자 정치로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은, 마르크스와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이 여성의 생산력을 자본축적에서 누락시킴으로써 자본의 축적을 매우 부분적으로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1) 맑스주의적 노동과 생산의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에 의해 과잉결정된 채 과소결정되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는 점, (2) 체제의 억압과 착취가 성에 의한 근본모순의 작동으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는 역사적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매몰되어 함정에 빠져 있다는 점, (3) 맑스주의에 의한 ‘노동자 계급’ 주체에 의한 해방운동은 그 전체 기획이 남성지배/여성종속(M/W)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전망이 없다는 점, (4) 체제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은 이 체제가 가부장체제(성체계+자본-군사-제국주의 체제)이고 노동-생태-여/성 모순의 체제이며 페미니즘-생태주의-맑스주의의 문제설정들이 연결된 해방기획으로의 적녹보라적/지구지역적/혁명적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아울러 제기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인간생산’ 및 ‘인간생산노동’으로 개념화하고 가치화함과 동시에 이를 ‘여성의 생산력’으로 명명하고,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정과 인간생산과정의 연결을 통해 자본의 축적구조를 분석하고자 하였습니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정은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서 마르크스와 룩셈부르크에 의해 일찌감치 그 골격은 그려졌지만, 축적의 원천인 노동착취는 ‘여성’의 생산과 노동을 비가치화한 채 ‘자연’과 함께 ‘주어진 조건’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지금까지 온전히 규명되고 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페미니즘 자본축적론»은 페미니즘의 남성지배/여성종속(M/W) 나아가 남성지배/여성=자연(M/W=N)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자본이 성을 전유하고 있는 전체 과정과 구조를 연구과제로 하고 있으며, 이 작업은 이제 시작된 것이고, 앞으로 ‘가부장체제론’의 일환으로서 지속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일곡기념사업회와 맑스코뮤날레에 감사하며, 이 자리를 빌려 저를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여 주신 모든 분들과 감사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8.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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