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솔/까/말][12] 낙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권

낙태는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권


 


에 바 (간호사)
 


 

 


 

처음 낙태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낙태=생명의 경시라는 우리 사회의 꼬리표도 그렇거니와 낙태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그러했다. 사실 낙태를 깊이 생각해 보기엔 내 주위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 뿐 이었다. 미혼모 친구 라던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사람들이 없었기에 낙태를 그저 먼 얘기로만 받아 들였다. (아니면 내가 주변인들 정보에 너무 무심했거나…)
간호사인 내 직업만 고려하면 낙태를 접할 법도 하건만 나이 어린 친구들의 임신과 출산은 봤어도 합법적으로 나 낙태하겠노라 병원에 온 케이스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선 낙태시술을 행하지 않았다. 나에게 낙태란 그래서인지 몰라도 음지의 영역으로 다가왔던 거 같다.
 


 


 



낙태는 여성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권이다.

기존의 ‘솔까말’ 글들을 읽어 보았는데 나는 활동가나 학술인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용어나 어려운 표현을 써가며 낙태를 지지하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낙태에 대해 솔직히 쓰고자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보았다.
난 아이를 키울 생각도 없고 아이를 낳고 난 후의 상황을 감당할 자신도 없다. 한국사회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정서적인 지지와 사랑, 경제적인 안정감 등 많은 것들을 부담해야 한다. 한데 원치 않은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낳았다면 이런 헌신적인 관계를 장담하기 어렵다. 원치 않은 아이를 낳은 부모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무슨 죄인가. 굳이 여성의 삶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만들 주체성과 자신의 신체 결정권과 삶을 좌우할 선택권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 낙태에 관한 담론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자기 삶을 선택할 권리를 무시하고 있다.


 

현행법에 행복추구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라는 내용은 누구나 알 것이다. 정부는 탁상에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여성에게 출산과 낙태의 주체적이며 적극적인 권리를 부여하여 한 개인으로서의 권리와 행복을 추구할 제반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지 않을까. 정부가 나서서 낙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건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고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월권행위가 아닌가. 게다가 출산 후 복지정책조차 빈약한 상태에서 무조건 낙태를 금지하다니…낙태금지법은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막무가내식 정책이란 느낌이다.


사랑과 안정 속에 보살핌 받을 권리가 있는 아이

나는 어릴 적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 불안한 가정환경과 부모의 이혼 등으로 정서적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가정의 사랑과 정서적 지지가 늘 그리웠다. 원치 않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특히 그런 아이를 임신하면 그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고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남자들이 많다. 그 몫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여성은 이중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 우린 무관심한 대상이나 원치 않은 것들을 감당해야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대상이 인간이라면 잔인해지기 까지 한다. 환영없이 태어난 아이는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여성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면 한다. 이왕이면 축복 속에서 탄생하여 환영받는 삶을 살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여담으로 읽은 낙태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최근에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낙태에 관한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범죄감소요인이 낙태라는 것이다. 미국은 건국초기 낙태를 허용했다가 1828년 뉴욕시가 최초로 낙태를 제한하였다. 60년대 들어서야 일부 주에서 강간과 근친상간, 산모가 위험할 경우에 한해서 낙태를 허용하게 되었다. 70년대 이후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계기가 되어 낙태가 미국전역에서 합법화 되었다.

이 판결 직후에 출생한 아이들이 10대 후반에 다다랐을 때 낙태가 금지됐던 이전시대의 10대들과 비교해 보니 범죄율이 감소했다는 거다. 낙태금지 시대에 원치 않게 태어난 아이들과 낙태 합법화 후에 태어난 아이들의 범죄율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낙태 합법화 판결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여성이 미혼모나 10대 임신부, 가난한 여성 혹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여성이라고 봤을 때 이러한 주장은 나름 의미가 있다. 특히 여성이 원치 않은 아이를 가질 경우는 아직 결혼전이거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거나 경제력이 좋지 않아 자식을 키울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조차 자기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힘들 때, 그 가혹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나 그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이나 살아갈 삶이 고되긴 마찬가지다.

그 어느 누구도 여성과 아이에게 고된 미래를 강요할 수 없다. 여성은 원치 않은 아이의 양육으로 정신적, 신체적인 부담과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그런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 역시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살아가긴 마찬가지다. 국가가 여성의 인권을 우선시하면서 출산과 양육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는 커녕 무조건 낙태금지라는 의무만을 강요한다면, 이는 출산과 낙태에 관련한 불합리한 부담을 여성과 아이라는 개인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다. 이는 인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속박일 뿐이다. 우리 모두 낙태와 낙태금지법에 관해 현실적으로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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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8 11:20 2011/11/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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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뱃속의 아이 생각은 추호도 안하나요?
    낙태가 선택? 살인이 선택이란 말입니까?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성매매나 성폭행도 미화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 가해자 ' 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낙태할 여성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나
    그렇다고 ' 살인 ' 을 선택으로 묘사하는 글쓴이는 절대 이해 못하겠네요.

    • 아이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전 고등학생 때 갑자기 가난해진 집안이였고 적어도 자택은 있어서 거주의 위협까진 느끼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근데도 돈 때문에 친구를 잃고 하더군요. 저보다 더 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은 과연 어떨까 싶습니다.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나름 어떻게든 살아는 가겠죠. 근데 그 삶은 행복하진 않을거 같습니다. 가끔 인터넷이나 티비 속에서 현실을 도피해가면서?
      인간은 이제 생존의 문제로 일생을 살아가지 않아요. '행복'할 권리를 위해 살아가죠. 전 이미 태어났고 이 문제에 다달았을 땐 이미 20여년을 살아버린 사람이 되어 20년동안 들인 내 노력, 내 추억, 내가 들인 노력에 따른 미래를 놓기엔 힘듭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전 아무 미련 없을 것 같아요. 전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날 선택권도 없었던 걸요. 아무도 어떤 누구도 저에게 이 세상에 태어날 선택권을 주지 않았어요. 그냥 넌 이제 태어났으니 대한민국 인간으로 살아라했죠. 그런면에서 보면 내가 태어난다고 행복을 보장해줄 것도 아니고 무조건 태어나라고 강요하는 것도 위선이지 않을까요?
      태어난 아이의 앞날, 행복에 대해선 고민해보셨나요?
      12년댓글이니 아마 생각해보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댓글도 못 보시겠죠. 그래도 남겨보렵니다. 혹시압니까 저처럼 다른 누군가가 또 들어오실지 ㅎㅎ

      ps. 그런데 전 선택권과 안정감관의 상호관계를 검색한건데 여기로 흘러들어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