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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일요일에 일본으로 떠나 7월 8일, 그저께 서울로 돌아왔다.
하루가 3-4일은 되는 듯한 빡빡한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생에 첫 일본행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금새 깨져버렸지만,
동경에서의 발표, 그리고 회담장 근처에서의 회담반대 투쟁들을 조직하는 과정들은
그만큼의 밀도와 강도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열흘간의 일정을 대충 정리하면6월 29일 도쿄에 도착,
7월 1일 G8 반대 포럼에서 대추리 투쟁에 대한 발표,
그리고 7월 2일 훗카이도로 이동해 포럼에 참석,
7월 4일 토배츠 캠프,
7월 5일 삿뽀로 시내에서의 큰 집회,
7월 6일부터 8일까지 소베츠 캠프에서의 회의와 대안마을 구성 등이 될 것이지만
좋은 사람들, 다양한 운동 문화들을 접하고, 혼자 고민하던 몇몇 주제들에 대해
내 나름의 고비들을 넘었다는 생각도 든다.
돌아오자마자 빨래들을 하고, 텐트와 짐들을 정비하고
연구실에 나와 사람들과 세미나도 하고 이야기 봇다리를 풀고 있는데
아직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아, 계속 잠만 쏟아진다.
책도 잘 안 읽히고.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써야 할 것들.
1. 일본에서 테러리스트 되기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미리 출발한 연구원들과 활동가들이 일본 공항에서 억류되거나 추방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헐. 도대체 이진경, 고병권 선생님은 왜 잡힌 것일까.
8시간이 넘도록 공항에 잡혀 심문을 받은 이야기를 듣고,
나와 동행인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서 촛불집회 때 받은 찌라시들을 함께 들고 촛불시위를 하자고 제안하려 했기 때문에,
김포공항에까지 찌라시와 자료들을 들고 갔지만,
세관검사 때 G8관련 문서가 발각되면 저렇게
억류, 혹은 추방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 때문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공항에서 연구실로 다시 자료를 반송시켜버리고.
그리고 일본행. 일본 공항에서는 감시와 검문이 삼엄했다.
너무나 친절하게 얼굴 사진에, 지문까지 받아내는 저들. 배알이 꼴렸지만 어쩌랴.
철저히 관광객 모드로 이 모든 굴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마지막 세관검사를 할 때, 우리들의 짐이 관광객치고는 너무 컸던지라
그 직원이 질문을 던졌다. 산에 가시오? 후지산에?
몇 마디로 대충 때워 넘겼는데, 가방 보여달라고 하더라...
자료들 반송시키길 잘 했다... 결국 무사 통과.
밖에서는 마중나온 친구가 거의 울듯이 반가워했고, 억류될까봐 많이들 걱정했다고 했다.
어쨌든 이렇게 들어가는 일부터가 일이었다.
사방에 경찰들이 군데군데 있고.
그래, 우리 테러리스트다. G8반대하러 우리가 왔삼. 속으로 외치며
어정쩡하게 관광객 행세를 했다. ㅡ,.ㅡ;;
삿뽀로로 갈 때에도 큰 배낭과 텐트 때문에 의심받을까 살짝 조마조마 하였지만
잘 통과.
삿뽀로에서 토배츠 캠프 갈 때, 여경들이 따라붙었다는 것인데
그냥 무시해줌으로써 이 역시 통과.
근데 너무 웃겼던 것은,
캠프장 근처 역에서 내려서 둘러보는데,
개찰구 앞에 흰 수트를 입은 한 사내가 수첩을 들고 뭔가를 적더라는 것이었다.
아니, 저건 명백한 정보과 형사.
너무도 드러나게 뭔가를 적고, 우리 일행을 따라와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약간 어이가 없었다고나 할까, 귀여웠다고나 할까.
일본 사람들은 그런 형사들에게 가서 따지거나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자기네 일들을 하더라는 것도 약간 놀라운 모습.
일본의 시위대도, 그리고 경찰들도
협상범위 이외의 것을 시도하거나 경험해본 적이 너무도 오래되었거나,
그런 적이 없는 듯 보였다.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이 조금 과격한 직접행동을 제안하고
그런 활동을 하려할 때 일본 활동가나 조직가들이 낯설어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들에서
그냥 유추할 뿐이긴 하지만.
가장 큰 집회였던 삿뽀로 시내에서의 시위 때, 찌라시를 높은 빌딩에서 뿌려보고자 했으나
일본 활동가들인 한 할아버지뻘 아저씨께서는
그건 일리걸 하다.. 불법이다. 너무 위험하다, 연행될거다, 걱정된다 했었는데
내가 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재밌을 거다 했지만, 사방에서 말리는 모습들.
물론 준비도 부족하긴 했지만, 상황 자체가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았었다.
이후 법적인 내용을 알고 나서 그들의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일본인의 경우 한 번 연행되면 최대 23일까지 구금이 가능하고,
그 사이에 변호사 외에 접견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48시간 내에, 그것도 하루 3번까지 외부인과의 면회가 가능한 반면
일본에서는 일단 잡히면 23일동안 외부와 완전히 고립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의, 집회 시위의 자유는 엄따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니 이후에도 일본 조직자와 시위자들은 계속 경찰의 허가 유무에 따라 활동을 제한하게 되었고, 다른 나라에서 온 활동가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언쟁을 하기도 했다.
연행의 위험성이 커서가 아니라,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시위 조직자들이 내부검열하는 상황이 되니
일본이 경찰국가라는 말이 실감이 갔다.
한국에서 온 한 미디어 활동가의 말,
“한국의 집시법이 자유롭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일본에는 다시 오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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