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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탄] 많은 백성을 전과자로 만들라! 컴퓨터 서버를 내 맘대로 압수하도록 허하라!

미국은 2004년 한국을 지적재산권 침해와 관련하여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하였다가, 2005년과 2006년에는 감시대상국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한국국민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여 마치 특급 범죄국가 또는 1급 범죄국가 식으로 제멋대로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감시대상국인 한국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지적재산권 집행을 강화하라고 압박을 가해왔고, 당국도 이에 발맞춰 지적재산권법제를 권리자 보호위주로 강화하고, 단속과 처벌업무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럼에도 성이 차지 않는지 미국은 이번 FTA 협상에서 더 강도 높은 지적재산권법 집행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저작권법상 친고죄를 폐지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현행 저작권법상 저작권 침해죄에 대하여 권리자의 형사고소가 있어야만 기소가 가능하다.  저작권 침해죄를 친고죄로 규정해놓은 배경에는 저작권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한 당해 저작물을 가급적 널리 이용하게 하려는 정책적 고려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저작물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공동으로 축적해온 정신적 산물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므로 가급적 일반 대중이 가급적 쉽게 접근하여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저작물 창작의 유인을 제공해주기 위하여 일정 기간 저작권을 인정해줄 필요도 있겠지만, 그러한 저작권자의 권리는 이용자의 권리와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그동안 미국의 처벌강화요구에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탓에 너무 많은 형사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되어 있고, 실제 운용 면에 있어서도 벌금형이 선고되던 관례가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징역형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미국은 위와 같은 친고죄 규정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의 형사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직권으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끊임없이 한국 당국을 압박하여 저작권 침해 단속을 강화하고 기소율을 높이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징역형을 선고받는 형사전과자가 양산될 것이 불 보듯 뻔하고, 미국 초국적 기업들은 별도의 증거수집비용 없이 피소된 한국의 침해자를 상대로 쉽게 민사소송에서 승소하거나 손해배상 협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이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쟁점은 법정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다.  우리나라 법상 저작권자 또는 상표권자는 침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통상손해액 또는 침해자의 이익액을 선택적으로 청구하되 위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이 변론의 전 취지를 참작하여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호주 FTA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확정손해액배상제도와 부가적 손해배상제도를 관철시켰다. 확정손해액배상이란, 미국법상의 법정손해배상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권리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때에 피해자의 손해 또는 침해자의 이익 대신 법정손해배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저작권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손해입증이 어려운 경우 권리자의 손해에 대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부가적 손해배상제도는 저작권 침해가 있는 경우에 실제 손해 외에 법원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손해액을 부가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오로지 권리자가 어떻게 많은 배상을 쉽게 얻을 수 있는가에만 골몰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미 FTA 협상테이블에서 당연히 이러한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적재산권법제는 이미 그동안 충분히 미국의 요구에 응하여 합리적인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놓았으므로, 도가 지나친 법정손해배상제도까지 인정해줄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쟁점은 일방적 구제절차의 도입이다.  일방적 구제절차란 미국법상의 일방적 압수명령(ex parte impoundment order) 제도를 의미하는데 이를 수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미국법상의 일방적 압수명령제도란 법원이 일방 당사자의 주장만을 심리하여 상대방에게는 참여 기회 없이 압수명령을 발부하는 제도로서 저작권 침해자의 침해활동의 증거를 확보하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저작권자가 상대방이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고 침해물이 상대방의 영역에 있다는 선서진술서(affidavit)를 작성하여 보증증서와 함께 법원서기에게 제출하면 법원서기는 상대방에게 이를 통지함이 없이 법관의 허가를 받아 압수명령영장을 발부한다.   이러한 압수명령영장을 바탕으로 집행절차에서 상대방의 주거 등을 수색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권리자에 치우친 법제도일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을 당하는 침해의심자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나라 법제상 저작권 및 상표권 침해관련 가처분의 경우에도 상대방 참여 없이 무변론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대부분 심문기일을 열어 상대방에는 변명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미국식 일방적 구제절차가 도입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압수수색명령이 발령되어 가택과 컴퓨터 서버가 압수수색 당하는 사태가 도처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 구제절차는 한국법 체계에는 이질적인 제도이고 이는 사실상 형사상 압수수색에 해당하여 헌법상의 영장주의 위반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 또한 높다.

 

최승수 (변호사) / sschoi@horizo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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