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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적재산권 협상의 저작권보호기간 20년 연장에 반대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적재산권 협상의 저작권보호기간 20년 연장에 반대합니다.


장영태(대한출판문화협회 기획홍보팀장)

 지난해 한미 양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선언한 후, 협상의 근본 성격과 그것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 추진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를 둘러싸고 사회적 우려와 반대의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이같은 우려와 반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상품의 자유로운 거래를 위한 단순한 무역협정을 넘어, 근본적으로 경제 통합, 사회문화 통합을 일방적 힘의 논리로 강제하는 ‘경제통합협정’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가와 사회에는 자기 나름의 사회 문화적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질서가 무역 자유화란 이름으로 일방적 자본의 논리에 의해 획일적으로 강제될 땐, 이는 한 사회의 경제적 기반은 물론, 문화적 정체성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여러 나라에서 드러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무엇보다도 무역자유화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의해 주요 협상 의제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며 창작(자)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고 법률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이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사회가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회의 문화와 방식에 맞게 결정하고 선택할 문제지, 무역거래의 전제 조건이거나 협상의 대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제적인 저작권 조약인 세계저작권조약(UCC) 및 베른협약이나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지적소유권협정(TRIPs)의 보호규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저작권 모범 국가입니다. 현재의 베른협약이나 세계무역기구의 무역관련지적소유권 협정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통한 창작의 장려와 인류의 공동 재산으로서의 저작물의 공공성이 서로 공존하고 상생하는 틀로 만들어낸 국제적 규약이고 약속입니다.

국제적 규범을 존중하는 각 국가의 지적재산권 보호와 장려 조치는 그 사회의 발달 정도와 문화적 토양에 맞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의 문화적 토양과 사회문화적 제도와 규범을 일방적인 자본의 논리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려는 목적은,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미국 문화자본이, 소수의 문화 상품으로 거둬들이는 막대한 로열티의 회수기간을 연장하려는 속셈입니다.

몇몇 초국적 문화자본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문화정책이 희생될 수는 없습니다. 소수 저작물 이익을 위해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창작자와 문화 수용자 누구에게도 이익을 주지 않으며 한 사회의 문화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출판계는 1995년 국제적 수준의 저작권 소급보호를 위해 연 수백억 원의 로열티 추가부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의도대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한다면 세계의 고전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하고 외국서적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학계 풍토로 볼 때 경제,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단순히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추가적 손실을 가져올 것이 명확관화 합니다.

더구나 그것이 문화에 대한 것이고, 한 사회의 발달에 따른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선택일 때는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강요하는 자가 누구이든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문화적 주권을 지키고 보호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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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정을 지켜도 분쟁에 휘말리게 하는 제도, “비위반 제소”의 위험성

협정을 지켜도 분쟁에 휘말리게 하는 제도, “비위반 제소”의 위험성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오늘부터 한미 FTA 타결을 위한 고위급 회담이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열린다. 협상 타결에 반대하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자 대표적 보수언론인 조중동은 약속이나 한 듯 한미 FTA 체결을 지지하는 사설을 동시에 실었다. 정치인들이 한미 FTA 반대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노무현 대통령과 보기 드문 ‘코러스’를 내는 이들 보수언론은 ‘역사적 기회’인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쇄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일정에 따라 온갖 양보를 다 해 주는 협상 타결이 ‘역사적 기회’를 활용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미국식 FTA에 들어있는 여러 독소조항들을 개방이라는 ‘축복’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통행료 쯤으로 여기는 보수언론과 정부의 태도야말로 정략적이다. 이런 태도가 가능한 이유는 한미 FTA가 부과할 엄청난 통행료를 이들 보수언론이 내 주거나 협상타결에만 목맨 외교 관료, 경제 관료들이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무엇이 논의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했고, 미국 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득을 별로 얻지도 못하는 일반 국민들이 값비싼 통행료 부담을 져야 한다. 한미 FTA가 몰고 올 파국을 책임질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은 진실을 덮기 위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최근에 논란이 불거진 ‘비위반 제소’에 대해서도 정부는 문제를 감추기 위한 홍보를 할 뿐이며, 보수언론들은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냥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위반 제소란 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어도 협정으로부터 기대했던 이익이 무너졌을 때 분쟁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한 마디로, 약속에 따른 조치를 취했어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인데, 상식에 반하는 이런 제도가 어떻게 한미 FTA에 들어가 있으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그 동안 비위반 제소에 대한 협상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던 한국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비위반 제소란 국제통상법 체제에 이미 확립된 제도이고, 그 동안 비위반을 근거로 한 제소 사례는 얼마 되지도 않으며 WTO가 출범한 이후에는 승소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미 WTO에 들어 있는 제도를 미국과 합의하였기 때문에, 한미 FTA에 이를 도입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으로 한국 정부의 태도를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정부의 주장에서 맞는 것이라고는 하나 뿐이다. WTO의 분쟁에서 승소 사례가 얼마 없다는 주장이 그것인데, 이를 뺀 나머지 주장은 사실이 아니거나 문제를 축소하려는 얕은 계산에서 나온 것들이다.

먼저, 비위반 제소가 국제통상법 체제에 이미 확립된 제도라는 정부의 주장은 비위반 제소가 국제사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여 한미 FTA에서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도 인정하듯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가 WTO 규범에서 유예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비위반 제소는 확립된 제도가 아니다. WTO의 주요 협정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 협정에서 비위반 제소의 인정을 유예한지 10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합의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비위반 제소의 핵심을 이루는 ‘기대 이익’, ‘정부의 조치’, ‘이익의 무효화 또는 손상’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모호하고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식 FTA의 비위반 제소는 WTO의 비위반 제소에 들어 있는 개념들을 더 불명확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러한 모호성과 불명확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정확한 예측을 하기 매우 어렵다.

둘째, WTO 분쟁에서 비위반 제소로 승소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를 한미 FTA에 도입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미국식 FTA와 WTO의 차이점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문제를 일부러 감추려는 것에 불과하다.

WTO에 포함되어 있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는 회원국들 사이의 관세를 일정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주목적이고 따라서 주로 관세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관세 인하를 통한 기대 이익은 GATT 규범에서는 다루지 않는 경쟁정책이나 보조금 지급과 같은 다른 합법적인 조치를 통해 쉽게 손상될 수 있다. GATT 입안자들은 이러한 손상된 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위반 제소를 고안했던 것이다. 따라서, 비위반 분쟁 해결을 담당했던 패널들은 제소의 원인이 되는 ‘이익’을 ‘관세양허’로부터 기대되는 시장접근과 관련된 이익으로 좁게 해석하였고, 이와 다르게 이익의 개념을 확대한 패널의 결정은 회원국들의 거부로 채택되지 못하였다. 또한, 비위반 제소가 이런 맥락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에, 분쟁해결 방식은 이익의 손상을 초래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이익의 회복, 즉 배상이다. 그리고, 비위반 제소는 합법적인 조치를 둘러싼 분쟁이기 때문에 제소 국가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때문에 WTO의 비위반 분쟁 사례는 그 수도 많지 않고 승소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미국식 FTA는 이러한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하지 않으며, 분쟁해결 방식도 손상된 이익의 회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무효화 또는 손상 그 자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비록 합법적인 조치라 하더라도 이를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식 FTA는 WTO와 달리 비위반 제소의 절차가 간편하고, 구제수단이 더 강력하며, ‘이익’의 개념도 확대되기 때문에 제소 가능성과 승소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GATT 체제에서 비위반 제소가 도입된 이유가 당시 관세양허 중심의 GATT에서는 규율하지 않았던 각국의 조치로 인해 손상되는 타국의 기대이익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경쟁정책이나 노동, 환경분야까지 규율하는 포괄적인 규범을 둔 미국식 FTA와는 비위반 제소가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무역협정과 달리 시장개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권리자의 시장독점권 부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지적재산권 분야에는 비위반 제소를 인정할 논거가 빈약하다. 그래서 지적재산권 분야에는 비위반 제소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공통된 견해이다. 만약,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 제소를 인정하면, 심각한 공공정책의 훼손을 초래하고 정책주권이 지적재산권자의 시장독점권 아래로 편입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 도중 의약품의 선별등재제도를 골자로 하는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약제비적정화 방안은 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 약값 협상을 하여 약값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제약사가 협상 대상이 된 약에 대해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은 지적재산권 협정으로부터 시장독점가격이라는 이익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데, 이 시장독점가격을 한국 정부가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통해 깎는다면 기대 이익이 무효화되었다거나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비위반 제소를 할 수 있다. 이런 비위반 제소가 인정되면, WTO와 달리 미국식 FTA는 비위반 분쟁의 이유가 된 조치를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하므로, 한국 정부는 특허된 의약품에 대해서는 약값 협상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약제비적정화 방안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미국식 FTA에 따른 비위반 제소가 더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미국식 FTA에는 WTO의 지적재산권 협정과 달리 공공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WTO 지적재산권 협정은 ‘공중보건과 영양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인정하며, ‘사회·경제·기술 발전에 긴요한 분야에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와 ‘지적재산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한 조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식 FTA에는 이러한 공공 영역이나 공공 정책을 고려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나 공익을 증진하려는 조치는 미국식 FTA의 협상 당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므로, 비위반 제소의 근거가 확대되고 승소할 가능성도 더 높은 것이다.

FTA 협정에서 분쟁해결 규정은 양국 사이에 적용되는 일종의 사법제도와 같다. 그런데 한미 FTA 협상에서 이 사법제도에 해당하는 분쟁해결 분과는 관련 정부부처가 공동 분과장을 맡는 다른 분과와는 달리 외교부가 단독 분과장으로 협상을 담당하고 있다. 비위반 제소는 어떤 조치가 협정과 일치하는지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적용 범위가 넓고 그 영향도 막대하다. 그런데도, 8차 협상이 진행될 때까지 외교부는 비위반 제소에 대한 협상 내용을 감추어 왔다. 사법제도에 대한 주무 부처라고 볼 수도 없는 외교부가 협상 타결만을 위한 퍼주기의 하나로 미국이 요구하는 비위반 제소를 수용하기에는 그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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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 강화가 선진화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지적재산권 강화가 선진화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강정명 (정보공유연대 IPLeft)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이 8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개막한다. 이번 협상을 끝으로 대규모 협상단이 참여하는 본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됨에 따라 농산물과 자동차, 의약, 무역구제, 저작권 등 핵심 쟁점의 타결을 위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한다는 것이 양쪽 협상단의 입장이다.

 

의약품과 관련해서는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가 2월'최고경영자 신춘포럼'에서 의약품분야에 대한 미국측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데 이어 외교부 통상교섭본부가 국회 FTA 특위에 보고한 '한미FTA 7차 협상 대응방향'에서도 무역구제와 의약품을 연계하겠다는 소위 빅딜 전략을 공식화한 바 있다.

미국은 저작권을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려달라는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분과장으로 종전보다 고위직인 USTR 지재권 대표보를 참여시킬 방침이다.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진 시점이지만, 이제라도 한미FTA가 가져올 엄청난 영향을 생각하면 다시금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FTA 추진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다수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는, 한미FTA 추진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기구인 한미FTA 민간대책위원회가 홈페이지(www.yesfta.or.kr) 에서 소위 '균형잡힌' 시각으로 소개하고 있는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의 "한미FTA, 저작권 수출 위한 발판", 김명곤 문화관광부장관의 "한미FTA를 문화산업 도약의 계기로", 이대희 인하대 교수의 "저작권과 한미FTA" 등이 있다.

 

각 글의 요지는 대강 이렇다. 지적재산권의 강력한 보호는 대세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당장 불리한 측면만 보지 말고 한미FTA를 통해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체계를 갖추고 이를 문화산업 성장의 발판으로 삼자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선진 한국 건설을 위하여 지적재산권의 강력한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이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것은 한류의 보호이다. 동남아시아에서 지적재산권 보호하라고 큰 소리치려면 우리부터 세계적 수준의 강력한 보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중 산업재산정책본부장이 지난해 9월 국정브리핑에 쓴 '한미FTA 협상에서 지재권을 왜 다루냐고요?"도 비슷한 내용이다. 1995년 WTO/TRIPs 출범 이후 지적재산권을 통상협상의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었느니, 한미FTA에서 지적재산권 이슈가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 기회에 우리 지적재산권 제도를 선진화할 수 있으며, 우리의 지적재산권 침해가 빈발하는 국가들과의 FTA에서 그 선진화된 지적재산권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여 우리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지적재산권을 강화해야만 기술이나 문화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국내 업계의견도 과연 같을까?

 

제 약협회는 6일 8차 협상을 앞두고 외교통상부 김종훈수석본부장과 면담, 의약품을 희생양으로 삼는 빅딜방식을 추진할 경우 국내 제약산업은 고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미국측은 한미FTA협상에서 국내 제약산업을 고사시킴으로써 항구적 이익을 취하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으며 제약산업이 고사될 경우 국민의 약제비 부담은 폭증할 것이며, 정부가 약가통제권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상실하고 건강보험재정 안정에도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도 지난해 한미FTA 협상과 관련, 지적재산권 문제는 국제 조약에서 정한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해당국가의 법 정책에 따라야 할 문제지 무역 거래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 미국문화자본의 로열티 회수 기간 확대를 위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한국의 출판 및 학문 발전을 저해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었다.

 

제 약협회나 대한출판문화협의의 의견을 집단이기주의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특허제도가 기술혁신에 기여하는가에 대한 실증적 연구결과는 나뉘어 있다. 특히 전자분야의 경우에는 특허제도가 기술혁신에 기여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연구가 다수이다. 미국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지나친 지적재산권 보호가 오히려 학술연구에 장애가 된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 판이다.

 

찬성론자들은 지적재산권을 강화해야 ‘선진’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찬성론자의 주장에는 암묵적으로 지적재산권을 강력히 보호하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가 잘 사는 길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그 러나 미국의 예를 보자. 세계무역기구협정에 지적재산권을 포함시키면서 미국 제약업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왔다. 하지만 미국의 국민들은 비싼 약값으로 고통받고 있다. 1990과 2000년 사이에 미국 브랜드 약에 대한 소비는 403억 달러에서 1조 218억 달러로 3배 증가하고, 멕시코로 일반약을 구입하려는 미국 시민들의 특별한 버스 여행이 유행한다고 한다. 1984년과 2001년 사이에 경제 전체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70% 상승률을 보였으나, 정기간행물에 대한 도서관 가입비용은 법률분야는 205%가 상승했고, 의약분야 정기간행물은 479%, 물리화학분야는 615%가 상승했다.

따라서 이미 기술적, 문화적 우위에 있는 기업들이 지적재산권 강화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해도, 그 혜택이 국민 모두의 것으로 돌아가리라고 막연히 전망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찬 성론자들은 또한 우리 지적재산권 제도를 선진화해서 제3국에 이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자고도 주장한다. 정부는 계속해서 한류를 이유로 지적재산권 강화가 이유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저작권 보호기간 사후 70년까지 보호를 주장할 수 있는 한류 상품이 있는가 말이다. 우리 기업 중에서 특허권 보호기간을 2-3년 더 연장해 달라고 요구한 기업이 있는가 말이다. 현재 우리 지적재산권 제도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제3국에서 우리 문화상품의 권리 보호는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우리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런 논리적 연관도 없다.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미키마우스와 같은 미국 캐릭터 산업의 이윤 확대에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저작자 사후 50년도 길다. 그 이상 보호를 주장할 저작물이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과연 저작자 생존기간과 그후 70년간 독점을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것인지는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허권 분야에도 마찬가지이다. 특허보호기간 연장은 미국 제약사를 위한 것이다. 강제실시권 요건을 제한하는 문제도 그렇다. 공공정책상 필요하면 강제실시권을 발동해서 특허권자의 권리도 예외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사실상 봉쇄하는 미국의 요구를 두고 선진화라고 이야기하면 할 말이 없다. 미국이 요구하는 법정손해배상제도 등도 우리 민사법 체계와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의 제도이면 다 선진화인가? 무엇이 선진화인지, 왜 그것이 선진화로 평가될 수 있는지 찬성론자들은 전혀 밝히지 않는 채 근거없는 선동만 늘어놓고 있다.

 

우리 법체계와 어울리지 않는 벌칙제도나 우리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권리기간 연장 등의 미국 요구는 절대 받아드려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요구의 수용을 전제로 하는 한미FTA 협상은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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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우리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우리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습니다.

강아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저희는 약사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입니다. 보통 저희 회원들은 약국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약국에서 약 7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약국에서 일을 하다보면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잊혀지지 않는 환자분이 있어요. 그분은 간암에 걸리신 아주머님이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정도 약을 받으러 약국에 오셨는데, 이분이 드셔야 하는 약에는 비싼 간 보호제가 있었습니다. 하루 세 번 드셔야 하는 약이었는데, 제대로 이 약을 다 드시려면 한 달 약값이 70만원 정도였어요. 그분은 오실 때마다 눈에 보이게 복수가 차오르셨어요. 간에 좋다는 그 간 보호제를 너무 드시고 싶어하셨는데, 돈이 없으셔서 돈 되는 만큼만 사가셔서 아끼고 아껴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매달 몇 백 만원씩 들어가는 백혈병이나 에이즈 치료제들도 있지요. 하지만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70만원이나 200만원이나 1,000만원이나 똑같이 끔찍한 금액입니다. 약을 앞에 두고도 지갑을 만지작거리시다가 결국 체념하시던 그 분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약국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약들을 취급합니다. 조제를 전문으로 하는 약국들은 보통 1,000가지 이상의 약들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약들이 다 종류가 다른 약들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존슨앤존슨이라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성분으로 ‘타이레놀’을 출시했습니다. 이 약품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보통 카피약이라고 알고 계시는 제네릭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존슨앤존슨이 더 이상 시장 내에서 독점적인 판매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타이레놀과 똑같은 약을 경동제약, 동광제약 등에서 만들어 냅니다. 당연히 이런 제네릭 약품들은 오리지널 약보다는 가격이 저렴하지요. 따라서 특허가 만료되면 오리지널 약을 생산해 내던 회사의 이윤은 줄어들게 됩니다.

 약 종류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특허를 1년정도 연장하면 제약회사는 수천억원의 이윤이 추가로 생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기를 쓰고 특허를 연장하려 하는 거지요. 하루, 한달, 일년 정도 특허 연장에 동의를 해주는 것이 실은 별일이 아닌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 하루, 그 한달, 그 일년 동안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배를 불리워 주는 만큼 수많은 환자들은 그 약값 때문에 고통 받으며 죽어갑니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특허를 보장해주어야만 신약을 개발할 것이라는 협박을 합니다. 그러나 2002년도에 미국 FDA 가 승인했던 신약 87개중 70개는 이전에 있었던 약품을 부분적으로 바꾼 'me too drug'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17개중 과거에 있던 약보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나아진 약은 단지 7개에 불과했구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진정 ‘혁신적’이고 필수적인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를 않아요. 오로지 돈이 되는 약품들의 ‘특허연장’을 위해서 엄청난 액수의 돈을 들이붓고 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결핵약이나 말라리야 약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필요한 그런 약품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발하지 않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에서 의약품 분야가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부는 처음에는 빅딜설을 부정하더니 점점 속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의약품 특허기간도 연장해주기로 했다지요. 의약품 특허기간이 1년이 늘어나면 저희는 약 1조 1,600억원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 돈은 암환자들의 본인 부담금과 전국 초·중·고생 입원 본인 부담금을 모두 면제해 주고도 2,600억이라는 돈이 남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의약품 경제성 평가와 약가 협상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독립적 이의신청 기구’도 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미 정부가 발표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내의 약가 협상 과정 중에도 제약회사가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협상 결과를 놓고 다시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것은 약가협상력을 약화시켜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키겠다는 탐욕일 뿐이지요. 이런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횡포에 정부는 같이 춤을 추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겠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제 이모님과 길을 같이 걷는데 현수막이 붙어 있었어요.
‘한미 FTA 체결시 약값 폭등, 의료비 폭등’.
제 이모님이 물으셨습니다.
‘FTA가 되면 정말 그렇게 될까?’.
아마 과장이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정부가 그렇게도 닮고 싶어하는 미국을 보면 저희의 미래가 보이지요. 우리나라처럼 공적의료보험 체제를 갖고 있지 않은 미국에서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람들의 약 50%가 의료비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지금 FTA를 막아내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약도 못 먹는 그런 서러운 현실이 당장 우리 눈앞에도 닥칠 것입니다.
 
나는 건강하니까, 나와는 상관없다고 그렇게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굳이 내가 아프지 않더라도 저희가 사랑하는 사람들, 저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먹어야만 하는 약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뒤돌아서야만 하는 그런 처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모두 나서서 이 FTA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모두 함께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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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윤 가브리엘

저는 에이즈양성판정을 받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벼랑 끝에 서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여있어요. 국내에 있는 에이즈치료제에 내성이 생겨서 각종 기회감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힘들게 투병중입니다. 한국에서는 13가지 에이즈치료제가 판매되고 있고, 대부분 1990년대에 개발된 약입니다. 이 약들에 대해서는 보험적용이 되어서 무상으로 공급받습니다. 이 약들도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리지널 약이라 건강보험과 한국정부에서 지출하는 약값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먹는 1년 치 약값이 1300만원 가량 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 에이즈가 발견된 지 20년이 지나 이 약들에 대해 내성이 생긴 에이즈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판매되는 13가지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없어요. 약이 없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2000년 이후에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 에이즈치료제는 약제성분기준으로 12가지이지만 한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것은 3가지뿐이에요. 이 중에서도 실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은 2가지뿐입니다. 다국적제약회사 로슈(Roche)는 푸제온(Fuzeon)에 대해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요구하면서 판매를 하지 않고 있어요. 연간 2만달러(약 2천만원)를 요구합니다. 미국에서도 푸제온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제가 되었었어요.

제가 지금 살기위해서는 적어도 연간 3000만원이 넘는 돈을 구해야합니다. 한국에는 에이즈 환자수가 적어서 돈벌이가 안 된다고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아주 높은 가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약을 구해야 합니다. 전 세계의 에이즈 감염인이 모두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듯이, 한국에서도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직장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저처럼 몸이 많이 안 좋아진 환자는 어떤 일도 하기 힘들어서 소득이 없습니다. 40년을 살아왔지만 저의 통장 잔고는 100만원이 안됩니다. 1년에 2만달러를 주고 푸제온을 구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치료를 하려면 보통 3가지 약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푸제온 외에도 2가지 신약에 대한 약값을 마련해야해요. 에이즈환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약값만 1년에 3000만원 가량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거예요. 게다가 에이즈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질병이기 때문에 각종 기회감염을 치료하는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저는 현재 면역력이 떨어진 에이즈환자들이 잘 감염되는 거대세포바이러스(CMV)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는데 한달에 200만원이 들어요. 이 약은 보험이 안돼서 희귀의약품센터에서 사서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우리몸속에 누구에게나 있지만, 저처럼 면역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에요. 이 주사약을 끊으면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망막을 침투해 실명할 수 있고, 신경계를 손상시켜서 마비상태가 될 수도 있고, 뇌에 침투하면 뇌사상태에 빠질 수도 있답니다. 이 비용역시 감당할 수 없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신약을 기다리는 사이 저는 오른쪽 시력을 잃었고, 걷기도 힘들게 되었어요. 면역력이 낮다보니 사마귀바이러스도 제 얼굴이며 팔, 다리, 온몸에 사마귀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지요.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신약을 써서 면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지만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약값을 너무 높게 요구해서 신약을 구할 수가 없으니 버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두렵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맞고 있는 거대세포바이러스 주사약값만으로도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상황에서 로슈가 요구하는 비싼 새 에이즈치료제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약이 있어도 약을 먹을 수 없는 문제가 저만의 문제가 아님을 잘 압니다. 저는 2004년부터 친구들과 함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라는 단체에서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어요. 작년 초에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건복지부가 작년 5월에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발표했을 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반대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이미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다국적제약회사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고 싶었어요. 그들은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반대하는 이유가 환자들에게 신약접근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말하는 신약접근권이란 그들이 원하는 터무니없이 높은 약값을 인정해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들은 왜 약값을 비싸게 결정해야하는지, 연구개발비가 얼마인지,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이유도 없이 높은 약값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에이즈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아서, 약값이 너무 비싸서 제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나는 에이즈환자입니다. 로슈는 푸제온을 왜 그렇게 비싸게 팔려는지 대답하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약이 있어도 제가 약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약제비적정화방안때문이 아니라 특허약이라는 이유로 약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 후 미국협상단은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똑같은 이유를 들어 한미FTA 2차 협상을 결렬시키더니 7차 협상까지 오면서 한국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어요. 의약품 특허기간도 연장해주고, 약값을 결정할 때 미국제약회사가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기구도 만들기로 했고, 제약회사가 의료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내주었어요. 이제는 고위급회담에서 무역구제와 의약품, 자동차간에 빅딜을 한답니다. 환자의 생명을 웬디커틀러와 김종훈의 두 사람의 손으로 주고받기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요?

얼마 전 태국에서는 특허 때문에 비싸서 먹지 못하는 약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했어요. 이 방법을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라고 부르는데,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 특허법에서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두 가지 에이즈치료제와 심장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혈전치료제를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특허약보다 1/2~1/10 싸게 공급할거라고 합니다.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할 동안 인도에서 값싼 복제약을 수입해서 사용하기로 했대요. 계속 값비싼 특허약을 사용할 경우 태국정부에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무상공급을 포기해야하고, 약을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에게 공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한국과 태국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태국도 미국과 FTA 협상중이고, 의약품 특허를 확대하고 독점기간을 연장하도록 요구를 받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같은 약이라도 용도, 용량, 색깔과 코팅조차도 특허가 가능하고, 기존 약물의 혼합도 특허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효과를 가진 새로운 물질에만 특허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특허권을 받아서 독점기간을 늘리고 있어요. 미국은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FTA 협상을 하면서 제약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미국처럼 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독점기간이 늘어난 만큼 비싼 약값을 제약회사에게 주어야 하고, 약값을 결정할 때 제약회사 맘에 안 들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걸고, 한국의 의료제도나 정책이 제약회사의 기대에 못 미치면 정부가 소송을 당하고 지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과정들이 기가 막힙니다. 지금도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라는 명목으로 비싼 약값을 요구하고 약이 있어도 못 먹고 죽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얼마나 더 많은 환자들이 제약회사의 돈벌이를 위해서 죽어가야 할까요?

병원에 갈 때마다 치료를 받는다는 생각보다 진료비와 약값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일어서야한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약해지는 마음을 계속 다잡고 있지만 현재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은 저의 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한미FTA를 반대하는 목숨을 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특허권과 비싼 약값 때문에 에이즈 감염인이 하루에 8000명씩 죽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에게 FTA는 생명포기각서와 같아요. 에이즈는 더 이상 죽음의 병이 아닙니다. 치료제를 잘 복용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나라의 사람들이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목숨을 잃는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생명의 가치를 단지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치부해버리는 다국적 제약사한테 따져 묻고 싶어요. 우리 에이즈환자들과 감염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미국이 추진하는 FTA는 저같은 에이즈환자에게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갈 것이고, 이것은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길입니다. 에이즈 뿐만아니라 고혈압, 당뇨, 암처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평생 치료를 해야하고 새로운 약이 필요한데, FTA가 체결되면 신약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보험이 안 되는 부분 때문에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많지만 FTA가 체결되면 머지않아 우리는 지금의 혜택도 못 받게 될 거예요. 한미FTA는 아픈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호소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에이즈환자만의 문제로 여기지마시고, 우리 국민 모두 건강하게 살아야갈 수 있도록 소중한 권리를 위해,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FTA를 반대해야 합니다. 태국처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병들고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배부른 가진자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서둘러 FTA를 체결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3월 8일~12일까지 8차 협상을 서울에서 하고 4월초에는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저는 제 온몸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약회사가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면 환자는 어떻게 되는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인터넷 상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한국정부의 태도에 대해, 한미FTA에 대한 우려스러움에 대해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월에 농민, 빈민, 노동자, 영화인, 방송인, 학생, 의사, 약사들이 8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할 때도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픈 이들에게 사망선고와 같은 한미FTA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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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탄] 한미FTA 지적재산권 협상, 한국에 대한 약탈에 가깝다!

지적재산권(아래 지재권)은 인간의 정신적 창작을 보호하기 위한 만든 제도적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지재권 제도의 목적은 일반 재산권 제도와는 정반대다. 왜냐하면, 지재권은 일반 재산권과 달리 창작물을 사회적으로 널리 이용되도록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창작자에게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나누어 쓰기 위해 독점을 허용한다니 얼마나 모순적인 전제인가? 이러한 모순을 안고서도 지재권 제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보호와 창작물의 이용이 서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지재권 제도는 권리 강화를 위한 한쪽 방향으로만 진행하도록 잠금 장치가 채워져 있고, 개별 국가의 사회, 문화, 산업, 기술적 차이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모두 일률적인 보호 수준을 강제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적 차원의 지재권 강화는 자본의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적 경향에 따른 것으로 기업이 자신의 이해에 적합한 방향으로 정보와 지식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지재권 제도는 개인 창작자를 보호하는 역할보다는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시장을 독점하는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지재권은 건강권이나 생명권과 같은 기본적 인권과 충돌할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에 접근하고 이를 이용할 권리를 차단하고, 개발자의 권리나 농부의 권리와 충돌하며,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를 제약하고 정보인권을 침해한다. 지재권이 이처럼 위험한 제도로 변질된 가장 큰 이유는 지재권을 무역(trade)과 연계하였기 때문이고, 이는 미국을 주연배우로 내세운 다국적 기업들의 작품이었다.

 

과거 미국과의 지재권 협상, 패전국의 굴욕적인 합의와 유사

 

무역보복을 무기로 지재권을 무역과 연계하고 이를 상대국에게 강요하는 미국의 전략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한국이었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1985년 한국의 지재권 침해 사례에 대해 미국 통상법 제301조에 따른 조사를 지시하고 불과 10개월의 짧은 협상 기간을 거쳐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굴욕적인 합의를 한다. 당시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측 실무자조차 ‘방어밖에 없었던 협상’이라고 부르는 협상 결과에 대해 일본의 어느 교수는 “이것이 문명국 우방간의 협정인지 눈을 의심하게 될 지경이다. 이는 마치 전승국이 패전국으로부터 노획물을 독점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하였으며, 미국만을 위한 소급 보호는 한국 경제관료들 사이에서도 ‘항복문서’로 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협상 결과가 나온 이유는 당시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제5공화국 군사정권이 미국에 의한 보복조치는 곧 정치체계의 안정 기반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하고 정치적 잠재력과 인식기반이 약한 지적재산권 개방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기업들은 지재권을 무역과 연계하고 이를 쌍무협정이나 다자간협정에 관철하기 위하여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개입하였다. 수천 개의 출판사, 영화사, 상업 소프트웨어 제조사, 음반사 등을 회원사로 하는 국제지적재산권동맹(IIPA)과 지적재산권위원회(IPC)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이 20 여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국제 지적재산권 제도이고 그 내용은 한국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다.

 

압력에 의한 지재권 법률 제정, 한국은 주권국가인가?

 

이처럼 한국의 지재권 제도는 1908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도입된 이후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하여 미국 제도를 대폭 수용하였으며, 90년대에는 미국 기업이 주도하여 만든 국제조약에 가입한다는 형식으로 지재권을 크게 강화하였다. 한국에서는 창작물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합의를 통해 지재권 제도가 성립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한국 시장 지배를 위해 도입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지재권 제도는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더 강한 지재권 보호에 편중되어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 어느 수준의 지재권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이를 개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미FTA 지재권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앞으로 한국에서 지재권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고, 미국 연방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한국에 시행되는 주권 상실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세계은행, 한국은 지재권에 의한 손해가 가장 큰 국가

 

한국 사회에서 지재권이 이처럼 강화되어 생기는 문제는 통계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은행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조약에 따라 지재권을 완벽하게 보호했을 때 미국은 무려 190억 달러의 흑자를 보지만 한국은 153억 달러의 적자로 중국의 3배에 달하며 세계에서 가장 손해가 큰 국가이다. 미국의 190억 달러 흑자와 한국의 153억 달러 적자만 비교하면 이것은 단순한 교역상의 불균형이 아니라 거의 약탈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지재권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 경제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홍보에만 주력한다. 왜 그럴까? 한국의 지재권 관련 부처는 지재권을 강화했을 때 이득을 보는 이해집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지재권 관련 부처인 특허청을 예로 들어보자. 특허청은 100% 자체수입으로 세출을 충당하는 특별회계로 운영되는데, 2003년 세입 1,813억 원 중 지재권자들이 내는 수수료로 번 수입이 1,684억원으로 92.8%에 달하고, 2004년에는 전체 세입 중 무려 95.4%나 된다. 지재권이 강화되면 수수료 수입이 더 늘어나 특허청은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특허청의 수익 구조로 인해 특허청은 ‘발명(일종의 과학 기술)’을 진흥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시장 독점권)’를 진흥하고 특허출원을 장려하며 특허등록이 쉽게 되도록 하는 정책에 집착하게 된다. 특허청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시장 독점 지배력을 가질 가치가 있는 기술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심사하는 것인데, 특허청의 심사를 거쳐 등록된 권리 중 36%(2002년), 44%(2003년)가 부실 권리이고, 2004년 통계치로는 등록특허가 무효로 되는 비율이 361건 중 175건으로 무려 48%나 된다.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은 형태가 없기 때문에 특허청이 등록해서 공시하는 문서를 통해서만 권리자와 권리 내용을 특정할 수 있다. 일종의 공시제도를 채택한 것인데, 대표적인 공시제도의 하나인 부동산 등기제도와 비교했을 때 만약 부동산등기부에 기재된 권리 중 절반이 잘못된 것이라면 부동산 거래가 가능하겠는가? 등록된 특허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실제로는 특허청이 잘못 심사하여 등록된 부실 권리라는 점은 특허권의 유효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특허 거래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실 권리 보호를 위한 사회적 낭비가 얼마가 될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게 만든다. 이처럼 특허청은 정작 해야 할 본래 업무에는 충실하지 못하면서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 활동에는 아주 성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 세금을 통해 이루어진 연구 성과에 대해서도 특허청은 이를 공공 영역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특허출원을 독려하여 독점권을 설정하고 이를 민간기업에게 이전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미 FTA에서 특허청과 같은 행정부가 나서서 지재권 협상을 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한미FTA 1차 협상이 끝난 직후인 2006년 6월 23일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적재산권을 전담하는 새로운 기구의 창설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첨단기술을 해외에서 보호받도록 하는 것은 미국의 경쟁력 제고에 결정적”이라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올해 초에 발행된 세계무역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한 해에만 미국이 지재권 로열티로 얻은 수입이 513억 달러(약 60조원)에 달한다. 지재권 로열티 수입이란 지재권 이용료를 말하는 것이므로, 지재권 상품 그 자체를 판매하여 얻은 수익까지 합하면, 미국이 지재권으로 얻는 수입은 로열티 수입의 수십배에 달할 것이다.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허덕이는 미국 입장에서 지재권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미국, 전세계 문화콘텐츠 산업 40% 차지, 각 국에 지재권 강화 요구

 

이처럼 미국은 지재권 보호 강화로 엄청난 이득을 보기 때문에, 미국 통상법에 FTA 지재권 협상의 목적을 상대국에게 미국법과 유사한 지재권 보호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05년 12월 미국의회 보고서도 FTA는 지재권 보호 확대로 미국의 이익을 높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하며, 소프트웨어, 음악, 동영상, 의약품 분야에서 지재권 보호 수준을 높이면 미국 산업의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혁신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국내 가격이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미국 상무성은 다른 나라에서 약가 통제를 하지 못하게 하였을 때, 미국 제약사들이 특허권으로 얼마나 더 이익을 볼 수 있는지 조사하여 이를 토대로 남의 나라 약가에 간섭하고 나선다(11개 OECD 국가에서 약가 통제를 하지 않을 경우, 2003년에만 약 30조원의 특허의약품의 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 또한, 문화관광부가 펴낸 “문화산업백서 2005”에 따르면, 전 세계 문화콘텐츠 산업의 40%를 미국이 차지하며 군수산업과 함께 미국 경제를 이끄는 양대 산업으로 문화 산업을 꼽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문화콘텐츠의 세계시장 장악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총력을 다해서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하고 각국에 이를 강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 땅에 지재권 제도가 강제로 시행된 지 80년도 안 되어 미국에게 약탈 수준에 가까운 지재권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서라도 한미FTA 지재권 협상은 중단해야 한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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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탄] 공공영역의 사망 선고, “기업-국가” 소송과 비위반제소

2006년 6월 19일 다국적제약사들이 소공동 조선호텔에 모였다.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추진 방안’에 대한 반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국적제약사들은 의약품 선별보험등재 제도(positive list,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을 미리 정해놓는 정책)가 신약의 개발 의지를 꺾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들의 진정한 의도는 높은 약가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한미FTA가 타결되면 다국적제약사들은 더 이상 호텔에 모여 기자회견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FTA 중재기구에 분쟁을 제기하면 된다.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투자자 대 국가 소송을 인정하는 FTA의 분쟁해결 제도이다. 다국적제약사는 한국에서 신약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적재산권자이고, 지적재산권자는 투자자의 지위를 가지므로 다국적제약사는 투자자로서 한국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다. 즉,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 제약사는 한국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으며, 손해배상과 한국 정부 정책의 철회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투자자의 정부 제소와 함께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비위반제소 문제이다. ‘비위반제소’란 말 그대로 위반 사항이 없어도 제소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FTA는 두 나라 사이의 계약이고 약속이므로 어느 한 당사자가 FTA로 약속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FTA를 위반하면 다른 당사자가 문제를 삼을 수 있다. 그런데 FTA를 위반하지도 않았거나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제소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비위반제소이다. 미국-호주 FTA에서는 지적재산권 분야를 비롯하여 농업 분야, 원산지 규정, 서비스에 대한 국경 무역, 정부 조달, 내국민 대우 및 상품에 대한 시장접근 분야에서 기대 이익의 무효화나 손상을 이유로 한 분쟁을 인정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내에서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비위반제소를 인정할 것인지는 10년도 더 넘게 논의하였으나(실제로는 미국만 인정하자고 주장하였음), 아직까지도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재권에 대해 비위반제소를 인정하면 무분별한 분쟁의 남발로 인한 주권 침해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조약이나 협정 등이 비위반제소와 무관하다는 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일치한다.  WTO 지적재산권협정(아래 트립스 협정) 이사회에서 비위반제소 문제를 논의할 때에도 이것을 트립스 협정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나라는 단 하나 미국뿐이었다.  유럽과 캐나다는 비위반 제소가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신중한 검토를 하기 전에는 이를 도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모든 개도국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위반제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이 비위반제소의 인정을 주장하는 주된 목적은 트립스 협정 제8조에 따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려는 개도국 정부의 조치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일방적인 논리와 다른 국가의 공공정책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미국이 협상력이 약한 나라를 상대로 한 FTA에서 관철한 독소조항인 ‘비위반제소’가 한국에도 상륙하려고 한다.

 

비위반제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소의 원인이 되는 ‘기대되는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의 의미와 범위가 막연하고 불분명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분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다른 나라 정부의 합법적인 조치 예를 들면, 세금 부과, 광고 규제,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 조치 등을 문제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경제, 문화, 환경, 보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나, 저작물의 공정이용을 넓게 인정하거나 특허권의 권리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법원의 판결들이 모두 비위반제소의 대상으로 될 수 있다. 또한, 일방적인 분쟁절차의 개시가 가능하기 때문에, 특허법이나 저작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리 제한 조치들이 억제될 수 있고 다국적 기업의 제소를 피하기 위해 공공 정책이 위축되고 주권이 훼손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가 2001년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를 상대로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의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하였을 때, 다국적 제약사는 한국 정부가 강제실시를 허용한다면 특허권자가 기대했던 이익이 감소하고 이로 인해 WTO 하의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NAFTA의 경우 외국 기업이 상대국의 규제로 피해를 입는다고 여기면 -협정에 의거하지 않아도- 특별 법정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멕시코 정부를 상대로 외국기업들이 지금까지 청구한 배상액만 1백30억 달러(약 13조원)를 넘는다. 반면 외국 기업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국제 법정에 제소하거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혀 있고 환경이나 건강, 안전에 대한 아무리 중요한 규제도 NAFTA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한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이 미국의 지재권자로부터 직접 제소를 당할 수 있는, 그것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비위반 제소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공영역을 고려한 정책을 펼 수 있겠는가? 비위반 제소와 투자자-정부 소송은 공공정책을 무덤으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가 될 것이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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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탄] 많은 백성을 전과자로 만들라! 컴퓨터 서버를 내 맘대로 압수하도록 허하라!

미국은 2004년 한국을 지적재산권 침해와 관련하여 우선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하였다가, 2005년과 2006년에는 감시대상국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한국국민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여 마치 특급 범죄국가 또는 1급 범죄국가 식으로 제멋대로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감시대상국인 한국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지적재산권 집행을 강화하라고 압박을 가해왔고, 당국도 이에 발맞춰 지적재산권법제를 권리자 보호위주로 강화하고, 단속과 처벌업무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럼에도 성이 차지 않는지 미국은 이번 FTA 협상에서 더 강도 높은 지적재산권법 집행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저작권법상 친고죄를 폐지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현행 저작권법상 저작권 침해죄에 대하여 권리자의 형사고소가 있어야만 기소가 가능하다.  저작권 침해죄를 친고죄로 규정해놓은 배경에는 저작권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한 당해 저작물을 가급적 널리 이용하게 하려는 정책적 고려가 깔려 있는 것이다.  저작물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공동으로 축적해온 정신적 산물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므로 가급적 일반 대중이 가급적 쉽게 접근하여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물론 저작물 창작의 유인을 제공해주기 위하여 일정 기간 저작권을 인정해줄 필요도 있겠지만, 그러한 저작권자의 권리는 이용자의 권리와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저작권법은 그동안 미국의 처벌강화요구에 거의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탓에 너무 많은 형사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되어 있고, 실제 운용 면에 있어서도 벌금형이 선고되던 관례가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징역형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미국은 위와 같은 친고죄 규정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의 형사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직권으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놓고, 끊임없이 한국 당국을 압박하여 저작권 침해 단속을 강화하고 기소율을 높이라고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징역형을 선고받는 형사전과자가 양산될 것이 불 보듯 뻔하고, 미국 초국적 기업들은 별도의 증거수집비용 없이 피소된 한국의 침해자를 상대로 쉽게 민사소송에서 승소하거나 손해배상 협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이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쟁점은 법정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다.  우리나라 법상 저작권자 또는 상표권자는 침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통상손해액 또는 침해자의 이익액을 선택적으로 청구하되 위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이 변론의 전 취지를 참작하여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호주 FTA의 내용을 보면, 미국은 확정손해액배상제도와 부가적 손해배상제도를 관철시켰다. 확정손해액배상이란, 미국법상의 법정손해배상제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권리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때에 피해자의 손해 또는 침해자의 이익 대신 법정손해배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저작권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손해입증이 어려운 경우 권리자의 손해에 대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부가적 손해배상제도는 저작권 침해가 있는 경우에 실제 손해 외에 법원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손해액을 부가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오로지 권리자가 어떻게 많은 배상을 쉽게 얻을 수 있는가에만 골몰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미 FTA 협상테이블에서 당연히 이러한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적재산권법제는 이미 그동안 충분히 미국의 요구에 응하여 합리적인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놓았으므로, 도가 지나친 법정손해배상제도까지 인정해줄 필요는 없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쟁점은 일방적 구제절차의 도입이다.  일방적 구제절차란 미국법상의 일방적 압수명령(ex parte impoundment order) 제도를 의미하는데 이를 수용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미국법상의 일방적 압수명령제도란 법원이 일방 당사자의 주장만을 심리하여 상대방에게는 참여 기회 없이 압수명령을 발부하는 제도로서 저작권 침해자의 침해활동의 증거를 확보하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저작권자가 상대방이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고 침해물이 상대방의 영역에 있다는 선서진술서(affidavit)를 작성하여 보증증서와 함께 법원서기에게 제출하면 법원서기는 상대방에게 이를 통지함이 없이 법관의 허가를 받아 압수명령영장을 발부한다.   이러한 압수명령영장을 바탕으로 집행절차에서 상대방의 주거 등을 수색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권리자에 치우친 법제도일 뿐만 아니라 압수수색을 당하는 침해의심자의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나라 법제상 저작권 및 상표권 침해관련 가처분의 경우에도 상대방 참여 없이 무변론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지만 대부분 심문기일을 열어 상대방에는 변명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미국식 일방적 구제절차가 도입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압수수색명령이 발령되어 가택과 컴퓨터 서버가 압수수색 당하는 사태가 도처에서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 구제절차는 한국법 체계에는 이질적인 제도이고 이는 사실상 형사상 압수수색에 해당하여 헌법상의 영장주의 위반의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 또한 높다.

 

최승수 (변호사) / sschoi@horizo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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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탄] 소리와 냄새까지 상표로 인정하라고?

소리나 냄새도 상품을 식별하는 상표가 될 수 있을까? 한미FTA 협상안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미국이 체결한 그동안의 FTA에 비춰볼 때, 한미FTA에서도 소리나 냄새의 상표 보호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상표는 상품을 판매, 제조하는 업체가 마음대로 붙여 사용할 수 있지만, 상표권으로 법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일단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하여 심사를 거쳐 등록되어야 한다. 특허청은 출원된 상표가 상표법에 규정된 상표의 정의에 합치하는가, 다른 등록요건에 합치하는가를 심사한다. 심사를 통과하면, 그 상표는 등록원부에 등재되어 아무나 열람할 수 있게 된다. 현행 상표법에 의하면 상표란 자신의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호, 문자, 도형, 입체적 형상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에 합치되지 아니하는 것은 상표출원등록의 거절사유가 된다. 또한, 상품의 산지, 품질, 원재료, 효능, 용도 등을 통상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한 표장만으로 된 소위 ‘기능적 상표’는 등록될 수 없다. 따라서 현행법상으로는 향수에서 나는 특정한 향기와 같은 기능적 냄새는 물론이고 상품 그 자체의 성질로부터 유래되는 것이 아닌 냄새나 소리를 구성요소로 하는 상표는 상표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

 

WTO 지적재산권협정(트립스 협정)이 상표의 등록요건으로 시각적 인식가능성을 요구하여 소리상표나 냄새상표의 등록을 각 국 재량에 맡겨 놓았고, 1994년 채택된 상표법조약(Trademark Law Treaty)도 소리상표나 냄새상표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우리 상표법의 상표 보호는 국제적인 보호수준에 비추어 손색이 없다. 반면 미국은 상표법으로 냄새상표나 소리상표의 보호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미국특허청 상표심사기준에서는 냄새상표와 소리상표가 등록될 수 있음을 전제로 그 심사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NBC방송사의 3중화음 차임벨소리, 미국 MGM 영화사의 사자울음소리, 펩시콜라사의 병 따는 소리, 자유의 종소리 등이 소리상표로 등록되었고, 자수용실 및 바느질용 실이 지닌 특징적 냄새에 대하여 사용에 의한 식별력을 인정하여 냄새상표 등록을 인정한 바 있다. 미국에서도 냄새가 기능적인 것이라면 등록될 수 없다. 예컨대 향수의 냄새는 상표권으로 보호될 수 없다.

 

냄새상표와 소리상표의 보호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전형적 상표의 경우에도 출처표시기능과 식별기능, 정보전달기능 등 상표로서의 제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인 한, 상표로서 사용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시킬 이유가 없고, 국가정책적인 면에서도 상표제도의 선진화, 국제화 추세에 따라 적극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냄새나 소리로 구성된 상표라도 그것이 상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한, 이를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과연, 냄새나 소리상표가 상표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지적이 많다.
엘리어스(Bettina Elias)에 의하면 냄새상표가 상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1) 소비자가 상품을 구입하기 이전에 상품의 냄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2) 소비자는 이러한 냄새를 상품의 특성으로 연관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냄새상표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한다. 즉 냄새는 실제 상품의 판매 시점에서는 소비자가 상품의 동일성을 식별하는 상표로서 기능하기 어렵다는 점, 냄새가 상품의 특성으로서 기능하는 경우에도 이 냄새가 친근한 향기와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상품의 냄새를 영구적으로 고정하기가 기술적으로 곤란하다는 점, 상품의 냄새에 대한 판단이 매우 주관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냄새상표가 출처표시와 식별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소리상표의 경우에도 소비자가 구입을 결정할 때 상품의 동일성을 식별하게 하는 기능이 부족하다. 예컨대, 소비자가 음반을 구입할 때는 소비자의 구입을 결정하는 요인은 포장정보에 기초하므로, 구입이전에 인식되지 않은 음반에 있는 소리는 상표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한편 소비자들이 음반의 구입에 있어 그 상품의 포장에 의존하지 않고 음반 안에 있는 독특한 소리에 기초한다면 그 독특한 소리는 명백히 기능적인 것이므로, 상표등록될 수 없는 것이다.

 

서면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표심사 및 등록 실무를 고려할 때 과연 냄새나 소리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심사하고 공시할 것인지에 관한 실무적 차원의 문제도 있다. 상표권은 상표를 등록함으로써 발생하므로, 등록원부는 상표권의 권리범위를 확정짓고 이를 공중에게 공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등록되는 내용은 명료하고 간결하며 알기쉬어야 한다.
그렇다면 냄새상표는 어떻게 공시할 것인가? 유럽사법재판소는 냄새를 화학식으로 표시한다면, 화학식은 냄새가 아니라 화합물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며, 냄새를 문자로 설명하는 경우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명료하고 간결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한다. “막 자른 잔디의 냄새”라는 설명만 봐서야 어떤 냄새인지 확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냄새 샘플을 어떤 기관에 기탁하여 공시하는 것은 어떤가. 향기 성분은 휘발성이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내구성이 적어 영구적 공시가 불가능한데다, 기탁한 것만으로 공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설명서의 제출만으로 냄새상표의 등록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실무와는 상반된 결론이다. 유럽사법재판소 판결은 유럽과 우리의 상표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상표를 등록하여 공시하는 기능이 상표권 부여 절차에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공통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실무에서도 그대로 타당한 결론으로 생각된다.
소리상표의 경우 미국에서는 1) 음조 또는 음표, 2) 음악에 동반된 단어들, 3) 단순히 구두로 사용되는 단어들(예컨대 라디오나 TV오락프로그램을 식별하는 용어)을 소리상표로 등록, 보호 한다. 그러나 음표는 음악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만 음악 그 자체가 아니므로, 역시 상표 그 자체가 등록되는 것은 아니므로, 그래픽 표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위와 같이 등록에 있어서 명료한 표현 형식이 없다는 것은 이러한 상표의 침해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 두 개의 냄새와 두 개의 소리 간에 또는 냄새, 소리와 다른 시각적 표장 사이의 침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그 기준도 불분명하다.

 

소리상표의 경우 저작권법과의 관계도 문제된다. 소리상표의 경우 창작성이 있으면 저작권법에 의하여 일정 기간 동안의 보호를 받도록 할 수 있고, 그 보호기간이 중단된 후에도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한 보호가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상표권을 통해 영구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고, 이럴 경우 저작권법상 보호기간을 한정한 취지가 무시될 수 있다.
냄새상표의 경우 특허권과의 관계도 모호하다. 일정한 물질의 특허보호기간이 만료되어 공중이 사용할 수 있게 된 후에도 냄새상표의 보호를 통해 동일한 상품에 유사한 냄새를 가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특허권 보호기간을 영구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냄새와 소리가 선점됨으로써 고갈될 가능성이 높다. 가정용품 등 일정한 상품의 경우 유사한 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러한 냄새를 일정한 상표권자가 선점하게 되는 경우 후발주자는 그러한 향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됨으로써 독점을 강화하는 한편, 유용한 냄새를 고갈시킬 우려가 있다.

 

결국, 냄새상표나 소리상표는 심사, 등록 절차상 여러 가지 문제가 많고 이에 관한 연구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냄새상표나 소리상표의 경우 상품의 식별기능이 검증되어 있지 않아 상표권 보호의 필요성조차 의심스럽다. 나아가 소리상표와 냄새상표를 허용하면, 유용한 냄새, 소리의 독점을 강화하여 불필요한 법적 분쟁의 가능성을 높이고, 심사, 등록상 비용의 증가로 결국 사회적 부담만 안겨줄 여지가 많다. 따라서 냄새상표와 소리상표의 경우 충분한 연구가 전제되지 않고는 도입을 논할 수 없으며, 미국이 이번 FTA에서 요구하더라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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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탄] 의약품의 시장독점 강화하는 데이터 독점권 제도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권과 함께 다국적 제약사가 가장 중요한 지적재산권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신약의 품목허가를 얻기 위해 식약청(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하는 신약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관한 자료를 가리키는데, 오리지널 제약사가 식약청에 제출한 자료를 다른 제약사의 제네릭 의약품 허가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오리지널 제약사에게 독점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년 정책보고서에서는 한국이 트립스 협정(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의 의무에 따른 데이터 독점권을 확실하게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으며, 2006년 정책보고서에서도 한국의 데이터 독점권 제도가 제한적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재계의 주장은 트립스 협정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으로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트립스 협정에는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트립스 협정에는 의약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를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 자료를 불공정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금지할 뿐이다. 한국의 약사법과 영업비밀보호법은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제출된 자료의 공개와 불공정한 이용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TRIPS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여기서 불공정한 이용은 계약을 위반하거나 남을 속여서 자료를 몰래 빼내서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식약청에서 이미 안전하다고 판단한 신약과 동일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 신약의 자료를 근거로 제네릭 의약품을 안전한 것이라고 허가해 주는 것이 불공정한 상업적 이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주장처럼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면, 후발 제약사도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시험을 반복하라는 꼴인데, 미국의 식약청조차도 이것은 비윤리적이고 불필요한 비용낭비라고 할 정도이다.

 

트립스 협정에서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받지 못하자 미국은 무역보복을 무기삼은 양자협상을 통해 다른 나라에 데이터 독점권 제도를 도입하도록 강요해 왔다. 1996년 미국은 데이터 독점권을 문제삼아 호주를 상대로 무역보복을 협박했으며, 1997년에는 아르헨티나, 그 다음 태국과 대만을 상대로 통상압력을 가해왔다. 이처럼 트립스 협정 의무가 부과되지도 않는 데이터 독점권을 미국이 통상압력을 통해 상대국에게 강요하자 국제연합(UN)과 세계보건기구(WHO)는 트립스 협정은 데이터의 ‘보호(protection)’만을 의미할 뿐이며, 데이터 ‘독점(exclusivity)’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 놓았고, 2001년에는 아프리카 그룹,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트립스 협정은 데이터 독점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트립스 이사회에 표명하기도 했다.

 

데이터 독점권 제도는 한국에서 이상한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서 이것을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하다. 신약은 허가를 받더라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정말로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다시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재심사 기간 동안에는 제3자가 동일한 의약품의 허가를 받으려면 신약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와 동등 이상의 자료를 내야만 한다. 신약의 재심사라는 제도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료의 독점권을 인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동등 이상의 자료라는 것도 잘못된 규정이다. 신약에 대한 자료는 공개를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오리지널 제약사가 무슨 자료를 냈는지도 모른 채 동등 이상의 자료를 제네릭 제약사가 어떻게 낼 수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규정은 약사법에는 없고 식약청의 고시에만 들어 있다. 즉, 상위법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훈령에 불과한 식약청 고시에서 데이터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무효로 될 가능성이 많다.

 

데이터 독점권은 결국 특허권과는 별개로 오리지널 제약사가 의약품 시장을 독점하도록 하여 제네릭 제약사의 경쟁을 막고 그 결과 의약품의 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2003년 한국 식약청의 조사에 따르면, 신약에 대한 특허권이 만료되었으나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되는 품목이 모두 100건이 넘는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1998년에서 2004년 2월까지 미국 식약청에서 허가한 137개의 의약품을 조사한 결과, 17%에 달하는 23개 의약품이 이미 특허 보호기간이 만료되었지만 데이터 독점권 보호 기간이 남은 것이었다.

 

또한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의약품의 강제실시(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 본 연재 7탄 참고)를 아무런 쓸모없이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특허의약품을 강제실시하더라도, 이 의약품이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받고 있다면 그 기간 동안에는 강제실시권자는 품목허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특허발명의 강제실시 제도가 데이터 독점권 제도에 의해 쓸모없게 되는 결과가 생긴다.

 

그리고 미국이 주장하는 데이터 독점권은 한국 식약청에 제출된 데이터만 한국에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식약청에 제출된 데이터도 한국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제약사가 미국 식약청에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관한 데이터를 제출하여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은 다음, 이 의약품을 미국 내에서만 판매하고 한국에는 시판하지 않는다고 해 보자. 이 경우에도 미국 식약청에 제출된 데이터를 한국에서 보호해야 하므로, 한국의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반복하지 않는 한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이라 하더라도 한국 식약청으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의약품이 공급도 되지 않고 데이터 독점권으로 인해 국내 제약사가 의약품을 시판하는 것도 금지되는 결과가 된다.

 

데이터 독점권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을 특허권과 별개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면 예외없이 특허를 받는데, 의약품이 안전한지 유효한지 시험하는 것은 의약품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특허를 받기 위한 발명 과정의 하나이다. 안전하지도 않고 유효하지 않은 의약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이 될 수 없으므로 이런 자료를 보호하더라도 특허권과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데이터 독점권은 특허권과 별개로 보호하라고 주장한다. 미국과 호주가 체결한 FTA에도 데이터 독점권의 기간은 특허권이 만료되더라도 단축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결국 데이터 독점권은 불공정한 행위를 제재하거나 정당한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다국적제약사의 시장독점을 보장하는 기능만 하고 있는 것이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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