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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탄] 치료방법 특허인정은 제약자본 배불리기

“P 의사는 새로운 백내장 수술법을 고안해 냈다. 종래에는 백내장에 의해 흐려진 렌즈를 인공렌즈로 갈아 끼울 때 절개한 상처를 봉합해야 했기 때문에 환자가 수술 후에 난시가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P 의사가 고안한 방법대로 눈의 특정 부위를 절개하여 수술하면 봉합할 필요없이 상처가 낫는다. P 의사는 이 수술법을 특허출원했다. 특허청은 이 수술법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했다. S 의사가 P 의사와 같은 방법으로 백내장 수술을 했다. P 의사는 S 의사를 상대로 법원에 특허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P 의사는 S 의사와 S 의사가 일하는 병원을 상대로 동일한 수술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도 신청하였다. 형사처벌을 받게 하려고 S의사를 특허권침해죄로 검찰에 고소도 하였다.
S 의사를 찾은 환자들은 법원의 가처분결정으로 인하여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받으려면 P 의사를 찾아가야 했다. 그러나 P 의사는 높은 수술비용을 요구한다. P 의사로부터 허가를 받아 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하는 Q 의사를 찾았다. Q 의사는 P 의사에게 지불할 높은 로열티 때문에 P 의사와 비슷한 비용을 요구한다.”

 

사람의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가 허용될 경우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러나 위 사례가 허구만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Pallin이라는 의사가 위와 같은 백내장 수술법에 대한 특허권을 취득하여 이 수술법을 사용한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였다. 비록 Pallin이 패소하기는 하였으나 이 사건은 미국 의료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특허가 되려면 새롭고 진보하고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있는 발명이어야 한다. 사람을 수술하거나 치료 또는 진단하는 방법 등 의료행위는 그 동안 발명이 아니라거나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특허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다. 인간 또는 동물의 치료, 수술 방법을 명시적으로 불특허사유로 규정한 국가도 많다. WTO 지적재산권협정(트립스협정) 제27조 제3항에서도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허법은 의료행위를 불특허사유로 규정하지 않으나, 특허청과 대법원은 특허법 해석상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행위에 대해 특허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명이 아니라거나 산업상 이용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의료행위에 대해 특허를 부여하지 않기 위한 표면적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치료방법을 특정인이 독점하게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행위는 그 특성상 긴급을 요하는 것이 많은데, 그 때마다 특허권자와 라이센싱 계약 체결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치료방법에 독점권이 인정되므로 의료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환자는 때맞춰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의사의 교육방식을 봐도 의료행위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의사는 도제식으로 길러지므로 그 교육 방식에 이미 의사들 간에 노하우를 공유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한 독점을 인정한다면, 의사를 교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결국 의료분야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에서의 논쟁 과정
미국은 인간의 수술, 치료, 진단 방법에 대하여 모두 특허를 허용한다. 미국도 1953년까지는 특허를 허용하지 않다가 그 해 특허항소부가 처음 특허를 인정했다. 그 후로 한동안 특허권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본격적으로 행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의사들은 특허의 존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다가 Pallin 사건이 터지면서 특허에 반대하는 의사들과 찬성하는 의약산업 사이에 충돌이 빚어졌다. 의사들은 특허를 받은 치료방법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되고, 의료비가 증가하며, 새로운 치료방법 개발에 대한 인센티브는 특허로 보호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이유를 내세웠고, 의약산업 쪽에서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 의료분야의 산업화, 인센티브 제도로서의 특허의 효용성을 내세웠다. 그 후 미국 의회에서는 치료 방법에 관한 특허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다만 그 특허를 침해하였더라도 의사에 대하여는 침해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을 특허법에 추가하였다.

 

그래도 문제는 남았다. 의사협회와 의약산업계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의 결과, 의사에 대해 면책규정을 넣기는 했으나,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생명공학 특허를 침해하는 방법이나 의약품, 의료기기의 특허에 위반되는 형태의 사용인 경우에는 여전히 의사에 대해서도 금지청구나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다. 가령 유전자 치료법을 시행하는 경우 의사도 면책되지 못한다. 유전적 소인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의 경우에는 일정한 유전자배열이 존재하는지를 추적하여 질병을 쉽게 진단할 수 있는데, 이때도 생명공학 특허의 위반 소지가 높아, 그 유전자배열에 관한 특허권자나 특수한 추적 기술을 가진 특허권자가 의사나 병원을 상대로 침해금지나 로열티 지불을 요구할 수 있다. 의료기술이 점점 생명공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미 FTA와 미국의 요구
미국은 FTA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 국가에 대해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 포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태국에 제안한 미국의 FTA 협상안에도 치료방법을 특허대상에서 제외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이 치료방법에 대한 특허허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치료방법의 특허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 의료기술의 혁신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근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술은 특허제도 없이도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고, 학문적 업적이나 명예, 직업적 성공만으로도 충분한 인센티브가 되었다. 특허제도를 옹호하는 많은 이들이 특허가 기술혁신에 이바지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거나 ‘증명’되었다고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증명의 자료를 제시하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술의 진화’라는 책을 쓴 조지 바살라는 GNP의 증가와 특허수의 증가 사이에 비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경제학적 연구결과를 들어, 경제발전과 특허 사이에 직접적 관련이 없고, 사회적, 역사적으로 특허가 기술혁신에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된 예가 없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의료행위의 당사자이면서 의료기술을 직접 발전시켜 온 주역인 의사들 스스로 특허와 같은 인센티브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만 보아도, 인센티브 제도의 필요성이 치료방법의 특허 인정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치료방법의 특허 인정이 주장되고 미국 내에서 힘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약산업계가 의료행위의 특허화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제약회사들은 많은 유전자특허 및 기타 생명공학 분야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를 직접 주입하거나 줄기세포를 만들어 주입하는 등의 유전자치료법을 특허화하는 것은 그들의 이윤을 넓히는 데 득이 될 것이다. 벤쳐기업 육성론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으나, 결국 거대 제약기업의 배불리기를 가리는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벤쳐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이는 더 많은 기술력을 확보한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가 얻는 이익의 떡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치료방법 특허인정은 생명공학 기술에 기반한 의약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 개개인의 건강권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이든 팔고 사는 세상이라고 하여, 생명을 담보로 장사하는 것까지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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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탄] 의약품 독점 강화의 또 다른 형태 - 의약품 허가와 특허의 연계

의약품을 판매하려면 품목별로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의약품이 안전한지, 약효가 유효한지를 검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이러한 의약품의 검사와 허가 제도를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아래 식약청)이 이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미국은 FTA를 통해 식약청이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할 때 다른 자의 특허권을 침해했는지를 조사하여 특허권 침해인 경우에는 의약품의 판매허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칠레, 싱가포르, 중남미, 모로코, 호주, 바레인 등과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예외없이 이런 규정을 두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한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것이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국적 제약사들이 제네릭 제약사(원 의약품과 효능이 동등한 복제 의약품을 만드는 제약사)의 경쟁을 제한하여 의약품의 독점을 강화하려는 수단의 하나이다. 또한,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식약청을 통해 특허권을 행사하여 결과적으로 특허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특허와 관련된 어떠한 조약에도 특허청과 식약청이 업무를 연계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오히려 국제조약이나 특허법은 특허권을 개인의 권리로 정하고 있으므로, 어느 의약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는지는 특허권자 스스로 조사하여 권리 행사를 해야 한다.

 

식약청이 의약품 허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특허 침해 여부를 조사할 수 없는 이유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에 비추어 너무나 당연하다. 식약청의 고유 업무는 제약사가 만들어 판매하려는 의약품이 안전한지 약효가 제대로 나오는지를 조사하는 것이고, 특허 침해 여부는 식약청의 고유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따라서 식약청은 그러한 업무를 할 능력이 없으며 특허 침해를 판단할 업무 능력을 갖출 필요도 없다. 어느 의약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는 특허청은 물론 법원조차도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더 큰 문제는 특허권의 유효성을 신뢰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즉, 특허청에 의해 등록된 특허권 중 상당수가 나중에 무효로 판정나며, 특허권자가 제기한 침해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등록된 특허권 중 약 30% 정도가 사실은 잘못 등록된 것이다. 또한 특허권자가 권리침해를 이유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특허권자가 패소한 사건이 훨씬 더 많다.  이와 같이 등록특허의 유효성과 특허권자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점은 미국이 더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8년 동안 239건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다룬 299건의 특허 중 무려 46%가 무효로 되었다. 또한 의약품 특허의 침해소송 사건 중 무려 73%의 사건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하였다. 이러한 통계를 볼 때 특허가 등록되었다는 사실만 가지고, 식약청이 제네릭 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해 주지 않는 것은 잘못 등록된 특허권으로 인한 비용을 제네릭 제약사에게 전가하는 꼴이 된다. 그 결과 제네릭 제약사의 시장진입을 막아서 환자들이 값싼 의약품에 접근할 권리를 제한한다.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특허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미국에서는 특허권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기초하여 식약청이 특허침해 여부를 판단하는데, 특허권자는 허위의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의약품과 관련도 없는 정보를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국적 제약사들은 새로운 기술이 추가되지도 않은 것을 특허출원하여 동일한 의약품에 여러 개의 특허권을 등록받고 의약품의 시장독점을 강화해 오고 있는데, 의약품 허가와 특허 연계 제도는 이러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행태를 조장하거나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의약품 특허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특허권의 침해 염려가 있는 의약품이 판매 허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특허 심사를 제대로 하여 부실 권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실 권리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이야말로 잘못된 권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특허품질을 높이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

 

남희섭 (정보공유연대 IPLeft 대표) / hurip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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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탄]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는 불공정한 게임

- 의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서는 80년대 이후 오히려 평균수명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에이즈와 결핵, 말라리아의 재출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짐바브웨와 케냐의 평균수명은 80년대 초중반까지 52~3세까지 꾸준히 올라갔으나 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떨어져 2002년에는 40세 밑으로 떨어졌다. 유엔에이즈계획이 지난 6월 3일 밝힌 바에 의하면 25년후 아프리카 에이즈 사망자는 1억명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 인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에이즈 감염자 수가 지난해 약 830만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인도는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은 국가인데 인도의 에이즈 환자 중 7%, 에이즈에 감염된 임신여성 중 1.6%만이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 등 치료를 받고 있다. 1분에 한명의 어린이가 에이즈로 사망한다.
- 63억의 세계 인구 중 80% 정도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개도국 중 2/3의 국가는 국민소득 3,255달러 이하인 국가이다. 밥을 먹을 돈도 없는데 약을 살 돈이 있을 리 없다. 생명공학이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질병이나 재해에 대처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보건 상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4~5만원 정도 드는 에이즈 치료비 전액을 정부가 지원한다. 아직은 에이즈 환자가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의 수가 적은 만큼 제약사들이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지 않아, 2000년 이후에 개발된 치료제는 대부분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지 않다. 국내에서 시판하지 않는 치료제는 희귀의약품센터에 ‘자가치료의약품’으로 신청을 하면 희귀의약품센터에서 구입해주지만 비용은 전액 환자부담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엄두도 못 낸다. 전염성 질환은 바이러스나 세균이 계속해서 돌연변이가 생기거나 또는 항바이러스제나 항균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 새로운 약을 처방해야 하므로, 신약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인 퓨제온의 경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고 있지 않은데, 미국에서의 환자1인당 연간 비용이 2만5천 달러이다.

정부의 지원이 가능한가, 보험제도가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 있는가에 따라 의약품 복용 가능성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의약품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세계적인 공통점이다. 원인은 특허권이다.

세계무역기구가 1994년 출범한 이후, 특허는 의약품의 수급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었다. 일반적인 사회 통념과 달리 특허가 의약개발에 기여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의약품에 접근하는 데 장벽이 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계속되었다. 20년이라는 특허보호기간 만료 전후의 가격차이나, 특허보호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의약품의 가격차이는 100배가 넘는 것도 있을 지경이다. 반면 특허약의 마진율은 2,000%에 달하는 것도 있다. 특허권을 가진 독점기업은 가격을 낮추려고 정부가 개입하면, 시장 진입 거부로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정부와 제약사인 노바티스 간의 협상에서 정부는 노바티스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가격을 낮추면 팔지 않겠다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의약품 접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각국은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보건기구를 중심으로 지구적 차원에서 노력해 왔다. 2002년 이후로 잠비아, 모잠비크, 짐바브웨, 말레이시아가 특허권이 걸려있는 에이즈 치료제에 대해 강제실시를 강행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좌절되었지만, 에이즈의 심각성이 점차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이들 국가는 미국과 제약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실시를 강행할 수 있었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각국의 특허법 대부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나 국가 긴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한 경우에 강제실시를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특허법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원자력이나 보건, 환경 관련한 개별 법규에서 일정한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점규제를 위한 목적으로 미국에서는 수천건에 달하는 강제실시를 이미 허용한 바 있다. 의약발명의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면, 국영기업이 약품을 생산하여 무상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고, 제3의 제약회사가 정부 허락을 얻어 저가의 카피약품 판매가 가능하다. 강제실시를 하는 경우에도 특허권자에게 합당한 보상은 하게 된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의약품 접근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는 글로벌펀드의 설립과 세계보건기구의 각종 결정을 들 수 있다. 2002년에는 G7 국가에 의해 에이즈·말라리아·결핵 퇴치를 위한 글로벌펀드가 설립되었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3by5 계획, 즉 2005년까지 에이즈 치료가 필요한 600만명 가운데 300만명에게 치료제를 제공한다는 계획이 채택되기도 했다. 2004년에는 각국 정부가 보건의료정책의 추진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지적재산권협정(아래 트립스협정)이 보장하는 융통성을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아래 FTA)에 의해 우회적으로 금지해서는 안된다는 결정을 하기도 하였다.

 

미국은 각국의 강제실시를 방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세계적 차원의 노력에 대해서도 계속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의 회의에 참석할 대표들을 보건 전문가가 아닌 제약회사의 전직, 현직 임원으로 구성하여 제약회사의 이익을 제한하는 어떠한 결정에도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해 왔다. 미국 주요 기업들이 재정을 지원하고 기업의 전현직 대표들이 그 이사로 있는 허드슨연구소는 미국 정책결정자와 정치가를 상대로 교육활동을 전개하는데, 이 연구소는 특허약품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카피약의 안전성이나 효능이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의도적으로 유포하고 있다.

 

FTA는 미국의 방해 전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과 미국이 체결한 FTA 협정문을 보면 강제실시권은 트립스협정이 인정하는 범위보다 지나치게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도 그 특허발명의 실시가 비상업적이라는 조건 하에서만 강제실시를 허용한다.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의 실시가 가격이 저가라도 상업적이라고 인정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비상업적’이라는 제한은 강제실시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급이 불충분한 경우에는 특허권자의 권리남용으로 보아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것이 1880년대 ‘산업재산권 보호에 관한 파리협약’ 이래 보장되었다. 그러나 미국식 FTA는 이를 금지한다. 따라서 제약회사가 국내 시장이 소규모라거나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한다는 이유로 의약품 공급을 거부할 경우,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강제실시가 가능하지만,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나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특허보호기간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허보호기간이 20년이라는 원칙은 그대로 두 되, 특허출원의 심사과정에서 심사가 지연되는 기간만큼 특허보호기간을 연장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특허출원을 심사하는 특허청 입장에서는 심사기간 단축의 부담이 커서 신중하게 심사할 수 없게 되고, 부실한 특허권을 양산할 우려가 높다. 부실한 특허권은 동종업계 내의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어 분쟁해결 비용이 증가할 것이고, 분쟁비용을 감당할 자본력이 우세한 기업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에서도 이와 같은 요구를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1차 본협상이 마무리되고 지적재산권분야 통합협정문이 작성된 지금 아마도 이미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한미FTA에 우리는 찬성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특허권을 기술의 발전을 위한 불가피한 제도로 인정하고, 특허권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이 기술발전, 이에 따른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도식에 사로잡혀 있다. 이런 도식은 특허제도가 어느 누구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한 중립적인 제도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런 통념에 의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가 특허권자에게 정당한 보상인가의 문제는 늘 남아있기 때문에, 특허권은 사회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다는 중도적 입장이 항상 대안처럼 제시된다. 중도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한미FTA는 충분히 반대할 수 있다. 강제실시권과 같은 사회 정책상 필수적인 수단들을 FTA가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간 통찰력이 필요하다. 특허제도는 먼저 발명하여 상품화한 사람에게 일정한 시장 독점력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에 불과하다. 특허제도에 의해 기술혁신이 추동된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명백히 증명된바 없다. 오늘날의 특허제도는 초기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자본주의 성장과 더불어 점차 견고해지고 강력해졌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되어 온 6·70년대 이후 특허제도는 세계적으로 통일화되면서 더욱 강력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이 모든 흐름을 이끌어 온 것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정부이지만, 그 뒤에는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 트립스협정만 해도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와 IBM 등이 초안을 만들었다. 이러한 특허제도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때 적어도 오늘날의 특허제도는 이미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고 경제성장의 이익을 배분하는 중립적인 제도가 아니라 미국의 주요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리모델링한 편파적 제도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 국민의 대표자가 아니다. 미국 정부의 정책을 좌우하는 것은 거대 기업들의 전·현직 대표나 이사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정부관료가 되거나 이익단체를 만들어 정책이나 법률을 만들고 정부가 반영하도록 로비한다. 한미FTA는 미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를 앞세워 한국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장으로 조성하기 위한 전략이며, 특허권의 강화는 그 주요한 전술이다. 한미FTA체결로 특허권이 점차 강화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생활과 생명을 갉아먹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방식과 속도의 문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에이즈는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것이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양희진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urlu@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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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탄] 한미 FTA, 팔다리 잘린 디지털 도서관에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여전히 여러분 중 대다수는 도서관과 저작권이 무슨 상관인가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더더구나 한미 FTA와 도서관?

 

여러분이 걸어서 가야하는 물리적 공간을 지닌 도서관이라면 도서관에서 본 자료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은 저작권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이용자인 여러분이 아닌 서비스 제공자인 사서의 경우 우리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어떤 자료가 절판되었거나 구하기 어려울 경우 타도서관 자료를 복사해서 서비스할 필요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저작권법의 궁극적인 목적이 저작권자의 보호가 아니라 저작물 생산과 이용간의 균형을 통하여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도서관에서 사서가 이용자에게 복사물을 제공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자료의 복사물을 만들어 다른 도서관에 제공하는 것 등은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면책 조항의 하나로서 이용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디지털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다면 물리적 공간을 지닌 도서관에서보다 더 복잡한 저작권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디지털 도서관은 디지털 형태로 된 자료를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자에게 여러 가지 서비스를 하는 도서관이다. 인터넷에 익숙해진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자료를 구하러 걸어서 혹은 차를 타고 도서관까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여섯시 혹은 아홉시로 정해진 도서관 개관시간에 맞추어 자료를 찾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곳에서도 누군가 그 자료를 이용하고 있는 중이라도 자료를 이용할 수 있기를 원한다.

 

도서관은 여러분의 이러한 요구에 맞도록 그동안 인쇄물 형태로 생산된 자료를 디지털 형태로 바꾸어 네트워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물론 디지털 형태로 생산된 자료도 디지털 도서관을 통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도서관 사서의 작업 과정은 저작권법에서 규정한 복제권과 전송권의 적용을 받는다. 여러분이 디지털 도서관의 자료를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출력하는 과정에도 복제권과 전송권의 문제가 발생한다.

 

도서관의 공공성을 고려하여 비영리적인 목적을 가진 이용자들을 위한 복제, 전송 서비스가 모두 저작권 면책사항으로 되는 것이 여러분의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도서관의 면책 조항 역시 세계저작권조약(WCT)이나 WTO 지적재산권협정(TRIPS)과 같은 지적재산권 관련 국제조약의 규정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해지게 된다. 따라서 국내 저작권법은 제28조에서 도서관이 인쇄자료를 디지털화하여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용자에게 서비스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첫째, 인쇄형태로 발행된 지 5년이 경과해야 도서관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디지털화할 수 있다. 둘째, A도서관에서 디지털화한 자료는 다른 도서관 ‘내’로만 전송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화된 자료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용자의 수는 도서관에 해당 자료가 소장된 부수와 같다. 넷째, A도서관에서 디지털화한 자료를 A도서관 내에서 이용자가 출력할 경우 보상금을 내야한다. 다섯째, A 도서관 외의 다른 도서관 ‘내’에서 이용자가 A도서관 자료를 화면에서 보거나, 출력할 경우에는 보상금을 내야한다. 여섯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이 저작재산권자인 경우 보상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일곱째, 도서관이 이러한 서비스를 할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복제방지장치 등의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에 의하여 여러분은 디지털 도서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데, 여러분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집에서 이용하기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즉, 일단 필요한 자료가 디지털 도서관에 있을 경우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까지 가야한다. 만일 방문한 도서관에 필요한 자료가 디지털 형태로 있을 경우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고, 출력하려면 보상금을 내고 할 수 있다. 만일 방문한 도서관에 여러분이 원하는 자료가 없고 다른 도서관에 있을 경우, 다른 도서관 자료를 전송받아 화면으로 보거나 출력할 수 있다. 이 경우는  모두 보상금을 내야한다. 만일 여러분이 방문한 도서관에 디지털 자료의 인쇄물 원본이 한 부밖에 없는데, 이미 그 자료를 다른 이용자가 컴퓨터로 보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이용자가 그 자료를 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 디지털 도서관의 자료를 보기 위해 적어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까지 가야한다는 불편은 있지만 그래도 서울에 살면서 부산의 어느 도서관에 있는 자료를 보기 위해 부산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국내의 도서관 관련한 저작권 면책 조항이 한미 FTA에서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무역대표부(USTR) 보고서에는 한국의 디지털 도서관 면책 조항과 관련하여 허락을 받지 않고 디지털화할 경우, 권리자에게 최소한 30일간의 통지기간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미국의 요구사항이 한미 FTA를 통하여 관철될 경우, 여러분이 그동안 ‘가장 가까운 도서관까지 가서 보았던 디지털 자료’의 범위가 상당부분 축소될 것이다. 즉, 도서관이 허락받지 않고 디지털화하려는 대다수의 저작물은 해당 저작물의 권리자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권리자의 소재를 파악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으로 도서관은 자료의 디지털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권리자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통지하지 못하는 자료는 디지털화를 못하게 된다. 더 나아가 만일 통지가 통지에서 끝나지 않고 권리자가 디지털화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로 발전하면 곧 국내 저작권법에서 디지털 도서관 면책 조항은 무의미해지게 된다. 왜냐하면 면책 조항은 권리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어떠한 행위를 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예상되는 미국의 요구사항은 면책 대상이 되는 자료를 어문저작물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저작권법에서 도서관 면책 대상이 되는 자료는 ‘도서, 문서, 기록 그 밖의 자료’로 하여 그 유형을 불문하고 면책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은 여러분이 도서관에서 이용하는 자료가 어문저작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면책 조항을 어문저작물에만 적용하고 방송물, 실연, 음반에는 적용하지 않을 경우 그동안 도서관 사서가 구하기 어려운 비디오 테이프를 한부 복사하여 다른 도서관에 주거나, 보존을 위해 방송물이나 실연, 음반물의 복제본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 등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국내 저작권법의 도서관 면책 조항은 디지털 기술의 속성(원격접근, 동시다수 이용자 접근)을 그대로 적용하여 디지털 도서관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태이다. 또한 보상금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이견도 속출되고 있어 이 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권리자에 대한 통지나 비어문저작물의 면책 대상 미포함 등을 미국 측에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정경희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libinfo@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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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탄] 터무니없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 일시적 복제의 권리 요구

저작권은 복제권, 배포권, 공연권, 방송권 등 여러 권리들의 다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복제권’은 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권리이다. 영어로 저작권은 Copy Right 아닌가. 그런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복제’의 범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에서도 미국은 ‘일시적 복제’를 저작권법 상 복제로 인정하라는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어떤 사이트에 접속을 하게 되면, 그 사이트 서버의 데이터가 내 PC로 전송이 되어 브라우저를 통해 보여지게 된다. 이 때 별도로 그 데이터를 파일로 저장하지 않는 한, 데이터는 램(RAM)에 잠시 저장되어 있다가 다른 명령이 실행되거나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경우 사라지게 된다. 하드디스크 등에 영속적으로 저장되는 것과 대비하여, 이를 ‘일시적 복제(temporary reproduction)’라고 부른다. 일시적 복제는 이 외에 여러 상황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PC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하드디스크에서 램으로 프로그램의 일부가 복제되어야 한다. 효율적인 인터넷 이용을 위해 PC나 서버의 ‘캐쉬 메모리’에 데이터를 저장해놓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복제’가 수행되기는 한다. 그러나 이용자 입장에서는 전혀 ‘복제’의 행위가 아니다. 그저 어떤 저작물에 ‘접근’해서, 그것을 ‘읽거나 듣는’ 행위일 뿐이다. 오프라인 환경에서는, 예를 들어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과 ‘복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였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책을 ‘읽기’ 위해서 ‘복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사실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에서 ‘복제’없이 어떠한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일시적 복제’를 저작권법상 복제로 인정하라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인터넷을 통해 어떤 사이트에 접근할 때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말로 터무니없는 요구가 아닌가!

저작권은 권리자에게 ‘읽을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즉, 우리가 어떤 책을 읽기 위해서 (직접 사서 읽든, 서점에서 읽든, 빌려서 읽든, 도서관에서 읽든 상관없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맡아야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환경에서 ‘일시적 복제’를 복제로 인정하는 것은 저작권자에게 ‘읽을 권리’라는 새로운 독점권을 부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어떠한 저작물에 접근할 것인지, 어떠한 저작물을 읽고 들을 것인지에 대한 통제권을 저작권자에게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혹자는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호주의 사례와 같이, 일시적 복제를 인정하되 면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통상적인 인터넷 이용은 저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저작권자에게 ‘저작물에 대한 접근과 읽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원칙이 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예외를 둔다고 하더라도 현재 예측하기 힘든 다양한 상황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다. 오히려 일시적 복제가 발생하는, 그러나 저작권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가 있다면, 이를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저작권조약(WCT) 논의 과정에서 일시적 복제를 조약 내에 넣으려다 실패하였다. 그리고 (다른 요구 사항과 마찬가지로) 이를 양자간 FTA를 통해 타국에 강요하고 있다. 일시적 복제에 대한 권리 요구는 저작권자들의 욕심과 오만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antiropy@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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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탄]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검열관으로 만들지 말라!

 

이제 포털 사이트를 떼어 놓고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네이버의 1일 방문자수가 1,000만 명이 넘고, 네이버에는 130여만 개의 카페가 있으며, 싸이월드의 하루 페이지뷰는 8억이 넘는다. 그리고 우리나라 종합 포털의 한달간 순방문자수는 3,000만명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국민들 중 포털 사이트에 들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포털 사이트는 여론 형성의 장이요, 정보 교환의 장이다. 게시판이나 수백만개에 달하는 카페는 물론이고, 개인미디어 시대를 연 미니홈피나 블로그가 이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표현 매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19세기나 20세기엔 ‘집회, 시위, 결사,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면, 오늘날은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등과 같은 새로운 정보통신매체에서의 ‘표현의 자유’인, ‘쓸 자유, 읽을 자유, 게시할 자유’가 관건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시민단체들이 블로거의 표현의 자유를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정보통신매체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테러나 사이버 범죄에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정보통신매체에 대한 감시와 규제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저작권 침해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정보통신매체의 감시와 규제가 점점 도를 더해가고 있다. 미국의 전미음반제작자협회(RIAA)나 전미영화제작자협회(MPAA)를 필두로 한 저작권자들의 공세는 전 지구적 차원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2005년까지 17개국에서 약 20,000건의 소송을 제기하고, 미국에서 약 6,000건의 소송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05년에 미국을 필두로, 호주, 한국, 일본, 대만, 스페인, 러시아, 중국에서 법원으로부터 P2P 사이트의 사실상의 폐쇄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공격의 칼날은 하나는 P2P 사이트로 향하고, 또 다른 하나는 포털 사이트로 향하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자유로운 정보의 유통을 옹호하고 촉진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들(통신회선, 설비제공사업자, P2P 서비스 사업자, 검색 서비스 사업자 등)에게 해당 서비스 이용자들이 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제적인 합의이다. 이것은 마치 통신회선 제공사업자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그 통신회선을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가입자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가입자들의 행위에 조금이라도 위법의 소지가 있는 경우에는 일단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아예 해당 가입자를 탈퇴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조치는 인터넷의 활기를 빼앗아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문화의 창달과 더 많은 교육의 기회 제공, 문화 수준의 향상, 전자상거래의 활성화 등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에 대한 규정이다. 미국의 1998년의 저작권법 개정, 유럽연합의 2000년의 전자상거래 지침의 제정을 필두로, 우리나라도 2004년에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미국의 모델이 소위 ‘통지와 중단’(notice and take down) 정책이다. 즉, 저작권자가 누군가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정보를 전송하고 있음을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통지하면,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해당 게시물을 내려야 책임을 면한다. 통지할 때는 자신이 저작권자임을 소명할 수 있는 자료를 첨부해야 하고, 자료를 받은 서비스 제공자는 통지가 있었음을 정보 전송자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저작권자는 해당 정보전송자의 가입자 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이것은 나름대로 저작권자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이해를 적절히 조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인데, 법 시행 7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 법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하여 결과적으로 인터넷의 정보의 교류를 지나치게 막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7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연구원들이 1869년에 쓰여진 ‘존 스튜어트 밀’의 (중고등학교에서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자유론’을 미국과 영국의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연구원들은 그 글이 이미 150년 전에 출간된 것이어서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중의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나서 연구원들은 ‘존 스튜어트 밀 헤리티지 재단’이라는 유령단체의 이름으로 미국과 영국의 포털사이트에 편지를 보내, 그 글의 저작권자인데, 그 글은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게시된 것이므로 즉각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자세히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내용인데, 영국의 포털사이트는 24시간도 되지 않아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것과 비슷한 실험을 네덜란드에서도 했었는데, 결과는 비슷했다. 이번에는 아예 가짜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통고서에 넣어서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보냈는데, 포털사이트들은 가짜 이메일 주소로 회신해서 더 물어보지도 않고, 게시물을 삭제했다. 이러한 예들은 어떻게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사적인 검열관으로 기능하면서, 과잉 검열들을 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저작권자들은 삭제 요청을 너무 남발하고 있으며(한 연구에 의하면 약 30%의 정보 전송 중단 요청이 적법한 저작권 이용에 대해 요청되고 있다고 한다. RIAA의 대리인인 미디어포스라는 곳은 무려 16,700개의 통지를 보냈다고 한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잘 검토해 보지도 않고 삭제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삭제 요청의 남용에 대해서는 적절한 구제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캐나다는 4년 동안의 오랜 논의를 거쳐, 저작권자가 저작권 침해가 있다고 통지(notice)를 하면 삭제나 전송중단(take down)을 해야 하는 현재의 법체계를 수정하여, ‘통지-중단’이 아닌 ‘통지-통지’ 방식을 도입하자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그래서 저작권자가 저작권 침해가 있다고 ‘통지’를 할 경우, 바로 해당 정보를 삭제하거나 전송중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정보게시자에게 그 통지를 전달해 주면되는 것으로 개정안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중단 통지의 남용을 막고, 정보의 활발한 교류를 촉진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면책규정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때가 되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도입하려고 법개정안을 만든 통지-통지 정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미국은 캐나다의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하고 있으며, 미국 방식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 면책규정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저작권법 개정안을 낼 경우 미국의 반응이 어떨지는 안봐도 훤하다. 미국은 나아가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저작권자에게 통지를 할 때 팩스나 우편으로 저작권자임을 증명하는 서면등을 보내도록 한 것을 전자우편으로도 가능하도록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저작권자의 통지의 남발을 막는 의미가 있는 조항이므로,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쨌든 지금은 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에 대한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이 마당에 미국은 FTA 협상을 하면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제한 규정을 저작권자에게 유리하게 바꾸도록 강요할 것이다. 이는 부당하다.

 

이은우 (변호사, 진보네트워크센터 운영위원) ewlee@horizonlaw.com

 

* 전자 프론티어 재단(EFF)의 자유로운 블로깅을 위한 포스터

 

 

* 전자 프론티어 재단(EFF)의 블로거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법률 가이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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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탄] 기술적 보호조치를 법 위의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기술적 보호조치를 법 위의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 기술적 보호조치의 무분별한 강화는 저작권법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어

 

기술적 보호조치(technological protection measure)란 ‘암호화 등의 기술적인 방법을 통해 저작물에 대한 접근이나 이용을 통제하기 위한 기술이나 장치’를 의미한다. 기술적 보호조치는 보통 ‘접근통제적 조치’와 ‘침해방지적 조치’(이용통제적 조치라고도 한다)로 나뉜다.

 

저작권법은 권리자에게 복제권, 공연권, 방송권, 전송권, 전시권 등 특정한 형태의 권리를 부여한다. 침해방지적 조치는 권리자의 허락없이 이러한 이용을 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 파일을 개인 컴퓨터에서는 재생이 가능하지만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으로 전송을 막는 기술을 적용한다면 이는 방송권을 보호하는 침해방지적 조치가 될 것이다. 전자책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에서 특정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볼 수는 있지만 다른 파일 형태로 저장하거나 다른 컴퓨터로 옮기거나 또는 종이 문서로 출력하는 것을 막는다면 이는 복제권을 보호하는 침해방지적 조치이다.

 

접근통제적 조치는 미국이 핵심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의 저작권법에는 도입되어 있지 않은 개념이다. 개념적으로는 저작물의 접근을 통제하는 암호 또는 접근 코드 등의 기술적 조치를 말한다. 앞의 전자책의 예를 든다면, 전자책을 보기위해서 암호를 넣어야만 파일이 열린다면 이때 암호가 접근통제적 조치다. 외국에서 사온 DVD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CD를 우리나라에서 산 재생기나 게임기에 넣고 재생 또는 실행을 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는 지역코드라는 것이 들어 있어 같은 지역에서 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아니면 재생이나 실행이 되지 않는다. 이때 이 지역코드 시스템이 앞에서 말한 접근 코드의 예이며 접근통제적 조치가 된다. 이와는 좀 다른 형태의 접근통제 조치로는 DVD를 재생할 때 보면 예고편 등을 건너뛰고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이를 “건너뛸 수 없는 구간(non-skippable zone)“이라고 부르는데 미국에서는 건너뛸 수 없는 구간을 건너뛰게 할 수 있는 DVD 재생 소프트웨어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도 접근통제적 조치로 구분한다.

 

기술적 보호조치의 저작권법 등에의 도입은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동일한 이유에서 출발하였다. 즉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관장하는 저작권 조약(WCT)과 실연음반조약(WPPT)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8년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igital Millennium Copyright Act, 이하 DMCA)”에서 관련 조항이 추가되었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기술적 보호조치 관련 조항이 도입되었다. 미국 법은 접근통제적 조치와 침해방지적 조치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침해방지적 조치만을 포함하고 있다. 즉, 접근통제적 조치를 무력화하는 행위는 국내 저작권법에서는 규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통해 자국의 DMCA에 준하거나 이를 넘어선 요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지적재산권연맹(International Intellectual Property Alliance, IIPA)이 작성한 2006년 ‘스페셜 301조 보고서’의 한국편을 보면, ▲ 접근 통제(access control)를 명문화할 것, ▲ 반 해킹 법령을 통해 네트워크 환경 및 오프라인 환경에서 접근 통제를 기술적 보호조치로 보호할 것, 그리고 ▲ 기술적 보호조치 우회 방법의 제공만이 아니라 우회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우회’란 암호화와 같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DMCA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우리 저작권법에도 적용함과 동시에 그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접근통제적 기술적 보호조치를 네트워크 환경과 오프라인 환경까지 확대하는 것은 DMCA에도 없는 내용이며, 미국이 체결한 기존 FTA에도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만약 한미 FTA가 체결되어 위와 같은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어떤 일들이 생길까?

현재 우리 저작권법에 따르면 지역 코드와 상관없이 재생할 수 있는 DVD 재생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이를 이용하는 두 가지 행위 모두 합법이다. 하지만 만약 미국의 저작권법을 따르게 된다면 지역 코드는 접근 코드에 해당하는 접근통제적 조치로서 보호 대상이 되어 재생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무력화)하는 “도구”를 제공하는 행위로 침해가 된다. 덧붙여 우회 도구의 제공만이 아니라 우회 행위 자체도 불법이 된다면(우리 저작권법은 “도구 제공”에 해당하는 행위만 침해로 본다) 이 소프트웨어를 쓰는 이용자도 침해의 당사자가 된다. 따라서 예를 들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DVD라 할지라도, 한국에서 위의 재생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용한다면 불법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DMCA가 통과된 지 7년이 지난 미국의 사정을 보면 위와 같은 사례만이 아니라, 기술적 보호조치가 시장의 경쟁을 제한할 목적으로 악용되거나 표현의 자유와 학술연구를 위축시킨 사례가 많다.

경쟁 제한의 예를 들면, 디지털 카메라 제조사로 유명한 니콘(Nikon)의 경우 자신들의 카메라에서 만들어지는 RAW 이미지 파일 포맷의 일부분을 암호화해서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이 이 포맷의 이미지 파일을 편집할 수 있게 하려면 니콘사로부터 이용허락(라이선스)을 받도록 하였다.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대형 업체인 어도비(Adobe)사는 니콘사와의 합의를 통해 해결했지만, 소형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에게는 분명 시장에 참여하는데 장애물이 생긴 것이다. 암호화된 일부분을 허락 없이 풀어서 이용이 가능하게 한다면, 이는 접근통제적 조치를 우회하는 행위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어 DMCA 아래에서 소송의 위험에 노출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미국 내 레이저프린터 제조사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렉스마크(Lexmark)사가 스테틱콘트롤컴포넌트(Static Control Components, SCC)사를 고소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렉스마크는 자사의 프린터와 레이저 토너 카트리지 사이에 승인 프로그램을 붙여서 다른 업체가 재생 토너 카트리지를 파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SCC는 역분석을 통해 이 승인 프로그램을 무력화하는 스마트텍(Smartek)칩을 만들었는데, 렉스마크는 이를 기술적 보호조치 위반으로 고소했고, 법원으로부터 가처분을 얻어 시장에서 SCC의 제품을 팔수 없도록 했다. SCC가 항소심에서 가처분을 뒤집을 수는 있었지만, 19개월의 소송에 많은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술적 보호조치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사례도 많이 있다. Sony-BMG는 CD 복제 방지 기술인 “루트킷(Rootkit)”의 외부 해킹에 대한 취약점을 발견한 프린스턴 대학의 대학원생이 이를 발표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술적 보호조치 조항 저촉 여부를 제기하였다. 또 다른 사례는 정보통신 전문 뉴스 사이트인 CNET의 기자가 미국 ‘교통 보안청’의 문서를 입수하였으나, 기술적 보호조치 조항 때문에 열어 보지조차 못한 사례가 있다. 이 문서들이 암호로 보호되고 있었고 정보원을 통해 암호를 입수했지만, 이를 열어보는 것이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는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보호조치의 도입은 권리자의 권리 보호와 공정 이용 보장의 균형을 통해 사회 전체의 문화 발전을 도모하는 저작권법의 목적에 위협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법률이 규정한 ‘균형’을 넘어서, 권리자가 임의적으로 저작물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과도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적 균형의 회복을 위해서는 기술적 보호조치의 과도한 적용에 대한 제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DMCA는 분명 우리 저작권법 등과 비교하였을 때, 기술적 보호조치의 유형, 사법적 조치의 강도, 예외의 범위 등에서 권리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광범위성은 표현의 자유와 과학 연구의 위축, 기존의 공정 이용의 무력화, 시장에서의 경쟁과 혁신의 제한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들이 다양한 형태로 법정 소송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DMCA의 개혁을 위한 입법에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Boucher 하원의원 등이 제출한 “디지털 미디어 소비자 권리법안(Digital Media Consumers’ Rights Act of 2003, HR 107)”이다. 이 법안 외에도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여러 차례 제출되었다. DMCA는 이미 1998년부터 약 7년간의 시행을 거치며 이제 미국의 산업계, 의회, 학계 등에서 그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DMCA를 기준으로 하는 미국의 요구를 협상의 대상으로 하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FTA는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김지성 (민주노동당 정책위원,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community@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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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민중의 저작물에 대한 자본의 해적질!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에서 미국은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작자 사망 후 50년’으로 되어있다. 이는 저작권과 관련된 국제협약에 부합한 것이다. 미국의 요구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수준 이상으로 강화하라는 얘기다.

지난 1998년 미국은 자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시킨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싱가포르나 호주 등과의 FTA를 통해 보호기간 연장을 요구하였으며, 이를 관철시켰다. 미국 재계의 입장을 담고 있는 미한재계회의와 주한미상공회의소의 <2005 정책 보고서>에서도 미국 수준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유권과 달리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제한한 것은 인류공동의 자산이라는 저작물의 성격에 기인한다. 그래서 독점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한편, 일정한 기간 이후에는 창작물을 공공 영역에 편입시켜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기존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을 강화시킬 뿐, 창작의 활성화와는 관계가 없다. 생각해보자. 상식적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20년 연장이 되었다고 창작을 하지 않을 사람이 창작을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더구나 창작 의욕을 고취한다는 의미는 ‘미래에’ 생산될 저작물에 대한 것이지, ‘과거에 이미’ 생산된 저작물에 대해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생산된 기존 저작물에 대해서 보호기간을 20년 추가 연장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이익이 있을까? 또한 저작자 입장에서도, 저작권 보호기간이 20년 늘어난다고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은 월트디즈니와 같은 ‘소수의 문화자본’의 독점적 이윤을 계속 보장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2004년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될 운명에 있었던 ‘미키마우스’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의미에서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조롱을 받았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은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위헌소송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며, 이에 대항하여 ‘퍼블릭 도메인 확대법안(Public Domain Enhancement Act)'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더 큰 문제는 미국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이 연장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1962년부터 지난 40여년간 미국은 11차례나 보호기간을 연장해왔다. 이런 식으로라면 저작권 보호기간은 사실상 무기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이 가져올 폐해는 명백하다. 만일 보호기간이 연장되지 않았다면 민중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던 저작물들이 다시 독점 배타적인 권리의 울타리에 갇혀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했던 엘드레드는 온라인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문학 작품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이 통과됨으로써 이미 등록되어 있던 몇몇 작품을 삭제해야 했고, 알렉산더 밀른(A. A. Milne)의 1926년작 “곰돌이 푸우”(Winnie-the-Pooh)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의 1923년작 “세편의 단편과 열편의 시”(Three Stories and Ten Poems) 등을 공개하지 못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는 민중들이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해적질’ 에 다름 아니다.

 

사실 현재의 보호기간도 지나치게 길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유명 저작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저작물들은 발행 후 10년~20년 정도면 더 이상 상업적인 가치가 소멸하지 않을까? (물론 이와 관련한 엄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미 절판되어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서적이나 음반조차 저작권에 묶여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소프트웨어같은 경우에는 10년만 지나도 그 유용성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저작권과 같은 보호기간을 적용하는 것은 거의 영구히 보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저작물의 이용을 불필요하게 제약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저작권 보호기간은 대폭 단축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내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이러한 결정이 우리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고려와 자율적인 토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시 외압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미국의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요구를 절대 수용해서는 안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antiropy@jinbo.net

 

* <엘드레드 대 애쉬크로프트 사건에 대한 FSF의 소견서>에서 인용
(http://www.gnu.org/philosophy/eldred-amicus.k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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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 그것을 알려주마!

한미 자유무역협정(아래 FTA)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개방만이 살길’이라며 한미 FTA를 강행하려 하고 있지만, 농업, 영화, 보건의료, 교육 등 각 영역의 노동, 인권,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 FTA가 가져올 파국적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분야도 한미 FTA 협상에서 논의될 주요 영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농산물 개방이나 스크린쿼터 축소와 같은 문제와 달리, 지적재산권 분야는 쟁점이 무엇이고 어떠한 사회적 파급 효과를 불러올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적재산권은 특허, 저작권, 상표, 의장, 지리적 표시, 반도체 집적회로 배치설계, 영업비밀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공통적인 점은 무형의 지적 생산물로서 법률에 의해 권리자에게 배타적 독점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특허와 저작권이다.


특허는 획기적인 기술적 발명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특허청에서 발명을 심사하여 새롭고 진보적인 발명에 대해 ‘출원 후 20년 동안’ 배타적 독점권을 부여한다. 특허의 대상은 기계나 생산 방법에서부터, “태양아래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 하에, 생명체, 의약품, 유전자, 소프트웨어, 사업방법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저작권은 소설, 그림, 음반 등 문화, 예술적 창작물에 대해 복제, 배포, 전송 등을 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별도의 등록 없이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부여되며, 창작자 사후 50년(법인저작물의 경우 공표 후 50년) 동안 배타적 독점권을 향유할 수 있다.

 

특허는 ‘산업’의 발전을, 저작권은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발명가나 창작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인센티브의 부여를 통해 발명과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특허권자나 저작권자의 권리를 무조건 강화한다고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는 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식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창작자의 창의성을 가미하여 생산되게 된다. 따라서 지식과 정보는 한편으로는 더욱 많이 이용되고 향유될수록 새로운 창작에 기여하게 된다. 더구나 유체물과 달리 지식과 정보는 그 속성상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고 해서 내가 향유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마치 하나의 촛불에서 다른 촛불로 불이 옮겨짐으로 해서 내 초의 불빛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간 전체의 밝기가 더욱 밝아지는 것처럼, 지식과 정보는 전파될수록 사회적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된다. 지식과 정보는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의 협력의 산물이며,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따라서 특허권자나 저작권자의 배타적 독점권을 지나치게 강화하게 되면, 오히려 지식과 정보의 전파와 향유를 위축시키게 되고, 결국 오히려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특허나 저작권 모두, 권리자의 독점권을 일정한 조건 하에 제한할 수 있는 장치를 자체 내에 가지고 있다. 우선 소유권과 달리 특허나 저작권은 ‘보호기간’을 두고 있다. 즉, 일정한 보호기간 이후에는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허의 경우, 국가 위급 상황이나 공중의 건강 보호와 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도 타인이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강제실시’라고 한다. 저작권의 경우, 교육, 언론보도, 재판, 도서관 등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공정이용’이라고 한다. 따라서 특허,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은 권리자의 배타적 독점권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독점권의 제한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산업과 문화 발전이라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현재 지적재산권은 지나치게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과 2005년에 개최되었던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은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가 과도하게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의 보장에 편향되어 있어, 이용자의 권리 및 공공성의 보장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변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지적재산권이 선진국의 이익에 편향되어 있음을 비판하며, 저개발 국가의 개발을 촉진하는데 복무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전 세계적인 지적재산권 강화의 이면에는 주요 지적재산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소수 거대 초국적 자본의 로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특허권의 대부분이 선진국에 기반한 소수 초국적 자본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전 세계 상위 10%의 제약사가 전체 제약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헐리우드는 전 세계 영화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비율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판매량 순위가 집계되는 음반의 약 80%를 상위 4개사가 독점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과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의 주도하여, 지적재산권의 전 세계적 통일화 시도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 세계무역기구 지적재산권협정(아래 WTO TRIPS)이다. 한국은 이미 WTO TRIPS를 비롯한 세계적인 주요 지적재산권 협정에 가입이 되어 있으며, 따라서 지적재산권 권리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국제 협정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전혀 낮은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TRIPS에서 규정한 것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이다. 미국은 WTO TRIPS와 같은 국제협정을 통해 자신의 요구에 맞도록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지역무역협정이나 FTA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이 처한 현실은 매우 다르다. 2002년 미국의 저작권 관련 산업(도서, 신문, 영화, 음악, 텔레비전 쇼, 컴퓨터프로그램 등)이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이며, 그 총액은 6266억 달러이다. 당시 한국의 GDP는 5469억 달러에 불과했다. 2006년 3월 세계무역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04년 한해에 지적재산권 로열티만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513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무역수지는 53.9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서비스 수지는 82억 달러 적자로 나타났고, 이 중 29억 달러 정도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로열티로 지급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지적재산권을 국제기준에 따라 강화했을 때 가장 손해 보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고 한다.

 

지적재산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지적재산권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한 사회의 산업이나 문화와 결부되어 있으며, 지적재산권 제도가 어떻게 규정되느냐는 그 사회의 산업과 문화, 또한 인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는 단지 외국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내 산업, 문화,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하여 자국의 필요에 맞게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국내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 협정이나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져왔다. 그야말로 미 의회가 만든 제도를 우리나라에 이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이슈 자체의 전문성 때문에, 지적재산권이 미칠 파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 적다는 점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인 양보의 위험성이 큰 영역이기도 하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는 한미 FTA에서 논의될 지적재산권 이슈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 사회적 영향을 제대로 알려내는데 노력할 계획이다. 다음 글부터는 한미 FTA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적재산권 분야 주요 쟁점과 그것이 미칠 영향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할 예정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antiropy@jinbo.net

 

* 관련자료 : 지적재산권 대책위에서 외교통상부에 제출한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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