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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한미 FTA 지적재산권 협상, 그것을 알려주마!

한미 자유무역협정(아래 FTA)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개방만이 살길’이라며 한미 FTA를 강행하려 하고 있지만, 농업, 영화, 보건의료, 교육 등 각 영역의 노동, 인권,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 FTA가 가져올 파국적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분야도 한미 FTA 협상에서 논의될 주요 영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농산물 개방이나 스크린쿼터 축소와 같은 문제와 달리, 지적재산권 분야는 쟁점이 무엇이고 어떠한 사회적 파급 효과를 불러올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적재산권은 특허, 저작권, 상표, 의장, 지리적 표시, 반도체 집적회로 배치설계, 영업비밀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공통적인 점은 무형의 지적 생산물로서 법률에 의해 권리자에게 배타적 독점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특허와 저작권이다.


특허는 획기적인 기술적 발명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특허청에서 발명을 심사하여 새롭고 진보적인 발명에 대해 ‘출원 후 20년 동안’ 배타적 독점권을 부여한다. 특허의 대상은 기계나 생산 방법에서부터, “태양아래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 하에, 생명체, 의약품, 유전자, 소프트웨어, 사업방법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저작권은 소설, 그림, 음반 등 문화, 예술적 창작물에 대해 복제, 배포, 전송 등을 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별도의 등록 없이 창작과 동시에 권리가 부여되며, 창작자 사후 50년(법인저작물의 경우 공표 후 50년) 동안 배타적 독점권을 향유할 수 있다.

 

특허는 ‘산업’의 발전을, 저작권은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 발명가나 창작자에게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인센티브의 부여를 통해 발명과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인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특허권자나 저작권자의 권리를 무조건 강화한다고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식과 정보는 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식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창작자의 창의성을 가미하여 생산되게 된다. 따라서 지식과 정보는 한편으로는 더욱 많이 이용되고 향유될수록 새로운 창작에 기여하게 된다. 더구나 유체물과 달리 지식과 정보는 그 속성상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고 해서 내가 향유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마치 하나의 촛불에서 다른 촛불로 불이 옮겨짐으로 해서 내 초의 불빛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간 전체의 밝기가 더욱 밝아지는 것처럼, 지식과 정보는 전파될수록 사회적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된다. 지식과 정보는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의 협력의 산물이며, 인류 공동의 자산이다.

 

따라서 특허권자나 저작권자의 배타적 독점권을 지나치게 강화하게 되면, 오히려 지식과 정보의 전파와 향유를 위축시키게 되고, 결국 오히려 산업과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특허나 저작권 모두, 권리자의 독점권을 일정한 조건 하에 제한할 수 있는 장치를 자체 내에 가지고 있다. 우선 소유권과 달리 특허나 저작권은 ‘보호기간’을 두고 있다. 즉, 일정한 보호기간 이후에는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특허의 경우, 국가 위급 상황이나 공중의 건강 보호와 같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도 타인이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강제실시’라고 한다. 저작권의 경우, 교육, 언론보도, 재판, 도서관 등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공정이용’이라고 한다. 따라서 특허,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은 권리자의 배타적 독점권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독점권의 제한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산업과 문화 발전이라는 제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가? 현재 지적재산권은 지나치게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과 2005년에 개최되었던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 대다수 시민사회단체들은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가 과도하게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의 보장에 편향되어 있어, 이용자의 권리 및 공공성의 보장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변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지적재산권이 선진국의 이익에 편향되어 있음을 비판하며, 저개발 국가의 개발을 촉진하는데 복무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전 세계적인 지적재산권 강화의 이면에는 주요 지적재산 권리를 독점하고 있는 소수 거대 초국적 자본의 로비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특허권의 대부분이 선진국에 기반한 소수 초국적 자본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전 세계 상위 10%의 제약사가 전체 제약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헐리우드는 전 세계 영화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비율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판매량 순위가 집계되는 음반의 약 80%를 상위 4개사가 독점하고 있다.

 

초국적 자본과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의 주도하여, 지적재산권의 전 세계적 통일화 시도의 결과 만들어진 것이 세계무역기구 지적재산권협정(아래 WTO TRIPS)이다. 한국은 이미 WTO TRIPS를 비롯한 세계적인 주요 지적재산권 협정에 가입이 되어 있으며, 따라서 지적재산권 권리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국제 협정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전혀 낮은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TRIPS에서 규정한 것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지적재산권 보호이다. 미국은 WTO TRIPS와 같은 국제협정을 통해 자신의 요구에 맞도록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여의치 않자 지역무역협정이나 FTA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이 처한 현실은 매우 다르다. 2002년 미국의 저작권 관련 산업(도서, 신문, 영화, 음악, 텔레비전 쇼, 컴퓨터프로그램 등)이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이며, 그 총액은 6266억 달러이다. 당시 한국의 GDP는 5469억 달러에 불과했다. 2006년 3월 세계무역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004년 한해에 지적재산권 로열티만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513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무역수지는 53.94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으나, 서비스 수지는 82억 달러 적자로 나타났고, 이 중 29억 달러 정도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로열티로 지급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지적재산권을 국제기준에 따라 강화했을 때 가장 손해 보는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고 한다.

 

지적재산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지적재산권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한 사회의 산업이나 문화와 결부되어 있으며, 지적재산권 제도가 어떻게 규정되느냐는 그 사회의 산업과 문화, 또한 인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는 단지 외국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내 산업, 문화, 사회적 조건 등을 고려하여 자국의 필요에 맞게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제도는 국내적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제 협정이나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져왔다. 그야말로 미 의회가 만든 제도를 우리나라에 이식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이슈 자체의 전문성 때문에, 지적재산권이 미칠 파장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중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 적다는 점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인 양보의 위험성이 큰 영역이기도 하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는 한미 FTA에서 논의될 지적재산권 이슈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그 사회적 영향을 제대로 알려내는데 노력할 계획이다. 다음 글부터는 한미 FTA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적재산권 분야 주요 쟁점과 그것이 미칠 영향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할 예정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정보공유연대 IPLeft 운영위원) / antiropy@jinbo.net

 

* 관련자료 : 지적재산권 대책위에서 외교통상부에 제출한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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