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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오면

꽃피는 봄이오면 (2004년 류장하)


#1. 최민식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열정' 이 말 외에는 더 찾기 힘들다. 그가 만들어내는 삶은 너무나 진실처럼 보인다. 그 속에 동화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영화는 나의 삶이 되어버린다. 언제나 영화속의 최민식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2. 옛날 그리고 겨울


 겨울은 매우 많이 힘든 시기를 표현하곤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는 또다시 옛날이라는 시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그것도 꽃피는 봄이오면 사람은 힘든 시기가 지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위해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현우에게 우연히 찾아든 도계중학교의 관악교사자리는 그가 엄마에게 말하던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싶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준 것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지만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온다. 그렇게 현우의 기나긴 겨울은 끝이 난다.



#3. 사랑


 3 가지의 사랑. 가족에게로의 사랑, 이성에게로의 사랑, 그리고 아이들에게로의 사랑. 현우는 내리사랑과 동시사랑과 치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동시사랑을 사랑할 수 없음을 내리사랑에게 풀어버리고 치사랑을 통해 내리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또 다시 동시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 이 3가지 사랑은 늘 동시에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의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현우가 배운 사랑은 우리가 이루고 싶어하는 사랑의 완결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현우가 깨닫는 순간 그는 3가지 사랑을 모두 얻게된다.

#4. 꿈


우리는 꿈을 가졌었다. 부모들도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들의 못남으로 인함이라기보다 그것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꿈이다. 우리의 꿈과 아이들의 꿈은 기억되고 이야기되지만 부모들의 꿈은 그렇지 않다.현우가 불현듯 엄마에게 물었던 '엄마 꿈은 뭐였어?' 라고 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되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고 그러다가 가정이 행복한 것이 꿈이었다고 그리고 현우가 잘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제나 우리 부모들의 꿈은 우리에게로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잃어야 할 것과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잃어도 괜찮은 것과 꿈을 이루지 못한다해도 잃지 말아야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5-1. 호감


 호감과 사랑은 다르다. 이미 사랑중에 있는 이들에게 호감은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더욱 안겨준다. 호감이 언제나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감은 곧잘 사랑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현우에게 있어서의 호감은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했던 상황에 다가온 도피처다. 그러한 도피처는 결국 호감에서 끝날 수 밖에 없다.

#5-2. 질투


 질투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그런 질투가 있기에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6-1. 내기억


 내가 오래동안 살았던 동네는 태백이다. 탄광촌.... 어쩌면 탄광촌이야기라는 것이 나를 이영화로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잠깐 나오는 거리의 모습들과 익숙한 탄광의 모습...그리고 그 속에 있는 광부들...떠나온 곳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에게 잠시 잠깐 추억을 전해주었다. 어느덧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던 그곳을 다시 나의 기억속에 담아주는 장면들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인지 화를 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가슴은 아련하게 저려온다.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읽을려고 한다면 감독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개인의 사적경험은 이 영화에서 사적인 말을 한다.


#6-2. 떠나는 이와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태백을 떠나면서 난 훨훨 날고 싶었다.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도시에서 느낀 것들은 허전함과 외로움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떠나는 이였다. 그런데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가끔 아주 가끔 찾아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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