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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호치민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다이옥신 고통' 이다.
<dinh ru(1937), Dioxide Pain, 1991>
'밑으로만 떨어지는 아이를 차마 볼 수 없는 건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보지 않는 것인지'
#1. 다이옥신.
베트남전쟁 아니 항미전쟁 당시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를 구분없이 많은 고엽제가 살포되었다.
많은 고엽제 종류 중 오렌지색 띠를 두루고 있는 Agent Orange 가 가장 많이 살포되고 가장 독성이 강해 보통 고엽제를 Agent Orange라 쓰기도 한다.
문제는 그 고엽제 속에 포함된 다이옥신(Dioxin)이다.
청산가리의 1,000배 정도의 독성을 가지고 있고, 체내에 축적되고, 유전이 되는 물질. 바로 다이옥신이다.
다이옥신은 그 반감기가 토양에서 길게는 약 100여년이 된다고 한다.
#2. 유전.
고엽제(다이옥신)에 노출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비율이 일반인의 20배를 넘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의학적으로 밝혀진 건 아직 부족하다. 최근 몇 년전 이에 대한 보고서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전에는 고엽제 속 다이옥신과 장애아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 더 많았다고 한다)
#3. 중부지역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에선 공식적 전쟁이 끝났다.
그 공식적 전쟁이 끝난 지 35년이 지난 현재.
베트남 중부지역에서 전쟁은 계속 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전쟁은 되물림 되고 있었다.
#4. 관광지역
베트남은 전쟁과 관련된 관광상품이 많다.
0 전쟁박물관 - 전쟁기념관이 아니다- 전쟁의 잔혹함과 미국의 잔인함을 함께 알리고자 하는 곳.(한국의 전쟁기념관은 진짜 전쟁을 기념하는 기념관인 반면, 베트남의 박물관은 전쟁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시해 놓은 전투기와 장갑차와 무기류에 관심을 더 보이기도 한다. ㅠ)
0 구찌터널/ 빈목터널 - 미국을 이길 수 있었던 터널로 자랑스럽게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꾸찌터널의 경우, 마지막에. 사격을 할 수 있게 했다.(이건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0 곳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들 - 그냥 내버려 둔 것인지, 내버려 둘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베트남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계속 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고통과 아픔으로
어른들에게 돈 벌이로
정부에게 인민 단합의 도구, 민족 자긍심 고취 도구로
그리고 전쟁 때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추억(?)의 도구로.
<호치민시립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베트남에서 규모가 가장 큰 참전군인묘지>
-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참배를 하고 간다. 내가 찾아갔던 날도 어느 한 단체에서 찾아와 대부분의 묘에 향을 피우며 절하고 있었다.
- 누구인지 모르는 비석 앞에, 그리고 향이 조금밖에 없는 묘에...
얼마전.
안드로메다가.사람들에게.발견되었다는.소식이.있었다.
아.이런.
안드로메다가.지구화가.되는날이.곧.오겠군.
결국.지금의.지구.
황폐함.이.
안드로메다에.퍼지겠군.
안드로메다.에.사람들이.갈.수없게.하는.방법이.없을까?
<바닷가엔 기다림이 많다. 2010 여름, 베트남 호이안 바닷가>
2010년 여름.
베트남 중부지역을 다녀왔다.
아이들을 만나고 왔다.
'반성하지 않는 과거는 다시 반복된다. 아니 더 진화해서 반복된다'
'남의 잘못은 10개가 보이지만, 나의 잘못은 1개만 보인다'
- 2010년 여름, 베트남 중부지역을 다녀오면서 했던 생각
인물로 읽는 세계사
호치민
다나 로이드 지음
김기연 옮김
대현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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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베트남 사람들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을 사악한 것이라 믿었다. 각 가정은 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도의 땅만을 소유했다. 그 외에는 마을 전체의 복지를 위해 공동 작업을 벌였다. 따라서 그들은 기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경쟁관계가 아니라 협동과 공동분배를 기초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25~26쪽.
1884년 이전, 그러니까 프랑스인들이 확고하게 그들의 식민지 인도차이나를 건설하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은 읽고 쓸 줄을 알았다. 그들은 예로부터 중국의 한자를 정식문자로 쓰고 있었으나 동시에 한자의 자형을 응용하여 새로운 민족 문자를 고안한 후 이것을 한자와 혼용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고, 또한 통일 베트남을 세 지역으로 나눈 이후로는 새로운 공식 베트남어가 프랑스에 의해 제정, 강요되었다. -중략- 이 새로운 로마 문자의 체계를 '쿽구'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조치는 오히려 대부분의 시골 농부로 하여금 그 새로운 언어를 읽고 쓰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했다. 그리하여 점차 사회의 계급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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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각도 있다.는.거.
한줌의 평화
매우 작지만 소중한 그 두번째 발걸음을 4월 11일. #1. 평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의 소극적의미에서 전쟁 후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포함하는 적극적의미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과거의 잘못이 있다면, 진정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아픈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아도록 하는 것 또한 평화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2. 한줌의 평화 "평화는 저 멀리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내 옆, 내 일상 속에 존재합니다.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지만 매우 소중한 평화 한줌의 평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 바로 그 평화 실천의 시작입니다. 함께하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평화 그 평화를 함께하지 않으시렵니까?" #3. Victim of Agent Orange. 현대 냉전시기이 대표적인 전쟁 중 하나인 베트남전쟁. 그 기간동안 살포된 많은 고엽제. 그 고엽제에 포함되어 있는 다이옥신. 담은 통의 모양을 보고 붙여진 이름. Agent Orange. 그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단어. 슬로우 불릿. 이 모든 단어들. 그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 #3-1. Quang Tri Province. 2,220명 중 1,010명이 16세 미만의 어린이들. 1,010명 중 90여명만이 재활치료를. 그런데, 그 치료라는게. 마.사.지. 정도. 그나마 그 마사지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가 91%인 920여명. 지금!! 베트남 중부의 한 지역 모습입니다. #4. 어린이를 위한 재활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걷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다리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http://www.medipeace.org/bbs/board.php?bo_table=ing_campaign&wr_id=433
한줌의 평화. 아는 이의 부모님이 사용하신 단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그 단어. 한줌의 평화 매우 작지만 소중한 그 첫 발걸음을 뗐다. 3월 13일. #1. 평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의 소극적의미에서 전쟁 후 피해자의 상처 치유를 포함하는 적극적의미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과거의 잘못이 있다면, 진정으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아픈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아도록 하는 것 또한 평화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2. 한줌의 평화 "평화는 저 멀리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내 옆, 내 일상 속에 존재합니다.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지만 매우 소중한 평화 한줌의 평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이 바로 그 평화 실천의 시작입니다. 함께하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평화 그 평화를 함께하지 않으시렵니까?" #3. Victim of Agent Orange. 현대 냉전시기이 대표적인 전쟁 중 하나인 베트남전쟁. 그 기간동안 살포된 많은 고엽제. 그 고엽제에 포함되어 있는 다이옥신. 담은 통의 모양을 보고 붙여진 이름. Agent Orange. 그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단어. 슬로우 불릿. 이 모든 단어들. 그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 #3-1. Quang Tri Province. 2,220명 중 1,010명이 16세 미만의 어린이들. 1,010명 중 90여명만이 재활치료를. 그런데, 그 치료라는게. 마.사.지. 정도. 그나마 그 마사지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가 91%인 920여명. 지금!! 베트남 중부의 한 지역 모습입니다.
여긴 비엣남 호치민시 강변 어느 아파트 3층.
밑 공터에서 재잘거리며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혼자 열심히 떠들고 있는 텔레비젼.
피곤에 지쳐 잠이 든 이와 그이에게 바람을 전해주는 선풍기.
그리고 할 일 없이 멍.때리고. 있는 나.
시내는 아마 인산인해! 텔레비전에서 생방송으로 보여주고..
그나마 호치민이라 이정도라고. 하.노.이 는?
새해가 곧 시작되는데.
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 회의를 느끼며.
그래도. 한 번 더 내가 양보하고 참아야할 필요성도 있을꺼라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걸 뒤로 하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순간인 지금.
동치미님의 [노동영화제 다녀왔다. ] 에 관련된 글.
너무 가고싶었다. 베트남에서 온 workers dream을 보고 싶었다.
혹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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