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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놀 4권- 권력의지의 등장.

 

힘, 권력에 대한 사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니체는 나폴레옹을 고대적 인간형으로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충동을 끝까지 사유했으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해서 냉정하면서도 자랑스럽게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힘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결점을 넘어서, 자신의 약점에 스스로 복수할 수 있었다. 힘을 인식하는 사람은 삶의 입법자가 될 수 있다. 감정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천둥과 번개를 활용해 이 감정에 복수하고 활용한다. 자신의 힘을 조절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여하며 지배자로서의 자신을 즐긴다.


이러한 힘은 사실 인류 진화의 동력이다. 인간의 삶은 힘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인간에게 건강, 음식, 주택과 같은 것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는 불행하고 불만스러울 것이다. 마력, 삶을 잡아끄는 마력, 힘의 마력이 채워지지 않는 한 그는 늘 공허하다. 니체에게 ‘힘’이 인간 욕망을 규정하는 키포인트다. 인간의 욕망은 그 사람이 갖고 힘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떤 욕망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가가 그 사람의 어떤 힘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힘의 감정을 통해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인간에 정통한 자의 오락은 무엇인가?


“그가 나와 이런저런 교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이 품위 있고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내가 그에게 우월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그가 지금 내게 호의를 갖고 있는데, 내가 그를 실망시키게 되면 나는 그것을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는 내가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때문에 자신이 비천해졌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차갑고 분명하지 않게 행동하며 그 자신에 대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자 함으로써 나에 대한 우월을 확보하고자 한다.”


두 부류의 사람. 한 사람은 순진하다. 그러나 순진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판단 능력이 없음. 혹은 지혜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나? 그는 사유하지 않기에 쉽게 다른 사람의 욕망의 포로가 된다. 사유하는 자, 지혜로운 자, 그리고 무수한 가면을 자유롭게 쓰는 자는 관계의 게임을 즐긴다. 그에게 타자와의 만남은 오락이다. 그는 이 오락을 즐기고 유쾌해진다.


그렇다면 이 순진한 자는 어떻게 지혜로울 수 있을까? 어떻게? 니체는 일단 절대 의사 없이 살아갈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병자가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볼 경우에 그는 저 지시가 목표로하는 건강을 의사의 권유에 따라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주시하고 훨씬 더 주의하며 훨씬 더 많은 것을 자신에게 명령하고 금”하기 때문이다. 의사의 처방은 사람을 더 경솔하게 만든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 이런 사람만이 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즉 힘의 감정을 소유하고 싶은 자는 “모든 수단을 호소하며 그 감정을 길러줄 수 있는 어떤 것도 경멸하지 않는다.” 물론 힘의 감정을 획득하는 순간 그 자신이 매우 까다롭게 되어 이런 것에 만족하지 않을 테지만.


사실 힘의 감정은 행복감의 표현이다. 힘의 감정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든 다른 인간에 대해서든 표상에 대해서든 상상의 존재에 대해서든 이러한 힘의 감정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니체에 의하면 힘의 표현은 “선물을 주는 것, 조롱하는 것, 파괴하는 것”이다. 힘을 의식하는 자는 자신의 힘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대의 사상에 반대될 수 있는 그 어떤 생각이든 억누르지 말고 그대 자신에게 침묵하지 말라! 이것을 맹세하라! 그것은 사유의 첫 번째 정직성에 속한다. 그대는 매일 그대 자신에 대한 투쟁을 감행해야 한다. 승리와 진지를 정복하는 것은 더 이상 그대의 일이 아니다. 오리혀 진리의 일이다. 그러나 그대의 패배 역시 더 이상 그대의 일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투쟁, 사유를 억제하지 않는 것. 사냥은 포획물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냥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우리에게 투쟁에서 승리와 패배는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니다. 계속하는 자는 승패에 떠나 있는 자이다. 단지 피곤하고 힘들 때는 그저 많이 자면 될 뿐이다. 그대로의 의미이든 비유적인 의미이든. 그러면 다시 아침을 맞게 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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