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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5
    키치란 무엇인가
  2. 2008/11/15
    키치

키치란 무엇인가

1. 키치란 무엇인가? - 부경대 김선화 교수님 강의 요약
 
키치kitsch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영어의 스케치sketch, 혹은 `진흙을 문대며 논다' 는 의미의 독일어 동사 키췐kitchen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미술의 철학적 의미를 묻는 K. 해리스의 주장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리스가 언급한 것처럼 키치의 어원에 대한 이론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밖에도 '값싸게 만들다' 라는 메클렌부르크 방언 verkitschen에서 유래했다는 이론, '건방지고 우쭐대는 것'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동사keetcheetsya에서 유래했다는 이론 등이 있답니다.
 
이들 어원에 대한 내용들로부터 우리는 '키치' 라는 용어가 진지함과는 거리를 갖는 가볍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부정적 의미를 갖는 그 무엇으로 키치를 보고자 하는 태도는 최근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키치는 저속하고 감상적인 것으로 참된 예술에 비해 저급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답니다.
 
키치 논의에서 제외될 수 없는 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 Clement Greenberg는 "참된 문화의 가치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특정 문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代用 문화가 곧 키치"라는 말로 키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답니다. 그에게 있어서 키치는 참된 문화의 가치에 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지요. 그것은 가볍고 말초적입니다. 실제로 그는 키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키치, 그것은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과 원색 화보가 있는 문학지, 잡지의 표지, 삽화, 광고, 호화판 잡지나 선정적인 싸구려 잡지, 만화, 유행가, 탭 댄스, 할리우드의 영화를 말한다.
 
그는 키치를 속임수, 술책, 어림짐작 등의 부정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고, 오늘날 대중문화라고 불려지는 것들을 그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의 참된 문화란 순수예술과 같은 고급문화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헝가리 태생의 예술사가인 아놀드 하우저 Arnold Houser 또한 그의 '예술의 사회사'에서 통속예술에 대한 논의 중에 "키치가 내세우는 요구들이 아무리 고상한 것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키치는 사이비 예술인 것이며, 달콤하고 싸구려 형식을 갖춘 예술이고, 위조되고 기만적인 현실 묘사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키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우저의 시각은 그린버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그가 주장하는 참된 문화에 이르지 못하는 것들을 부정하는 용어로 키치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키치는 부정적인 산물로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사라져야 할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키치는 말하자면 어떤 것의 본질이 아닌 효과에 관심을 보입니다. 효과에 대한 관심은 '효과 모방' 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행위를 수반한 태도로서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산물로도 실제화됩니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유명한 소설가이자 기호학자)는 키치적 산물에 내재한 효과 모방의 심리에 대해 "키치는 오히려 미학적 체험이라는 외투를 걸친 채 예술이라도 되는 양 야바위치면서 전혀 이질적인 체험을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감각을 자극하려는 목표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작품을 가리킨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예술의 효과를 모방하는 키치적 산물을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산물의 제작과 소비과정에 관계하는 인간의 심리 또한 효과 모방임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키치를 삶에서 인간의 심리와 관계시키는 또 다른 견해는 아브라함 몰르Abraham Moles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키치는 의미의 윤곽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외연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한층 본능적인 심층에까지 도달하는 '내포적인' 현상입니다. 키치란 먼저 인간이 사물과 맺는 관계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지요.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관계 내지는 하나의 양식을 키치로 이해하기보다는, 인간존재 방식의 한 유형을 키치로 이해하는 것이 키치에 대한 더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몰르는 구체적 대상으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주체들이 사물과 맺는 관계방식으로 키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키치 이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키치를 특정한 시대에만 드러나는 양식이 아닌 대상과 인간이 관계하는 하나의 존재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그의 시각은 키치란 것이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인간은 잠시도 사물과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초기부터 사물을 사용하였고, 이것은 인간을 여타의 동물로부터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 몰르는 계속하여 "키치란 일종의 특수한 사회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회적 기능이 사물 그 자체의 사용기능에 부과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키치의 사회적 성격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사물이 자체의 사용기능뿐 아니라 사회적 기능 또한 갖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사물의 본래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사회적 기능이 첨가되는 곳에서 키치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사물이 맺는 하나의 관계방식으로 키치를 언급한 앞서의 내용과 동일한 맥락을 형성하고 있지요. 키치가 사회적 기능과 관계한다는 점은 키치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랍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키치가 대상 자체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키치의 사회적 성격은 우나미 아키라Unami Akia의 논의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사회 내에서 어떤 것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키치, 혹은 키치적 내용들을 취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답니다.

오늘날 키치를 통해 사회 내에서 존재가치를 확인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인 것입니다. 디자인을 시대정신으로 파악하고 있는 우나미 아키라는 예술에 국한되어 왔던 키치 논의를 오늘날의 상품 및 사회현상으로 끌어올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우나미 아키라의 논의에서 키치가 가지는 사회성 이외에 또 하나의 속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키치가 여러 요소의 결합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키치적 산물에서 볼 수 있는 유치함은 이러한 중층적 결합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층성은 키치의 형식상의 특성일 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특징이기도 하답니다. 실제로 앞서 아브라함 몰르가 사물 그 자체의 사용기능에 사회적 기능이 부과되어 키치가 존재한다고 본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중층성中層性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치가 연출하는 묘한 분위기는 이러한 잡탕찌개같은 중층성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그린버그나 아놀드 하우저등은 매우 부정적인 입장에서 키치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키치라는 용어를 그들이 가정하고 있는 문화적 내용에 포함될 수 없는 것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서 사용하고 있답니다.
 
이와는 달리 아브라함 몰르나 우나미 아키라의 논의들은 키치를 단순히 부정적이고 저속한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부정적 인 것으로 간주되는 키치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회적 삶과의 관계에서 키치를 이해하고자 함으로써 대상과 관계하는 인간 심리의 심층적인 부분으로까지 그 관심을 확대하고 있지요.
 
이는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가치 판단을 잠시 미루고 그 내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논의들로부터 내용상으로 키치가  통속적인 사회현상으로 진품적 가치나 효과를 모방하는 태도와 그러한 산물임을 알 수 있었죠.
 
어떤 것의 가치나 효과를 모방하는 것은 인간 존재방식의 하나의 유형으로 사회적 기능이 사물, 혹은 소비과정에 부과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키치는 예술에 국한된 현상이라기보다는 모든 인공물과 관계하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키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합된 중층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이는 구체적 산물뿐만 아니라 키치적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결합되는 내용들은 서로 관계를 가질 수도 있지만 서로 이질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키치는 순수함과는 다른 차원에 위치합니다. 이것이기도 하면서 저것이기도 한 복합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키치는 실제의 모습을 가리거나 왜곡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현실의 모습을 과장하거나 장식, 혹은 변형을 통해 사회 내에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주체들의 정서들을 자극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2. 키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가?
 
최근까지의 많은 논의들은 키치를 통속적 결과물로만 간주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몰르등의 키치에 대한 논의를 통해 우리는 키치가 단순히 구체적인 산물로 나타나는 명사적 의미 뿐만 아니라 행위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동사적 의미 또한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핵심은 키치가 단순히 일부 예술작품들이나 인공물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을 대할 때 나타나는 심리나 태도까지를 포섭하는 개념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키치를 산물로서만 다루거나, 혹은 태도로서만 분석하는 일방적인 접근은 편협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키치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산물로서의 키치의 모습과 태도로서의 키치를 모두 다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키치는 인공물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산물로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태도로서도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태도로서의 키치

"프랑스사람에게 있어서의 키치가 발리섬 주민에게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아브라함 몰르의 통찰은 키치가 산물 자체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기보다는 판단주체 의식의 존재방식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답니다.
 
즉 동일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상황, 어떠한 시각으로 그것을 보느냐에 따라 키치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키치가 대상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이 말의 뜻은 한번 키치는 영원한 키치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항상 목적과 맥락에 의해 대상은 키치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키치가 인간과 사물과의 하나의 관계방식에 따라 정의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에 대한 하나의 관계방식으로서 키치를 보는 입장은 아브라함 몰르의 주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방식을 7가지 유형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 키치적 유형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는 키치적 태도를  인간과 사물의 관계 유형들(금욕적 유형, 쾌락주의적 유형, 공격적 유형, 소유욕의 유형, 초현실주의적 유형, 기능주의적 유형)이 하나의 독특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인간과 사물이 관계하는 다양한 방식 중 각각의 관계방식이 동시에 섞여 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키치적 관계방식인 것입니다.  이러한 키치적 관계방식은 사물을 순수한 존재가 아닌 중층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진품적 가치의 모방, 사회적 가치의 포함 등을 특징으로 하는 키치적 태도는 따라서 하나의 순수한 관계방식을 거부하게 됩니다. 만일 인간이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 대상의 실제적 존재가치에 덧붙여진 다른 중층적 가치들을 동시에 소비하고 있다면 이는 키치적 성격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삶에서 대상의 본래적 가치 이외에 다른 덧붙여진 가치들을 소비하려는 존재를 헤르만 브로흐 Hermann Broch는 '키치인간'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키치인간이란 "키치가 아닌 작품들, 또는 상황들조차 키치로 경험하려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백만장자의 가정용 엘리베이터 안에 걸린 진짜 렘브란트 그림은 틀림없는 키치다"라는 M. 칼리니스쿠의 말은 렘브란트 그림을 키치적으로 소비하는 키치 인간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짜 렘브란트 그림을 엘리베이터 안에 건 백만장자의 행위에서 우리는 자신의 부와 고급 취미를 과시하기 위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렘브란트 그림을 예술적 대상으로서만이 아니라 부를 드러내기 위한, 혹은 자신의 취미를 드러내기 위한 이차적 의미로도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사회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데, 태도로서의 키치는 이러한 사회적 욕망과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답니다. 키치적 소비는결핍된 정서를 채워줌으로써 이러한 욕망을 해소시켜 줍니다.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이러한 키치 인간적 속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자체가 모순을 포함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욕망하고 변화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물과의 관계에서 키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지요.
 
 
4. 산물로서의 키치
 
제니 샤프 Jenny Sharp가 "키치는 이 나라 대다수의 사람이 가지고 살기 원하는 값싸고, 천박하고, 감상적이고, 허접쓰레기 같고, 예쁘고, 귀여운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의 키치는 산물을 의미합니다.
 
즉 산물로서 구체화되는 키치는 나름대로의 형식과 내용에서 키치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산물로서의 키치를 만드는 구성원리를 아브라함 몰르는 엔겔하르트 Engelhardt와 킬리 Killy등의 도움을 받아 다음 다섯 가지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첫째, 부적합성의 원리 : 본래의 목적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형태, 크기, 형식적 내용 등이 부적절하게 결합되는 것.

둘째, 축적의 원리 : 형식, 내용, 기능 등의 밀집을 통해 스스로를 눈에 띄게 하는 것.

셋째, 공감각의 원리 : 다양한 감각 영역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

넷째, 중용의 원리 :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는 이질적인 것들을 혼합하여 집단적 표준화라는 중간적 위치로 위치 시키는 것.

다섯째, 쾌적함의 원리 : '편안하게 살자'는 사고방식으로 사물의 성격을 놀이에 가깝게 마구잡이식으로 선택한것.
 
실제 산물로서의 키치는 아브라함 몰르가 제시한 키치의 구성원리들이 몇 개씩 서로 결합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키치적 산물들은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결합되었다기보다는 그 축적 자체를 통해 발생하는 효과에 관심을 보입니다. 이것은 부적합한 내용들을 스스로 밀집시킴으로써 시선을 유도하고 정서를 자극하는 키치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키치 산물들을 공통된 하나의 분류체계로 유형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는 키치적 인공물이 갖는 복합적 성격 이외에도 산물로서의 키치를 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고 그러한 관점에 의해 분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키치적 태도는 많은 부분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이는 그 대상의 형식에도 반영되기 때문에 키치적 산물은 다수가 소비과정에서 수용자의 특정 정서를 자극하거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산물로서의 키치는 키치적 태도가 대상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키치에 대한 이해는 산물로서의 키치 뿐만 아니라 태도로서의 키치를 포함한 종합적 고찰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사물 자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러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키치가 사회·문화적 내용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키치의 이해는 대상과 태도를 통해 사회·문화적인 관계들의 내용 및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키치와 팝 아트
 
키치적 산물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예술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팝 아트Pop Art는 그 대표적인 예로 그것의 외형적인 이미지는 키치적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인해 팝 아트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혐오와 거부로 요약됩니다.
 
팝 아트에 대한 거부반응은 20세기 후반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라 불리는 뉴욕에서 더욱 심했습니다. "당시 뉴욕은 추상표현주의가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팝 아트가 가지는 키치적 이미지에 대한 거부는 당연한 결과였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팝 아트는 외형적으로 유사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 본질에 있어서는 키치와 다른 맥락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키치의 주된 동인이 고급문화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그것의 실제적 가치를 모방하는 심리적 태도에 있는 반면, 팝 아트는 추상표현주의의 순수주의에 대한 비평적 노력의 일환으로 대중문화가 취하는 방법적인 면과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팝 아트는 당시 예술이 보여준 고답적인 태도에 대한 자체 반성적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키치가 갖는 심리적 절실함과는 달리 상대적 여유가 존재합니다. 로즈메리 람버트 Rosemary Lambert는 "40년대 학생이었던 화가들이 60년대에 들어 추상표현주의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들은 영화기법, 텔레비전 광고, 신문과 잡지를 이용하여 일상 사물들의 이미지를 표출하는 방법을 고안하였고 이것이 팝 아트"라고 팝 아트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는 팝 아트의 성격을 "대중적인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문맥 안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의 활동"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로즈메리 람버트가 말하는 '일상 사물의 이미지', 그리고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가 이야기한 '대중적인 이미지' 라는 것은 일찍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키치라고 비난했던 통속적인 대중문화의 산물들로 고급문화가 배척 해 왔던 부분이었죠.
 
결국 팝 아트는 추상표현주의와 가장 반대에 위치한 대중적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의 순수주의에 대하여 비평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그린버그적 의미의 키치를 고급문화의 문맥 안으로 역류시키려는 노력으로 이해됩니다.
 
이전에 예술적 가치는 고사하고 눈여겨 볼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들-각종 광고, 신문, 잡지의 삽화, 타임스의 웃음거리, 몰취미한 골동품, 저속하게 화려한 가구, 일상의 의복과 음식물, 영화 스타, 핀 업 사진, 만화 등-이 이제 예술이라는 고상한 것의 소재로 사용되게 된 것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팝 아트의 작품들이 일상적인 대중적 삶의 모습속에서 소재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곧 예술이 대중 속으로 스며들고 대중들의 삶과 연결됨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팝 아트의 일차적 관심은 대중문화로부터 차용된 이미지를 통해 예술을 비평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차용된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이 고급예술의 체계 속에 자리잡게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술의 영역은 마치 블랙홀처럼 그것마저 자신의 체계로 흡수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가능한 것은 예술이라는 것이 본질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외부적인 힘의 변화에 의해 상대적으로 정의되는 열린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조지 디키 George Dickie는 '예술계' 라는 개념을 통해 예술의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그의 요지는 '예술계가 예술로 인정한 것이 바로 예술' 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힘을 예술계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그에 따르면 "예술계는 예술을 낳고, 예술은 예술계를 낳고, 예술계는 다시 예술을 낳고...가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순환이 아니랍니다. 오늘의 예술계는 어제의 예술계가 아니며, 오늘의 예술 또한 어제의 예술이 아닙니다. 영원한 예술작품도 또한 영원한 키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술 체계가 갖는 상대적 특성에 대하여 넬슨 굿맨N. Goodman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우리가 처한 어려움은 잘못된 물음에 답하려 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예술작품이 되지만, 또 다른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보다는 "어떤 것이 언제 예술작품이 되는가?", 간단히 말해 "언제 예술인가?"라는 물음이 적절한 것이다. ... 길가의 돌멩이는 예술작품이 아니지만 미술관에 전시될 때는 예술작품이 된다.
 
굿맨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예술은 상대적으로 정의되는 것으로 그것이 예술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대상 자체의 속성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변기를 고급예술의 면전에 던진 것은 예술을 부정하는 냉소주의적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체계는 그 변기마저도 예술로 만들어 버렸답니다. 이제 그 변기는 여타의 다른 예술처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팝 아트는 키치적 소재를 차용한 예술로서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심리는 키치와 반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즉 키치가 고급예술의 효과를 모방하는 위에서 아래로의 흐름이라면 팝 아트는 통속적인 대중문화를 소재로 추상표현주의를 비평하는 아래에서 위로의 흐름인 것입니다.
 
팝 아트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팝 아트에는 기존 예술의 엄격함에 대하여 비평적 거리를 두고자 하는 전략이 숨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 위에서 아래의 것을 끌어올려 위를 비평하는 노력입니다.
 
반면 키치는 어떤 장애로 인해 위에 도달하지 못한 결여를 실제적 가치의 모방을 통해 위안을 얻고자 하는 노력과 관계하는 것으로서 아래에 있으면서 위의 것을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팝 아트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통한 그들의 비평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급예술의 위치에 남아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팝 아트는 키치와 다르다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팝 아트와 키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다음 두 가지일 것이다. 팝의 외형적 이미지(그림1), 그리고 뒤샹의 변기(그림2)가 예술이 되는 과정과 효과를 모방했다는 점.. 
 
              
       그림1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림2.  마르셀 뒤샹의 <샘>
                                                                   
 
 
6. 키치와 취미
 
피터 워드Peter Ward는  "키치를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는 것은 취미 taste의 개념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취미는 키치 이해의 핵심인 셈이지요. 일반적으로 취미는 개인적 감수성의 영역으로서 대상에 대한 개인적 선호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이 드러나는 공간이 사회이고, 의도되었든 아니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개인의 위치를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을 때, 개인적 차원의 영역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취미는 사회학적 용어로는 취향이라고 불리는데,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 Bourdieu는 이러한 취향이 사회 내에서의 구별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취향은 구분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합니다. 다양한 분류법에 의해 구분되는 사회적 주체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탁월한 것과 천박한 것을 구별함으로써 스스로의 탁월함을 드러내며, 이 과정에서 각 주체가 객관적 분류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표현되고 드러나게 됩니다.
 
개인의 취향은 사회 내에서 구체적 대상, 혹은 삶의 방식의 선호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선호되는 대상 및 삶의 방식들은 사회 내에서 특정한 의미들을 발산하고, 그것은 사회 내에서 주체가 자리한 위치로 타자에 의해 읽혀집니다.
 
그러므로 취향이 삶에서 실제화되는 순간 그것은 주체를 정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 내에서 취향은 특정한 매너로, 혹은 특정 사물의 소비로 구체화 됩니다. 각각의 다른 취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실제화의 모습들은 사회 내에서 서로를 구별짓게 되며 취향이 사회 내에서 하나의 구별짓기 요소로 사용된다는 것은 앞서도 보았듯이 개인적 선호라는 사적인 영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취향은 사회적입니다. 취향이 사회학적 용어라면 취미는 사실 미학적 용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자네트 월프Janet Wolff는 미적 경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의식범주로서의 그것(미적 경험)의 현상학적 지위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것의 실제 작용에 있어서, 그것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사회적 실존의 경험적, 이데올로기적 특성들에 의해 철저하게 침투 당해 있는 것이다.
 
자네트 월프의 주장에 의하면 순수한 마음의 상태에서의 대상에 대한 평가는 실제 삶에서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계는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개개의 경험들이 통로를 이루고 그러한 통로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적 경험을 포함한 모든 경험은 순수한 마음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주체가 지나온 경험들의 통로와 경험이 이루어지는 상황, 경험 시간, 타자 등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 경험, 사회 문화적 상황 등의 총체적 영향 요인에 의해 형성된 인식임과 동시에 판단 순간 이루어진 인식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일체의 관심에서 벗어난 순수한 마음의 상태에서만이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가정은 이런 의미에서 실재하지 않는 이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취미에 대한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고급문화의 주장 또한 실제와 거리를 갖는 이상적인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고급문화가 사회 내에서 존재하는 일정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문화 자체의 본질적인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한답니다.
 
이데올로기는 특정 집단에 의해 부각되는 조직적인 사고체계로 눈가림이나 왜곡, 은폐를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왜곡하려는 계급은 스스로를 사고의 주입자로 생각하지 않으며, 주입 당하는 입장에서도 그것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힘이 작용하는 공간에서 고급문화의 소비계층은 취미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사회 속에서 구별지으려 합니다. 그들이 키치를 부정하는 것은 키치가 그들의 구별짓기 기호를 소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키치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취미를 드러내는 구별짓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취미는 개인적인 선호(選好)의 의미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미 그것은 사회 문화적 관계에 의해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사회적 성질의 것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저급과 고급의 분리가 상층계급의 차별화 전략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분은 실제 삶에서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즉 문화적 서열에서 고급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상층계급은 하층계급과 다른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정당화하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대중문화는 고급문화라고 결정된 것 이외의 문화를 모아놓은 것으로, 고급문화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통과하지 못한 나머지 문화적 텍스트와 실천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구분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상층계급이 고급문화만을 소비하려 하더라도 그들에게 대중문화의 소비는 피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구분이 이미 보았듯이 본질적 내용(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에 의해서가 아닌 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대중문화의 내용 자체가 인간의 본성이 반영된 하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삶에서 고급문화의 소비자들은 대중문화를 소비합니다. 어빙 호우 I. Howe는 "고급문화가 경멸하는 대중문화란 우리가 아무리 경멸한다 할지라도 숨을 쉬기 위해서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모두 호흡하며 사는 문화적 대기권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는 위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고급문화를 대중문화보다 비교우위에 두고 고급문화의 입장에서 대중문화를 경멸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키치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지금껏 키치는 대중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정의되어왔습니다. 따라서 키치 또한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고급문화와 상대되는 저급하고 불순한 그 무엇으로 정의되어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반성을 필요로 하며 이는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구분자체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키치에 대한 부정적 판단 또한 이데올로기적인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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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Kit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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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sch /kɪtʃ/ is a term of German or Yiddish origin that has been used to categorize art that is considered an inferior, tasteless copy of an existing style. The term is also used more loosely in referring to any art that is pretentious to the point of being in bad taste, and also commercially produced items that are considered trite or crass.

Because the word was brought into use as a response to a large amount of art in the 19th century where the aesthetic of art work was associated with a sense of exaggerated sentimentality or melodrama, kitsch is most closely associated with art that is sentimental; however, it can be used to refer to any type of art that is deficient for similar reasons—whether it tries to appear sentimental, glamorous, theatrical, or creative, kitsch is said to be a gesture imitative of the superficial appearances of art. It is often said that kitsch relies on merely repeating convention and formula, lacking the sense of creativity and originality displayed in genuine art.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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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 History

Though its precise etymology is uncertain, it is widely held that the word originated in the Munich art markets of the 1860s and '70s, used to describe cheap, hotly marketable pictures or sketches [1] (the English term mispronounced by Germans, or elided with the German dialect verb kitschen that originally meant "to scrape up mud from the street" or "to smear"). In "Das Buch vom Kitsch", Hans Reimann refers to kitsch as a professional expression "born in a painter's studio". A writer like Edward Koelwel rejects that Kitsch is derived from the English word "sketch", pointing to how the sketch was still not in vogue. He argues that Kitsch pictures quite the contrary were highly finished paintings (See "References and further reading"). Kitsch appealed to the crass tastes of the newly moneyed Munich bourgeoisie who allegedly thought they could achieve the status they envied in the traditional class of cultural elites by aping, however clumsily, the most apparent features of their cultural habits.

The word eventually came to mean "a slapping together" (of a work of art). Kitsch became defined as an aesthetically impoverished object of shoddy production, meant more to identify the consumer with a newly acquired class status than to invoke a genuine aesthetic response. Kitsch was considered aesthetically impoverished and morally dubious, and to have sacrificed aesthetic life to a pantomime of aesthetic life, usually, but not always, in the interest of signalling one's class status.

However, there is a philosophical background to kitsch criticism which is largely ignored. An exception is Gabrielle Thuller, pointing to how kitsch criticism is based on Immanuel Kant's philosophy of aesthetics. Kant describes the direct appeal to the senses as "barbaric". Thuller's point is supported by Mark A. Cheetham, who points out that kitsch "is his Clement Greenberg's barbarism". A source book on texts critical of kitsch underlines this by including excerpts from Kant's and Schiller's writings (issued by Reclam publishing company). (For book references, see beneath.) One thus has to keep in mind two things: 1) Kant's enormous influence on the concept of "fine art" (the focus of Cheetham's book), as it came into being in the mid to late 18th century, and 2) how "sentimentality" or "pathos" (defining traits of kitsch) do not find room within Kant's "aesthetical indifference". Kant also identified genius with originality. One could say he was implicitly rejecting kitsch, the presence of sentimentality and the lack of originality being the main accusations against it. This stands in stark contrast to for example the Baroque period, when a painter was hailed for his ability to imitate other masters (one such imitator being Luca Giordano). Another influential philosopher on fine art was G. W. F. Hegel, emphasizing the idea of the artist belonging to the spirit of his time ("Zeitgeist"). As an effect of these aesthetics, working with emotional and "unmodern" (or "archetypical') motifs was referred to as kitsch from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on. Kitsch is thus necessarily seen as "false".

As Thomas Kulka writes, "the term kitsch was originally applied exclusively to paintings", but it soon spread to other disciplines such as music. The term has been applied to painters such as Ilja Repin (Clement Greenberg, "Avantgarde and Kitsch"), and composers such as Tschaikovskij, whom Hermann Broch refers to as "genialischer kitsch", or "kitsch of genius". (Also referred to in: Theodor Adorno, "Musikalische Warenanalysen" and Carl Dahlhaus, "Über musikalischen Kitsch".

[edit] Avant-garde and kitsch

The word was popularized in the 1930s by the theorists Theodor Adorno, Hermann Broch, and Clement Greenberg, who each sought to define avant-garde and kitsch as opposites. To the art world of the time, the immense popularity of kitsch was perceived as a threat to culture. The arguments of all three theorists relied on an implicit definition of kitsch as a type of false consciousness, a Marxist term meaning a mindset present within the structures of capitalism that is misguided as to its own desires and wants. Marxists believe there to be a disjunction between the real state of affairs and the way that they phenomenally appear.

Adorno perceived this in terms of what he called the "culture industry," where the art is controlled and formulated by the needs of the market and given to a passive population which accepts it—what is marketed is art that is non-challenging and formally incoherent, but which serves its purpose of giving the audience leisure and something to watch. It helps serve the oppression of the population by capitalism by distracting them from their alienation. Contrarily, art for Adorno is supposed to be subjective, challenging, and oriented against the oppressiveness of the power structure. He claimed that kitsch is parody of catharsis, and a parody of aesthetic experience.

Broch called kitsch "the evil within the value-system of art"—that is, if true art is "good," kitsch is "evil." While art was creative, Broch held that kitsch depended solely on plundering creative art by adopting formulas that seek to imitate it, limiting itself to conventions and demanding a totalitarianism of those recognizable conventions. Broch accuses kitsch of not participating in the development of art, having its focus directed at the past, and Greenberg speaks of its concern with previous cultures. (Seeing this as something negative is obviously a result of the influence of Kant's idea of originality and Hegel's Zeitgeist theory on the concept of "fine art" - and quite the opposite of the Renaissance mindset. Michelangelo, for example, started his career by making a fake "antique" Cupid, as Rona Goffen recounts in "Renaissance Rivals".) To Broch, kitsch was not the same as bad art; it formed a system of its own. He argued that kitsch involved trying to achieve "beauty" instead of "truth" and that any attempt to make something beautiful would lead to kitsch. Consequently, he opposes the Renaissance (trying to win over death through a "heathen" and life celebraing attitude - equivalent to kitsch) to Protestantism, with its ascetic tendencies (equivalent to art).

Greenberg held similar views to Broch, concerning the beauty/truth division; believing that the avant-garde arose in order to defend aesthetic standards from the decline of taste involved in consumer society, and seeing kitsch and art as opposites. He outlined this in his essay "Avant-Garde and Kitsch." One of his more controversial claims was that kitsch was equivalent to Academic art: "All kitsch is academic, and conversely, all that is academic is kitsch." He argued this based on the fact that Academic art, such as that in the 19th century, was heavily centered in rules and formulations that were taught and tried to make art into something learnable and easily expressible. He later came to withdraw from his position of equating the two, as it became heavily criticized. While it is true that some Academic art might have been kitsch, not all of it is, and not all kitsch is academic.

Other theorists over time have also linked kitsch to totalitarianism. The Czech writer Milan Kundera, in his book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1984), defined it as "the absolute denial of shit." He wrote that kitsch functions by excluding from view everything that humans find difficult to come to terms with, offering instead a sanitised view of the world in which "all answers are given in advance and preclude any questions."

In its desire to paper over the complexities and contradictions of real life, kitsch, Kundera suggested, is intimately linked with totalitarianism. In a healthy democracy, diverse interest groups compete and negotiate with one another to produce a generally acceptable consensus; by contrast, "everything that infringes on kitsch," including individualism, doubt, and irony, "must be banished for life" in order for kitsch to survive. Therefore, Kundera wrote, "Whenever a single political movement corners power we find ourselves in the realm of totalitarian kitsch." (One should, however, keep in mind the observation of Boris Groys, 2004: ”Art is originally propaganda for itself, consequently it can effortlessly be used as propaganda for something else: as political propaganda...” – from Haus der Kunst-News, 18. July 2007. Groys is professor für Kunstwissenschaft, Philosophie und Medientheorie at the Hochschule für gestaltung, Karlsruhe).

For Kundera, "Kitsch causes two tears to flow in quick succession. The first tear says: How nice to see children running on the grass! The second tear says: How nice to be moved, together with all mankind, by children running on the grass! It is the second tear that makes kitsch kitsch."

[edit] Academic art

Nineteenth century academic art is still often seen as kitsch, though this view is coming under attack from modern critics. Broch argued that the genesis of kitsch was in Romanticism, which wasn't kitsch itself but which opened the door for kitsch taste, by emphasizing the need for expressive and evocative art work. Academic art, which continued this tradition of Romanticism, has a twofold reason for its association with kitsch.

It is not that it was found to be accessible—in fact, it was under its reign that the difference between high art and low art was first defined by intellectuals. Academic art strove towards remaining in a tradition rooted in the aesthetic and intellectual experience. Intellectual and aesthetic qualities of the work were certainly there—good examples of academic art were even admired by the avant-garde artists who would rebel against it. There was some critique, however, that in being "too beautiful" and democratic it made art look easy, non-involving and superficial. According to Tomas Kulka, any academic painting made after the time of academism, is kitsch by nature.

Many academic artists tried to use subjects from low art and ennoble them as high art by subjecting them to interest in the inherent qualities of form and beauty, trying to democratize the art world. In England, certain academics even advocated that the artist should work for the marketplace. In some sense the goals of democratization succeeded, and the society was flooded with Academic art, the public lining up to see art exhibitions as they do to see movies today. Literacy in art became widespread, as did the practice of art making, and there was a blurring between high and low culture. This often led to poorly made or poorly conceived artworks being accepted as high art. Often art which was found to be kitsch showed technical talent, such as in creating accurate representations, but lacked good taste.

Secondly, the subjects and images presented in academic art, though original in their first expression, were disseminated to the public in the form of prints and postcards—which was often actively encouraged by the artists—and these images were endlessly copied in kitschified form until they became well known clichés.

The avant-garde reacted to these developments by separating itself from the aspects of art such as pictorial representation and harmony that were appreciated by the public, in order to make a stand for the importance of the aesthetic. Many modern critics try not to pigeonhole academic art into the kitsch side of the art/kitsch dichotomy, recognizing its historical role in the genesis of both the avant-garde and kitsch.

[edit] Postmodernism

With the emergence of Postmodernism in the 1980s, the borders between kitsch and high art became blurred again. One development was the approval of what is called "camp taste" - which can be related to but is not the same as Camp as a "gay sensibility."[2] Camp, in some circles, refers to an ironic appreciation of that which might otherwise be considered corny, such as singer/dancer Carmen Miranda with her tutti-frutti hats, or otherwise kitsch, such as popular culture events which are particularly dated or inappropriately serious, such as the low-budget science fiction movies of the 1950s and 60s. A hypothetical example from the world of painting would be a kitsch image of a deer by the lake. In order to make this Camp, one could paint a sign beside it, saying "No Swimming". The majestical or romantic impression of a stately animal would be punctured through humour; the notion of an animal receiving a punishment for the breach of the rule is patently ludicrous. The original, serious sentimentality of the motif is neutralized, and thus it becomes Camp. Kitsch is never ironic. "Camp" is derived from the French slang term camper, which means "to pose in an exaggerated fashion." Susan Sontag argued in her 1964 Notes on "Camp" that camp was an attraction to the human qualities which expressed themselves in "failed attempts at seriousness," the qualities of having a particular and unique style and of reflecting the sensibilities of the era. It involved an aesthetic of artifice rather than of nature. Indeed, hard-line supporters of camp culture have long insisted that "camp is a lie that dares to tell the truth."

Much of Pop art attempted to incorporate images from popular culture and kitsch; artists were able to maintain legitimacy by saying they were "quoting" imagery to make conceptual points, usually with the appropriation being ironic. In Italy, a movement arose called the Nuovi Nuovi ("new new"), which took a different route: instead of quoting kitsch in an ironic stance, it founded itself in a primitivism which embraced the ugliness and garishness, emulating it as a sort of anti-aesthetic.

Conceptual art and deconstruction posed as interesting challenges, because, like kitsch, they downplayed the formal structure of the artwork in favor of elements which enter it by relating to other spheres of life.

Despite this, many in the art world continue to have an adherence to some sense of the dichotomy between art and kitsch, excluding all sentimental and realistic art from being considered seriously. This has come under attack by critics who argue for a reappreciation of Academic art and traditional figurative painting, without the concern for it appearing innovative or new. As in the surreal and figurative paintings of Lawrence Hollien. A different approach is taken by the Norwegian painter Odd Nerdrum, who in 1998 for the first time argued for kitsch as a positive term, and a superstructure for figurative, non-ironic and narrative painting. In 2000, together with several other authors, he composed a book entitled On Kitsch, where they advocate the concept of "Kitsch" as a more correct name than "Art" on this type of painting. As a result of this, an increasing number of figurative painters are referring to themselves as "Kitsch painters", for example through the web site worldwidekitsch.com. This site is also responsible for the exhibition "The Kitsch Biennale".

In any case, whatever difficulty there is in defining its boundaries with art, the word "kitsch" is still in common usage to label anything felt in bad taste.

[edit] The concept of the "kitsch-man"

The term "kitsch-man" (or Kitschmensch, coined by Broch) refers to an individual who compulsively metamorphoses all of his aesthetic experiences into kitsch, regardless of whether the work of art concerned is good or bad. Whenever the kitsch-man contemplates art, it always involves the adoption of a particular viewpoint, a perspective swamped with the vicarious and the sentimental. When the kitsch-man encounters a genuine artwork and its kitsch replica (e.g. a twelve-inch copy of Michaelangelo's pieta in plaster) the response elicited will be no different. Pathos is projected onto genuine works of art, transforming art from the past into objects of sentimentality. Even nature is not immune to kitsch under the apprehension of the kitsch-man, in particular those components of nature that have endured kitsch portrayals to the extent that they have become hackneyed. A sunset, for example, could too closely resemble its representation in cheap paintings or "romantic" films; here the kitsch-man makes natural occurrences seem "false."

In his "Phenomenology of kitsch", Ludwig Giesz deals almost exclusively with this topic, seeking the anthropological background for kitsch. In this process he refers to Saint Augustin, who is shocked by his own enthusiasm while attending the performance of a Greek tragedy. The more the characters suffer, the more joy the audience (and previously himself) feels. If the plot is not gripping, everyone goes home disappointed. This would imply that the dichotomy between kitsch man (the rest of the audience) and ”art man” (Saint Augustin) is an age-old opposition.

[edit] See also

[edit] References

  1. ^ Calinescu, Matei. Five Faces of Modernity. Kitsch, pg 234.
  2. ^ Cf. Fabio Cleto, ed. Queer Aesthetics and the Performing Subject: A Reader. Ann Arbor, MI: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2.

[edit] Further reading

  • Adorno, Theodor (2001). The Culture Industry. Routledge. ISBN 0-415-25380-2
  • Braungart, Wolfgang (2002). ”Kitsch. Faszination und Herausforderung des Banalen und Trivialen”. Max Niemeyer Verlag. ISBN 3-484-32112-1/0083-4564.
  • Broch, Hermann (2003). Geist and Zeitgeist: The Spirit in an Unspiritual Age. Counterpoint Press. ISBN 1-58243-168-X
  • Cheetham, Mark A (2001). ”Kant, Art and Art History: moments of discipline”.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0-521-80018-8.
  • Dorfles, Gillo (1969, translated from the 1968 Italian version, Il Kitsch). Kitsch: The world of Bad Taste, Universe Books. LCCN 78-93950
  • Elias, Norbert. (1998[1935]) “The Kitsch Style and the Age of Kitsch,” in J. Goudsblom and S. Mennell (eds) The Norbert Elias Reader. Oxford: Blackwell .
  • Gelfert, Hans-Dieter (2000). ”Was ist Kitsch?”. Vendenhoeck & Ruprecht in Göttingen. ISBN 3-525-34024-9.
  • Giesz, Ludwig. ”Die Phänomenologie des Kitsches”. (An English version also exists).
  • Greenberg, Clement (1978). Art and Culture. Beacon Press. ISBN 0-8070-6681-8
  • Karpfen, Fritz (1925). ”Kitsch. Eine Studie über die Entartung der Kunst”. Weltbund Verlag.
  • Kristeller, Paul Oskar (1990). ”The Modern System of the Arts” (In ”Renaissance Thought and the Arts”). Princeton University Press. ISBN 0-691-02010-1. (pbk.) / 0-691-07253-1.
  • Kulka, Tomas (1996). Kitsch and Art. Pennsylvania State Univ Pr. ISBN 0-271-01594-2
  • Kundera, Milan (1999).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A Novel. (Perennial. ISBN 0-06-093213-9
  • Moles, Abraham (nouvelle édition 1977). Psychologie du Kitsch: L’art du Bonheur, Denoël-Gonthier
  • Nerdrum, Odd (Editor) (2001). On Kitsch. Distributed Art Publishers. ISBN 82-489-0123-8
  • Olalquiaga, Celeste (2002). The Artificial Kingdom: On the Kitsch Experience. Univ. of Minnesota ISBN 0-8166-4117-X
  • Reimann, Hans (1936). ”Das Buch vom Kitsch”. R.Piper&Co / Verlag, München.
  • Richter, Gerd, (1972). Kitsch-Lexicon, Bertelsmann Lexicon-Verlag. ISBN 3-570-03148-9
  • Shiner, Larry (2001). ”The Invention of Art”.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SBN 0-226-75342-5.
  • Thuller, Gabrielle (2006 and 2007). "Kunst und Kitsch. Wie erkenne ich?", ISBN 3-7630-2463-8. "Kitsch. Balsam für Herz und Seele", ISBN 978-3-7630-2493-3. (Both on Belser Verlag.)
  • Ward, Peter (1994). Kitsch in Sync: A Consumer’s Guide to Bad Taste, Plexus Publishing. ISBN 0-85965-152-5
  • "Kitsch. Texte und Theorien", (2007). Reclam Publishing Company. ISBN 978-3-15-018476-9. (Includes classic texts of kitsch criticism from authors like Theodor Adorno, Ferdinand Avenarius, Edward Koelwel, Walter Benjamin, Ernst Bloch, Hermann Broch, Richard Egenter,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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