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150여일 동안 투쟁중인 전기원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노동자는 이 시대의 그림자입니다.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야하는 존재니까요.
그 그림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때, 자본과 정부는 폭력적으로 진압합니다.
그래도 사람이기에, 그래도 살아야하기에...

노동자들은 잡초처럼 밟혀도
잡초처럼 다시 일어납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90&no=1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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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의 투쟁이야기 ①

 

 

 

“죽음의 현장을 바꾸려 투쟁을 시작했다”

 

 

 

 

한국사회 안에는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은 더욱 그렇다. 노동자, 농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지만,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자동차를 만들지만 현대차노동자라고 불리지 못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몸이 안 좋아도 오직 웃음으로 손님을 대해야 하는 수많은 감정노동자. 이렇게 이 땅에서 자기를 감추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북 남원시. 지리산과 춘향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자기를 감추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150여 일 동안 투쟁하고 있다. 전기원노동자들이 그들이다. 한국전력노동자로 알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전력이 아닌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다. 하청과 비정규직, 도급.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통해 고용하는 것은 다 자기 잇속을 차리려는 일이다.

 

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은 그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한국전력으로부터 하청받은 업체가 재하도급한 업체에 고용되어 있다. 전기원 노동자들은 다 아는 이 고용구조를 한국전력과 하청업체는 부정한다. 이런 구조에서 IMF 때 엄청난 임금삭감을 경험했고, 배전현장은 안전보다는 빠른 공사가 먼저였다. 그리고 95년부터 지켜온 노동조합을 깨려는 하청업체와 투쟁하고 있다.

 

150여 일. 참 짧지 않은 시간인데, 이들의 투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죽음보다는 안전을 위해 스스로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들어보자.

 

 

▲남원 전기원 노조 안성수지회장(우), 김희근사무장(좌)

 

 

배전공사라고 쓰고, 죽음의 배전현장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다니면서 전봇대 위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다. 전봇대 흐르는 2만 2천 볼트의 전기가 가정에서 쓸 수 있는 220볼트가 되도록 변압기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EBS 다큐 <극한직업>에서 수 십 미터 송전탑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 높이도 공포지만, 이들이 더욱 조심하는 것은 수만 볼트의 전기였다. 전기가 언제 공기를 타고 이들을 덮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하늘 높은 곳, 이들의 작업장은 죽음과 싸우는 전쟁터였다.

 

“08년부터 10년까지 50명의 전기원노동자가 사망했다. 부상자는 수백 명이다. 서울에 한국전력 부속병원에 가보면 그곳은 야전병원이나 다름없다. 손 잘린 사람이 천지다. 그래서 한국전력에서 산업안전과 관련된 규정을 만들었는데, 현장에서는 소용이 없다. 결국 우리가 사비를 들여서 민원을 제기한다. 사진을 찍고, 문서를 만들어 올리면 한국전력은 현장을 관리감독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변명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업체에 벌점을 주는데 형식적일 뿐이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한국전력’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공기업이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한전 직원이 전기공사’ 중인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사진은 사실 여기 거리에서 투쟁 중인 하청업체 전기원 노동자들이 매일 작업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품질과 배전시스템은 이들이 죽음과 맞바꾸어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국전력은 안전이 무시되는 현장을 민원 넣었을 때, 무시하기 일쑤였다.

 

“한국전력이 배전업체를 감싸다 보니 배전현장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안전보다 빠른 작업이 우선되었다. 그리고 배전업체 사장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을 해야 했다. 일요일도 없는 노가대 식 작업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2만 볼트 이상의 전기를 만지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작업을 시켰다.”

 

 

▲평소 작업하는 전기원 노동자 [참소리 자료사진]

 

민주노조 역사와 함께하다.

 

“2년 전에 광주전남 전기원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했다. 60여 일 만에 끝났는데, 사측과 조인식을 하면서 그들이 다음은 전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전업체는 전국 사장단 모임이 있는데, 이곳에서 서서히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전북을 표적으로 삼아 이렇게 압박이 들어온 거다.”

 

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이 투쟁은 배전업체들과 맺었던 2010년 단체협약을 토대로 2011년 단체협약 협상이 결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존 단체협약에서 19개 조항을 삭제요청했다. 약 50%인데, 이 말은 단협체결을 안 하겠다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임단협 체결하고 현장에서 바꾸자고 생각해서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도 900시간 요구했던 것을 160시간까지 양보했다. 그런데 1차 교섭부터 잘되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모습을 배전업체들이 보였고, 9차까지 결렬되면서 지노위에 갔다. 거기에서 조정결렬이 되면서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전북지역은 배전현장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역사도 민주노조 역사와 같이한다. 91년부터 ‘전봇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10시간 이상 노동이나 우천 작업 등이 조금씩 없어졌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작업환경이 개선되니 자연스럽게 조합원도 늘었다. 최근에는 남원/순창 지역 전기원 노동자 98%가 가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배전업체, 3억 묻고 노조 깨려 해

 

“배전업체사장들이 3억 원을 묻어놓고 노동조합을 깨려 한다.”

 

배전업체사장들이 작심한 모양이다. 배전업체들은 3억 원의 약속어음을 공동보관하고 전기원 노조와 개별적으로 단체협약을 맺으면 3억 원을 배상하기로 약속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들을 배전업체가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남원시의 불을 밝히는 역할을 했던 노동자들을 존중하기보다는 이들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으니 과연 이런 배전업체가 제공하는 전기를 우리는 마음 놓고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배전업체. 더욱 질 좋은 전기공급과 노동자들의 안전이 함께 보장되는 작업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배전업체가 할 일이지만 이들은 노동자들을 그저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처음에는 64명의 노동자가 함께했다. 그런데 노동탄압이 심해지면서 지금은 24명으로 줄었다. 생계를 걱정하며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돌어간 사람들이 많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들이 벌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죽음의 배전현장’.

 

비가 오는데도 작업을 강행하라는 배전업체,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 산업안전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작업현장, 이 모든 것을 묵인하고 있는 한국전력.

 

이 사각형의 테두리 안에서 전기원 노동자들의 하루는 고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무리 매일 오르는 하늘이고, 매일 만지는 전깃줄이라고 해도 스트레스가 없겠는가?

 

함께 바꿔보자고 시작했다. 그래서 두 손 잡고 시작했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에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을 볼 때면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다. 바꾸자는 ‘죽음의 배전현장’이 바뀌지 않았는데, 생계 때문에 그 현장에 돌아가야 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년 동안 일하면서 우애를 다졌다. 그리고 전기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작업구간이 300M 정도 되기 때문에 무전기에 의지해 일하는데 팀워크가 없으면 안전사고도 많이 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친형제처럼 지내고 서로 생각해주고 그런다. 조합원들은 자기이익보다 동지들을 먼저 생각한다. 동지애다. 이제 악으로 버틴다. 더는 물러설 곳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다. 반드시 승리해서 남원지역 배전현장을 개선할 것이다.”

 

 

 

 

사측의 악랄한 탄압이 끈끈한 동지애로 뭉친 전기원노동자들을 위협하지만, 투쟁의 깃발을 스스로 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똘똘 뭉쳐야 살 수 있는 배전현장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기에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다시 이들이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응원이 필요하다. 잡초는 바람에 눕고 다시 일어서지만,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들만의 투쟁으로 지켜만 볼 일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를, 농민을 민초라 부른다. 민초의 끈질긴 삶에 이제 우리도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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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4:36 2011/05/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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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말 어려운 줄 알았습니다. 정말 어려워서 노동자 해고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획파산"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쌍용차노동자들이 계속 죽고 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입니다. 그에 맞서 해고노동자들은 쌍용차의 비리를 고발하는 투쟁과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노동자들이 죽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90&no=1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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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사회적 타살에 맞서다
“희망을 되찾기 위해 투쟁을 이어간다”
2011.05.13 16:52 입력

쌍용차 희망퇴직노동자 고 강종완 조합원의 시신이 12일 오후 고향이 전주에 왔다. 고 강종완 조합원은 오랫동안 공장 복귀를 기다렸다. 그 희망을 품고 고향 땅을 밟았다면 좋았지만, 쌍용차에 의한 죽음으로 시신이 되어 고향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빈소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으로 채워졌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되면서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빈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투쟁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고 강종완 조합원의 장례식이 진행 중인 전주에서 그들을 만나보았다.

 

 

 

 

“해고 스트레스, 전쟁 겪은 군인과 같아”

 

“14번째 희생자인 고 임무창 조합원의 죽음을 지켜봤을 때, 더는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죽음을 대하니까 너무 슬프다. 그런데 노제를 몇 번이나 지내니 눈물은 나지 않는다. 그냥 가슴이 먹먹하다.”

 

해고된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빈소를 지키면서 이와 같은 죽음이 계속되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처럼 아파했다. 아니, 자신의 일이라 더욱 아팠을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아웃소싱 파견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엄청난 모멸감과 자괴감을 견디며 일해야 한다. 아웃소싱으로 다니는 공장은 노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노조가 예전에는 어느 정도 보호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다. 해고되었다는 자괴감과 배신감,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라는 낙인이 찍혀 그 시선을 견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자살과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은 그 스트레스가 도를 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전쟁을 겪은 군인들의 그것과 같다고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많은 사람은 2009년 공장 점거를 풀고 쌍용차 공장이 정상 가동되었을 때, 쌍용차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언론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쌍용차 노동자들은 봉합되지 않은 상처를 견디며 살아갔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싸울 때, 우리는 그들을 강성노조라고 비난했고, 그들이 상처를 메우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견딜 때, 우리는 그들을 외면했다.

 

 

[출처=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쌍용차 정리해고, 먹튀 자본의 계획된 살인”

 

“쌍용차는 정상화되면 복직을 시키겠다는 약속을 깼다. 사측은 2,646명이라는 정리해고 숫자를 채우기 위해 악랄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쫓아냈다. 밤늦게까지 집 앞에서 기다려 희망퇴직서에 사인하라고 협박하고 쉬는 날에는 회사에 와서 사인하라고 계속 전화를 했다. 그리고 지금 안 쓰면 퇴직금도 못 받는다는 거짓말로 노동자들을 속였다. 사측은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다고 국민을 속였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때 정리해고 2,646명이 어떤 근거로 정한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쌍용차는 회계법인을 고용해 정확한 근거로 정했다고 주장했지만, 회계법인은 자신들은 쌍용차에서 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쌍차조합원은 결국 정리해고 숫자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고 강종완 조합원처럼 희망퇴직노동자도 사측이 회사가 정상화되면 복직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사인을 한 것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썩은 동아줄인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는 믿고 싶었다. 회사의 그 복직이라는 말을 믿고 싶은 거다. 그렇게 무급자들도 1년을 기다렸고, 당연히 복직될 거로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사는 왜 못 시키는지 성의 있는 답변도 하지 않고 양해도 구하지 않는다. 당연히 희망퇴직자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회사는 무급자 복직 문제도 커지니까 현장노동자들에게 절대 무급자, 해고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쌍용차는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해고를 하면서 정상화되면 다시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1년이 넘겨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와 가족들이 생계의 벼랑 끝에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또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분명히 말한다. “사회적 타살”이라고.

 

“사람들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회사가 어려워서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쌍용차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회계를 조작하고 자산가치를 깎아내려서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꾸몄다. 회계부정과 장부조작, 그리고 파산을 기획해서 노동자들이 파업하게 유도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업했고, 정부는 우리를 불법과 폭력노조로 몰아붙여 공권력을 동원해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여론을 통해 우리를 비난하게끔 하였다. 회사는 거기에 앞장섰고.”

 

 

[출처= 쌍용차비정규직지회]

 

 

“희망을 쟁취하는 투쟁으로 승리할 것”

 

해고된 노동자들은 쌍용차 공장 앞에서 매일 출근투쟁과 집회를 개최하고 전국을 돌면 선전전을 하며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 쌍용자동차 영업소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는 5월 25일에는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이들은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나는 비정규직이고 다시 회사에 들어간다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게 될 거다. 그래도 이 투쟁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 명예회복을 위해서 투쟁을 하는 거다. 우리의 해고는 회사의 어려움이 아니라 기획된 파산과 상하이차와 같은 먹튀 자본의 만행 때문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밝히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기적이어서도 아니고,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 우리는 사형선고에 맞서 살기 위해 투쟁했다는 그 정당함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그것이 명예회복이고, 회사복직은 당연하다.”

 

희망.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그 희망을 생계를 위해 떠난 사람들과 복직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공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 싸울 힘과 분위기, 응원이 필요하다. 우린 그 희망을 주기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다.”

 

고 강종완 조합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친절하게 심정을 고백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는 77일을 옥쇄투쟁을 했던 그 공장 앞에 서는 것이 지금도 힘들다고 한다. 많은 조합원도 사실 공장을 다시 보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 상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공장 앞에서 자존심을 건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고통 없는 세상, 해고되지 않는 세상.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웃으며 공장에 복귀하는 그 희망을 되찾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고 강종완 조합원이 부디 노동자 해고 없는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그리고 투쟁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희망을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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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4:34 2011/05/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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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4대강 피해현장을 다녀온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4대강 공사와 토지리모델링 공사로 용안면의 농민들이 어마어마하게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농사를 천직으로 사는 농민들이 4대강 공사때문에 눈물을 흘려야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멈춰야 합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103&no=1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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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전북, 4대강 현장에서 눈물을 보다 2

 

[4대강] 용안면, 4대강 공사가 농민을 덮치나

 

 

익산시 용안면 석동리에는 80여 농가가 약 700여 동의 비닐하우스는 작물을 재배한다. 감자, 수박, 상추 등 철마다 재배하는 작물이 달라 이곳의 농민들은 쉼 없이 일한다. 혹자는 이런 농민들을 보고 돈 버는 일에 재미 들어 그러는 것일까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만, 비닐하우스 1동을 짓는데 드는 비용과 품삯까지 포함해서 생산비가 500백 만원 가까이 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노릇은 아닐 것이다.

 

 

 

 

“농민들은 한해 농사 잘못 지으면 그 손해를 끝까지 물고 가야 해. 다른 작물 농사로 돈 벌어서 갚으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농민들은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어. 농산물값은 올라가지 않아. 그런데 생산비는 자꾸 올라. 하다못해 비닐값, 비료값 이런 것은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고. 결국, 한번 농사 잘못 지으면 그 손해를 평생 업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어.”

 

농사가 모든 노동의 근본, 또는 삶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농사는 여전히 천대받는 일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형마트에만 가도 우리 농산물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조금씩 깔끔하게 포장된 포장지에 적힌 ‘국산’이라는 단어와 값싼 가격일 뿐이다. 이 농산물이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으로 오는지, 그리고 그 유통과정으로 농민들의 몫은 줄어드는 구조는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포장지와 가격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농민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을 땅만 보고 땅과 함께 살아온 농민들에게 이런 구조와 상황은 불청객과 같은 존재이다. 땅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땅에 적응하면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지금 이 시기에는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농산물 가격과 정부의 정책은 땅의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진다.

 

4대강 사업도, 적어도 용안면 농민들에게 4대강 공사도 이렇게 찾아왔다. 개발이라는 것이 땅을, 자연을 순식간에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생태계도, 거기에 기댄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응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재해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용안면, 분진으로 올 농사 다 망할 판

 

“어마어마하게 다녔어. 덤프트럭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다닌다고. 이 매연과 분진을 무시 못 해. 흙먼지나 황사는 그냥 비에 씻겨 내려가지만, 매연하고 뻘모래는 물과 섞이면 비닐하우스에 검게 붙어버려서 빛을 차단해버려. 빛을 봐야 크는 작물들인데 빛을 못 보니까 어떻게 되겠어.”

 

용안면 석동리는 4대강 금강정비사업 제1공구 현장을 둑 하나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 둑으로 수많은 덤프트럭이 준설토를 싣고 나간다. 거기에서 날린 분진들은 비닐하우스를 덮쳤고, 겨울 동안 비닐하우스는 검은 분진으로 가득했다. 이 검은 분진은 눈이 내리고 나서야 조금 씻겨 내려갔다. 그러나 지금도 당시의 얼룩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분진피해가 700여 동의 하우스에서 나타났으니 그 피해규모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일조량이 없으니까 수박이 수정해야 할 시기에 수정을 안 해. 그리고 병나고 색이 안 나오고, 토마토 이런 것은 피해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3번 정도 출하했는데, 여기는 1번도 겨우 했어. 이렇게 피해는 쌓여만 가고 있지. 답답할 노릇이야.”

 

하우스 농사는 햇볕이 생명이다. 올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햇볕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풍년을 기대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을 한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 이렇게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부도, 건설사도 4대강을 잘 정비하겠다는 말만 하지, 공사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공사가 진행되는지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生’을 위해 ‘生'을 죽이다

 

4대강 금강공사 중 용안지구는 생태환경공원이 조성된다. 이 공원이 들어설 강변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농민이 농사를 했던 땅이다. 그러나 국가소유지라 이들은 말없이 떠나야 했다.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이 관광지.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관광지 조성 때문에 많은 농민은 땅을 잃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원을 만드는 동안 이 용안농민은 병든 작물을 보면서 자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농민들을 밟고 조성될 생태공원. 이 공원의 ‘生’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금강하구둑 막기 전에 이곳은 희귀동물들이 많이 살았어. 특히 갈게가 이곳에 많았지. 하구둑 막기 전에는 잡으면 수십 포대가 나왔어. 섬진강에 살던 조개도 있었고, 조개 잡으면 놀았어. 지금은 다 없어졌어. 하구둑 막으면서 민물장어도 사라지고.”

 

“4대강도 마찬가지일 거야. 자연 그대로 있던 거를 바꾸는 건데, 다 없어질 거야. 기존에 있던 것들은 없어지고, 그나마 있던 것들도 4대강 사업하면서 다 없어질 거야. 얼마 전에 익산시에서 참게를 방류했다고 하는데, 그 참게들이 어디 있느냐는 거지”

 


농민들 죽어 가는데 피해가 없다고?

 

 

용안면 피해대책위원장 김선태 씨는 “이 피해는 다 누가 보상해줄 거냐고.”, “농사 그만하라는 것도 아니고.”와 같은 말들을 추임새처럼 말을 마칠 때마다 넣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피해를 본격적으로 본 지, 5개월이 넘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 상황을 조사하고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절차를 밟아야 할 관계기관들이나 계룡건설은 시간만 질질 끌고 있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

 

4대강 정비사업. 무려 20조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국책사업이다. 한 기업이 아파트를 짓는 것과는 다른 사안의 국토개발이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용안면 농민들의 피해에 대해 정부는 제 3자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 시공사인 계룡건설과 피해농민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자기들이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장본인들이 이러고 있으니 계룡건설은 당연히 피해를 축소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1월에 계룡건설에서 부른 조사팀이 이곳 분진을 검사했어. 그런데 분진검사 할 때는 엄청나게 지나가던 덤프트럭들이 1/20도 안 지나가더라고. 바람도 엄청 불던 것이 그날은 불지도 않아. 그리고 그렇게 조사해간 결과도 같이 봐야지. 우리는 4개월이 지났는데도 연즉 그 결과를 몰라.”

 

피해가 갈수록 늘자, 농민들은 국토부도 찾고 환경부도 찾고 환경분쟁위에 제소도 하였다. 그제야 얼굴을 내민 계룡건설은 분진체크도 하고 피해조사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환경분쟁위에는 큰 피해가 없다고 보고 한 모양이다.

 

농사만으로도 벅찬데

 

“농민들 죽으라는 것밖에 안 돼. 직장 다니는 사람에게 그만 쉬라고 말하는 것이랑 똑같아.”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 공사 현장 주변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농민들이라면 모두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노동자가 해고라는 말 한마디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들이 늘듯이, 농민이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사형선고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밟혀도 다시 서는 풀처럼 농민들은 그 상황에서도 농사일은 멈추지 않는다.

 

“감수할 수밖에 없어. 사업하는 사람들은 실패하면 다른 것을 해볼 수 있을지 몰라도,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고 농민들이 바로 그 송충이야. 우리는 잘못 돌아간다고 해도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올해가 안되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좋으려니 하고 또 시작하는 게 농민이야. 건강만 허락된다면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그런 생각으로 살지. 우리 농민들은”

 

농민들에게 사실 농사일 하나만으로 벅찬 삶일 것이다. 피해를 봤다고 농사일 접어두고 정부와 건설사와 분쟁을 다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농민들을 농사일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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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4:32 2011/05/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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