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가 죽기 전에 자신이 쓰던 원고를 모두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사실을 오늘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그 작품들은 전 세계에서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의 심정을 깡그리 무시하다니 파렴치한 일이다. 그것도 친한 친구의 짓이라니.

  이 엄청난 무례에 대해 한 마디라도 사과한 이는 있었을까. 최소한 카프카가 출판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작품 맨 앞 장마다에 작가는 이 작품의 출판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 마디 붙여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멋도 모르고 글을 읽었던 나같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느낄 것 아니겠어.

  제 이름을 단 책들이 전 세계의 서점과 도서관에 즐비하게 꽂혀 있고, 그의 생에까지 관심을 흘리는 사람들에 의해 그 누구라도 감추고 싶을 어린 시절의 아픈 상처들과 사적인 편지들과 불우한 가족관계, 그의 모든 상처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낱낱이 까발려지고,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글이 생전의 그에게 (아마) 아무 의미도 없었을 나라의 대학 강단에서까지 곧잘 분석당하고 규정당하는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 보고 있을까? 나는 그런 것이 끔찍하고 두렵다고 똑똑히, 일부러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가해져 온, 그리고  앞으로도 중단되기 힘들 것 같은 폭력을 어떻게 참아내고 있을까. 글쎄, 카프카가 죽은 지도 백 년이 다 되어가니 그도 이제 그런 일이 익숙하거나, 이미 예전에 화내는 일에도 지쳤을런지 모른다.

  카프카의 사후 출판된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그보다는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죽음을 앞두고 분명히 이야기했던 그이의 권리도 그 작품들의 가치만큼 혹은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나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확고하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역사 자체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야 아주 흔하고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고인의 서랍을 뒤지고, 은밀한 곳 하나 없도록 남김없이 파헤치고- 그것은 살아 있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도무지 죽은 사람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있을 자리가 없다. 말 못하는 이의 권리를 좀 더 섬세하게 상상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이것은 극소수의 고인들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이고 특별한 이들이 감내해야 할, 혹은 감내할 만한 침해일 수도 있다. 나같은 소시민이야 어느 시인이 말했듯 죽은 후의 팬티가 부끄럽지 않기 위해 평소에 속옷이나 잘 갈아입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유언마저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거다. 죽었든 살아 있든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이를 존중하지 않는다. 살아서 목이 터져라 외치더라도 그에 귀 기울이는 이가 없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삶은 몰이해의 연속이라도, 같이 살아가려면 제발 좀 잘 들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걸텐데.. 나 역시 언제 목소리를 빼앗기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이런 잘못을 훨씬 많이 저질렀을 것이다. 남의 의사를 '나라면'이라는 가위로 마음껏 재단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대단찮은 것으로 판단해버리는 일이 잦았고 오랫동안 내가 그렇다는 것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진심으로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 많다. 그것이 아무리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나 그보다 중요한 것 같은 게 있더라도 남겨둘 것은 남겨둘 줄 알아야지.. 그런데 남의 영역을 허물고 침범하는 것은 갈수록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일까. 심지어 사진을 찍을 때 양해를 구하지도 않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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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7 17:03 2008/10/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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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7 21:40 Delete Reply Permalink

    전 오히려 카프카의 유언이 어리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글을 읽어보면 숨기고 싶지만 또 반면에 자신을 알아달라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보여서요 城이나 심판 등을 보면 왠지 이중적인 변두리인이 생각나서 참 쓸쓸했는데 말이죠 물론 읽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건 다르겠지요

  2. 어느바람
    2008/10/18 09:48 Delete Reply Permalink

    사실 아직 덜 쓴 글인데..^^ 슴님 말씀에도 동의해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소통을 바라는 일이고 저도 그런 카프카를 봤으니까요. 또한 많은 경우에 욕망은 이중적이죠. 카프카의 속마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지만 그가 밖으로 드러낸 의사를 존중해줘야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제가 미완성 포스트를 올려둔 건 미필적 고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미완성 원고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정은 당연한 게 아닐까요.
    포스팅하던 당시에 헛갈려서 애매하게 썼던 게 있는데, 카프카는 자신이 썼던 글을 모두 없애달라는 게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쓰고 있던 원고들, 완성 전에 자신이 죽어버리면 미완성인 채로 남을 원고들을 폐기해달라고 했던 거네요. 변신만 해도 카프카 생전에 출판된 작품인데 어떻게 된 걸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더라구요. 카프카야 기분 좋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행운이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누군가의 의사 표현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 너무 빈번하고 또 그걸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그런 거에 초점이 있었어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카프카의 예를 들고 싶어서 일부러 밀어붙여 쓴 감이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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