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이나 불온서적 등 지난 시대의, 이 시대로 슬그머니 기어들어오려 하는, 억압 장치들을 피상적으로 이해했을 뿐, 그것을 겪은 사람들의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퍽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 온 내가 잘 알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꿈에서 내 가방에 있던 책들, 책이랄 것도 없는 조잡한 팜플렛들, 그리고 바이올린(?). 이것들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들까지 싸잡아서 처벌(그런데 어떤 벌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을 받게 된 상황이 되었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제목의 책과 바이올린이었다-_-;;; 북한, 주체 사상이니 하는 것에 별 관심 없는 나의 꿈에 왜 그런 제목의 책이 나왔는지도 의아하지만, 꿈에서도 난 그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하고 흥미 삼아 샀던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바이올린은 꿈 속에서 정말 너무 하고 싶었는데 사정상 배우지는 못했고, 그저 돈을 열심히 모아 악기만 떡 하니 산 후에 딱, 딱 한 번 켜본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더러 사치스럽다고 했다. 마음이 무너졌다.

  종이 몇 장, 말 한 마디, 책 몇 권, 성격처럼 별 거 아냐 생각했던 게 얼마나 나를 조여올 수 있는지, 그리고 종국에는 나마저도 그들의 시선에 맞춘 자기 검열을 통해 내가 엄청난 죄를 지은 것처럼 생각하게 되고 마는.. 그게 무서웠다. 분명 별 게 아니었는데, 어느새 완전히 그들의 논리 속으로 들어가 내가 저지른 큰 잘못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나를 보았다. 그건 그들은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있었을지 없었을 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했고 나는 그렇다고 믿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사람들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들인지 그인지,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죄많은 나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도 흐릿했다. 그들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나는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꿈을 꾼 이유야 뻔하다. 이미 드러났겠지만, 최근 자주 읽었던 이청준 소설의 심문관 사내 테마와 당통의 죽음이 짬뽕되어 꿈 속에서 재현된 것일 테지.. 무튼 꿈이란 기막히게 멋지다. 한 자리에 누워서 내가 절대 그 처지가 될 일이 없는 여러 상황 속 사람들이 되어 그 마음을 이해해볼 수 있게 된다니. 예전에는 무섭고 기분도 안 좋고 해서 싫었는데,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누구에게 고마워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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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09:08 2008/10/0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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