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찍은 수천 장의 사진 속에는 내가 없다. 품절된 당신, 재고로 남은 사랑. 찾는 이 없이 쌓여가는 재고품같은 비참은 아빠의 정자에서 시작된 거야. 아빠, 난 아빠가 등신이라고 사방팔방에 외치고 싶었어. 나는 다른 아빠를 갖고 싶어서 아빠랑 닮지 않은 남자를 사랑하려고 기를 써. 그래도 난 미안하다고는 하잖아. 아빤 누구한테 사과해본 적이 있어? 미안한 짓을 해놓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거야? 화장실 바닥에 정액을 흘리고도 치우지 않는 남자는 왜 그러는 거야? 아빠가 아빠의 아빠를 두려워했듯이 아빠가 무서웠으면 나는 아빠같은 남자만 사랑했을 거야. 잘생겼던 형두 씨는 옥상으로 동네 처녀를 끌고 가서 입을 맞췄지. 병신같은 우리 아빠도 했던 걸 넌 왜 못 하니. 나는 제발 아무라도 붙들어 주었으면 하는 찰나에 너를 생각해. 넌 자위하면서 내 생각했어? 날 생각했으면 했다고 왜 말을 안 해. 네 앞에 서면 말들이 얼어붙고 깨져. 나는 갈수록 물건을 못 찾고, 길을 못 찾아. 단칸방에서도 빙빙빙 헤맸던 나를 우리 아빤 서울에 버렸어. 그런 건 남자가 좀 찾아주면 안 돼? 찾아주고 내 가슴 만져, 에이즈 안 걸렸으니까. 수백 명이 타 죽어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야. 네 몸에 상처가 나면 나는 눈물이 났어. 네가 눈물을 보여줬다면 혀끝으로 핥아 마셨을 텐데. 사랑은 품절되었으니 당신도 창고에 처박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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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21:42 2009/08/0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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