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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품위있고 세련되게만 굴러가는 것도 싫지만 막상 구질구질한 일이 닥치면 구역질이 난다. 이런 웃기지도 않은 상황을 왜 나는 이해하고 설득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까. 마음 가는대로 얘기하는 친구를 붙잡고서 그게 아니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체 뭘 위해서 좋게 넘어가려고, 언제부터 참도 현명해졌다. 어떻게 해야 결과적으로 가장 편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실은 가장 불편하지 않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말이고 그건 행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전략은 개뿔... 친구 말이 다 맞다.
나는 사과를 참 잘한다. 정말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불분명할 때도 혹은 아무리 차분히 생각해도 상대가 좀 더 잘못한 것 같을 때도 혹은 내 잘못이긴 하지만 상대 반응에 수틀려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도 순간만 꾹 참으면 아무렇지 않게 진심처럼 사과해버릴 수 있다. 그게 다 이전에 내가 내키는 대로 굴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 사실 반성이 좀 심했던 것 같다. 내가 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자꾸 사과하게 되는 사람이 있으면 사과는 잘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질린다고 생각이 드는 게 솔직한 심경이다. 사과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해야지.
싫으면 싫은 거지 그걸 이유를 조목조목 들어서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습들도 짜증스럽다. 진보? 소통? 민주주의? 무튼 이름은 붙여놓는데 실은 찌질한 소통의 과다라고나 할까.
그래 찌질 아 더럽게 찌질한... 사직서나 내버리고 싶다. 수틀리면 사직서 낼 수 있는 처지였으면 좋겠다. 로또 아후...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건 그가 얼마나 쓸쓸했으며 숱한 밤을 얼마나 고독하게 홀로 지새웠는가이다. 모든 사람은 시적으로 지구에 거주한다.
제가 차였구요, 제가 매달렸는데요...
이 말이 그리 사랑스러운 말인지도 처음 알았다.
그러고 집에 오는 길,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아 벅찼다. 세계가 갑자기 확 넓어졌다. 평범한 풍경인데 내가 뭘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 당황스럽다.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시간을 선물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한 사람을 만나고 났을 뿐인데 세상이 달리 보인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
사랑, 하고 싶다
사랑, 하고 싶다? 하하...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삼년 전부터 곧이라고 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시험 하루 이틀 전 같은 때 할아버지가 죽으면 시험을 치르고 가야할까 바로 가야할까, 시험을 치르고 가면 너무 자책하게 될까 긴 생각을 했다. 엄마가 무너질지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할아버지가 곧 죽지 않아서 그런 고민은 곧 잊었다.
삼년 전 여름 외가가 있는 섬을 찾아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분들이 조금 놀랐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 할아버지가 던진 낚싯대로 내 팔뚝보다 큰 삼치 다섯 마리를 잡았다. 팽팽하다는 단어는 그 삼치들을 설명하는 데 쓰일 때 원래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이 아름다워졌다. 바다에서 반나절을 떠돌다 뭍에 돌아왔다. 팽팽한 삼치를 바닥에 던지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 마리당 십만원이 훌쩍 넘었다. 두 마리를 팔고 나머지는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항구에서 조기를 널고 파는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술을 마시느라 늦은 밤까지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방파제가 이어지는 데까지 달렸다.
그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니 할아버지가 곧 죽게 됐다고 했다.
두달 전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내복을 보내라고 했다. 잊은 듯 미룬 사이 봄이 와서 내복은 쓸모없겠지 싶어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봄은 오래 찼다.
이틀 전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런닝과 팬티를 보내라고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3년전부터 죽을 병에 걸려 있는 건 알았지만 엄마가 직접 할아버지가 곧 죽을 거라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최근 십년 간 친구의 아버지와 어머니 대여섯명이 죽었고 아버지 형제의 배우자가 둘 죽었고 할머니 형제가 죽었고 작가가 셋 죽었고 수십 명의 열사가 죽었다. 언젠가부터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죽지 않은 할아버지가 나를 아무렇지 않지 못하게 한다.
계단을 오르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낄낄대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다시 낄낄대고 할아버지는 곧 죽는다
페이스북에 의미없는 소리를 끄적이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이유없이 얻어먹는 볶음밥에 얹힌 새우를 씹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말하기를 멈출 수 없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다
농담이 끝없이 이어지길 바라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생전 처음 남자 런닝과 팬티를 고르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내가 사 보낼 런닝과 팬티가 할아버지가 죽는다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는 말을 해보고 싶다가 할아버지가 곧 죽는다
엄마는 할아버지가 좋아할 거라고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이틀이 더 지났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똥을 쌀 시간은 있는데 전화할 시간이 없었다. 올해 설에 엄마는 할아버지를 보러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재촉했지만 귀찮아했다. 엄마는 그저 하루쯤 종일 푹 자고 싶어했다. 엄마를 데리고 할아버지의 섬에 가고 싶다.
결국 내가 하는 생각은 이 글이 너무 감상적으로 쓰여진 건 아닐까, 그조차 판단하기가 어렵구나, 이런 식이다.
쓰레기 버리기 싫다. 아저씨가 쥐어준 단 과자껍질 단 과일껍질. 쓰레기같이 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 원래 나는 쓰레기가 아니라는 뜻이 돼버리니 틀렸다. 그동안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비닐봉지에 잘 버렸다. 치우기 싫은데 쓰레기 곁에 누운 꼬락서니를 보면 누군가는 쓰레기같은 년이라고 생각할까봐 무서워서 버렸다. 쓰레기같이 살고 싶다는 건 거짓말이다.
교양있는 것들이 싫은데 나는 너무 교양이 많다. 대체 언제 이렇게 교양있는 여자가 됐을까. 엄마는 교양있는 딸을 기뻐하지만 자기를 버릴까봐 두려워한다 엄마가 딸에게 무시당할 때가 있다는 건 엄마도 딸도 안다 다른 사람들만 모르면 된다. 버려질까봐 무서워하는 엄마 눈빛을 봤을 때 엄마 사랑해 나도 어렸을 때 엄마가 나 버릴까봐 많이 무서웠니까 공평한 거 아니야 엄마는 쓰레기가 아니야
교양있어서 쓰레기같은 짓을 못한다 주옥같은 세상을 주옥같이 보려고 애쓴다
그렇다 문제를 알았다
세상이 주옥같지 않고 좇같다고
좇같은 건 세상이 아니라 내 살덩이일 수도 있다
남의 꿈을 증오하다
3년만 4년만 더 있어봐 그때도 네가 그렇게 말할까 넌 세상을 몰라 넌 아무것도 몰라 넌 멍청해...
없는 것들의 전형적인 작태다 없는 것들은 별 수 없이 티가 난다
단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으니 당연하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단 한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단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은 위대해
사랑은 타이밍 세상도 타이밍 그놈의 타이밍 타령은 누가 만든 거야...
좀 늦고 빠를 수도 있지 빌어먹게 세련된 것들
쓰레기 버리다 무섭다
쓰레기는 버려지기가 무섭다
쓰레기를 버리기가 무섭다
무서운 쓰레기를 버리자
내 인격을 담고 자존심을 걸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고 괴롭지 않고 종종 즐거운 일이다. 이 정도면 직업으로서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이 든다. 성공은 없겠지만.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회사 이름으로 자존감을 높이고 싶지 않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 싶은 조직에 대한 애정이란 건 생래적으로 없다. 원래 공익이나 사회 정의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일의 특성상 그런 가치와 관련시키지 않으면 내가 우스운 머저리 꼴이 되기 때문에 자꾸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지극히 개인주의적 인간이다. 기브 앤 테이크의 마음을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걸린다.
그러니까 직업 때문에 흥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행운이구나 싶다. 일에 진정을 쏟아붓고 인격을 소모하게 됐더라면 피곤했을 것이다. 자기 실현과 활력은 연애를 하거나 시를 쓰거나 하면 해결될 것이다.
어느 선배는 사랑에 빠지면 일에 소홀해질까봐 걱정이 돼서 연애를 자제한단다. 별 사람이 다 있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언니를 생각했다.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라는 문제에 유관순을 택해서 썼던 적이 있다. 반응은 그닥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꽤 애정이 갔던 기획이라 이후로도 몇 번 더 가다듬어 보기도 했다.
평범하게 자란 내 상식과 경험에서 열여섯 소녀가 목숨을 걸만큼 매혹될 만한 건 조국보다는 남자다. 낭설인지 모르나 유관순네 가족이 다 꿋꿋한 독립운동가 집안이었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럼 독립운동한다고 그 집에 드나들던 오라버니 친구라던지 하는 뭇 사내가 있었을 터. 열여섯 소녀의 세계란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벼운 눈빛에도 출렁대는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다. 스물 여섯이 된 내겐 다시 없을 그것. 유치원때부터 숱한 연애를 경험하는 요새 애들을 생각하면 나는 구세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데.
유관순이 경애하던 그이는 순사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다가 죽었다. 그러고 나면 삶은 비장해진다. 관순에게 조국과 애국은 계몽된 인식이 아니라 문광훈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실존적 절실성'의 발현이었으리라. 그러나 고문과 고통 또한 실존적이라 관순이 옥에서 무엇을 느꼈을지는 차마 헤아리기 죄스럽다. 죽음을 앞둔 그녀가 사랑이고 독립이고 나발이고 그저 후회만 사무칠 때, 현대로 넘어오게 됐다면? 겨우 붙잡은 새 삶인데 정의? 애국?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직 자기 안위만을 생각하리라 마음먹을 수 있다.
21세기에 독립국가라고 해서 압제가 없을까. 열여섯에게 대한민국의 학교는 식민지배와 비슷할 수 있다. 과거에서 와 촌스럽고 어리버리하고 이기적인 관순에게 다가와줬던 친구의 자살, 그 배후에는 폭력과 부자유와 힘있는 부모를 둔 병든 아이들, 은폐와 거래와 상처와... 관순은 관여하지 않으려 기를 쓰지만, 결국은 문제에 뛰어들고 한층 성숙해지는 소박한 해피엔딩을 맺는 식의 익숙한 이야기였다. 진부하지만 언제 봐도 감동적인 그런 얘기면 좋을 것 같았다.
근대사를 못 배운지라 유관순이 독립투사의 아이콘이 된 게 해방 이후라는 것 외에 당시의 역사적 맥락은 잘 모른다. 일제 치하의 감옥에서 죽은 열여섯 짜리 여자애가 우상화하기 안성맞춤인 소재일 것이라는 짐작만 한다. 유관순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우상화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전후 사정이 어떠하건 식민지 시대에 열여섯 소녀가 옥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다만 그녀가 옥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던 독립투사로만 기억되는 게 안타까웠다. 이해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하면 미화도 제대로 못하는 거다. 그 나이다운 열여섯 인생의 결을 사람들이 좀 더 정확히 짚어봤으면 하는 소망이었다.
오늘 나만큼 유관순에 대해 많이 생각한 사람은 없을 것같다. 정말인데, 종일 내내 그녀를 생각했다. 철없고 이기적인 유관순을 상상하는 일도 즐겁지만 유관순에 자꾸 끌리는 건 그녀의 비극적인 삶과 비장미 때문일까. 비장이 우스워진 시대에 살자니 손톱만큼도 비웃을 구석이 없는 그런 비장함이 자주 그립다.
무령왕릉과 낙화암을 보러 갔다. 아침내 실컷 자다가 완행버스를 타고 오후 3시쯤에야 공주에 도착했다.
#바로 무령왕릉으로 갔다. 왕릉에 자리잡고 몇 시간이고 머물 생각였지만, 날이 많이 찼고 무덤은 작았다. 경주의 천마총 같은 거대한 왕릉이 자꾸 그리워 공주를 찾았는데 무령왕릉의 첫인상은 보잘것 없어 맥이 빠졌다. 무덤 속에는 애초에 별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지만 안에도 들어갈 수 없대서 더 허탈했다. 그런데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능과 하늘을 가르는 곡선. 얼핏 젊은 여자의 몸매가 떠올랐지만 그보다는 느긋했고, 그렇다고 모성애의 느낌도 아니었다. 누군가에 안긴 것처럼 따뜻하고 너그럽지만 인격적인 인상이 없었다.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연상됐는데, 그 양식이 본딴 게 있다면 이런 선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무덤 또한 사람이 만들었는데... 하여튼 신묘하다. 무덤이라는 게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거구나 새삼 생각했다.
하늘은 깨끗하고 인적은 없고 한구석에 드러누웠다. 구름 흐르는 걸 지켜본 게 얼마만인지. 잠시 후 한 무리의 일행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눈을 감아버렸는데, "엄마, 여기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써 있어", 아이 목소리였다. 얄미운 것 하다가 그래, 애가 이런 걸 배우면 안되겠다 싶어 일어났는데 왠지 후다닥 튀어 도망가다시피 자리를 떠나게 됐다. 창피했던 건 아닌...
#근처 공주박물관에서 마음에 드는 걸 발견했다. 진묘수라고 왕릉을 지키는 신령님이다. 이름도 얼굴도 귀여운 녀석,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왕릉을 지켜달라는 믿음이 담긴 녀석이라 그런지 의젓해 보였다.

현대인은 우상을 만들지 않고 허황된 것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집과 차와 옷 등속이 삶을 지탱해줄거라는 타인의 믿음에 기생한다. 혹은 사람이 읊는 점괘를 믿고 점보기에 낸 돈을 믿는다.
그에 비하면 바라고 믿기 위해 진묘수같은 걸 만드는 건 얼마나 창조적이고 기품있는 일인가. 요새는 상상의 동물이라는 게 드물다. 신화를 소비하거나 원래 있는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뭔가 만들어내면 괴물이다.

도깨비 얼굴을 새긴 기와도 있었다. 공주 박물관에서 눈에 띄었던 건 이 둘 정도다. 무식함의 증표겠지만나는 박물관에 유물이랍시고 그릇 쪼가리나 돌덩이 같은 걸 줄줄이 늘어놓은 걸 볼 때마다 여기서 뭘 느끼라는 건가 멍해지곤 했다. 이제껏 학교에서 가라는 만큼은 박물관을 찾았던 20대 시민으로서 봐 온 박물관은 신비를 따분하게 박제해둔 곳이 대부분이었다.
무령왕릉 전시관은 꼼꼼히 둘러보고 혹시나 해서 비디오까지 챙겨 봤는데도, 대체 무령왕이 어떤 사람이었고 그의 시대는 어땠는지 생생한 감은 전혀 잡히지 않았다. 무덤의 주인이라고 드물게 밝혀진 왕인데 할말이 그리 없었을까. 어느새 좀 천박한 말처럼 되버렸지만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려와 감각이 없다. 다음날 갔던 부여의 정림사지 박물관은 좀 달랐다.
#공산성에 올랐다. 공산성은 고려 때 이름이고, 백제 때는 웅진성, 조선시대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렸다. 왜 공산성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웅진성이 가장 멋졌다.
웅진성은 아찔했다. 마음만 먹으면 실족사를 위장한 살인같은 게 가능한 곳 같았다. 떨어져서 죽기에는 충분히 높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은 안전장치같은 걸 충실히 해두지 않나? 이런 생각만 들었다. 나는 해질녁 빛이 애매하게 어두울 때가 가장 무서운데 마침 딱 그때에다 산성에는 아무도 없었고 춥고 추웠다. 밤에 예쁘다며 가보라 추천했던 친구에게 지 애인이랑 손붙잡고 거닐 때나 좋았겠지, 속으로 욕했다.
판단력이 마비돼 빠르게 돌아갈 길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괜히 빙빙 돌던 중 해가 완전히 졌다. 몇 사람들이 산성에 올라왔다. 마음이 좀 편해져 강 건너편에서 봤던 정자를 찾아갔다.

웅진성 나오는 길에 재미있는 풍경을 봤다. 웅진성 입구 맞은편 식당에서 삼십명쯤 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웅진성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다. 얼떨떨해하다 상황을 헤아려보니 연배가 대강 삼사십대인 이들로, 출사 모임을 나온 사진 동호회원 같았다. 하나같이 목에 캐논 DSLR을 걸고 있었다. 카메라는 잘 모르지만 전에 사진부 선배들이 캐논이 니콘보다 좋다고 하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좋아보였다. 나는 집사람에게 빌려온 2002년식 300만화소 디카를 들고 있었는데 괜히 좀 쑥스러워졌다. 부산에 두고 온 내 디카는 누가 잘 쓰고 있으려나.


이들을 보니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봉준호 감독이 자기는 결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고 소유하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마더>의 결정적 이미지는 라스트씬과 김혜자라고 했다.
봉 감독이 대학생이었을 때 오대산에 갔더니 입구에 관광버스가 주차돼 있었다. 버스기사는 담배를 꼬나물고 차 문에 기대섰고, 아주머니들은 목적지에 닿았는데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좁은 속에서 댄스를 계속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땐 그게 추해보였는데 20년쯤 지나니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나는 아직 봉준호의 대학생 시절에 가까운 나이라 그런지 사진동호회원들을 이해한다면서도 조금은 추해 보였지만 또 왠지 끌렸다. 재밌는 장면이다 싶어 사진 찍는 이들을 찍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더러 "거 좀 비켜요" 했다. 2002년식 300만화소 카메라지만 나도 사진 찍고 있었는데... 나는 움찔해서 바로 돌아나왔다.
금강을 가르는 다리를 반쯤 건넜을 때 그이들이 탄 관광버스가 내 옆을 지나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조명 덕에 웅진성이 아름다웠다. 도구를 탓하고 싶진 않지만 아무래도 2002년식 300만화소 디카는 조금 모자랐다. 카메라를 빌려준 이는 이 카메라를 10년간 깨끗하고 멀쩡하게 썼다면서, 자기가 쓰는 물건은 항상 그렇다고 자랑했는데 그게 참 대견하긴 했다.

#다섯시간쯤 걸었으니 배가 많이 고팠다. 파전과 막걸리를 찾아 공주 시내를 헤매다가 '뒤집어야 전이제'라는 투박한 상호가 맘에 드는 가게를 발견했다.
가게에 들어가서까지도 나는 전을 포장해 모텔로 가져갈 지, 여기서 먹고 찜질방에서 잘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천천히 책을 보면서 술을 즐기고 싶은데 술집에서라면 그게 쉽지 않을 테고, 그러나 모텔에 가는 것도 싫다. 여행이나 일 때문에 낯선 지역 모텔이나 펜션에서 혼자 잤던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매번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술집에 손님은 나뿐이라 조용했고 가까운 곳에 찜질방이 있다고 했다. 고민거리가 사라졌다.

파전은 평이했고, 막걸리는 죽였다. 싼 입맛이지만, 공주알밤막걸리는 이제껏 먹어본 전국 막걸리 중 부산생탁, 이제는 사라진 평택 모 양조장 막걸리와 함께 TOP3에 들었다. 며칠 후 서울에서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공주알밤 막걸리를 팔길래 주문했는데 빛깔도 맛도 아예 달랐다. 진짜 공주알밤막걸리가 맞냐며 병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확인했는데 같은 병이긴 했다. 술집 주인 입장에서는 좀 진상같았을 수도 있었겠다. 막걸리 먹으러 다시 공주에 가야겠다.
"혹시 만화그리는 분이세요?"
'뒤집어야 전이제'를 나오는 길에 나보다 조금 어린 듯한 종업원이 물었다. 마침 나는 술집을 나가면 오는 길에 봐뒀던 만화방에 갈 계획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만화그리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신기했다. 어쨌든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멋쩍어 아닌데요, 하니 그녀는 바로 등을 돌려 내 테이블을 치우러 가버렸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궁금해서 불러 세워 물으려다가 이유를 혼자 상상하는 게 재밌을 것 같아 그만뒀다.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만화 그리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게 굉장히 기뻤다. 요새 들은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았다.
#공주 만화방은 공주 막걸리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 공주의 명작만화는 내가 본 만화책방 중 가장 컸다. 천장이 높고 널찍해 왠만한 대형커피전문점 같이 공간이 시원했다. 그 넓은 데 온 사방에 만화책과 무협지들이 빼곡... 서울에는 절대 없을 스케일였다. 학생부터 중년 남녀까지 손님도 복작거렸다. 주인 아저씨 눈치보면서 몰래 찍느라 가게 전경은 못 담았다.


나는 내가 가장 생기있던 시절 흥성했다가 이제 쇠락해가는 만화책대여점들을 보고서 세상이 변한다는 말을 배웠다. 요 몇년 새 서울에서 본 만화책 대여점들은 폐업처분, 파격할인같은 문구를 써붙였거나 사양산업답게 주인이 인테리어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티가 물씬 나는 허름한 곳들 뿐이었다. 서울에서 내가 가장 오래 지냈던 안암동의 만화책방은 문을 닫았고, 고향에는 한군데만 남았다.
공주의 명작만화에 들어섰을 땐 좀 오바해서 없어진 고향이 실은 어딘가에 잘 보존돼 있다는 걸 알게 된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쌍팔년도 다방에 있었을 법한 소파에 앉아서 반년 전 5권까지 읽다 말았던 신의 물방울을 다섯 권 더 읽었다.
'너 처음이구나.' 주인 아저씨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만화방에 가본 건 처음이었다. 만화는 꽤 봤지만 대여해서만 봤지, 만화방에 앉아서 본 적은 없었다. 중고생 시절 동네에 대여점은 여럿이었지만 만화방은 한 군데였고 그곳에 들어가기는 왠지 좀 어려웠다. PC방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하는 일도 좀 어려웠는데, 어른이 되고 훨씬 지나고 나서까지도 그런 데선 긴장이 됐다. 둘다 마와리 돌 때 많이 가봤더니 이젠 편해졌다. 만화방도 편안했다.
#집 근처에서는 찜질방이나 대중목욕탕을 잘 가지 않는다. 여행가서 찜질방에 들를 때만 때를 민다. 가장 최근에 찜질방에 갔던 게 재작년 가을 제천에서였다. 그러니까 1년 반만에 때를 민 거다.
북북 밀려 나오는 때를 보면서 <목욕의 신>을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때밀이에 내 몸을 맡겨본 적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요새는 목욕관리사라고 부른다지만 때밀이라는 말 좋은데. 마지막까지 남겨둔 등때를 밀려고 애쓰면서, 엄마는 때미는 일 같은 데 돈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지, 생각하는 바로 그 찰나에 중고등학생쯤 되보이는 딸과 함께 온 아주머니가 다가와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다. 놀라서 고마움도 잘 전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등을 내드렸다. 1년 반만이라 때가 많은데, 생각이 들어 창피했지만 아주머니는 때가 많이 나오지 않네요, 했다.
개인적으로 찜질방은 여러모로 여행자를 위한 최적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저렴한 가격도 좋고, 찜질방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TV 드라마를 보고 숨을 공유하고 있으면 잠시라도 이 고장의 일원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언가 안도가 된다. 어느 찜질방에나 코를 고는 사람은 꼭 한둘이 있어 괴롭기도 하지만 외로운 것보다는 괴로운 게 낫다.
코고는 소리를 듣다가도 어느새 깊이 잠들어 늘어지게 잤다.

찜질방 맞은편 상가인데 조화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디자인이 슬로건이 된 시대에 대한 반격?, 이건 과장된 이야기고 그저 왠지 마음이 흐뭇하고 따뜻했다.
부여행 버스를 기다리며 공주에 다시 와야 할 이유를 셌다. 가본 데를 또 가보고 싶고,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고,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게 되고,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고 싶고, 전에 없던 이런 욕망은 나이먹는 일과 관련 있는 걸까.
피고; 사정이 어려워서 나중에 변제할 생각으로 차용했습니다.
동생이 부도가 나서 아버지 역할인 제가 자금지원을 해야 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대가성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그래서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건지 아닌지 입장을 밝혀주세요.
피고; 제 3자가 보기에 일부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은 아니었어도.
판사; 그렇게 애매하게 말씀하시면... 본인은 유죄라고 생각합니까? 무죄라고 생각합니까?
피고; 일부는 저도 유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당시 대가성이었다면 퇴직 후에 그렇게 못했을 겁니다.
판사; 결국 공소사실을 부인한다는 겁니까?
피고; ......
박배수와 권혁 공판 사이에 낀 장삼이사의 재판이었다.
지난 일주일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어조와 목소리가 중요한데, 좋은 표현을 찾기가 귀찮다.
사람들은 왜 애매한 것을 정하고 싶어할까?
물론 개콘의 애정남이 정해주는 것은 꽤 유용하다.
J를 만났다. 약속시간 직전에 일어난 나는 택시를 탔지만 십분쯤 늦었다. J는 탓하지 않았다. 소 내장을 제한 없이 먹을 수 있는 식당에 갔다. 우리처럼 남의 장기를 씹어먹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 사십여분쯤 기다린 뒤에야 빈 자리가 생겼다.
J는 남자 이야기를 했다. 이년여째 J가 놀아났던 어떤 남자가 나중에 결혼하자며 농담을 던지자마자 J는 한달쯤 잘 사귀던 고급공무원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공부를 해야 하니 오빠를 더 만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멍청한 년, 이라고 욕했지만 나는 J의 그런 점을 좋아한다. J는 그 남자는 습관일 뿐이며 이제 연을 끊었다고 했지만 다 믿지는 않았다.
수년 전 J가 학생회 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나왔을 때, 자신은 배신자가 됐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남에게 배신자라는 이상한 딱지를 붙이는 이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J가 그저 스스로가 비겁했던 기억이라길래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게 실망스럽다고 말했던 후배가 있었으나 전혀 죄스럽지 않다고 말해줬다. 모두 반십년 전 일이라는 걸 짚으면서 실없이 웃었다.
J와 나는 그밖에 여러 사람을 험담했고 메말라가는 성욕을 개탄했다. J의 추궁 끝에 나도 이성애잔데 남자에 관심이 있지 아무것도 없겠냐 하자 J가 많이 기뻐했다. 살이 찐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J는 너는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핀잔했다. 그 말에 동의하진 않지만, 스스로 추켜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주위에 그런 이들이 많아졌는데 좀 질렸기 때문이다.
J는 내가 만든 멜로 드라마를 보고 싶다고 세 번 말했다. 그때마다 눈물이 나서 왠지 담배를 꺼내 피우게 됐다. 라이터가 없어서 테이블 위 버너로 주둥이를 내미는 우스운 꼴을 하고 불을 붙였다.
비키니 입은 여자의 가슴 사진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을 이성애자 남자가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성적 대상화는 나쁜 게 아니다. 암수가 섞여 사는 세상 도처에서 성적 대상화는 시시각각 일어난다. 성적 대상화할 남자가 없어 고민인 사람도 있다. 성적 대상화를 중립적으로만 볼 수 없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 혹은 강박이 자연스러운 욕망까지 거칠게 재단하는 면이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성별위계가 생기는 지점은 내가 누군가를 성적 대상화하고 있음을 드러낼 권리의 차이다. 난 당신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어요, 라는 함의가 담긴 언행을 일상적으로 표현할 권리는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많이 가졌다. 그래서 이 권리는 권력이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서의 속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비권력자의 자유를 신장하는 게 위계를 없애는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농담 한마디 할때도 눈치보고 자기검열하는 것보다는 서로 편히 웃고 떠들 수 있는 게 더 즐거운 세상 같다. 현재의 권력 비대칭 상황에서 생기는 문제에 관해 눈감아도 괜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가 된 나꼼수 멤버들의 발언은 분명 성별위계를 반영한다. 맘먹고 지적질을 해보자면 나꼼수를 포함해 이 세상의 성차별적 구조는 무한할 테다. ‘돼지’같은 놀림이 오가던 나꼼수의 수준을 보면 이번의 논란은 놀랍지도 않다는 식의 이야기를 여러 번 봤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매스미디어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걸 전혀 보지 않는 걸까 놀라웠다. 똑바르게 살려면 무도와 개콘을 보면서 내내 정색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더 불편하다. 숱한 대중문화와 문학이 성차별적인 위계와 성적인 농담을 차용하고 거기에 기댄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공유하는 문화적 풀을 정직하게 인정하자면 나꼼수가 이토록 쥐어뜯길만큼 중죄를 지었나 싶다. 요만큼 잘못은 그럭저럭 괜찮고 이만큼 잘못은 안돼라고 무 자르듯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선이라는 게 있음을 대중은 직관적으로 안다. 내 생각에 나꼼수 멤버들의 일련의 말은 진보마초의 원죄를 다 뒤집어쓸 만큼 파렴치한 축에 속하는 것도 못 됐다. 진보마초의 유구하고 번잡한 역사를 생각할 때 사회 각기각층의 유식자들이 굳이 나꼼수를 꼭 붙잡고 따지는 게 좀 어색한 건 나뿐일까. 이번의 나꼼수 시비는 군가산점을 반대하는 이에게 남성으로서 겪었던 부당한 억압과 거기 더해 옛 애인에게 차였던 기억까지 끄집어내며 열폭하는 일과 얼핏 닮은 데가 있다.
나도 나꼼수가 사과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만한 농담 못 들어넘기는 사람은 앞으로 나꼼수 듣지 말라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말한 이의 의도에 상관없이 기분 상한 이가 있으면 문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발언 자체보다 이후 논란에 나꼼수가 대응하는 태도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성희롱이 성립하는 결정적인 요건은 행위의 의도가 아니라 수용자의 감정이다. 우리와 다르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의 재미가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드는 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나꼼수는 팬을 더 불렸을 테다.
그저 그 정도면 됐다. 대신 논의는 지속돼야 한다. 애초에 지적됐던 진보 진영을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의 빈곤한 여성주의적 감각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원래의 문제의식이 제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라면 나꼼수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논의의 핀트가 여전히 나꼼수와 김어준에 맞춰져 있는 데에는 잘나가는 나꼼수에 대한 열등감도 한몫하는 듯싶다는 불온한 추정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나꼼수의 한계니, 언론의 역할과 책임이니 하는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옛날 옛적 블로그와 트위터가 새로 선보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포스트와 멘션을 두고 사회적 규제를 해야 한다니 만다니 하던, 금세 낡아버린 논쟁 말이다. 가까운 역사에서 확인되듯, IT시대에 기존 언론의 틀로 뉴미디어를 규정하고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가 대부분 부질없는 짓임은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드러난다.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내 지인들은 지들끼리 책 읽으면서 떠드는 이야기도 녹음해서 팟캐스트에 올린다.
내가 김어준이라면 정세만 아니라면 말도 마음껏 못할 방송 같은 건 때려치우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거다.
이전처럼 똑같이 농담과 욕설을 하더라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눈치보는 나꼼수라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생물학적 완성도’라니, 듣도보도 못한 억지스러운 단어가 김어준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자니 좀 안타까웠다.
지속돼야 할 여성주의에 대한 논의로 돌아가자면... 성적 대상화에 대해 냉정하게 정색하고 끈질기게 사과를 받아내야 할 대상은 내 주변에서 먼저 찾는 게 훨씬 편리하다. 숱한 사례 중 ‘야동’을 톺아 보자. 야동은 흔히 농담의 소재가 되고 지상파 TV에서도 야동 보는 일은 떳떳하게들 말한다. 야동이라는 게 성매매의 존재와 더불어 왜곡된 여성상을 만들고, 여성에 대한 습관적 성적 대상화의 근간임은 일반적인 이야기다. 지금 문제되는 팟캐스트의 라디오 발언과 비교해 경중을 따져보자면, 무진장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나꼼수의 코피를 비난하기보다는 당신의 지인이 떠드는 야동에 관한 농담 혹은 진담을 걸고 넘어지는 게 여성주의 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성의 또래문화 및 반여성적으로 생산되는 포르노 산업의 구조를 보자면, 포르노를 소비하는 당사자를 비난할 문제는 아닌가 오래 생각했지만 그럼 당장 누구를 비난할 수 있는지 답이 안 나왔다. 욕망은 습관적이며 습관은 구조에서 나온다. 욕망을 수정하지 않으면 습관도 구조도 바뀌지 않는다. 야동의 주인공이 되는 건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는데 그럼 야동을 보는 것도 최소한 그만큼은 부끄럽고 나쁜 짓으로 여겨져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지인에게 야동을 보는 건 나쁜 짓이니 보면 안된다고 쉽게 말했다가,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망 자체를 나쁘다고 하면 안된다는 답에 뭐라 말하지 못하고 반성했던 적이 있다. 이제와 반박하건대 욕망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메커니즘이 자연스러운 것이지, 욕망 자체가 자연스럽다는 건 착각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며 산다. 그런데 어떤 식의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받을 때만 마치 굉장한 자유를 제약받는 양, 경직된 도덕의 희생자처럼 구는 것은 좀 민망한 일 아닌가.
이참에 나도 오랜 욕망 한 가지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공표해야겠다. 나는 ‘병신’이라는 말을 쓰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줄곧 가끔 썼다. 6년전 한 친구는 사람들이 ‘병신’이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이 내려앉는다고 말했다. 그의 누나가 장애인이라고 털어놨다. 이후 나는 ‘병신’이라는 말을 대체할 욕이 없을까 계속 얕은 고민만 하다가 그만큼 어감이 속시원한 욕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여전히 사용한다. 그때마다 시원스럽지만 동시에 절로 딸려 나오는 그이의 기억에 죄책감이 들어 심경이 복잡해지는 찌질한 짓이 다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만할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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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를 읽고 재밌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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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파도가 밀려드는 여행기 파전 먹으러 그집 가봐야지 맹서해 봅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