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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에고그램 테스트 결과..ㅋㅋ

오로지 없는 것뿐! '없는 것 투성이’ 증후군

▷ 성격
이들 증후군은 생활능력이 부족해 그 존재가치를 주위로부터 거의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타입군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신 에너지, 생활에너지가 모두 지나치게 낮은 수준에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사회전반에 대한 관심이 제로에 가깝다 보니 사회질서나 도덕이라는 면에서도 이해가 매우 떨어집니다. 또 애정이라는 부분도 희박하고 주위 사람들이 죽든 살든 거의 개의치 않는 성격이 많습니다. 게다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에 매사가 어긋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투성이입니다.
이 증후군속의 몇몇에 한해 본능적인 활력이 어찌어찌 표준에 가까운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총 에너지량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 외의 타입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증후군을 총괄평가하면 능력부족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각 타입에게는 공통적으로 이상, 책임감, 배려, 관용, 지성, 이성이 전혀 없는데다 IV형, V형, VI형에게는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전혀 없습니다. 덧붙여 VI형은 이외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 못한 타입입니다.
이들 증후군에 속한 사람들은 일, 연애, 대인관계 등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겠죠. 아니, 잘 풀리지 않는다기보다 이런 것에 대해 진지하게 대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 대인관계 (상대방이 이 타입일 경우 어떻게 하연 좋을까?)

연인, 배우자 - 이런 상대에 대해서는 가벼운 동정심이나 얄팍한 금전욕 때문에 마음을 허락하지 않도록 강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경솔함이 두고두고 엄청난 짐을 떠맡게 만드니까요. 상대방이 착각할만한 농담도 절대 금물.

거래처고객 - 기생충이 되어 당신의 영양분을 빨아먹지 않도록 경계합시다.

상사 - 거의 가능성이 없으므로 생략.

동료, 부하직원 - 회사가 자선사업이나 복지사업을 할 마음이 있는지는 경영자나 상사에게 상담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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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오브 호러 - 시가렛 번(존 카펜터)


 

저주 받은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존 카펜터식 코멘터리

 

 

많이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시가렛 번이란 여러권의 릴로 이루어진 한편의 영화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시가렛 번은 보물섬의 해적들이 보내는 죽음의 편지같은 낙인이다. 그것도 영화를 보고서 낙인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인지하고 다가서려는 노력만으로도 찍혀버리는...

 

주인공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 필름의 감독과 그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는 카펜터가 푸는 영화에 대한 구라다. '누가 손에 드느냐에 따라 필름은 무기가 될 수 있다.'라던지, '그 감독은 뛰어난 편집자였어. 컷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지'라는 식의 가상의 영화에 대한 대사들은 일종의 아이러니를 조성하면서 모호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고어스러운 장면들도 물론 나오지만 분위기만으로 공포감을 조성해내는 노장의 솜씨에는 변함이 없다. 또 평생을 공포와 SF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의 아이러닉한 자기 비하이기도 하다. 보고나서 며칠간은 꿈에 나와 심기가 뒤숭숭했지만 추천할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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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스 월드


 

아무런 정치적 이유도 뭔가 대단한 계획도 없다. 그저 런던에 가고 싶을 뿐.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서라지만 보내는 어른들도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 여정...

 

영화는 고통에 쉽사리 다가가지 않는다. 관조하는 카메라. 어떤 영화들에서는 신파성으로 흐를 고통들이 덤덤히 묘사된다. 코드 46처럼 윈터바텀은 주변화된 세계를 아름담게 담아낸다. 왠지모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의혹... 그러나 우리가 그 '고통'이라고 대상화하고 정치화하는 자말의 고통은 우리 머리속에서 처럼 신파조가 아니라 윈터바텀의 묘사처럼 그들에게는 덤덤한 삶의 일부가 맞지 않은까?

 

영화는 파키스탄 난민촌의 아이들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 웃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들. 그들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매우 영화적인 실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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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46


 

사만다 모튼을 위한 영화...

 

팔뚝도 두껍고 몸매도 별로 안예쁘고 여배우의 여성성을 박탈하는 헤어스타일을 한 이 캐릭터는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다소 심심하게 진행되는 영화지만 그녀의 눈이 움직일때 졸린 눈을 할때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은 춤을 출때 바이러스로 인한 거부감으로 묶여서 섹스를 할때

 

카메라는 그녀에 100% 집중한다.

 

주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한 여성에 대한 극단적 우상화가 아름다운 영화.

 

컨스탄틴 가드너, 이터널 선샤인과 닮은 꼴인 이 영화의 젠체하지 않고 멜랑꼴리하지도 않은 세련됨은 나를 흔들었다.

 

한국영화가 다가서지 못할 어떤 곳에 대한 그리움. 여성의 육체를 죄의식이나 욕망없이 자연스럽게 혹은 집요하게 담아내는 정직한 애정. 스타일은 단지 이야기를 위해서가 아닌 내면의 작은 흔들림, 정서를 잡아내기 위한 도구로 쓰는 여유.

 

우리는 물론 영화를 일로, 노동으로, 돈벌이로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그러하기에. 그렇지만 그 노동이 단지 자본의 이익만이 아닌 어떤 것에 봉사한다면, 절대 지금의 충무로처럼, 무사안일이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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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라는 거..

난 상관도 없이 잘도 굴러가고 있다. 연출부...생활..

 

점차 비판의식없이 아무것도 아닌 감독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게 익숙해져가는 나 자신의 우스움...

 

안되겠다. 좀더 들이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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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예전에 빨간 눈사람이란 독립다큐멘터리 그룹에서 만든 애국자 게임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발랄함과 공격적인 유머에 내내 킬킬거리며 '다큐란 따분한 것만은 아니구나'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던 그 다큐는 그러나 다소의 찜찜함을 남겼다. 그것은 그 다큐에서 인터뷰한 인물들(박홍 총장,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 신문선 SBS 축구해설 위원 등의)은 그저 비꼼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유머의 코드였고 그러한 비웃음의 방식은 동성애자들이나 이주 노동자들을 유머의 코드로 만들어 버리는 방식과 비슷했다.

 

며칠전 3.1절에는 기이한 시위가 하나 벌어졌는데 그건 황우석을 지지하는 집단의 시위였다.

 

그들을 희화화 하기란 매우 간편한 일이다. 사실 그들의 주장에 진심이 담겨졌으리란 상상이 힘든 나에겐 그들이 진지한 정치 집단이란 생각은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3월 1일 광화문 거리에 모여 '황우석을 살려내라'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오늘은 어딘가에서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규범과 나의 규범이 합의를 볼 필요도 없고 그럴 일도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난 그들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싶다. 합의 불가능한 견해의 차이에서 관계의 단절만이 해결책이 되어버리는 이 시대에 다른 가능성이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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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영화 제목에 붙어있는 느낌표 만큼 힘있는 영화..

 

만듦새는 좀 밋밋하고 캐릭터는 다소 과장되어있지만 페이소스와 긍정의 힘만은 드센 영화..

 

뮌헨을 못 본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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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의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빠져 사건을 관찰하는 알랭 드 보통은

더 냉소적이지만 더 유머러스하다.


사랑이란 알 수 없는 사건의 이 기록은

중간에 알랭 드 보통이 고백하듯

책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바보이듯

무언가를 계몽하고자 함이 아니다.


난 앨리스이기도 에릭이기도 하다. 다 나의 어떤 면들..

그러나 앨리스가 에릭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실패하는 이 멋진 모순은

내 감정의 지도란, 추상화의 선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어떤 비평가들이 그게 의미 있다고 헛소리를 하건 말건)

헛된 시도임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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