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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5
    마스터 오브 호러 - 시가렛 번(존 카펜터)
    젠채
  2. 2006/09/02
    인 디스 월드
    젠채

마스터 오브 호러 - 시가렛 번(존 카펜터)


 

저주 받은 영화에 대한 영화이자 영화에 대한 존 카펜터식 코멘터리

 

 

많이들 아는 사실이겠지만 시가렛 번이란 여러권의 릴로 이루어진 한편의 영화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시가렛 번은 보물섬의 해적들이 보내는 죽음의 편지같은 낙인이다. 그것도 영화를 보고서 낙인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인지하고 다가서려는 노력만으로도 찍혀버리는...

 

주인공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그 필름의 감독과 그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는 카펜터가 푸는 영화에 대한 구라다. '누가 손에 드느냐에 따라 필름은 무기가 될 수 있다.'라던지, '그 감독은 뛰어난 편집자였어. 컷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지'라는 식의 가상의 영화에 대한 대사들은 일종의 아이러니를 조성하면서 모호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고어스러운 장면들도 물론 나오지만 분위기만으로 공포감을 조성해내는 노장의 솜씨에는 변함이 없다. 또 평생을 공포와 SF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의 아이러닉한 자기 비하이기도 하다. 보고나서 며칠간은 꿈에 나와 심기가 뒤숭숭했지만 추천할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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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스 월드


 

아무런 정치적 이유도 뭔가 대단한 계획도 없다. 그저 런던에 가고 싶을 뿐.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서라지만 보내는 어른들도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그 여정...

 

영화는 고통에 쉽사리 다가가지 않는다. 관조하는 카메라. 어떤 영화들에서는 신파성으로 흐를 고통들이 덤덤히 묘사된다. 코드 46처럼 윈터바텀은 주변화된 세계를 아름담게 담아낸다. 왠지모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의혹... 그러나 우리가 그 '고통'이라고 대상화하고 정치화하는 자말의 고통은 우리 머리속에서 처럼 신파조가 아니라 윈터바텀의 묘사처럼 그들에게는 덤덤한 삶의 일부가 맞지 않은까?

 

영화는 파키스탄 난민촌의 아이들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 웃는 모습. 장난치는 모습들. 그들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매우 영화적인 실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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