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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는 것보다 무서운 것

이번 쿠르디스탄 여행에서 가장 큰 것이라면, 소외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쿠르드 민족은 4천만 명이나 되지만, 5개 나라(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제르바이잔, 터키)에 의해 나뉘어졌다. 이 중 2천 5백만 명 정도가 터키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쿠르드 민족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르는데, 터키 지역내에 있는 디야르바크르라는 도시가 쿠르디스탄의 수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구 2백만 명의 중심도시이다. 쿠르드 민족이 어떻게 소외되어 살았는지 구구절절 말하자면 너무나 긴 이야기이므로 몇 가지의 사례만 들어보고자 한다.

터키 지역에는 쿠르드 민족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봉기했던 쿠르드 사회주의 노동자당(PKK)이 있다. PKK가 1984년 8월 15일(공교롭게도 한국의 해방기념일과 일치한다) 터키군에 반격하여 무장봉기를 기점으로 게릴라 투쟁이 벌어졌다. 이후 90년대 초반, ‘터키군이 쿠르드족의 산악마을에 올라와서 농부에게 게릴라들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쿠르드 농부가 난생 처음 듣는 터키어를 알아들을 리 없었다. 우물쭈물하던 농부는 터키에 살면서 터키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터키군에게 죽임을 당했다.(굿바이 바그다드/하영식)’

또한 지난 90년대, 쿠르드 담배를 피운 것이 이유가 되어 죽은 사람이 있다. 쿠르드 담배는 예전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피우던 쌈지담배와 비슷하다. 시장에서 담배를 사다 피우는 것이 탈세혐의가 되어 경찰에 체포되었고,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다 죽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유 같지 않은 이유(한국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소위 막걸리 반공법)로 사람이 죽어나갔지만, 이런 사실들은 이제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지난 10월 2일 이스탄불에서는 PKK 당수 오잘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며 사격을 가해 19살 청년 알틸라가 즉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점이 바로 소외되어 살아가는 것보다 힘든 것은 소외된 사실을 알면서 견뎌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디야르바크르에서 가까운 에르가니라는 도시를 갔을 때였다. 한상진에게서 ‘알리’라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 놓을테니 시청직원인 그를 찾으라는 당부를 듣고 무작정 시청으로 직행, 지난 사람들을 붙잡고 알리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마침 알리는 시청 밖에 있었고, 그를 호출하여 그가 시청으로 돌아오는 동안 약간은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에르가니 시장과의 면담이었다.

시청내에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고, 시장도 영어를 하지 못했다. (뭐 영어로 말한다한들 내가 알아들었을리 없지만...) 그래서 음료수 한 잔을 대접받으며 알리를 기다리는 동안 시장과 한 일을 그냥 서로 웃으며 약간의 터키어와 바디랭귀지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것과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말을 하고선 눈만 쳐다봤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나를 한 도시의 시장이 왜 만났을까. 나중에 한상진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에르가니의 시장은 나를 무척 반가워했고(이건 분위기상 느낄 수 있었다), 고마워했을 것이라 한다.

외국인인 내가 그 도시를 방문한 것만으로 고마워한다. 시장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사람들이 죽어가도 알려지지 않고, 9000년이나 된 유적이 사방에 깔려있어도 찾아오는 외국인은 일 년에 몇 명뿐이라고 한다.

그들은 소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맞지 않는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내 말에 의심이 가거든 권하고 싶다. 터키에 갈 기회가 생기거든 꼭 쿠르디스탄을 방문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도시이든 시청에 방문하여 가이드를 부탁해 보라. 그러면 그 도시의 시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 디야르바크르 시장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디야르바크르가 쿠르디스탄의 수도라 불리는 만큼 그는 쿠르디스탄의 대통령과 비슷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상들이 쿠르드 지역을 방문하면 만나는 상대가 디야르바크르 시장이다. 하지만, 지방도시는 확실하다.

한국에서는 구청장 한 번 만나려고 해도 무척이나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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