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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7
    사랑도 깊으면 한이 된다(6)
    초봄

사랑도 깊으면 한이 된다

 

- 위경희 동지의 서른 아홉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울산노동법률원에는 변호사, 노무사 그리고 나의 아내인 위여사가 있다

위여사는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 초대 법규부장이었다

현자비정규직노조 만들어지기 전

입덧처럼 하청노동자 최초의 해고자 복직 투쟁을 조직했던 위여사는

활동가들이 힘들다고 펑펑 울고 싶을 때 찾는 조직가였다

문성이 낳고 몸도 제대로 못 풀고 정신없이 투쟁 속으로 달려갔던

나보다 몇 배는 뛰어난 활동가였다

  

(왜 그토록 뛰어났던 수많은 여성활동가들이 운동으로부터 추방되었는가

꽃잎 옆은 항상 위험하고 꽃향기는 평등을 향해 자라지 않았다

위여사의 가사노동과 육아노동 위에 세워진 나의 운동은 본질적으로 반혁명을 닮아 있다)

  

내가 집 밖에서 조직했던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결국 위여사의 꿈을 금지시키고 그녀의 언어를 배제시켰다

나는 금지와 배제의 언어로 너무 많은 일들을 해결해왔다

  

(사소한 문제로 위여사와 크게 싸운 밤에는

“여성주의자가 모두 사회주의자는 될 수 없어도 모든 사회주의자는 여성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한 동지의 말을 생각하곤 한다

내가 오늘 당장 빼어난 여성주의자는 못되더라도 뼈아픈 반성으로 이 시간을 나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가 노동조합 관료제에 맞서 싸울 때

위여사의 고단한 퇴근길은 더더욱 쓸쓸했을 것이다

그녀의 퇴근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저물녘처럼 사무치고

눈물나도록 고마운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해 되찾고 싶은 이름

위경희 동지!

내가 모든 것을 다해 존경을 표하고 싶은 사람

위경희 동지!

  

해고 6년, 돈 한 푼 벌어다 주지 못했다

내가 말 한마디라도 잘 못 하면 위경희 동지는 오늘도 바르르 떠는데

사랑도 깊으면 한이 된다

서로 스며들어 서로를 완성할지니

한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다

 2009년3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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