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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간 430 행사

 

1. 430을 처음 가본 것은 1998년도였다. 대학 1학년때인 1993년도에는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 5월 이후였으니 430을 알 리가 없었을 것이고, 군대 제대도 1996년 6월에 했으니 1993-1996년 까지는 430과 메이데이는, 부끄럽지만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이 당시는 민족해방계열 운동에 몸을 담고 있었던 시기라 누구도 나에게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2. 1997년 그 동안 해 오던 운동과 단절을 한 후, 정치적 ‘전향’을 한 후 처음으로 학교에서 메이데이 참가단을 꾸려서 장충단 공원에서의 노동절 행사에 참여를 하였다. 97년까지도 430행사는 아직 나에게 낯설었다.

 

 

<1997. 5. 1. 노동절 투쟁을 마치고, 장충단공원>

 

 

다음해 1998년도에는 좀 더 조직적으로 준비를 해서 메이데이 참가단을 꾸려서 430과 메이데이 행사에 참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가 처음으로 참석한 430 행사였으며, 소위 ‘좌파’의 뜨거운 경험을 했던 기억이다.


3. 1999년 잠시 모 조직에 몸을 담았다가 어리버리 430준비위 중앙집행국에 파견을 가게 되었다. 99년 430은 다른 430보다 많이 힘들었다. 지하철노조가 그 해 4월, 7박 8일간 총파업을 벌이면서, 430준비위는 지하철투쟁을 엄호하기 위해 매일 이천대오 가까이가 집회에 참석하고, 200여명 가량의 사수대가 서울대에서 8일동안 밤을 지새웠다. 서울대에서 7박 8일간 숙식을 하며 지내던 기억을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몇번의 공권력 침탈 위협에 시달렸던 것은 별개로 하더라도, 밤에는 사수대와 함께 규찰을 서고 아침이 되면 3-4시간 잠시 눈을 붙여다가 시내에 열리는 오후 집회대오를 위해 서울대를 나가 집회에 참석하고 다시 서울대로 들어오는 일을 반복하였다. 또한 서울대에는 내가 몸 담았던 조직이 없었다. 다른 조직의 스텝들은 본인들의 사무실로 가 잠을 자는데, 나는 잘 곳이 없어서 1000-2000여개의 화염병으로 가득차서 신나냄새가 빠지지 않았던 총학생회방에서 의자 서너개를 붙이고 새우잠을 자야만 했었다. 그 때는 소위 좌파에서 소수파였던 우리 조직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4. 어제 몇 년만에 430을 갔다. 예상을 했지만 학생인원은 얼마 안 되었다. 그래도 수년전부터 민주노총이 메이데이 전야제를 주최하면서 흐려놓았던 430의 자리를 다시 학생동지들이 복원하는 것 같아 남다른 느낌도 들었다. 학교 후배들도 이십여명 가량 나와서 많이 놀랐다. 이제 조직도 없는 학교에서 1-2명의 활동하는 후배들이 그래도 고생하면서 후배들을 데리고 나온 것 같았다. 대부분 06, 07학번들이라 문화제에서 나오는 소리들을 제대로 알아 들을까 걱정은 했지만, 비를 맞으면서도 율동하고 구호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름 대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새벽 2시, 문화제가 끝날 시각까지 후배들의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미소 지으며 보면서, 나도 이제 아저씨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첫 메이데이 투쟁에 나간 때부터 10년이 지났구나. 이렇게 세월이 위치를 바꾸어 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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