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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 - 손호철 교수

다음은 손호철 교수의 <한겨레> 기고문 전문.

안녕하십니까? 얼마나 국정에 바쁘십니까? 바쁘신 가운데서도 쓰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선 최근의 진보진영의 논쟁이 현 정부의 실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통령께서 지적하셨듯이 대통령의 탈권위주의화, 당정분리, 과거사 청산, 지방분권 등 긍정적 업적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시정이 필요합니다. 또 진보진영의 문제점에 대한 대통령의 따가운 지적과 애정 어린 충고는 저를 포함해 진보진영이 자기혁신을 위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점도 있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유연한 중도나 유연한 개혁으로 부르는 게 적절

대통령께서는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진보진영을 “교조적 진보”라고 역비판하면서 자신을 “유연한 진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진보진영이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물론 진보가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그동안 추진해온 여러 정책을 볼 때, 유연한지는 몰라도 ‘진보’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민주노동당과 같은 정치세력이 진보이고, 참여정부의 노선은 진보도, 한나라당식의 ‘냉전적 보수’도 아닌 ‘중도개혁’, ‘자유주의적 개혁’, ‘개혁적 보수’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요. 참고적으로, 측근이신 유시민보건복지부장관도 정권초기 참여정부를 좌파라고 비판하는 세력에 대해 참여정부는 유럽식 기준으로 볼 때 오히려 중도우파정권이라고 반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대통령께서 자신을 “유연한 중도” 내지 “유연한 개혁”세력이라고 규정하실 일이니 왜 진보라는 명칭을 고집하시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통령께서는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반발하는 지지자들에게 사실 한나라당과 참여정부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연한 진보’인 참여정부에 이어 한나라당도 진보(‘조금 더 유연한 진보’)라는 이야기로 한국은 모두가 진보인 ‘진보의 천국’이라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을 진보의 천국으로 만든 노대통령

이 문제는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중요한 논쟁이 필요한 주제입니다. 너무 중요한 문제라 다소 길어지지만 이야기를 하자면, 이에 대해서는 크게 네 가지 용법이 있습니다.

첫째, 변화에 찬성하면 진보, 반대하면 보수로 보는 것입니다. 소련 붕괴 당시 공산당을 보수파로 부른 것이 그 예로 이 같은 용법은 변화의 내용과 이념을 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언론이 많이 쓰는 것으로, 진보-보수를 정도 차이의 상대적인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니 진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솔리니가 히틀러보다 진보적이라고 진보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주요 정당들이 절대적인 이념기준으로 볼 경우 보수양당제라는 점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세 번째는 시장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진보-보수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 용법입니다. 이 경우 대통령과 범여권의 자유주의세력은 보수이고 사민주의, 사회주의 등이 진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체주의적 방식으로 젠더문제에서는 박근혜가 권영길보다 더 진보라고 보는 식으로 젠더, 환경 등 분야별로 진보, 보수를 해체해서 보는 것입니다.

보수-진보를 구분하는 네 가지 방법

이 같은 네 가지 용법 중 삼번을 중심으로 하면서 사번을 결합시킨 용법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이 논쟁보다는 현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인정한 양극화와 관련해, 론스타 같은 해외투기자본과 재벌개혁에도 불구하고 더욱 비대해진 재벌, 그리고 강남아줌마들의 지갑만 불리고 다수는 민생고에 신음하는 양극화가 유연한 진보라면, 저는 기꺼이 교조적 진보로 남아있겠습니다. 아니 그같은 양극화가 진보라면, 차라리 제가 진보이기를 포기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진보진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개방문제를 주로 논의하셨습니다. 진보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나라가 무너진다고 걱정했으나 현실은 이같은 예언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비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외채망국론을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맹목적인 개방 반대론은 잘못된 것이고 외채망국론은 조야한 이론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외채로 망하지 않았다고 외채망국론이 무조건 틀린 이론이었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본주의는 양극화로 망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르크스의 이론이 틀린 의미없는 이론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르크스의 비판이 복지정책 등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가져와 예측이 틀리게 만들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외채망국론이 외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게 해 외채 망국을 예방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외채망국론' 외채 망국 예방에 기여

학문, 특히 비판적 학문의 역할이 그런 것이지, “이론대로 현실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론을 버리라”거나 “학자들은 좋겠다”고 비아냥거릴 문제는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70년대 말 현실적으로 우려했던 외채위기가 생겨나 박정희 체제가 무너져야 했고 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경제는 만성적인 외채위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사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노대통령의 생각과 정반대로 진보진영이 외채망국론을 너무 일찍 포기해 재앙을 불러 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난이라는 1997년 외채위기가 그것입니다. 물론 진보진영은 김영삼 정부의 OECD 가입 등 세계화라는,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모한 개방정책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외환위기 당시에 자기비판을 했듯이, 구체적으로 외채위기를 경고해주지 못함으로써 비판적 학문의 역할인 조기 경보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개방 과정에서 급속한 구조조정과 97년 외환위기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몰린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정책으로 교정할 문제”라는 낙관론을 피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97년 외환위기를 외형적으로는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듯이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면서 발전을 계속”해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선, 97년 경제위기 당시 3.2%에 불과했던 외국인들의 한국기업 소유가 이제는 40%를 넘어 절반에 이르고 있습니다. 즉 세계적으로 가장 민족적이었던 경제중의 하나가, 제가 알고 있기로, 세계에서 가장 외국투기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개방의 결과가 서민의 신음인데...

즉 개방의 결과는, 군사독재 아래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알짜기업들을 헐값에 외국투기자본에 팔아넘긴 것 입니다. 게다가 대통령께서도 인정하신 사회적 양극화도 구조화되어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이와 관련, 대통령께서는 양극화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하셨는데 여러 통계들, 그리고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성공이고 발전을 계속하는 것”이라면 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심각한 구조적 문제들이 대통령께서 김대중 정부로부터 물려받아, 그리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더욱 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않고 몇몇 보완적 정책으로 교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 회의적입니다.

사실 정책으로 교정할 문제라면 한번 멋진 정책으로 교정을 해 보여주시지, 왜 다수 서민들이 양극화속에 신음하도록 내버려두고 계시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한미FTA의 졸속추진과 같은 무비판적인 개방에 대한 진보진영의 우려는 타당합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대통령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세계화의 챔피온인 미국의 벤 베닝키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이 최근 세계화와 이에 따른 양극화로 미국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서는 등 세계화론자들 사이에서도 세계화에 대한 자성이 일고 있습니다.

한미 FTA 재고해야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민주세력 무능론에 대해서도 비판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참여정부가 잘 한 점도 있지만 무능하다는 비판에도 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만 예로 들겠습니다. 집값 잡을테니 집 사지 말라고 큰소리를 쳐 놓고(물론 청와대의 핵심측근들은 샀습니다만) 집값을 폭등시켰습니다. 국민들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자유주의적 민주세력에게 넉넉한 과반수의석을 줬고 민주노동당 등 추가적인 지지의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과 정치력 부재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이해찬 당시 총리가 쓸데없이 한나라당에 차떼기 당 운운했다가 한나라당이 등원 거부하자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문제 법안을 일방처리 안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결과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역사적 과제는 물 건너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거리로 달려 나와 탄핵으로부터 대통령을 구출해준 지지자들에게 역사적으로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이처럼 현 정부는 민주개혁에 있어서는 무능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진보진영과 많은 시민단체들이 반대한 비정규직법안은 한나라당과 손을 잡고 성공적으로 거의 날치기 통과시키는 등, 현 정부가 정작 하지 말아야 할 신자유주의적 개혁(개악)에는 유능했습니다.

유능해야 할 때 무능했고, 무능해야 할 때 유능했던 현 정부

불행히도, 다소 과잉단순화해서 이야기하자면, 유능해야 할 때 무능하고, 무능해야 할 때 유능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유능의 결과가 바로 양극화의 심화입니다. 나아가 조중동의 박수와 칭찬 속에 현 정부가 그 같은 유능을 십분 발휘해 한미FTA를 벼락치기식으로 성사시킬까 바, 걱정입니다.

민주개혁 문제와 관련, 대통령께서는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제 완성단계가 접어들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취임 초인 2003년 6월 일본을 방문해 일본공산당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할 때라야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지 않으시는지요. 아직도 사상의 자유를 옥조이는 국가보안법이 건재한데, 어떻게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야기하시는지 실망스럽습니다.

참여정부 때문에 개혁진영(대통령께서는 ‘진보진영’이라고 쓰셨지만 진보진영은 정권을 잡은 적이 없고 정권을 잡았던 것은 자유주의적 개혁진영 내지 민주화운동 진영입니다)이 정권을 내주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 대통령께서 “그렇다면 지난번에도 정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갔을 것이고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바 없다”고 반박하신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야말로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 정부의 실정과 각종 게이트로 엄청난 고생을 하다가 간신히 기사회생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대선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아실텐데 이 같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음 정권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한 바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다음 정권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잘못이라는 형식논리적인 주장을 펴신 것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 문제가, 약속했으면 책임감을 느끼고 그렇지 않았으면 책임감을 안 느낄 문제입니까?

가히 충격적인 대통령의 발언

그리고 설사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시더라도 겉으로는 “나 때문에 민주화운동진영의 정권재창출이 어려워진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하셔야지 “내가 언제 다음 정권까지 책임진다고 했느냐”고 말하시는 것은 지혜롭지 못 하십니다.

사실 대통령의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 교수 역시 비슷한 형식논리적인 주장을 펴 충격을 줬습니다.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진보진영의 비판에 대해, 양극화 해결이 2002년 대선의 선거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 것이 정권실패의 논거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편 것입니다.

아니 양극화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해소 못하면 책임이 있고, 책임감을 느껴야지, 선거공약이 아니라 괜찮으며 정권실패의 논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만일 조교수의 주장대로 양극화 해소가 노대통령의 2002년 대선공약이 아니라면, 대통령께서 우리의 문제를 정말 피상적으로 인식하고 선거에 임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사회적 양극화가 엄청나게 악화됐고 진보진영의 주요논객들과 단체들이 양극화문제를 고발하며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전개했는데 양극화를 대선공약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양극화가 선거공약이 아니었다는 조교수의 주장을 듣고 돌이켜보니, 사실 정권의 힘이 강했던 임기 초기(내지 2004년 총선 승리 직후)에 양극화에 대한 전면전을 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외람된 말씀이고 제가 잘못 봤는지 모르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대통령께서도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던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너무 늦게, 면피용으로 꺼낸 복지국가론

그같이 의심하는 이유는 조중동이 경제가 위기라는 시비를 걸고 나왔을 때 위기의 핵심이 단순히 저성장 등이 아니라 양극화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자성이나 언급이 별로 없이 성장률을 제시하고 기업이 사상최고의 이윤을 내고 있다는 사실 등을 열거하며 위기가 무슨 위기냐고 반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그 같은 반박을 접할 때마다 “전반적 경제는 괜찮지만 양극화로 서민 생활이 어려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하셔야지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다수 서민들이 경제가 위기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하시는 대통령의 말을 듣는 심정이 어떠할까 싶어서, 왜 저런 식으로 답을 하실까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대통령께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법안이 좌절된 뒤 경제살리기에 올인할 것을 선언한 2005년 연두기자회견에 가서야 비로소 양극화가 우리의 핵심문제임을 지적하고 동반성장 전략을 제시하셨습니다.

또 인기하락으로 힘이 다 빠진 2006년에 가서야 심각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세금을 늘려 복지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반발하자 꼬리를 내리시고 말았습니다. 한 마디로, 객관적 상황이,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대통령께서 너무 늦게, 그것도 별 의지가 없이 면피용으로 복지국가문제를 제기하신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참여정부와 진보진영의 건설적인 논쟁을 기대해보며 건강을 빕니다. 그러실 생각이 별로 없으신 것처럼 보이고, 남은 정치일정상 시간도 없는 것 같지만, 서민과 함께 했던 옛날의 아름다웠던 ‘바보 노무현’으로 돌아가 신자유주의로부터 서민을 위한 정책으로 극적인 대전환을 해주기를 기원해봅니다.

 
2007년 02월 26일 (월) 07:21:31 손호철 /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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