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퇴근하면서,

왠일인지 뭔가 나에게 선물 비스무리한 걸 하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막걸리 한 병과 오뎅 한 봉지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초긴축 재정인 요즘 상황에 나름 사치라면 사치랄까~

막걸리 한 병에 1200원, 오뎅 한 봉지에 1800원~ 합이 3000원. 괜찮다!

 

속이 헛헛하거나 뭔가 기름진 걸 먹고 싶을 때,

근데 요리해 먹긴 귀찮을 때~ 오뎅을 구워먹곤 하는데

소금 간만 살짝 해서 약한 불에 살살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캉하니 술 안주나 주전부리로 좋다는.

좋아하는 오뎅은 빨간 포장지의 부산오뎅이라고, 제일 싼 건데...

적당히 납작통통해서 굽기도 좋고, 무엇보다 노골적인 밀가루 맛이 매력!

근데, 동네 슈퍼를 세 군데나 돌아다녀도 부산오뎅이 없어서 쪼금 더 비싼 오뎅을 선택.

(왠지 '어묵'이라는 표준어 보다 '오뎅'이라는 촌스러운 발음이 난 좋더라~ 오뎅스럽잖아 ㅋㅋ)

 

우자지간, 막걸리 반 병에 오뎅 몇 개를 먹고

그냥 자기에는 왠지 속이 느끼한 듯 해서 김치에 밥을 먹고 푹~~ 잤다.

잘 자서인지 새벽 6시에 너무 개운하게 잠이 깨고,

잠이 오면 계속 잘 요량으로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도 더 말똥해지기만 해서

간만에 온 집 안 물걸레질을 하고 ㅎ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체홉의 단편 <6호실>을 읽고

사무실로 출근~

 

체홉의 단편집에 있는 소설들, 모두 좋고 아끼는 글들이지만

요즘 다시 읽다보니 유독  <6호실>이 맘에 와 닿더라는.

 

유약한 기질의 주인공... 부조리한 주변의 상황들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를 버텨내는,

유일한 즐거움은 자신만의 시간과 독서. 자신이 인지하는 주변의 고통과 부당함에

(그는 의사고, 읍에서 운영하는 병원의 원장이다. 나름 공직자랄까) 대해서도

나름의 고상한 철학으로 자신의 무반응과 무력함을 합리화하는데는 단련될 대로 단련된 사람.

그러면서, 철학과 예술을 논할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고상하고 품위 넘치시는 분

(그런 주인공이 밉상일 법도 한데, 이 책에서 묘사된 그는 안타깝고, 아슬아슬하다... 굉장히 안쓰러운;;;).

그러던 그가 병원에서 운영하는 정신병동의 한 환자를 알게 되고, 그와의 철학적 대화를 즐기게 되는데

여기서부터가 압권이다.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삶의 감각이 없는, 생활이 없는 거라며 그런 당신이 고통을 알기나 하냐고.

고통의 경험이 없는, 그런 경험을 피하는 건 어떤 철학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거고,

현실을 살지 못하는 거라고. 자신에게 고통이 닥치게 되면 어떤 철학으로도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하는

환자의 이야기(물론 이건 내 나름 요약한 내용이라는~ 줄까지 그어가며 읽었으나...대사가 기억 안 나;;;)

에도 '아! 이렇게 철학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라며 기뻐하는 주인공.

물론, 환자와의 대화가 잦아지면서 (그와의 대화 때문이 아닌) 정신병동 환자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에 의해 그 역시 정신병자로 몰리게 되는 과정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통'과 '폭력', '부당함'을 자신의 일로 겪게 되는 주인공의 상황, 그로 인한 그의 변화와 몰락이 묘사된다.

무튼,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쿵 와 닿았던 순간들은 정신병동의 환자와 주인공과의 대화이다.

자꾸...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되는;;;; 아... 막 이래;;;;;

삶의 공허함을 삶으로 부딪쳐내지 못하는, 생활로 경험해내지 못하는...

그래서 겉으로는 견고하고 평화로와 보이지만

상황의 변화만으로, 순간의 균열로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는 삶.

아프고, 슬프고.... 남 얘기 같지 않고;;;;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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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3 10:07 2011/06/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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