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어제는
- 불을지르는아이
- 2006
-
- 학생운동으로서의 장애인운동
- 불을지르는아이
- 2006
-
- 나는 왜 장애운동을 하고 있...
- 불을지르는아이
- 2006
-
-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
- 불을지르는아이
- 2006
-
- 어제 있었던 회의에서
- 불을지르는아이
- 2006
학생운동으로서의 장애인운동
사회와 장애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함께하는
게르니카
국문과 95 김형수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일 것이요, 그것은 삶을 잘 풀어 나가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리고 삶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은 삶 이라는 것이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삶은 그것을 사는 자, 인간의 주체성 자기 자신에 대한 주인의식을 피해서는 논의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모인 마당인 사회도 결코 이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체적일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갖지 못할 것이고, 자신의 삶을 가질 수 없는 한 행복해 질 수 없으며 행복해질 가능성이 없는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모인 사회가 우리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사회의 존재 의미는 없어진다.
사회가 만들어진 가장 으뜸 되는 이유는 바로 함께 하기 위함일 것이다. 함께 라는 개념 위에서 삶이라는 개념도 그 뜻을 가질 것인데, 그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모임을 만들고 함께 어울렸을 것이다.
그렇게 모여서 만들어진 사회는 각각의 개성적이고 주체적인 삶들이 모여 생긴 교집합이어야만 그 있음에 힘을 얻을 것이요, 그 교집합의 확장이 바로 그 사회의 역량과 건강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기본원칙이 무시하는 것이 곧 소외를 발생시키고 그 소외가 바로 사회의 모순이며 부조리이다. 아무도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는 각자의 삶의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어깨를 기대며 한 마당 안에서 뜨겁게 풀어나갈 수 있는 사회가 정의가 구현된 사회요,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이다. 바로 이 만들고자 하는 실천이 운동이다.
이제 이야기를 좁혀보자.
이 사회에서 우리 장애인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위에서 밝힌대로 각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우리 장애인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외당하고 있지 않은가? 소외당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문제제기이다.
2. 운동은 곧 주체이다.
위 문제제기의 첫번째 대답은 ‘결단코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장애인은 결코 이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인 적도 인정받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라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다 함은 잘난 장애인 한 명이 이른바 인간승리라고 일컬어 지는 것을 통하여 또는 앨리트적이고 부르조아적인 몇몇의 선택받은 장애인에 의하여 독점적으로 또는 관료적으로 400만 장애인의 삶이 좌지우지된 것을 말한다.1)(그래서 관료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의 현실 속에서 장애인 개개인의 삶은 무참히 무시되었으며 소외되었다. 그에 따라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같은 계층에서도 공동체의식은 거녕 지배이데올로기만이 팽배하니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운동은 곧 주체이다. 주체라는, 사회에서의 참여와 함께라는 의식이 인정된다면 더 이상 운동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공룡같은 사회에서 권력이라는, 돈이라는,구조라는 관습이라는 것들로 지배당하고 객체화 되어 있다.
운동은 이러한 것을 바꾸는 것이며 자신의 위치를 객체에서 주체로 바꾸는 활동이다.
소외에서 벗어나 참여로 가는 활동이다.
여기서 장애인운동이 나아갈 방향이 보인다.
장애인 운동으로서 주체로 서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장애인들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이 장애인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그 동기이고 에너지이다,. 장애인 운동의 고민은 바로 여기서부터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이들을 운동에 참여시킬 것인가? 이것만큼 장애인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말해 주는 것은 없다. 예)여성 장애인 대회 게르니카 활동들
이렇게 글을 맺으면 혹자는 그러면 비장애인의 활동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이다. 거기에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당신은 정말 당신의 삶에 있어 주체입니까라고 장애인이 소외되는 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사회에서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들끼리 잘먹고 잘사자는 운동이 아니라 바로 자기 삶에 주체되기 운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이 바로 운동과 봉사이다. 장애관련 동아리를 보면 주로 갈등하는 것들이 이 두가지 문제인데 거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묻고 싶다. 왜 봉사를 하냐고- 그냥 대학생이니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하고 싶을 때 하고 안하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으니까, 간호학과니까 왠지 해야 될 것 같아서, 크리스찬이니까,-자신 삶이 주체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봉사는 운동의 작은 형태일 뿐이다. 봉사를 하는 것과 그 행위를 통해 우리는 서로 주체적일 수 있는 것이다.
운동은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 변화가 진보를 향해 있을 때 그 운동은 정당하다고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그런 작은 움직임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변화도 바랄 수 없으며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십 아름이나 하는 거대한 나무도 잔뿌리, 실 뿌리 없이는 살아나가지 못한다.
곧 운동은 우리가 살고픈 세상을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나가는 모든 변화의 작업들이며 그래서 참여가 중요하고, 그 사회 구성원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이런 작은 움직임에 대해 얼마나 인정해 왔는가?
통일 논의 ,자본주의 논의, 노동에 관한 논의라는 이른바 큰 줄기에서 다른 작고 작은 변화와 진보의 움직임에 대해 그것을 뿌리로 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대부분 민중, 민족 같은 풀뿌리에 의지하고 있는 것에 반해 우리 스스로 그 뿌리로 함께 하는 것에 얼만큼의 노력을 하였던가?
여성운동 장애인 운동 참교육운동, 문화운동 모든 작은 움직임, 운동들은 민족 민중이라는 큰 줄기를 굳건히 버텨주고 그것에 항상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지금에 있어 우리 학생 사회는 각각의 삶을 풀어나가는 생각들 곧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그에 따른 방법에 대해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제 소수에 의한 투쟁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는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무도 소외당하지 않을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할 때이다.
이제 우리 학생 사회는 그물코 없는 그물 사회가 되어야 한다. 아무도 갇혀있지는 않지만 아무도 소외되어 있지 않는 그런 사회로 손을 맞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학생 사회라는 마당에 들어와 있는 학우들 개개인에게 각자의 삶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영역들과 그러한 힘들을 지원하여야 한다.
인간은 돌아가는 톱니바퀴가 아니라 살아가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1).우리는 이것을 스티븐 호킹 이데올로기라 명명하였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