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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울리는 영화 <우리학교>

다큐멘터리는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화면이 꺼지고 극장 불이 켜지고, 그제서야 하나둘씩 일어난다.
그러나, 평소의 영화관처럼 영화평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주위는 조용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니다. 나 자신이 아무 말이 없었다. 뭔가 말을 하면 울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영화관 문을 나서지 못하고 벽을 기대어 울고 말았다.

 

 

‘우리학교’라는 평범해 보이는 제목. 상영시간이 131분이나 되는 다큐멘터리.
70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 제작비. 개봉하고 있는 극장에서도 하루 한번 상영하는 정도.
어찌 보면 쫄딱 망하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엄청난 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큐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올라온 뜨거운 기류는 저예산 다큐멘터리의 모든 기록을 갱신하며 관람객 3만명을 향해 힘차게 내닫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무엇이 관객들의 심장을 울리는 것일까?

 

반도의 남쪽에서는 철저히 잊혀져 있지만, 일본이라는 힘든 곳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생명처럼 지키며 사는 조선학교. 그 중에서도 혹가이도 조선학교 재일동포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3년 5개월간 그들과 함께 살면서 촬영한 감독의 거리만큼 가깝다.

 

조선학교의 학생들은 조선말을 쓰고, 조선말로 수업을 하며 여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생활한다. 한국(조선)에서는 내면의 정체성을 가지면 외적인 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외적인 모습으로 민족성을 표현하지 않으면 내면까지 금방 일본인이 되어버린다는 한 학생의 말은 그들이 왜 그렇게 조선의 것을 지키려고 하는 지를 잘 표현해준다.

 

해방 후 540여개가 있었던 우리학교(조선학교)가 지금은 80개만이 남아있는 상황. 일본 우익들의 이성을 잃은 공격이 극심한 상황에서 조선인으로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삶 그 자체가 투쟁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해방 이후 조선학교를 일본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공부는 나중 문제였고, 싸움이 첫째였다는 재일동포 1세대 할머니의 회상은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우리학교가 우리의 심장을 울리는 까닭은 단순히 하나의 민족이라는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학교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입시경쟁과 물질만능주의(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고통받고 자살하기까지 이르는 이곳의 학교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선생님들의 모습. 일본에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동포들의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축구대회에 나가는 학생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우리학교의 모습에 감동해서 눌러앉아 버린 일본인 체육교사. 이지메(왕따)가 없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게 된다.

 

 

▲ 축구대회에서 아쉽게 패배하고 슬퍼하는 학생들의 모습. 하지만 동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 속에서 인공기도 만경봉호도 어색한 이북식 말투도 어느덧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동무’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인 것을 우리는 모르고 살았다. 고향은 ‘남쪽’이고 조국은 ‘북조선’이라는 우리학교 학생들의 서슴없는 말은 사실은 필연적인 것이다. 재일동포 문제는 그들의 문제라며 사실상 방치해왔던 남쪽 정부와는 달리 이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조선학교를 지원해온 것이다.

 

만경봉호를 타고 조국(북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하는 아이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발보다 손을 먼저 짚는 모습. 조선의 태양은 아름답다며 석양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아이들의 모습. 이북의 안내원, 군인들과 어우러져서 춤추고 정을 나누는 모습. 일본으로 떠나는 만경봉호에 다시 오르면서 조국과 동포들에 대한 뜨거운 감정에 눈물 짖는 아이들의 모습. 판문점을 방문한 아이들이 38선은 무슨 거대한 벽으로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조그만 선으로 조국이 갈려있다는 것에 놀라고 안타까와 한다.

 

 

▲ 꿈에도 그리던 조국을 방문하고 다시 일본행 만경봉 호에 오른 아이들이 아쉬움을 못이겨 모두 배 밖으로 나왔다.

 

 

“많이 먹고 자는 것은 행복이 아니죠.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행복이 아니죠. 그런데 인민들은, 정말의 행복을 알고 있죠.”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고급부 1학년으로 편입하여, 처음엔 자신이 조선 사람인 것이 싫었다는 학생이 고국(북조선) 방문 뒤 상기된 표정으로 북에서 만난 동포를 향한 애정을 고백한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우리학교의 졸업식은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가 울음바다가 되어버린다. 관객들 모두가 2시간이라는 어찌보면 짧은 시간동안에 졸업식에서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다지 슬프지도, 그다지 분노가 일어나지도, 그다지 기쁘지도 않은데 관객들 모두가 졸업생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 민족이라는 것일까.

 

이 영화가 올 한해 내내 극장에서 내려가지 않고 상영되기를 마음 속으로 빌면서, 두 번째 감상할 기회를 빨리 마련해야 겠다.

 

 

▲ 감동적인 졸업식 장면. 이미 학생들과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있다.

 

 

우리학교 OST - 우리를 보시라

 

 

그 언제나 나를 보는 눈길들 내가 서는 자리마저 하나없듯이
마음을 숨기며 발자취도 감추고 세상에는 저 혼자라 알아왔네
단 하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동무들이 나를 나를 이루어주고
두 팔을 크게 벌려 여기 오라고 안아주는 나의 학교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마음껏 배워가는 이 행복 넘치네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고운 그 모습을 그려 살리라

 

굽이굽이 돌아드는 이 길을 함께 가니 푸른 하늘이 열리여있네
조선옷 입고서 얼굴 바로 들고서 날마다 학교가는 이 기쁨아
불리우는 이름을 몰랐었네 자란 곳이 다른 줄을 몰랐었네
더는 헤매지 말고 웃어 보라고 안아주는 나의 학교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참되게 살아가는 이 행복 넘치네
아침의 해빛이 아름답고 고운 그 모습을 그려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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