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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0
    베네수엘라 혁명의 수도 카라카스 방문기 (2)(1)
    임승수
  2. 2007/02/14
    베네수엘라 혁명의 수도 카라카스 방문기 (1)
    임승수

베네수엘라 혁명의 수도 카라카스 방문기 (2)

1월 28일 일요일에는 짜여진 일정은 없었다. 하지만, 어렵게 방문한 베네수엘라에서 일요일이라고 그냥 놀수만은 없는 일.

마침, 일요일 새벽에 뒤늦게 합류하게 된 황세영 진보정치 기자, 임은경 민중의소리 기자, 송정순 당원과 함께 까라까스 시내로 나섰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19세기 초에 라틴아메리카를 스페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킨 시몬 볼리바르를 기념하는 박물관이었다.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항상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었지만,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혁명의 핵심적 내용을 형성하는 인물로 내세워졌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만들어가는 혁명이 "볼리바리안 혁명(시몬 볼리바르를 따르는 혁명)"이라 불리는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을 새삼 알수 있다. 시몬 볼리바르는 미제국주의에 맞서서 라틴아메리카를 민중적으로 통합하려는 차베스 대통령의 아이콘인 것이다.

 

 

▲ 시몬 볼리바르 박물관 앞에서 기념사진. 맨 오른쪽에서 기념품을 한무데기 들고 있는 사람이 필자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시몬 볼리바르의 초상화
 
 
▲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시몬 볼리바르가 입던 의복들
 
▲ 베네수엘라 국가를 큰 돌판에 새겨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시몬 볼리바르의 친필 서류
 
박물관 내부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시몬 볼리바르에 관한 것은 작은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모아놨다는 인상을 받았다.
시몬 볼리바르의 전투를 그당시의 신문기사, 작전도와 함께 배치해 놓은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바로 옆에는 시몬 볼리바르의 생가가 붙어있었다. 그곳도 당연히 빠뜨리지 않고 방문했다.
 
▲ 시몬 볼리바르의 생가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여전히 맨 오른쪽에서 기념품을 들고 있는 사람이 필자.
 
▲ 시몬 볼리바르의 생가 내부의 모습. 귀족 출신이라 집이 꽤 으리으리했다.
 
▲ 시몬 볼리바르가 자던 침대의 모습
 
▲ 집의 내부에는 이와같은 혁명 벽화들이 가득했다. 후대의 사람들이 볼리바르를 기리기 위해 그려넣은 것이다.
 
박물관과 생가를 방문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박물관의 벽에 크게 쓰여진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이 우리를 거역한다면, 우리는 맞서 싸워 복종시킬 것이다"
 
1812년 3월에 볼리바르가 한창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전쟁을 벌이고 있던 상황에서 엄청난 지진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스페인 편이었던 카톨릭 사제들은 신도들에게 볼리바르의 해방전쟁에 대한 신의 분노로 지진이 일어났다고 소문을 냈다.
이에 대해 시몬 볼리바르가 단호하게 "자연이 우리를 거역한다면, 우리는 맞서 싸워 복종시킬 것이다." 라는 말로 대응했다.
혁명가의 기풍을 느낄수 있는 매우 인상적인 얘기이다.
 
▲ 위에 언급한, 시몬 볼리바르가 했던 유명한 말을 새겨넣은 벽의 모습. 위쪽의 국가문장들(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파나마)은 볼리바르가 해방시킨 나라들이다.
 
바로 근처에는 시몬 볼리바르 광장이 있었다. 광장의 가운데에는 시몬 볼리바르의 동상이 당당하게 서있었다.
마침 미션 꿀뚜라의 일환으로 베네수엘라의 민중 노래패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운좋게도 이 노래패의 뮤직비디오가 담긴 DVD와 노래가 담긴 CD를 얻을 수 있었다.
근처에는 까라까스 시청도 있었다. 그 곳에 방문하니 마침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었다. 국경을 뛰어넘은 연대가 까라까스 시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 광장 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시몬 볼리바르의 동상
 
▲ 광장 가운데서 공연을 하고 있는 민중 노래패. 매우 유명한 노래패인 듯 보였다.
 
▲ 까라까스 시청의 모습.
 
▲ 까라까스 시청 내부의 모습.
 
▲ 시청 내부에 전시된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 관련 포스터들
 
시몬 볼리바르 광장을 떠나 차를 타고 이동을 해서 방문한 곳은 시몬 볼리바르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었다.
군인들이 정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고, 매우 엄숙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안에 들어서니 정면으로 시몬 볼리바르의 동상과 함께 유해를 모신 관이 있었다.
좌우로는 볼리바르의 혁명동지였던 수크레 장군과 미란다 장군의 동상이 서 있었다.
 
▲ 시몬 볼리바르의 유해가 모셔진 장소. 매우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느꼈다.
 
▲ 시몬 볼리바르의 유해가 모셔진 관의 모습.
 
까라까스 시내 전체가 시몬 볼리바르를 기념하는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민중들이 200년이 지나도 기릴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 이동을 했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지상이었다. 도로 위를 지나서 산으로 올라가는데 직접 보기에는 그다지 길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되었다. 케이블카에 몸을 싣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내가 도착지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단지 한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가는 초반단계에 불과했다. 올라가는데에만 2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올라가는 과정에서 까라까스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산에 둘러싸인 분지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 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 케이블카의 모습.
 
▲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까라까스 시내의 모습. 지상부터 도대체 얼마나 올라온 것인지.... 정말 길다.
 
케이블카의 도착지는 산봉우리의 정상이었다. 그곳에 놀이시설과 호텔을 지어놓았다. 휴일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산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정말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처음에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나 하는 케이블카의 가격에 불평을 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난 후에는 오히려 가격대비 만족도가 최고라고 얘기하게 되었다.
 
▲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선 산봉오리에서 내려다본 모습. 그 감동을 이 사진은 100분의 1만큼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20여분에 걸쳐 내려온 후에 우리는 빈민가 지역을 방문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방문한 빈민가는 체류기간 내내 우리가 타고다닌 차의 운전을 맡은 분이 사는 곳이었다.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베스에 대한 애정이 넘쳐흘렀다.
총기사고로 턱부분을 크게 다친 아들을 둔 아저씨는 차베스 덕분에 아들이 병원에서 공짜로 치료를 받았다고 얘기했다.
나는 일부러 차베스 지지문구가 쓰여진 빨간 T셔츠를 입고 다녔다.
외국인임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동양인 외모의 사람이 차베스 지지 T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이 신기했는지 사람들은 간혹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MVR(차베스가 소속된 집권당)의 당원임을 밝히면서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
 
▲ 빈민가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사진한방. 왼쪽에서 두번째에 위치한 필자는 항상 빨간티를 입고 다녔다. 아이들 한손에 안고 있는 아저씨가 바로 아들이 턱에 총상을 입은 사람이다. 이 분이 우리의 지역병원 방문을 도와주었다.
 
우리가 방문한 빈민가에 위치한 병원을 지역주민의 도움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지역병원은 꽤 규모가 있는 곳이었으며, 무상의료 프로그램인 바리오 아덴트로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역시 무상의료가 실시되고 있는 공공병원이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두 명의 의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둘 중에 한명은 외국에서 온 의사였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아르헨티나였던 것 같다.
이 의사는 한달에 400달러를 받고 일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활동에 매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국가에서 의사로서 편하게 돈벌수도 있는데 이렇게 베네수엘라까지 와서 의료봉사를 하는 모습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같은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빈민가의 병원에서 만난 의사들. 오른쪽이 외국(아마도 아르헨티나?)에서 온 의사. 혁명과 의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고 있다.
 
방문기는 3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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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의 수도 카라카스 방문기 (1)

지난 1월 24일 인천공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캐나다 밴쿠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종 목적지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밴쿠버에서 토론토 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토론토에서 카라카스 행 비행기를 또 갈아타는 긴 여정이었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베네수엘라 혁명 답사단 및 정당 교류 실무협상팀의 일원으로 카라카스에 가게 되었다. 그동안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혁명과정을 연구하고 책을 출판한 성과가 민주노동당의 정당교류로 이어져서 매우 흐뭇한 기분이었다.

함께 베네수엘라로 출발한 사람들은 이승헌 민주노동당 대외협력실장, 김영욱 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 조수연 민주노동당 국제부장, 통역을 맡은 분이다. 그 외에도 임은경 민중의 소리 기자, 황세영 진보정치 기자, 송정순 당원이 후발대로 따로 출발했다.


토론토에서 하루를 묵고 카라카스 행 비행기를 올라탔다. 드디어 마지막 비행기다. 약간의 사고가 생겼다. 후발대와 함께 토론토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후발대가 오지 않은 것이다. 후발대는 다행히 며칠 후 카라카스에서 월요일에 합류했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갈아 탈때 시간이 지체돼서 비행기에 못 탔다고 한다.


카라카스의 공항에 거의 다 왔을 때 비행기의 창 너머로 주변의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 비행기의 창밖으로 보이는 베네수엘라의 풍경

 

카라카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오전 7시 30분경이었다.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꽤 밝았고 하늘이 무척 파랗다는 인상을 받았다. 카라카스 공항은 인천공항에 비하면 규모가 작고 허름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죄다 스페인어를 말하는 것을 보니 베네수엘라에 오긴 온 모양이다.


베네수엘라의 외교부에서 우리를 맞이할 직원이 나와 있을 것이라는 답신을 받았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중남미를 방문한 사람들에게서 중남미 특유의 만만디 성향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한 아리따운 여성이 우리쪽의 통역에게 한국에서 왔냐고 말을 건냈다. 순간 무척 안심이 되었다. 외교부 직원인 여성의 이름은 다니엘라 세고비아. 나중에 잘 안 되는 영어로 물어봤는데 나이는 23살.

 

▲ 베네수엘라의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우리를 가이드해준 다니엘라 세고비아. 외교부의 아시아 담당 직원.

 

다니엘라 세고비아를 따라 공항을 나서서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우리가 묵을 호텔로 이동을 하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밖을 통해 산에 있는 수많은 빈민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라도 심하게 오면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절벽에 위험하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저 곳에 사는 대부분의 빈민들이 차베스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도로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산 위에 보이는 조그만 상자같은 것들이 빈민가의 집들이다. 밤에 산을 보면 집에 불이 켜저 있는 것이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같다.

 

시내의 호텔들에 자리가 숙소를 구하는데 꽤나 어려움을 겪었다. 다니엘라가 초조해하면서 우리에게 매우 미안해했다. 우리는 다니엘라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말을 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렵사리 구한 호텔은 멜리야 호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한다. 전화위복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쉬다가 외교부 건물을 방문해서 아시아 담당 국장을 만났다. 아시아 담당 국장인 또레스 씨는 우리에게 환영의 뜻을 밝히며 향후 있을 일정 등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도착한 날의 일정은 이것으로 마무리되고 우리는 간단하게 이후의 상황에 대해 공유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국과 13시간 차이가 나는 베네수엘라는 그야말로 낮과 밤이 정반대인 곳이다. 시차적응에 매우 애를 먹었다. 잠이 들어도 오래지 않아 깨는 일이 많았다. 억지로 잠을 청한 후 다음날인 현지시간 27일(토) 아침에 호텔 앞에서 우리는 차량을 타고 베네수엘라 혁명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FABRICIO OJEDA'라고 불리는 Nucleo de Desarrollo Endogeno(자생적 발전의 핵) 이다. 자생적 발전이라는 개념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에서 자기완결성을 가지는 경제 및 생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국가차원에서 자생적 발전이라고 하면, 석유산업 의존도가 강한 베네수엘라의 경제구조를 다각화 하는 것이다.


지역차원의 자생적 발전은 지역에 Nucleo(핵)을 건설하는데, 여기에는 의료시설, 협동조합, 교육시설 등이 한꺼번에 갖춰져서 자기완결성을 가지는 공동체가 건설되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바로 이 자생적 발전의 핵의 시범지구이다.

 

▲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간판. 자생적 발전의 핵(Nucleo de Desarrollo Endogeno) 지역 입구에 있다.  

 

이 지역에서 우리는 의료시설을 방문했다. 무상의료 시스템으로 유명한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의 2단계에 해당하는 병원이었다. 1단계는 Consultorio(진료소)라고 불리는 작은 보건소이고, 2단계는 왠만큼의 규모를 가진 2차 의료기관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의 2차 의료기관은 'Fabricio Ojeda' Clinica Popular 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이 병원의 소장이 나와서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 병원에는 17명의 의사가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내과, 가정의학, 방서선, 치과 등 왠만한 진료는 이곳에서 해결되며 당연히 치료비는 무료다. 하루에 500명 정도가 이용한다고 하는데 24시간 쉼 없이 진료한다고 한다. 이 의료기관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의 주민들에게 예방의학을 가르쳐서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조금 짖궃은 질문을 했다. "민간의료기관보다 보수가 적을 텐데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장은, 자신은 이 일에 만족하며 혁명사업에 함께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공공의료기관이 무상으로 치료를 해주는데다가 서비스의 질도 좋아져서 민간의료기관들을 대체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도 무상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 2차의료기관의 소장. 전염병 분야의 전공의라고 한다. 우리에게 병원 내부를 다니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 치과의 모습. 병원내부는 검소해보이면서도 깨끗했다.

 

▲ 감기 치료를 받는 아이들의 모습.  

 

▲ 기념촬영. 왼쪽부터 김영욱(진보정치연구소 부소장), 통역, 다니엘라(외교부 직원), 보건복지부 직원, 병원 소장, 이승헌(민주노동당 대외협력실장), 임승수(필자)

 

이 병원의 바로 옆에는 154명의 조합원들이 일하는 협동조합이 있었다. 의복을 만드는 곳이었다. 자생적 발전의 핵답게 직장, 병원 등의 기관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이곳의 모든 조합원들은 같은 임금을 받고, 조합장과 각 조의 조장을 조합원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협동조합에 대해 설명하는 분은 조합의 자금을 담당하는 분이었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전에는 자본주의적 회사에서 착취당하면서 살았거나 혹은 실업자로 지내던 사람들이라고 일러준다.


이 협동조합은 미션 부엘반 까라스(Mision Vuelvan Caras)의 일환으로 2004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며, 국영석유회사인 PDVSA의 도움으로 회사를 건설했고, 정부가 초기운영자금으로 20억 볼리바르를 대출해줬다고 한다. 무이자로 대출해주었으며 원금도 아직 상환유예받고 있다고 한다.


군복이나 공공부분에 필요한 옷들을 만든다고 한다. 조합원들은 INCE라고 하는 기관에서 전원이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절반이 일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일을 하는 식으로 교육이 진행된다고 한다.

이 기관은 협동조합들에게 볼리바리안 혁명 사상과 협동조합에 필요한 내용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4시 30분까지 한다고 하며, 일과 후에는 무상교육 프로그램인 미션 리바스(Mision Ribas)에 참가해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 협동조합 공장으로 들어가는 문의 모습

 

▲ 공장문 앞에서 우리를 보자 열렬하게 차베스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 협동조합 공장 내부의 모습. 여기서 만드는 티셔츠의 색깔은 대부분 붉은 색이다. ^^
 
▲ 협동조합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는 아주머니. 조합에서 자금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Fabricio Ojeda' 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소아암센터였다. 이곳은 Dr. Gilberto Rodriguez Ochoa 라는 사람의 이름을 딴 병원이다. 그는 훌륭한 의사로서 차베스 정권의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무상의료 시스템인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의 실질적 설계자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 소아암 센터의 정면모습. 매우 현대적이고 깨끗한 병원이다.
 
▲ Gilberto Rodriguez Ochoa 의사의 사진. 병원의 벽에 장식되어 있다.
 

병원 측에서 나온 홍보담당자들이 병원내부를 보여주면서 자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이 소아암센터는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 3단계에서 속하며, 전국의 8개 암 진단기관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 3단계면 우리의 종합병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한다. 2006년 8월 20일에 개장했으며, 쿠바 소아암센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쿠바의사와 간호사들이 와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홍보담당자는 말했다. MRI 등 최신식 의료장비가 가득한 이 병원 역시 이용할 때 무료라고 한다. MRI를 바로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소아암 센터를 소개해주고 있는 홍보담당자.
 
▲ 병원 내부의 벽에 걸려있는 시몬 볼리바르의 그림. 시몬 볼리바르는 라틴 아메리카를 스페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킨 19세기 영웅.
 
▲ 병원에 설치되어 있는 MRI 기계. 이것도 역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 병원에 있는 최신식 의료장비의 모습
 
▲ 쾌적한 병원 환경.
 
▲ 친절하게 포즈를 잡아 준 베네수엘라 의사의 모습
 
▲ 병원에서도 어김없이 혁명에 관한 선전물을 볼 수 있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 병원 안에 있는 기도하는 곳의 모습. 국민의 대부분이 카톨릭을 믿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을 반영한다.

병원에 있는 의료장비들은 여러 나라들과 협정을 맺어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서 들여온 한 장비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교환했다고 한다. 이 병원은 의료기관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의학 전공하는 학생들이 이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다. 의학도들은 물론 무상으로 교육을 받고 있으며, 장학금을 받는다고 한다.

 

소아암센터라는 특성에 맞게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2007년 1월 27일 현재 36명이 입원해 있으며, 이틀 뒤인 29일 월요일에 16명이 더 입원한다고 홍보담당자는 설명했다. 

현재 병원의 가동율은 50% 정도이며 이것은 의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 병원에서 공부를 하는 의학도들이 있기 때문에 2년 뒤에는 가동율이 100%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142명이 입원 가능하고 중환자 병상 33개, 4개의 수술실이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완전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제 볼리비아에서 온 아이도 입원해 있다고 한다.

 

병원의 바로 옆에는 지방 혹은 외국에서 온 환자들의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짓고 있었다. 2개월 후에 완공된다고 하는데, 이 숙소 또한 무상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러한 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국영석유회사인 PDVSA의 석유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에서 나온다. 이전에는 미제국주의와 국내소수 기득권만을 위해 봉사하던 PDVSA가 혁명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중을 위한 회사로 바뀐 것이다.

 
▲ 입원해 있는 아이의 모습. 치료 받고 꼭 낫기를 바란다.
 
▲ 식당에 모여있는 의학도들의 모습. 전액 무료로 공부하며 장학금을 받는다고 한다.
 
▲ 병원 옆에 짓고 있는 숙소의 모습. 지방이나 외국에서 온 환자의 가족들이 무료로 머물 수 있는 곳이다.
 
▲ 소아암 센터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
 
소아암 센터를 방문한 후에 우리는 차를 타고 라 베가 (La Vega)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범죄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치안에 문제가 있어서 무척 조심을 했다. 빈민가 지역이라서 그런지 차베스를 지지하는 포스터나 낙서들이 더욱 눈에 띄었다.

생활필수품들을 시장가의 40% 가격으로 판매하는 메르깔 상점에 들렀다. 주말이라서 물건이 많이 비어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사가는 모양이다.

 

▲ 차베스를 지지하는 문구로 가득찬 벽의 모습.
 
▲ 치안문제 때문에 카라카스의 상점들은 이렇게 철문으로 굳게 무장되어 있다.
 
▲ 철조망 너머로 파란집이 생필품을 40% 가격으로 싸게 파는 메르깔 상점이다.
 
▲ 라 베가 지역의 진료소(Consultorio) 모습. 빨간벽돌 집이 진료소이다. 쿠바 의사가 머무는 곳.
 

방문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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