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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11

15만명이 일어섰다. 우리의 양심은 어디에 있는가?

11월 22일,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에 전국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전부 15만명이 가두시위에 참가했으며 지방에서 시청, 도청을 점거했다고 한다. 유력 일간지들과 방송에서는 불법시위니 폭력시위니 하면서 떠들어대고, 정부는 엄정대응하겠다고 한다. 다음, 네이버 등의 포털사이트에 가보면 관련 뉴스에 집회참가자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굴비처럼 달리고 있다.


여러분이 그렇게 욕해마지 않는 15만명의 이름은 민주노총,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 전빈련(전국빈민연합), 민주노동당, 한총련 등이다. 이들이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서 범국민운동본부를 꾸려서 뭉친 것이다. 단체의 이름들을 들으면서 빨갱이니 주사파니 직업적 데모꾼이라느니 하는 사람들이 벌써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 또한 민주노동당 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여러분이 그렇게 욕해마지 않는 15만명의 이름들을 다시 불러보고 싶다. 이 15만명은 세상 모두가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무시할 때, 그리고 비정규직들이 거리로 나서서 싸울 때 같이 싸우고 같이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다. 이 15만명은 350만 농민들이 잘못된 농업정책과 한미FTA추진으로 알거지가 될 위기에서 농민들의 처지를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고 그들과 함께 잘못된 정책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다. 이 15만명은 미국의 부도덕한 이라크 전쟁에 편승해 정부가 자이툰 부대를 파견할 때 인류의 양심에 따라 거리에 나와 전쟁반대를 외친 사람들이다. 여러분이 그렇게 욕해 마지않는 이 15만명은,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고 나라경제를 미국에 팔아넘기는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서 앞장서서 싸운 사람들이다.


못살겠다고 거리로 나온 노동자와 농민들이 폭력경찰의 방패에 맞아서 벌써 세 명이나 죽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아직 없다. 이러한 개같은 현실에 분노한 사람들이 아직 우리에게는 15만명이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욕하는 이 15만명에게서 나는 아직 시대의 살아있는 양심을 본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기만당하고 속아온 이 현실에 분노해서 일어설 수 있는 시대의 양심을 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재벌인가? 재벌가의 자제인가? 맨날 골프치고 외제차 타고 다니는 사람인가? 이 세상이 그냥 그 자체로 천국인 사람인가? 그렇다면 굳이 이 15만명을 지지해달라고 하지 않겠다. 당신들은 이 세상이 그대로 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노동자라서 서럽고, 농민이라서 서럽고, 돈없어서 빽없어서 서러운 사람이라면 더 이상 우리를 욕하지 말라. 우리가 분노하는 현실은 당신이 분노하는 현실과 같다. 이 15만명이 150만명이 되고, 150만명이 1500만명이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기만당하고 속지 않게 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의 세상, 비정규직 차별의 세상, 농민 다 죽이는 세상, 한미FTA를 추진하는 매국세상을 원하는가? 아니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농민이 행복한 세상, 미국에 당당한 자주적인 세상을 원하는가? 당신이 노동자 농민이고 민중이라면 답은 이미 나와있다. 먼저 나선 15만명과 함께 이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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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공장이야기”를 감상하고 - 베네수엘라 노동자 공장 자주관리운동

노동자뉴스제작단이 개최하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벌써 10회째다. 11월 16일 목요일부터 19일 일요일까지 나흘간 일정으로 진행된 영화제의 개막작은 “5개 공장이야기”라는 작품이 다. 이 작품은 10회 영화제의 개막작이라는 상징성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을 자주관리하는 내용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05년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자고 선언한 이후 베네수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공장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실험들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통제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사회의 변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주제이다.


11월 18일 토요일 오후9시로 상영일정이 잡힌 “5개 공장이야기”를 보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고려대학교 4.18기념관을 찾았다. 개막작이면서도 18일에 한번 더 상영일정이 잡혔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었다. 상영장소에 들어가니 하이닉스 매그나칩 투쟁 영상 상영이 끝나고 영상제작자들과 청중 사이의 대화가 진행중이었다. 영상을 보지는 못했지만 청중들의 진지한 분위기와 무대 앞에 나온 영상제작자들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미루어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청중들이 너무나 없다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5개 공장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차분하며, 공장 관계자들의 인터뷰 위주로 진행되었다. Dario Azzellini 라는 사람이 제작했다고 소개를 하는데 사실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영상에서는 전부 다섯 개의 공장이야기를 다룬다. Alcasa라고 하는 알루미늄 공장, 직물공장, 케챱공장, 카카오 공장, 펄프공장 등 서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공장들이 차례로 나온다.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노동자가 공장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이다. 각 회사들이 노동자들의 통제하에 들어오는 과정은, 각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들만큼 서로 상이하다. 알루미늄 공장인 Alcasa의 경우는 애시당초 국영기업이었고, 직물공장은 사장의 방만한 경영으로 회사가 중단된 경우이고, 펄프공장은 자본철수를 한 상황이었다.


차베스에 의해 Alcasa의 대표로 임명된 Carlos Lanz 씨(과거 좌익 게릴라 활동 경력)는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참여경영(co-management)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고 경영회의에 몇자리 배려해주는 방식이며, 이것은 노동자들의 공장통제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얘기다.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 참여경영은 노동자평의회에서 공장의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고 노동자들이 직접 예산을 짜는데 참여하며 이윤동기가 아닌 지역공동체와의 나눔을 강조한다.


사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산관계에 직접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소유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위에 언급한 공장들은 바로 이러한 근본적 변화가 있었다. 정부측 소유지분과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합의 소유지분이 거의 반반씩으로 되어 있다. 쉽게 얘기하면 민중의 정부에서 절반, 노동자들이 절반씩 공장에 대한 통제력을 가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조합을 조직하고 결성한 후 사업계획서를 준비해서 제출하면 정부에서는 검토 후에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한다. 노동자들은 개별이 아닌 조합이라는 틀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해서 공장을 운영해나간다. 모든 중요한 결정은 평의회를 통해 결정되며 자기자신이 공장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전에는 사장이 시키는대로 일하고, 모든 중요한 결정은 사장 독단적으로 행해졌다. 비민주적인 독재의 현장이 바로 공장이었던 것이다. 반면 지금은 공장이 민주주의의 학교가 되고 삶의 주인으로 되는 현장이 된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한 임금을 받으며, 공장의 수익은 조합원들에게 동등하게 분배되고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쓰이게 된다. 예를 들어서 펄프공장에서는 지역의 아이들에게 공책을 무료로 나눠준다던지, 회사의 병원을 지역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하도록 한다는 등이다. 또한, 지역의 실업자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키고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전에는 이윤을 위해서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면 지금은 사람을 위해서 일자리를 늘려나가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인터뷰에서 언제나 차베스를 언급한다. 차베스 대통령의 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서 혁명정부가 들어섰을때 개별 공장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정권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공장에서 노동자 자주관리를 시도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과 한계에 봉착했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도 없었을 것이며, 자본주의 경쟁속에서 회사가 살아남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5개 공장이야기”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러한 내용들이 공장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잔잔하게 이어진다. 약간은 지루하다고 느낄수도 있겠지만, 변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어찌보면 혁명이란 것은 <볼리바리안 혁명> 같은 역동적인 영상뿐만 아니라 이렇게 일상의 삶 속에서도 느려보이지만 변화해나가는 모습일 것이다. 사회주의로 나아간다고 갑자기 별천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영상에서 주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공장의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많은 것을 고민해야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저 시키는 일을 정해진 시간까지 하다가 집에가면 되었겠지만, 지금은 공장의 주인으로서 지역의 주민으로서 더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평의회에도 참여해야 하고 예산도 직접 짜야 하고 기술개발에 대한 의견도 내야하는 것이다. 영상은 사회주의라는 것이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각 공장에는 공장노동자들의 이러한 의식화 조직화 사업을 도와주는 활동가들이 파견되어 있다. 이들은 정부에서 공장에 파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개별공장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혁명적 지향을 가지고 방향을 제대로 잡도록 도와준다. 알루미늄 공장의 대표인 Carlos Lanz씨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은 알루미늄에 문외한이며 혁명가로서 공장의 자주관리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Carlos Lanz 씨는 영상 말미에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이전의 사회주의에서는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결여된 관료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의 모델은 노동자들이 자주적인 조직을 결성해서 스스로 공장을 운영해나가는 주체로 선다는 점이 이전의 국가사회주의 모델과는 다르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델을 전파하고 노동자들의 공장 자주관리운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베네수엘라는 혁명의 과도기이며 이러한 시기에 개별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자주관리운동을 통해 새로운 모범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정부가 소유한 절반의 지분도 노동자들의 지분으로 점점 바꿔야 한다고 얘기한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자리를 나오면서 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중구위원회에서 강연을 할 때 “5개 공장이야기”를 볼것을 권했는데, 그때 봤던 당원들이 눈에 띠었다.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얘기하면서 들뜨고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사회주의는 어떤 것일까? 내가 일하는 공장에서 사회주의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의 중요성이 새삼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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