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칼럼 2011/12/01 16:21

재능교육 기도회 말씀 나눔, 12월 1일.

 

  오늘은 대림절 첫 주의 목요일입니다. 대림절 첫 주는 전통적으로 메시야 예수의 다시 오심을 묵상합니다. 메시야, 즉 왕의 다시 오심이라는 주제는 구약에서부터 발전된 주제입니다. 제국의 통치 아래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 민중은 하느님의 심판, 그 분이 제국의 시대를 끝내시고 새로운 새 시대를 여실 날을 기다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폭력적 질서 아래서 고통받던 기독교인들은 이 신앙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로마 제국의 시대를 끝내고 예수가 왕으로 오실 것을 기대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심판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입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 복음 21:33-46에도 심판과 구원이라는 주제가 나타납니다. 예수는 그의 생애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성전을 향해 심판의 말들을 외칩니다. “이 곳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 “너희는 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처럼 될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예수는 성전이 제국의 통치기구가 되고, 성전의 봉사자여야 할 이들이 제국의 대리자가 되어 버린 현실과 싸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쓴 공동체는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50년쯤 후에 이 복음서를 썼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성전 파괴 이후 유대교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던 바리사이파에게 견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회당에서 점점 아웃사이더의 자리로 밀려나고, 공동체에서 존경받던 바리사이파의 미움을 받으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스승, 50년 전에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성전 권력자들의 미움을 샀던 그 분, 예수를 기억했습니다. 이제 예수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버림 받은 예수처럼 그들 또한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오늘 본문 42절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 이것이 그들의 현실입니다. 45절에서 이들은 예수의 적이었던 “사제들”과 자신들의 적인 “바리사이파”를 한 데 묶어 놓고 있습니다. 예수가 권력에 의해 포위당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포위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50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그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으며, 그를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의 건축에서 이 머릿돌은 건물 전체를 완성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느님이 고난 받은 예수를 높이셔서, 그를 통하여 당신의 새 나라를 만드셨듯이, 지금 버림 받은 우리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이것은 절망을 넘어서게 하는 기쁨입니다. 이것은 싸움을 계속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입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지금은 그들이 강해 보이고, 그들은 막강한 힘으로 우리를 내리누르려 하지만, 메시야 예수를 다시 일으키신 그 하느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계신다.” 이 외침에 귀 기울여 봅시다. 생명의 하느님, 가난한 자와 약한 자의 하느님이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기에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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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1 16:21 2011/12/0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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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노랑조아 2011/12/02 23:23 ADDR EDIT/DEL REPLY

    아앙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현장에서 울려퍼진 말씀!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 horeb11 2011/12/04 20:58 EDIT/DEL

      다음 프로젝트도 은혜롭게 이루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