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 칼럼 2013/07/23 11:02

성경에 계시된 최저임금 만 원의 비밀, 만천하에 드러나다!

*이 글은 2013년 7월 22일, 최저임금1만원위원회 1차 전원회의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최저임금 만 원의 비밀, 만천하에 드러나다!

-최저임금 만 원, 성경에 써 있네

 

1.

  아마도 68 최저임금 1만원 대회 당일 아침이었다. 나는 보통의 토요일처럼 점심시간쯤 일어나 KBS1에서 하는 국악프로를 볼 생각이었다. 대회가 있는 학동까지의 동선이 도저히 엄두가 안 났기에 대충 성경공부 하러 교회 가는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그 날의 계획이었다. 하기로 한 공연은 지난번 회의에 참석한 쌔미가 하면 될 일이었다. 쌔미는 나보다 노래도 잘 하고 기타도 잘 치니까. 그리고 학동 앞의 자리는 서울에 사는 멤버들이 채워 주면 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계획인가!

  하지만 계획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연을 부탁하려 했던 쌔미에게 중대한 시험이 있는 날이 하필 그 날이었던 것이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당일 공연이 가능한 기도원 멤버가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점점 확실해져 갔다. 나는 어쩔수 없이 애정하는 국악한마당을 제껴두고 사당행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전날 밤까지만 해도 학동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으므로) 공연 레파토리 같은 것은 하나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예수님 간첩 사건'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것 외에 최저임금이라는 주제를 부각해 줄 노래가 한 곡 정도 더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버스 안에서 마음 속으로 '주여' 하고 부르며 기도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과천을 지날 때 쯤, 불현듯 한 소절의 가사가 뇌리를 스쳤다.

 

"최저임금 만원, 성경에 써 있네."

 

 

2.

  가사와 멜로디는 갖춰졌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이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부른다는 것은 내가 정통 보수 기독교 단체인 혁명기도원의 일원으로서 이 노래 가사에 동의한다는 의미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나는 선교적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최저임금 투쟁의 상황은 나에게 '당신들의 신앙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떻게 주장하느냐'고 묻고 있었다.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이 뇌리를 스쳤다. 예수는 가장 늦게 투입된 노동자도 생계에 필요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성경이 누구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의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떤 복음서 저자는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높은 산을 깎고, 골짜기를 메우라고 선포했다. 대기업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면 그들의 몫을 깎아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선에서 성경이 최저임금 1만원에 동의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6월 8일 학동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한달동안 일하고 팔십만원 받으면,

공과금을 다 내고 남은 돈이 없도다.

최저임금 만원 생활임금 만원

최저임금 만원 성경에 써 있네."

 

  다행히도 노래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집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러 주었을 뿐 아니라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은혜 받았습니다' 류의 덕담을 해 주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이 얼마나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앞에서 떠올린 두 성경구절이 있었지만, 그것만을 가지고 최저임금 1만원이 성경의 메시지와 합치한다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아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는 사실 기본소득과 더 관계가 있어 보였고, 후자는 깎고 메우는 것 보다는 길을 만드는 것에 초점이 있어 보였다. 신약성경 또한 그런 과정은 통해 쓰여진 것은 사실이지만 - 신약의 저자들은 히브리 성경의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찾아냈는데, 사실상 그것은 '읽어내기'가 아닌 '읽어넣기'를 통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해석 같은. - 근대적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자면 나는 일정기간동안 믿는바와 말하는바 사이의 괴리를 안고 있었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60% 정도의 확신만을 가지고 ‘최저임금 만 원, 성경에 써 있네’를 외치고 다니던 어느 날, 믿음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특별한 어느 순간이 아닌 보통의 기도시간 중에. 혁명기도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북아현 에서의 저녁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는 하던 대로 ‘은혜로운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시편을 읽고,복음서를 읽고, 복음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천년 동안 교회가 끊임없이 불러 온 찬송의 한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굶주린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이 노래는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행하신 일들을 언급하며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데, 굶주린 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 역시 하느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최저임금1만원 위원회가 처음부터 요구했던 것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날 사랑하심’ 만큼이나 – 어차피 성경엔 그 문장도 안 쓰여 있지만 - ‘최저 임금 1만원’도 확실히 성경에 쓰여 있다고, 아니 성경은 그보다 더 급진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선교학자들은 선교가 일방적 과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상대방의 질문에 응답하면서 교회는 자신이 가진 전통과 언어를 재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혁명기도원은 최저임금에 대한 시대적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전통을 새롭게 발견했다. 우리가 새롭게 배운 바에 의하면, 기독교 전통은 아주 오래 전부터 부의 분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그것은 복음의 일부였다.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식상해 보이는 명제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 운동과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이 운동은 우리의 눈을 밝히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의 빛이 아니었을까.

 

 

3.

  지금의 혁명기도원은 북극성을 보고 항해하는 작은 배와도 같다. 빛을 보았으나 어떤 경로로, 어떤 항해술을 사용해서 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우리가 탐구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기도원의 조직은 느슨하고, 연대할 수 있는 활동가의 수도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투쟁의 전략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조직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이번 운동의 국면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기도원은 이름은 걸었지만 회의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 단체였다. 그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이 더 막막하게 여겨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직구조가 우리 자신에게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인지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한편으로는 밀양, 강정 등지에서 끈기 있는 연대를 보여주는 수도단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애초에 기도원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을 때에 우리는 느슨한 조직이 갖는 장점을 찾아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기에 갑자기 조직의 성격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대하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인지에 대한 물음이 우리의 다음 과제중 하나가 될 것이다. 계속 세상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그 과정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발견하는 혁명기도원이 되기 위해 여러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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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장성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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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3 11:02 2013/07/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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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노랑 2013/07/23 11:23 ADDR EDIT/DEL REPLY

    국악 프로로 시작해서 혁기원의 미래로 마무리 짓다니..ㅋㅋ

  • 왈왈 2013/07/23 11:51 ADDR EDIT/DEL REPLY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는 데 성경책 어디에 써져 있는 건가요?? 제가 아무리 찾아 봐도 안 보여서...

    • yeo. 2013/07/23 14:09 EDIT/DEL

      일단 포스트 본문을 읽으시고 얘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 ou_topia 2013/07/23 14:32 ADDR EDIT/DEL REPLY

    잘 읽었습니다.

    • yeo. 2013/07/23 15:09 EDIT/DEL

      감사합니다:)

    • ou_topia 2013/07/23 19:35 EDIT/DEL

      노동계약을 담보물권과 관련하여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노동계약에서 사용자가 담보로 하는 것은 노동자(프롤레타리아)의 ‘생존 그 자체’가 아닌가 합니다. 계약을 어길 때 굶어 죽게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근데 야훼는 이런 담보권행사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수준 이하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5 이하, 신명기 24장 12,13)

      2-3년 전인가, 괴츠 베르너의 기본소득관련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님이 지적하신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전개했어요

  • bellamy 2013/07/23 18:12 ADDR EDIT/DEL REPLY

    잘 읽었엉. ㅋ

  • qlrxhfldk 2013/10/16 10:00 ADDR EDIT/DEL REPLY

    월요일 꿈에 목적지를 향해 가다 목적지 인줄 알고 내렸는데 더 가야 하더라구요 그런대 내린곳에서 조카들3명이 부모가 없어서 굶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만원을 주며 너무적은가 만오천원 주어야하나 하고 있는데 큰조카가 내가 갈 목적지 가는 차편을 알려주는 약도를 주어 다시 길을 떠나는 꿈이지요
    그러다 그날 집회가 있어 헌금을 얼마를 내나 하다 만원을 심었지요 그리고 다음날 퇴근길에 직장 상사가 내게 안좋은 말을 해서 예수이름으로 용서하지만 머리가 무거워 지는게 ..그래서 주님 저는 예수피로죽고 예수님이 제안에 사시는 것이니 나타나십니다 하니 한 20대초반 보이는 청년이 지갑을 잃어 버려서 그런대 광주까지 2만5천원 차비가 든다고 조금 보태 달라며 폰번호 알려주시면 전화드려서 계자이체시켜드리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또 만원만 주고 값지 않아도 된다 하고 왔지요 그러고 오늘 이글을 보네요 ㅋㅋ 만원이 성경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령님의 나타나심 같아요

    • yeo.  2013/10/18 18:34 EDIT/DEL

      좋은 간증 감사합니다:)